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03] 여러분을 떠난 것은 마음이 아니요 얼굴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2:1~20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9-25 22:38
조회
1521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9월 25일 / 최형묵 목사


제3강 “여러분을 떠난 것은 마음이 아니요 얼굴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2:1~20



1. 회상, 데살로니가 공동체의 신실함과 바울의 진실함 - 2:1~8


1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공동체가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재하고 있다는 데 감격하며 인사를 전한 후, 2장에서는 데살로니가 공동체에서의 기억을 회상하며 공동체와 자신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1절에서 바울은 먼저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공동체에 함께 했던 일이 무용하지 않았음을 재삼 확인한다.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여 살고 있는 삶 그 자체로 그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가 알고 있는 바이다.

곧바로 이어, 대략 3주간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진 바울 일행의 데살로니가 체류기간의 정황이 드러나 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받고 쫓겨나(사도행전 16장)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데살로니가에 이르러서도 바울 일행은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은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데살로니가에서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심한 ‘반대’(표준새번역)/ ‘싸움’(개역성경)의 상황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상황으로 추정된다. 하나는 데살로니가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박해의 상황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암시되듯이 다른 선교사들과의 경쟁 상황이다.

박해의 상황은 사도행전 17장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유대 회당의 일부세력(회당 안에 유대인, 개종자 등이 있고 주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있는 상황에서)이 바울 일행을 소요를 일으키는 이들로 당국에 고발한 상황을 말한다. 이들은 바울 일행이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한다는 이유로 고발하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한 것이 문제였다. 이들은 유대 순혈주의에 입각하여 바울의 입장을 거부하였으나, 단지 그 이유로 배척한 것이 아니라 황제숭배를 거부한다는 정치적 명분을 들어 당국에 고발한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을 만큼 로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데살로니가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바울의 메시지가 갖는 실질적 위력을 반영한다.

다음으로 바울은 3절 이하의 기술에서 시사되듯이 여러 선교자들과 경합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회중에게 영합하거나, 스스로 불순한 동기로 탐욕을 갖거나, 또는 어떤 외적 권위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확인한다. 이것은 다른 선교자들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바울 일행은 단지 온전히 복음을 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대의에 충실했다는 것을 뜻한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복음만 나눠 줄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줄 태도로 그렇게 했다. 바울의 그 태도는, 그가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그 진실함이 데살로니가 공동체에 통했다.


2. 선포와 삶의 일치, 하나님께 합당한 삶 - 2:9~12


복음을 나눠 줄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줄 수 있는 태도로 함께 했다는 이야기는 이 대목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진술된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공동체와 함께 하는 동안 수고와 고생을 겪는 가운데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이것은 공동체 구성원들과 다르지 않은 삶의 공유를 뜻한다. 앞 구절에서는 어머니와 같이 그렇게 했다고 말한 반면 이 대목에서는 아버지와 같이 그렇게 했다는 표현이 흥미롭다. 그렇게 삶을 공유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 것은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려는 데 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비교적 분명한 바울의 종말론적 인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하나님께 합당한 삶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다. 여기서 바울은 종말론의 현재성 또는 종말론적 실존을 말하고 있다.


3. 고난의 연대성 - 2:13~16


바울이 그렇게 진실하게 전한 복음이 데살로니가 공동체에 온전히 받아들여졌다. 삶과 일치된 바울의 선포는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 더더욱 감사한 일은 그것이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받아들여져 삶으로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합당한 삶은 당대의 세계 안에서 고난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 대비되는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삶으로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 대목에서는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의 고난을 말한다. 동시에 데살로니가 공동체의 회중들 또한 자신들의 동족에게서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것은 기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초적인 귀속집단과의 갈등을 뜻한다. 하나님께 합당한 삶은 기존의 삶을 가능케 하는 조건과의 고통스러운 결별을 동반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 고난은 저들만의 고난이 아니다. 바울은 앞서 자신을 고난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데살로니가 공동체의 고난을 말하면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의 고난을 말했다. 바울은 고난의 연대성을 말함으로써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동시에 그 고난을 불러일으키는 세력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한다. 이 선포 역시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심판의 선언은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이다. 기존의 삶과 결별하지 못한 것 자체가 파멸이라는 것을 뜻한다.

유대인들의 심판에 관한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오용되어 왔다. 마치 유대인에 대한 일반적 명제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반유대주의의 정당화 근거로 오용되어 왔다. 이 구절이 유대인 전체에 관한 일반적 선언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박해한 유대인들을 말할 뿐이다. 그들은 유대인 순혈주의에 입각한 정통주의자들을 뜻할 뿐 유대인 일반이 아니다.


4. 여러분을 떠난 것은 마음이 아니요 얼굴일 뿐입니다 - 2: 17~20


바울과 데살로니가 공동체와의 긴밀한 관계를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지도자와 회중, 또는 선교자와 그 대상으로 분리된 관계로서보다는 혼연일체화된 관계를 함축한다. 떨어져 있어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대면관계가 중요한 만큼 그 꿈을 이루려했지만 바울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오죽하면 그 방해 조건을 사탄이라고 말했을까? 바울은 데살로니가 공동체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이의 보람과 영광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복음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3장을 통해 더 깊이 헤아려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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