설교

진정한 생명의 양식을 누리려면... - 요한복음 6:30~35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7-07-30 15:20
조회
8442
2017년 7월 30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진정한 생명의 양식을 누리려면...
본문: 요한복음 6:30~35

제가 전에 이야기했던가요? 제가 이야기했는지 안 했는지 가물가물한 것 보니까, 아마도 여러분의 기억도 확실치 않으리라 생각하고 이야기합니다만...
지난 봄에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 내걸린 문구 가운데 하나가 충격적이었습니다. “목사님 제발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가족 가운데 한 분이 증언하면서 오히려 교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크다고 했을 때 더더욱 얼굴 들기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에 5월에 몇 교우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만...
어떤 의미인지 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기독교인 하면 당연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고, 목사 하면 그 믿음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니, 당연히 그 이름만으로 이미 보증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근본적인 물음은 항상 우리를 당혹케 하지요? 쉽게 말해 어떤 기적을 바라는 태도에서 믿을까요,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삶을 따르고자 하는 태도로 믿을까요? 이렇게 분명하게 물음을 던지면 답은 분명해질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삶을 따르고자 하는 태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답할 것입니다.
이 문제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자명한 것 같지만,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그렇게 자명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건대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의 신앙 태도는 전자에 가깝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믿음, 그것도 아주 가시적인 물질적인 복을 누린다는 믿음은 어떤 기적을 보고 믿는 것과 다르지 않은 신앙입니다.
그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자명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게서보다 훨씬 혼미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의 본문말씀은 그 상황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께서 오천 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한 기적을 행한 이후, 나아가 스스로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시자, 그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하고 있는, 긴 본문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본문말씀은 사람들의 두 개의 질문과 이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개의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자체로는 그다지 길지도 않고, 결론적으로 그 논지를 파악하자면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습니다만, 횡간을 잘 읽을 것 같으면 매우 미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배불리 먹는 놀라운 체험을 한 사람들 가운데 한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을 것을 말씀하시자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행하셔서, 우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하늘로부터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말씀대로, 우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의 의도와 기대는 매우 분명합니다. ‘선생님께서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맞다면, 그걸 우리가 무슨 수로 믿겠습니까? 뭔가 표적, 곧 기적을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컨대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지 않았습니까?’ 다시 풀어 이야기하자면 이런 뜻이 됩니다. ‘뭔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겠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내 앞에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이 일어나면 믿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질문 자체의 의도와 기대는 매우 분명한데, 전후 사정을 감안하면 좀 미묘합니다. 분명히 이들은 예수께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전후문맥을 보면 사실은 그 체험 때문에 예수를 직접 찾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제 와서 다시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오늘 본문말씀 바로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상황을 해명합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26절) 이 말 자체가 참 미묘해서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하나의 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 기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나눔의 삶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일차원적으로 자기 배부른 것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기적의 무용성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적을 보고 믿겠다는 신앙의 무용성을 말합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만 추구하는 신앙에 삶을 변화시키는 어떤 깨달음이나 만족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을 외치지지만 실제로는 결코 ‘성령충만’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그 의미는 이어지는 예수님의 답변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부터 참된 빵을 너희에게 내려주신 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이 말은 사람들이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것과 같은 기적을 보여줄 수 없느냐는 요구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인데, 이 말도 참 미묘합니다.
특히 하늘에서 빵을 내려 주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한 대목이 미묘합니다.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는 말씀이지만, 전반적인 맥락에서 볼 때 과거 조상들의 지도자였던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기적의 의미를 부인하지는 않되 그것의 불완전성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시에 지나지 않은 것이며, 정말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명의 빵을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정확한 의미를 새기자면, 이 말씀은 모세를 통해 나타난 기적의 의미를 부인하지 않되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말씀입니다. 만나의 기적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는 표징으로서 만나의 기적이 지니는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 셈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의 양식을 내린다고 말함으로써 그 기적 현상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시야를, 그 기적 현상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된 양식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듭니다.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만나의 기적 현상에 의존하는 믿음이 아니라 그 의미를 깨달으라는 이야기이며, 진정으로 인간의 삶에 필요한 양식이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진지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말미에서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전함으로써 여전히 변화되기 어려운 인간들의 삶의 태도를 꼬집고 있지만, 적어도 이 대목에서 아직까지는 진지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요청합니다. “주님, 그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답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나를 먹어라’ 하는 이야기인 셈인데, 이게 뭘 뜻할까요? 우리는 성찬식을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은 그 삶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시고 계신 셈입니다. ‘기적 현상에 매이지 말라. 그것에 매달린 사람들 삶의 변화를 보지 못했다. 나를 보고 믿어라.’ 오늘 말씀은 그렇게 집약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완전한 사랑의 삶, 그것이 곧 인간의 영원한 양식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양식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슨 기적을 보고 부화뇌동하고, 무슨 교리를 줄줄 외우면서 맹신하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삶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확인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열두 명만 남았다고 요한복음 6장은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오늘 본문말씀에 곧바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께서 그 현실을 꼬집고 계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36절)

오늘 본문말씀은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하고 겉껍데기 표층에만 집착하는 소위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경종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겉껍데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겸손해질 수 있기라도 하지만, 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마치 자신들이 온전한 진리에 도달한 것처럼 오만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잘못된 신앙으로 인한 폐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30세 이상 남자만 목사가 될 수 있다든지,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은 출교할 수 있다든지, 그러면서 자신들과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보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기독교가 제대로 된 기독교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 증오의 논리만을 확산시키는 해악을 끼치는 것입니다. 잘못 믿으면 그렇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 믿음의 깊은 차원에서, 삶의 깊은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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