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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기사] 종교 달라도 배타적 태도 닮은 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6-28 12:01
조회
2889
종교 달라도 배타적 태도 닮은 꼴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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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종교 배타성’ 토론회


“개신교는 노골적이고, 가톨릭은 음흉하고, 불교는 은폐적이다.”


지난 26일 오후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한국 사회의 종교 배타성, 비판적 전망을 위하여’를 주제로 한 열린포럼에서 나온 우리나라 대표적인 종교들의 ‘배타적 태도’들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물게 불교와 개신교, 가톨릭, 민족종교 등이 나름의 세력으로 공존하고 있는 다종교 사회다. 종교간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터라 종교적 배타성은 극복해야 할 최대 과제이기도 하다. 3·1운동을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주도한 이래 우리나라에선 종교가 갈등보다는 화합을 이룬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최근 개신교 사학인 강남대의 이천수 교수 재임용 탈락에서 보여주듯 이웃종교를 인정하는 다원주의가 상식인 서구 사회와 달리 보수 개신교에선 오히려 배타주의가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 교수는 <교육방송>의 ‘똘레랑스’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교적 관용을 보여주기 위해 사찰에서 절을 했었다.


이날 포럼에선 배타적 태도가 ‘지배 권력’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주장들이 잇따랐다. 특히 ‘미국의 종교’로 인식된 개신교는 이 땅에서 절대적 힘을 행사해온 미국을 등에 업었기에 노골적으로 배타성을 드러냈고,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종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력은 적은 로마 바티칸으로부터 나온 가톨릭은 교리적 배타성을 감춘 채 관용적인 것처럼 “음흉하게 포장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강자에게 선을 댈 곳이 없는 불교는 배타성을 은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발제에 나선 종교문화연구소 이사 장석만(종교학) 박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에서 개신교는 미국의 종교로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중요한 방편으로 여겨졌고, 한국전쟁 뒤 남한에 친미반공정권이 수립되고 냉전체제가 계속되면서 각종 특혜를 누리고 개신교회는 근대화와 서구적 세련됨의 상징으로 보였다”며 “북한의 공산화로 남하한 개신교 신자들이 남한 개신교계의 주도세력으로 편입되면서 개신교는 강력한 친미, 반공주의적 색채를 띠게 되고, 타자 박멸적인 배타성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개신교는 드러내놓고 가톨릭은 포장해서 불교는 은밀하게

배타성 모습만 다를 뿐…



이어 발제한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목사도 “개신교가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보한 것은 다수의 개신교인들이 미군정의 고위관료로 참여하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부터”라면서 “이승만 정권의 노골적인 친기독교정책으로 입지가 더욱 탄탄해지고,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정책을 가장 능동적으로 향유하면서 급속히 성장하고, 국가권력과 손쉽게 결탁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더욱더 확대했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이렇게 권력과 결탁한 개신교가 지배체제를 위한 배제의 논리에 동화되거나 그것을 강화하는 내면성을 갖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덧붙였다.


가톨릭의 실태를 보고한 황경훈 <아시아가톨릭뉴스> 기자는 “종교간 대화를 주도하며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드린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사찰을 방문한 지도자가 정작 신부와 신자들에겐 절에 가거나 삼보일배를 하는 것을 막는 게 실상”이라고 밝혔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윤남진 사무처장은 불교 배타성에 대해 “조선시대 이후 사회적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주류의 처지에서 다른 것을 배제시키는 쪽이 아니라 비주류의 처지에서 배타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몸부림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불교 지식인층에선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신앙이나 창조론, 성령 잉태 등에 대한 믿음을 ‘미신적’으로 여김으로써 교리적 우월감으로 내면적 배타성을 키워가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그리스도교인인 오강남 교수나 이현주 목사 같은 (이웃종교에 대한) 실천적 이해를 갖춘 이들과 같은 불교인의 저서를 거의 볼 수 없을 만큼 불교와 전통을 달리하고 있는 한국 종교의 반쪽에 대해 ‘눈 뜬 장님’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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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8년 다른 종교 광신도들에 의해 목이 잘린 제주도 원명선원의 불상들. <한겨레> 자료사진.

  


“배타성은 두려움 때문”



발표에 이은 종합 토론에선 종교 배타성의 원인에 대한 질의와 분석이 쏟아졌다. 한백교회 신자인 조병완씨는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죽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분인데, 그리스도교가 다른 사람과 다른 종교를 희생시켜서 자기만 살려는 종교가 되고 말았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목사는 “지금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세계 각국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을 휘두르는 배후에는 기독교적 열성이 있다”면서 “히브리 성서의 근간이 되는 ‘오직 야훼만’의 신앙이 배타성의 모태가 되었지만, 이는 전적으로 이스라엘 초기 신앙에 대한 오해에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오직 야훼만’의 신앙은 자신들이 건설한 평등적 세상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를 명시하는 말인데, 후대에 왕정의 탐욕이 역사성을 변질시키면서 이 신앙은 이를 전투적 배타성으로 알고 나와 다른 남을 공격하고 정죄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자기만의 저급한 열정을 순교적 신앙 수호의 근거로 삼는 자급한 사이비 종교로 전락돼 인류의 공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석만 박사는 “배타성의 효과가 강렬하기 때문에 종교에게 배타성은 달콤한 유혹”이라고 설명했다. 신자들을 묶어두고 현혹시키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전략을 선택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자신들만이 그 두려움을 이길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개신교의 방식을 민족종교인 증산도도 똑같이 이용하며 신자들을 늘려가고 있다”면서 “종교의 그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배타성을 추구하는 종교인의 심리를 왕따 당하는 학생과 비교했다. 왕따시키는 학생들이 힘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이 왕따 당할까봐 두려운 아이들이 다른 한 아이를 골라 왕따시키는 것처럼 심리적 두려움이 큰 종교인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배타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6. 6. 28.


*** 한겨레신문 기사 원문***
"종교 달라도 배타적 태도" 닮은 꼴


* 최형묵의 발표 전문은 <논단>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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