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경제 민주화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5-06 10:38
조회
2464
* <주간기독교> 다림줄35번째 원고입니다(130506).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경제 민주화


난항 끝에 경제 민주화에 관한 입법조치가 이뤄졌다. 경제 민주화 1, 2호 법안으로 불려온 하도급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도급법 개정안은 하청업체가 부당한 피해를 볼 경우 원청업체에 실제 피해액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더욱 강화한 것을 요체로 하고 있어, 이른바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내고자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여, 경영 성과에 관계없이 과도한 보상을 받는 관행을 막으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새 정부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등장한 만큼, 가시적인 경제 민주화 조치가 기대되었으나, 그간 재계와 집권당 내 일부 세력의 반발로 그 기대가 무산되지 않나 우려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경제 민주화에 관한 조치들이 더욱 진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가 절실한 과제로 인식되고 이에 따라 마침내 구체적인 입법 조치가 시작된 것은 다행이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인식은 아직 표피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가 존속하는 조건 안에서 자본의 일방적 우위로 인한 노동의 억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유권과 노동권의 균형을 의도하는 데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이들이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당당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자는 데 그 근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비춰볼 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가 자본의 경쟁을 조절하는 차원에서만 논의되고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강론을 통해 밝힌 입장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지 새삼 환기시켜 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창조하고 일하고 존엄을 지킬 능력을 주셨습니다. 수지타산을 맞추거나 이익을 추구하며 일자리를 주지 않거나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하느님에게 반하는 일입니다.”


차별금지법안까지 힘으로 저지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는 인식에 이르는 길은 더더욱 난망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 안에서 인간 존엄을 구현할 수 있는 길에 나서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구현과는 상관없는 역사적 퇴물이 되고 말 것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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