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10] 세상으로 인해 아픈 영혼(27~29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9-05 23:48
조회
1521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2년 9월 5일 / 최형묵 목사


제10강 세상으로 인해 아픈 영혼(27~29절)



2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 것들에 대해 금식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나라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식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버지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2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설 곳을 세상으로 정하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들이 취해 있음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목말라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내 영혼은 이런 사람의 아들들로 인해 아파합니다. 이는 이들의 마음의 눈이 멀어 스스로 빈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은 취해 있지만, 술에서 깨면 그들은 그들의 의식을 바꿀 것입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들은 확실하게 취해 있도다. 그들이 그들의 술을 뒤흔들게 될 때에는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바꾸게 되리라.]”  

2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육이 영을 위해 생겨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영이 몸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큰 부요함이 어떻게 이와 같은 궁핍 속에 나타났는지 놀라워할 따름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역주 3> 참조]  



27.

* 세상에 대한 금식, 안식일다운 안식일: 형식적인 종교의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도마복음에서 느닷없이 금식과 안식일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문맥을 통하여 금방 알 수 있음. ‘세상 것들에 대한 금식’은 ‘세상 것들’에 대한 절제를 뜻함. 이 때 ‘세상 것들’이란 경험하는 세계가 떠받드는 가치체계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말함.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금식은 그것으로부터의 절연을 말함. 여기에 대비되는 ‘나라’(도마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을 그저 ‘나라’라고 하고 있음)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음. 곧 현재의 세계와 절연함으로써 전혀 다른 세계를 맛본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 그 다음 안식일에 관한 말씀은 그 의미상 앞 구절과 동일한 병행구라 할 수 있음. 안식일을 인식일로 지킨다는 것은 안식의 참뜻을 구현한다는 것을 뜻함. 일상의 삶을 중단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새기고 구현하는 계기로서 안식일의 의미. 그 뜻을 온전히 구현함으로써 아버지를 본다는 것은, 세상 것들을 금식함으로써 나라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된 나라로서 하나님 나라.


28.

*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난 예수: 예수께서 사람들과 똑같이 육신을 지닌 존재로 삶을 산 뜻.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예수께서 스스로를 누구의 보냄을 받은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스스로 이 세상을 설 곳으로 선택했다는 것. 이는 예수께서 스스로를 진정한 주체로 말하고 있음을 뜻함. 이에 비추어 보면 실제 역사적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로 지칭했을까 의문시 됨. 물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점에서는 그와 같은 의식을 가졌다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배타적으로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식의 의식을 가졌는지는 의문.

* 세상의 사람들로 인해 마음아픈 예수: 세상 한 가운데 사람들과 더불어 있는 예수는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사람들이 깨우치기를 바라고 있음. 여기서 예수께서 세상에 온 목적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려는 데 있지 않고 깨우치려 한 데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남.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은 마치 술에 취해 있는 것과 같은 상태임. 다른 문맥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취함의 상태(13절)는 여기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 취한 상태의 사람들이 깨우치지 못한 진실은 빈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다는 것. 마음이 눈이 멀어 그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 구절의 의미는 바로 앞 절의 세상 것들에 대한 금식과 상통하고 있음. 부질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하는 인간 삶의 현실을 말함. 그 진실을 깨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진정으로 인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목말라 하지 않는다’고 말함.    

* 의식의 근본적 변화: 결론적으로 술이 취한 상태에서 깨어나면 사람들이 의식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함.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메타노이아’로 이것은 흔히 번역되듯이 ‘회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 내지는 ‘깨달음’을 의미함. 문맥으로 보아 ‘술에서 깨면’ 그 메타노이아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술을 흔들면’이라는 표현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음.


29.

* 영육의 관계: 영과 육 또는 몸을 나누고 영을 고귀한 것, 풍요로운 것, 그리고 육을 비천한 것, 궁핍한 것으로 보는 통념은 고대 세계에서 매우 일반적이고, 이 대목 역시 그러한 통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 그러나 이 구절의 초점은 영육의 분리 내지는 영에 의한 극복 대상으로서 육을 말하는 데 있지 않고 영육의 혼융을 말하고 있는 데 있음. 그 경이로움이이 점진적으로 강조되고 있음. 육이 영을 위해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해 영이 육안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영이 몸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몸이 극복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으로 드러나는 주체성 내지는 각성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음. 그 영육 혼융의 경이로움은 맨 마지막 구절, 곧 큰 부요함이 궁핍 속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을 말하는 대목에서 더욱 분명해짐. 이것은 앞 27절의 진정한 의미와 상통. 곧 세상 것들에 대한 금식은 세상을 떠나 초연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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