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 나라의 인큐베이터 - 마가복음 4:26~32[선재원 교우]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7-08-13 19:59
조회
8724
2017년 8월 13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하나님 나라의 인큐베이터(마중물/産室)
본문: 마가복음 4:26~32
선재원 교우

2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27 밤에 자고 낮에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28 땅은 열매를 저절로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의 알찬 낟알을 낸다.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32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수 있게 된다."

잘 주무셨나요? 어제 저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최목사님과는 다른 분위기의 최목사님께서 존경하시는 목사님의 말씀도 듣고, 오랜만에 찾아온 분들과 그리고 평소 주일에는 말씀을 나누지 못했던 분들과 여유 있게 말씀을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난주에 갑자기 말씀나누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받아주셔서 목사님과 교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것을 나중에 까먹을까 봐도 그랬고, 또 한 가지는 이걸 계기로 평신도 말씀나누기가 부활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은 교회가 과연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각자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회란, 연약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길러내는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뜻에 적당한 한글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중물 또는 산실과는 또 다른 의미이기에...

제가 초등학생일 때 교회는 놀이터이자 먹을 것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다니지 않다가 부활절 몇 주 전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왜 주는지도 모르는 달걀을 받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살림교회 식구들 몇몇 분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는 교회에 다니게 된 중학교 때에는  ‘문학의 밤’, ‘크리스마스 행사’를 오랜 동안 준비하고, 행사 며칠 전부터는 매일 저녁 늦게까지 집중해서 준비하기도 했지요. 청소년시절 저에게 교회는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싸가지 없는 진보’라고까지 비판당하는 386, 이제는 586이 되었습니다만... 저에게 청년회 때 교회는 격렬한 진통의 장이었습니다. 청년회 때는 중고등부 때부터 함께 지낸 친구들과 후배들이 있어서 학교보다는 교회에서 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배, 친구, 후배들과 해방신학, 민중신학 그리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세상의 고민을 혼자 다 떠안은 것처럼 지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회건축 뒤에 닥쳐온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함께 지냈던 선배로부터 뺨을 맞기도 했고 중학교 때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가장 기뻤던 순간 중의 하나는 나에게 욕을 하며 떠났던 친구가 청년회 농촌봉사활동에 스스로 참여해주었던 때였습니다.

대학졸업하고 군대 다녀온 뒤에 별달리 하는 일 없이 지내다가 문익환 목사가 방북(1989.3.25)했다가 귀국하여 구금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청년회는 구금을 항의하는 의미로 금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두 1주일 동안 적어도 한 끼 이상 금식하기로 하고, 당시 무직이었던 나는 교회에서 머물면서 1주일 동안 금식했었습니다. 금식하는 동안 기도실에서 지냈기에 어쩔 수 없이 새벽기도회에 참석도 했었습니다.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새벽기도회 참석이었습니다. 이미 시작된 기도회의 찬송으로 잠이 깨어 부스스한 눈으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현재까지 기도원에 한 번도 간 적이 없고 통성기도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세례도 버티다가 버티다가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냥 차가운 신앙이었던 것이지요. 목사님이나 사모님과 같이 뜨거운 신앙에서 차분한 신앙으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다음해인 1990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었는데 유학하는 10년 동안 우연히 출석해본 2~3번 정도 이외에는 교회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 2년 반 있는 동안에 출석한 교회는 생활의 필요에 의해 출석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2013년 연구년으로 갔을 때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는 즐겁게 다녔습니다. 담임목사이신 안신형 목사님은 세월호 사건 이후에 매주 일요일 오후에 사모님과 하버드대학 앞의 하버드스퀘어에서 뜨거운 스프를 나누어 주며 세월호 사건을 잊지 말자는 피켓을 계속해서 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두 번 정도 동참했습니다. 얼마 전에 잠시 귀국하셨을 때 함께 식사할 수 기회를 가졌습니다. 안 목사님은 한국에서 교회를 다닌다면 저희교회에 꼭 다니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12년 반의 긴 외국생활을 마치고 2002년 9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바로 천안하고 근거리인 평택이었습니다. 2000년에 최목사님께서 교회를 시작한다고 연락해 주셨는데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도와드리지 못했습니다. 귀국한지 두 달 후부터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올해 저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몇 주 전에 서명을 해주셨는데, 바로 그 일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 변화는 살림식구들과 교토교구 방문 다녀온 다음 주인 1월 중순부터였습니다. 그 변화를 시작한 분이 바로 조현승 교수님입니다. 그 이전에 평택대에는 1995년과 1998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95년에는 교수회를 조직하려 했던 교수가 불분명한 이유로 재임용 탈락시키려 하자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명예총장은 당시 이사장으로 시위과정에서 다친 한 직원과 함께 직접 9명의 학생을 상대로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총장으로 20년간 재직합니다. 이사장 16년을 합치면 36년간 왕국을 지배해왔던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중앙정치의 권위주의가 20년 전에 없어졌고, 올해 촛불에 의해 그 망령도 지워졌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사학에는 권위주의가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그것도 많은 사학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면서…….

한국 고등교육기관(전문대 이상) 중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한 사학비중이 84.8% (2014) 입니다. 법인전입금 평균 3.9%로 학교운영비 1억이라면 400만원 투자해서 1억을 주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택대의 경우는 0.6%. 60만원 투자해서 1억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학의 이사회는 전지전능합니다. 그 전지전능을 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립학교법은 비리로 물러난 이사들을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관례상 이사회가 재산을 처분할 수는 없지만, 광범위한 경영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감독기관인 교육부는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감사에 의해 교비횡령과 인사비리가 밝혀져도 자체 징계로 그치게 하고,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보고서(국회의원 이수인[영남대교수, 1980년 5.17이후 해직, 민교협 창립주도, 13, 15대 국회의원], 사학재단 부정부패 개혁백서, 2000)는 사학과 교육부와 관계를 서로 감싸주는 관계라고 합니다. 사학의 비리를 감싸주고 교육부 퇴직자를 받아들이고. 또한 이 보고서는 비리사학과 교육마피아의 유착을 5단계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로 수수방관 단계, 즉 교수,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수그러드는지 확대되는지 지켜본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면죄부 부여단계, 즉 교수와 학생들의 항의가 커지고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 감사를 실시하여 중요하지 않은 몇 가지를 지적하여 여론을 잠재운다고 합니다. 순진한 교수, 학생, 학부형, 시민들은 이 단계에서 교육마피아에 철저히 속는다고 합니다. 교육부가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리사학에 구원의 밧줄을 주는 단계라고 합니다. 세 번째로 관선이사 파견단계. 첫 감사에서 여론을 잠재웠는데도 불구하고 항의가 거세어 비판여론이 계속되면, 할 수 없이 교육부는 관선이사를 파견한다고 합니다. 네 번째로 이사구성 변경단계. 교육부관료 출신 등 구재단의 의견반영이 가능한 이사를 하나 둘 교체한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로 관선이사회 흔들기 단계. 이사진에 포진된 구재단 측 이사들을 통해 교수, 학생들의 개혁요구를 수렴한 학교당국의 개혁프로그램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거부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개혁을 추진하면 교육마피아는 구재단의 진정 등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이사진을 붕괴시킬 목적으로 감사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이 5단계 기준에 의하면 평택대는 현재 0.5~1.5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 감사가 나올까 말까하는 단계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요. 그래도 이런 활동은 신선놀음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달간 주목하지도 않고 보장도 없는 고공 농성도 있고, 70년대의 노동운동에 몸을 바치고, 사학비리척결에도 힘을 쏟았던 전홍진 장로님도 계시고, 대학때 학생회활동하다가 짤리신 박종국장로님도 계시고, 심지어는 고등학교 때 전교조 선생님과 뜻을 같이하여 학교를 그만두신 이지수 교수님, 그리고 목회와 연구와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고 계시는 최형묵 목사님도 계시고....

여러 교우님께 두 가지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자녀들, 손자들,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시기 바랍니다. 학교의 주인은 운영비 4%를 내는 법인이사회가 아니라, 운영비 70%이상을 내고 있는 여러분 학부모, 학생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인큐베이터이니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에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록(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2004)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죽다 살아난 얘기, 박정희 씨와 담판을 지은 얘기 등 한국현대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에게 용기를 준 대목도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기도제목이 생겨 기도원에 들어갔는데 제대로 기도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기경은 기도원을 나오면서 “누가 와서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면 ‘추기경도 기도답변을 듣지 못하고 갔으니 상심하지 마세요’라고 전해주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차가운 신앙을 가진 저로서는 엄청난 위로의 구절이었습니다. 저에게 교회는 인큐베이터 같은 곳인 것 같습니다. 살림교회는 일요일에 말씀을 듣고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두 공간의 괴리에 15년간 힘들어하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던 나를 돌봐주고 위로해주었던 곳입니다. 그동안 15년 동안은 연구실과 교실에서는 행복했지만 학교에서는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학교에서도 행복합니다. 못난 저를 감싸주었던 인큐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 인큐베이터를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욱 맞도록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고쳐나가는 것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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