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04] 사도와 그의 공동체의 관계 - 데살로니가전서 3:1~13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10-02 22:31
조회
1559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10월 2일 / 최형묵 목사



제4강 사도와 그의 공동체의 관계 - 데살로니가전서 3:1~13



1. 환난을 이겨내는 믿음  - 3:1~5


2장 말미에서 사도와 공동체의 관계는 충분히 밝혀졌다. 서로에게 절실히 필요로 하는 관계가 사도의 간절한 마음을 통해 충분히 피력되었다. 3장에 이어지는 내용은 그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겉으로 보기에 3장의 내용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이미 앞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는 공동체의 상황을 확인하고 그에 대해 감사하며 또한 격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도와 공동체의 긴밀하고도 절실한 관계를 밑바탕으로 하여 재삼 그 의의를 확인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2장 말미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카 공동체에 가려고 두 차례 걸쳐 시도하였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정말 간절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막는 방해조건을 사도 바울은 사탄이라고까지 말한다. 그것은 이 대목에서 재차 확인된다. 어쨌든 사탄의 방해라고까지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사정 때문에 사도는 동역자 디모데를 대신 보낸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그리스인 아버지를 둔 루가오니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때 바울에게 발탁되었다(사도행전 16:1~3; 디모데후서 1:5). 사도 바울은 그를 단지 자신의 일꾼으로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른다. 그것은 뜻을 같이하는 이를 동역자로 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모데는 데살로니카 공동체를 확고히 할 목적으로 파송되었다. 단순한 동태 파악의 임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사도 바울이 수행하고자 한 동일한 일을 수행하도록 파송된 것이다.

디모데가 파견된 것은,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카에 머물 때부터 예견되었고, 실제로 일어났던 환난의 상황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도록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환난은 이미 바울이 빌립보에서 겪었던 박해 상황을 말한다. 빌립보에서 박해를 받고 쫓겨나 데살로니카에 이른 만큼 그 상황을 말했고, 결국은 그곳에서도 역시 박해를 받아 바울은 쫓겨나야 했다. 쫓겨난 상황에서 그렇게 간절히 되돌아가고 싶어 했어도 바울은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주후 49년의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이 제국 전역에 미친 영향을 암시한다. 그 칙령과 바울이 두 지방에서 겪은 박해의 상황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이들이 제국의 질서 안에서 뭔가 불안한 소요 사태를 일으키는 이들로 인식된 정황을 짐작케 한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예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길을 따르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 명백하게 구별된다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 인식이 분명하지만, 늘 유혹자들이 염려되었다. 유혹자는 제국의 권력 그 자체일 수도 있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2:3 이하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모종의 타협을 하는 선교자들일 수도 있다. 다행히 데살로니카 공동체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2. 사도의 진정한 보람 - 3:6~10


디모데가 전해 준 소식은 데살로니카 공동체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었다. 환난을 겪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켜낸 믿음, 그리고 진정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랑으로 유대를 지속하고 있는 공동체의 진실한 삶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여기서 ‘사랑’은 당대 예수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보여 주지만, 특별히 이 문맥에서는 사도와 공동체의 관계를 나타내 주기도 한다. “우리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로 하는 관계를 말한다. 사도와 공동체의 관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이 관계는 오늘의 교회 공동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도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킨 데살로니카 공동체 교우들에게 반복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지만, 이 대목에서는 그것이 자신에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다 더 두드러지게 강조한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면, 이제 우리가 살아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러분들 때문에 우리가 살맛이 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양자의 상황을 다시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성원들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쉽게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다. 사도 자신 역시 다르지 않다. 계속되는 박해로 쫓겨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마도 물질적으로도 곤궁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공동체가 굳건히 버티고 있고 복음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진정한 삶의 보람이었다. 그것을 너무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만큼 사도는 더더욱 직접 대면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을 더욱 격려하고 싶어한다. 믿음에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싶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뭔가 부족하기에 질책하는 의미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믿음을 암시한다.


3. 온전한 공동체 - 3:11~13


사도 바울은 마침내 사탄의 방해를 물리치고 그의 공동체와 하나되리라는 소망을 피력한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다시 임박한 재림의 기대로 그 소망을 피력한다.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사도와 공동체가 하나되는 그 순간까지 삶을 지탱하는 것은 사랑으로 구체화된 믿음의 삶이다.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합당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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