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불신의 세대를 넘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5-26 13:43
조회
2163
* <주간기독교> 다림줄47번째 원고입니다(140526).


불신의 세대를 넘어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을 즈음 서울 지하철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때 승객들은 그 자리에 머물라는 차내 방송이 나옴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다들 튀어나갔다고 한다. 사실은 세월호 침몰 사태와 달리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편이 더 안전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은 안내방송의 지시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부정적 학습효과라는 건 두말할 것 없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결코 돌발적 사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돌발적 사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신뢰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매우 불길한 징조로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상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뼈저리게 각인된 불신의 징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불신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특별히 세월호 침몰로 인해 희생을 당한 학생들과 같은 또래들에게는 더더욱 뿌리깊게 자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들을 일러 ‘세월호 세대’라 부르는 것은 세월호 사건의 최대 희생자가 된 이들과 공통분모를 절감하게 되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통해 확장된 이들의 경험은 언제나 수동적 존재에 머물 것을 강요받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요, 동시에 그것을 강요하는 국가와 기성세대에 대한 강력한 불신감이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호칭되는 세대, 예컨대 ‘산업화 세대’니 ‘민주화 세대’니 하는 것은 그 호칭 자체가 드러내 주듯이 뭔가의 성취를 공통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이 세대는 상실과 불신을 공통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세대들과 다르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세대가 장차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세월호 세대’는 명백히 상실과 불신을 공통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그렇게 명명되는 세대의 존재 자체가 우선 우리 사회의 불행의 한 징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뼈저린 상실과 불신의 경험은 양 극단의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나밖에 믿을 게 없다’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더욱 깊은 불신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 경험은 자신들에게 상실과 불신을 안겨준 세대와 사회를 향해 강력하게 저항하며 그것과는 다른 대안을 추구해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다행스럽게 이들이 주체가 되는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그 세대 당사자들의 몫으로만 돌릴 수 없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들을 책임적 주체로서 여기기보다는 지시와 명령을 따라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서 여기고 있다. 만일 그 뼈아픈 사건을 경험하고서도 우리 사회가 각성하지 못하고 그 세대를 그렇게만 간주한다면 불신을 극단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이들을 진정한 책임적 주체로서 인정하는 사회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불행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대의 향방이 단지 해당 세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문제인 것은 이 때문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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