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34] 세상을 발견한 부자(110~112)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5-22 22:13
조회
1379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5월 22일 / 최형묵 목사



제34강 세상을 발견한 부자(110~112)


11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찾아 부자가 된 사람은 세상을 버려야 합니다.”

11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여러분 보는 데서 말려 올라갈 것입니다. 살아 계신 분으로 인해 사는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자기를 발견한 사람에게 세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11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에 의존하는 몸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 몸에 의존하는 영혼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한글 역주 3> 참조]



110.

* 세상을 발견한 부자: 도마복음에서 ‘세상’은 대개 부정적으로 언급된 경우가 많음. 27절에서 세상에 대한 금식, 56절에서 시체와 같은 세상, 80절에서 몸으로서 세상을 말하고 있음. 그것이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새삼 말할 것 없음. 그런데 여기서 ‘세상’이 그 부정적 의미의 연장선상에 있는지 아닌지는 더 깊이 새겨보아야 할 일. 결론은 세상에 대한 부정을 말하고 있기에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단순 부정이 아니라 모종의 점층법을 사용하고 있을 수 있는 점을 헤아려야 할 것. 특히 ‘부자’와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81절에서도 부자가 언급되고 있고, 역시 결론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그 구절에서는 분명히 점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 ‘세상’과 ‘부자’가 결합된 이 구절은 각기 두 개념이 함축하는 바에 따라  네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지님. ① 세상의 부정 + 물질적 부자 + 세상의 부정 → 단순논리, 세상의 부정은 당연, ② 세상의 부정 + 영적 부자 + 세상의 부정 →  이미 부정된 세상을 또 다시 부정하는 부자연스러운 논리, ③ 세상의 긍정 + 물질적 부자 + 세상의 부정 → 질적 전환을 동반한 고차원의 논리, 유익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부정해야 할 것, ④ 세상의 긍정 + 영적 부자 + 세상의 부정 → 부자연스러운 논리. 언뜻 보기에 이 구절은 ‘세상의 실상을 알고 깨달음에 이르렀으니, 세상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②)처럼 보일 수 있으나, ‘세상의 유익한 가치를 통해 부유하게 되었더라도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③)으로 보는 것이 극대화된 의미로서 적절해 보임. 어쨌든 결론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으나,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깨달음의 과정은 차이가 있음.      


111. (* 유사병행구: 마태 24:35, 누가 21:33)

* 자신을 발견한 자: 이 구절은 세상보다 더 중요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함. 그렇다면 이 구절은 앞 구절과 대비되는 측면을 지니고 있음. 말하자면 앞 구절이 세상이 어떤 유익함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부정해야 할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은 세상에 대한 발견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

하늘과 땅이 말려 올라가는 상황은 종말을 암시한다기보다는 뒤에 이어지는 말과 연결된 수사로서, 마태 및 누가의 유사병행구와 같은 의미. 곧 천지가 사라진다 해도 살아 계신 예수와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진실은 변함없다는 것. 1절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환기. 이 점에서 도마복음 결론부의 이 구절은 처음 던졌던 이야기를 재삼 확인하고 강조하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음. 어록의 무작위적인 배열이 아니라 의미의 심화를 유념한 것으로 보임. 육체의 죽음을 부정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진정으로 삶답게 누린다는 것. 그렇게 사는 사람은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 곧 부정되어야 할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112.

* 영혼에 의존하는 몸, 몸에 의존하는 영혼: 인간이 몸과 영혼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이해되고 있고, 그 몸과 영혼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상식에 비추어볼 때 난해한 구절. 87절에서는 몸에 의존하는 몸의 비참함, 그리고 그 둘에 의존하는 영혼의 비참함을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대개 이해할 수 있음. 몸에만 의존하는 육체적/물질적 삶과 그것에만 의존하는 영혼의 비참함을 말함. 그런데 여기서는 그와 대극되는 한 가지 차원, 곧 영혼에 의존하는 몸의 부끄러움을 말하고 있음. 결국 그 의미는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삶의 차원은 모두 부끄러운 것이라는 뜻. 정확히 말해 ‘몸에만 의존하는 영혼’이나 ‘영혼에만 의존하는 몸’ 무두 불행하다는 것. 상호의존과 합일이 아니라 일방적 의존관계의 불행함을 말함. 결국 영육이원론의 극복을 말하고 있음. 진정으로 하나된 자를 환기시키는 구절.

  


* 다음 제35강 종강(5/29) 주제는 “온 세상에 편재한 아버지의 나라”(113~11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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