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랑’이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4-08 20:48
조회
1597
* <주간기독교> 다림줄45번째 원고입니다(140408).


‘사랑’이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사랑’이란 항목에 다음과 같은 네가 가지 뜻풀이가 나온다. “①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②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③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④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그런데 지금 그 네 번째 정의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31일 국립국어원이 ‘사랑’에 관한 뜻풀이를 재점검하고 수정하였다고 발표하면서, 그 정의가 바뀐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뀌기 이전 정의는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바뀌기 이전의 정의가 사랑의 주체를 성별과 무관하게 중립적인 행위주체로 하고 있는 반면 이번에 바뀐 것으로 확인된 정의는 그 주체를 ‘남녀’로 하고 있다.


그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그 개념의 역사성, 사회성을 반영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사랑’의 뜻풀이가 이성애적 관계로 한정되는 문제 때문에 계속 제기된 민원을 받아들여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에 걸쳐 ‘사랑’, ‘애인’, ‘애정’, ‘연애’, ‘연인’ 등 다섯 가지 단어의 뜻풀이를 성별과 무관한 행위주체에 의한 것으로 정의했다. 이성애만이 정상적인 사랑의 행위로 간주되는 통념을 넘어 포괄적인 의미로 정의한 것이다. 그것을 다시 2012년 이전의 정의로 되돌려놓았으니 당연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전형적인 쓰임이 사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만, 그 뒷사정은 좀 착잡하다. 기독교단체 등 일부에서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재수정을 요구한 것이 사실상 이유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제동에 걸린 사태와 마찬가지의 사태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의 퇴보를 뜻한다.


언어란 역사성 및 사회성을 지니고 있기에 사회적 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어떤 단어의 뜻이 변용될 수 있다. 얼토당토 않는 의미로 전도된 경우라면 모를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의미의 변용은 충분히 가능하다 할 것이다. 예컨대 인터넷상에서 문제가 되는 ‘일베’가 ‘산업화’를 민주주의나 다양성 또는 관용의 의미로, ‘민주화’는 오히려 반민주, 불관용 또는 위선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경우이다. 그러나 ‘사랑’의 의미 변용은 변화된 인권의식을 반영함과 동시에 그 인권의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우리말의 표준을 확립하는 배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지, 사전의 뜻풀이에 어느 만큼 시의성을 반영해야 하는지 더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기왕에 뜻풀이를 재정의했다면 그것을 되돌리는 일 또한 신중했어야 할 것이다. 이 사태는 최근 한국의 국가인권위가 국제적 평가에서 등급보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국가기관의 퇴행적 현상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 개운치 않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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