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국정원 사태와 세월호 재난을 통해 본 한국사회의 현 주소와 교회의 과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6-30 21:29
조회
2459
2014년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사회선교정책간담회

한신대 신학대학원 장공관 2304호

2014년 6월 30일(월) 오후 1:30



“국정원 사태와 세월호 재난을 통해 본 한국사회의 현 주소와 교회의 과제”에 대한 논평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 서기 / 한신대 외래교수)



1.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 안에 근대화를 달성한 모범국가로 간주되어 왔다. 근대화의 요체에 해당하는 경제적 발전과정으로서 산업화는 물론 정치적 발전과정으로서 민주화 또한 단기간 안에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물론 산업화와 민주화는 일정한 모순관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어쨌든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짧은 기간 안에 근대화의 주요한 두 가지 요체를 한꺼번에 달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현재의 한국사회, 나아가 미래의 한국사회에 대해 낙관적으로 평가하거나 전망해도 좋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야기된 여러 문제에 맞선 저항으로서 민주화운동이 제기한 바와 같이 한국적 근대화과정은 그 자체로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강력한 민중운동으로 1987년 이후 본격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진척되었지만, 그 기반이 부실한 것은 물론 제도화 자체 또한 매우 허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대적인 선거개입 사태는 한국사회의 허약한 민주주의의 실상을 말해준다. 국가기관에 의한 선거개입 사건은 정의를 이루는 공정한 절차를 보장해야 할 국가기관이 나서서 그 절차를 파기해버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을 뜻한다.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사건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사건은 한국사회의 근대화 자체를 총체적으로 재평가하게 할 만큼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한국사회의 실상을 속속들이 드러냈다. 그 사건은 한편으로는 민주주의 기반이 허약하다는 것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민주주의가 허약한 기반 위에 섰을 때 어떤 재난을 불러일으키는지 또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2.

신상철 선생은 “세월호 참사,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10가지 의문점”이라는 초안을 통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의혹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양전문가의 안목이 돋보이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한 평가와 대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본 간담회가 지향하고 있는 ‘교회의 과제’를 직접 제시하지는 않지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접근방법은 국가권력에 의한 은폐의 의혹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평은 우선 그 발제의 기본취지에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그 사건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 작업은 예단과 억측을 방지함으로써 이미 가정된 결론과 대안으로 섣불리 빠지지 않도록 해 준다. 신상철 선생이 제기한 의문들이 하나하나 그 진실히 밝혀진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받았던 충격보다 더 심한 충격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특별히 지금 제기된 의혹이 국가권력에 의한 은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 진실이 속속들이 밝혀지기를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이미 밝혀진 사실들을 기초로 해 세월호 사건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그에 기초하여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충격에 빠졌고, 그 사건의 기본적 의미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 엄청난 사건이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악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의 구성만으로도 우리는 오늘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다. 착잡한 몇 가지 밝혀진 사실들을 보자. 자본의 이윤 보장만이 최우선시되었고 안전을 위한 규율은 배제되었다. 노후선박의 운행제한 연한은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되었고, 선박의 균형을 깨트릴 만큼 부적절한 개조 또한 어떤 규제도 받지 않았고, 화물의 적재량도 수용능력의 3배를 초과할 만큼 과적상태였지만 역시 어떤 규제도 받지 않았다. 선박의 안전성을 검사할 권한은 해운사의 이익단체에 해당하는 조합에 맡겨져 있었다. 선박운행의 직접적 책임을 맡고 있는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은 태반이 비정규직이었다. 이들에게 이뤄져야 할 안전교육 또한 시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윤리상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그 책임의식을 환기할 만한 일상적인 과정은 없었다. 우리를 더더욱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선 당장 위기에 처해 있는 이들을 구해야 할 정부관계 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초기대응조처의 미흡, 그리고 계속되고 있는 관계당국간의 책임전가와 자기변명의 태도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관계자들을 질책할 뿐 관계당국간의 혼선을 조정하고 긴급한 조난대책을 위한 조처는 실질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바로 이 하나의 사건 안에 응축되어 있다. 생명의 안위는 뒷전에 밀리고 오직 자본의 이윤확대와 그에 따른 경제규모의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달려왔던 우리 사회의 실상이 이 사건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평화를 보장하는 제도도 미흡하고, 그나마 미흡한 조건에서일지언정 그것을 운영하는 이들의 책임의식도 빈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희생당한 이들의 가족들의 요청과 국민적 여론에 대응하는 국가기관의 태도에서는 취약한 민주적 절차의 실상을 드러내줬다. 아니, 무능을 넘어선 악의의 혐의까지 보여주었다는 데 우리는 더욱 참담함을 느낀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상철 선생이 제기한 의혹들에 대한 은폐 혐의를 더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총체적으로 윤리의식이 실종된 이 나라의 실상, 정의 부재의 한국적 근대화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태이다.

이 사건으로 인한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전개되고 있는 밀양사태, 원자력발전소 가동과 확대정책, 그리고 전교조의 불법화 등등 계속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로 산적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극소수를 제외한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가 불안정한 위험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3.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교회의 과제는 무엇일까? 교회는 무엇보다도 희생당한 이들의 자리에서 그 고통을 함께 하는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희생당하고 고통당하는 이들과의 공감의 능력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세월호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이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바와 같은 오늘의 한국사회 상황에 대처하는 교회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출발점으로부터 많은 과제들이 부여된다. 사건 자체를 기억할 뿐 아니라, 그 진실을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제들이 연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제들을 위하여 교회가 헌신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우리가 새삼 환기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위한 교회의 역할, 곧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을 환기하는 것으로 교회의 과제가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 자체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 맞대응하여 교회의 과제를 제시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 특별히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위해 헌신해온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우리 교단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여겨질 수 있다. 문제는 교회 존재 그 자체로서 사회적 고통에 공감하고 그 진정한 치유자로서 역할할 수 있는 쇄신을 이루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교단은 언제나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을 갖고 현재의 상황에서 그때그때 대처하는 역할로 충분하다고 자위해서는 안 된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일찍이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입각해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애써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해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선교문서는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개념을 제시하고 있거니와, 그 개념의 기본취지 역시 우리 교단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우리 교단이 지향해온 ‘민중선교’의 전통은 그것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함축하는 핵심과 상통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사회선교’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하나의 ‘외적 과제’로 인식되는 한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 자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초로 하고 있다. 더불어 그 십자가 위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존재 자체로서 끊임없이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세상의 질서를 거슬러 부활의 희망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취하는 존재로서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이 진실을 새삼 환기하는 것은, 교회 자체가 그 뜻에 따라 전적으로 쇄신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교회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차원, 또는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로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을 일깨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교회 자체가 희생당하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공감의 능력을 갖추고 약한 지체의 온전함을 보전하기 위해 애쓸 때,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구원의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선취하는 공동체로서 몫을 다할 수 있다. 그 변화를 위해서는 교회의 직제와 예전, 그리고 교육 및 여타의 관행들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교회가 성장주의를 거부한다지만 교회 안에서 경쟁과 업적보상의 동기만이 권장된다면, 교회가 밖을 향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는다지만 교회 내 직제상 권위주의가 정당화되고 있다면, 교회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다지만 교회 내에서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가 문제시되지 않는다면, 교회가 밖을 향해 표방하는 가치들은 허망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들의 변화를 추구할 때 교회는 우리 사회 안에서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장기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한국사회 자체의 전반적 변화의 기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또한 교회에게도 중대한 변화의 기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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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