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당신은 울고 계십니까? - 누가복음 19장 41절-44절[황의명 목사 / 음성]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8-05-20 22:27
조회
15930
2018년 5월 20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당신은 울고 계십니까?
본문: 누가복음 19장 41절-44절
황의명 목사(충남청소년쉼터 보호상담사)



도입
고등학교시절 창피했던 대학시험치러 갔다가 친구 만난 사건..

저는 그 친구를 보았지만 그 친구는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연한계기로 보았지만 사실 둘이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린시절 외갓집에 가면 명절마다 고스톱 판이 벌어집니다.
고스톱을 치다보면 내 것 만 보고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발백중 그런 사람들은 쓰리고에 피박에 광박 등.. 상대편에게 더 이상 잃을게 없을 정도로 잃게 됩니다.
고스톱을 칠 때는 상대편이 뭘 먹었는지 다음에 뭐가 나올지 등등..
상대편이 먹은 것과 내가 먹을 것을 잘 살펴보고 연구해야 점수를 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된 것들만..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고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눈에서 소외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해 놓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의 도움을 갈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 버립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 우리로 인해 나로 인해 상처 입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납니다.

우리는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주변을 잘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 아파하는 사람은 없는지..
누군가 억누리고 압제당하는 사람은 없는지..

오늘 본문 41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을 가까이 오셔서 보십니다.

모든 관심의 출발은 여기에 있습니다. 보는데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은 시작됩니다.
여기서 “보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이도”인데..
이것은 단순히 “보다”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다, 주목하다. 생각하다. 알아채다. 알다”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치가 그렇습니다. 가만히 주목해서 보게 되면 그 상황을 알게 되고 앞으로의 될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다. 어떻게 해야겠다.”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결과까지도 우리는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주의 깊게 바라보십니까?
여러분이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이요, 억눌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눈이 열린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젼이란 말을 우리는 자주 사용합니다.
그 비젼이 무엇입니까? 바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삶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보는 것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눈에 섹시한 이성만 보이면 바람둥이가 됩니다.
돈만 보이면 구두쇠가 됩니다.
명예만 보이면 지극히 정치적이고 기회주의 적인 삶을 살 수 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배우자가 바로 그 섹시한 이성으로 보인다면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돈만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이 함께 보인다면 나눔이 풍성한 마음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명예만이 아니라 정의가 함께 보인다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4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기 시작하십니다.
왜 우셨을까요?
예수님은 보는데서 멈추시지 않으시고, 마음을 나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길이 가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격언 중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곧 눈에서 가까워지면 마음에서도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마음은 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은 관심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악함과 닥칠 심판을 바라보셨습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하는 이들의 답답함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애통해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다고해서 예수님이 손해보거나 아파할 이유는 크게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예루살렘을 보시고, 본인의 마음을 예루살렘 성의 민중들과 나누시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시며 슬퍼하시고 애통해하십니다.
멸망 길로 갈 예루살렘성이 안타까워서 마음이 아파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루살렘성을 향한 예수님의 눈길은 이내 마음길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들은 보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아파하는 이들, 또한 고통 받는 이들,
그리고, 불의한 권력에 의해 억눌리고 압제 당하고 신음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동남아에 큰 지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집을 잃었다고 해서..
아프리카에 지금 이 시간에도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해서..
사실 우리는 놀라고 걱정은 하지만 그것이 내 아픔이요, 슬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 부모님들이 느끼는 고통을 내 삶에서 절절하게 느끼지는 못합니다.
요즘 세월호 관련 기사에 댓글들을 보면 “이제 지친다”, “언제까지 세월호냐?”, “이제 그만하자!” 등의 댓글들이 달립니다. 지친다는 겁니다. 이제 잊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내 자식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아무 이유도 모르고 원인도 모른다면 그럴 수 있을까요? 내 아픔으로, 고통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관심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단순히 뉴스기사만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뛰어다니고 함께 해결을 위해 싸워나간다면 그래서 그들과 마음을 같이 한다면 간접적으로 나마 그것은 곧 내 아픔이 되고, 내 슬픔이 될 것입니다..
가슴 저린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예화

본문은 아니지만 우리 47절-48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예수를 없애버리려고 꾀하고 있었으나, 어찌해야 할 방도를 알지 못하였다. 백성이 모두 그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에 눈길을 주시고 다시 맘길을 열으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아파하시고 애통해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시지 않으시고 다시 손길로 이어지셨습니다.
언제나 눈길은 맘길로 맘길은 다시 손길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셔서 가장 먼저 성전을 정화하시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성 사람들이 멸망 길로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시고 그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 애쓰셨던 것입니다.

때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방해했지만 예수님은 멈추시지 않으셨습니다.
격렬하게 그들과 싸우시면서까지 예루살렘성을 구원하시고자 열심히 몸부림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기는 합니다. 애통해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가지 않습니다. 행동하지 않습니다. 함께 싸우지 않습니다.
많은 크리스쳔들이 불쌍히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이 세상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유입니다.
이중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돕는 것은 없으면서 안쓰러운 표정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식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보이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를 통해 죽어가는 이웃의 영혼들을 구원하실 사역을 하길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가운데 전하고 나타낼 일꾼들을 찾으십니다.

우리의 손길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아픔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불의한 세상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울고계십니까?

여러분의 눈길이 그들에게 머물고 여러분의 마음이 그들과 나누어지고,
여러분의 손길로 그들과 함께 싸우는 일에 앞장서는 우리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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