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생명ㆍ평화ㆍ정의”, 오늘의 교회가 나아갈 길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10-14 10:29
조회
2133
* <주간기독교> 다림줄40번째 원고입니다(131014).


“생명ㆍ평화ㆍ정의”, 오늘의 교회가 나아갈 길


종교개혁주일, 때마침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의 개회를 앞둔 시점, 방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휘호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생명ㆍ평화ㆍ정의”, 교리주의에 묶인 교권에 맞서 신앙양심의 자유를 외쳤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 대열의 선두에 섰던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의 휘호이다. 이번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주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는 그것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과 같다. 그것은 비단 오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일러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편적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생명’은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궁극적 지향점을 말한다. 장공은 일찍부터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역설했다. 생명은 그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단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장공은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통찰에 힘입어 범우주적 생명 진화의 원동력을 ‘사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명의 본성을 사랑으로 이해한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관계를 말한다. 서로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당기고 싸안는 힘이다. 그 사랑이 생명의 원동력이라 할 때 그 생명은 한갓 개체의 목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의 총체를 말하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평화’는 온전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사랑의 관계를 한층 구체화한 의미를 지닌다. 밀쳐냄으로써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당기고 싸안음으로써 생명이 온전히 존속하도록 하는 조건, 그것이 평화이다. 특별히 그 평화는 다양한 연결망 가운데 있는 집단과 집단의 관계의 온전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장공은, 사람은 그 사람의 사랑하는 범위 만큼밖에 위대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사랑의 범위를 우주적으로 확대할 것을 역설하였다. 사랑의 범위를 한정된 집단의 범위로 제한함으로써 전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삶의 현실을 넘어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정의’는 평화로운 생명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말한다. 정의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그것은 집단적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개별적 관계에서도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 상대의 몫에 대한 정당한 인정이 정의의 요체이다. 배타적 권력의 독점과 배타적 물질의 독점은 그 기본을 무시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공은 그 기본원칙이 무너진 역사적 현실에서 예언자로서 정의를 이루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생명ㆍ평화ㆍ정의”는 단순한 병렬이 아니라 의도된 배열로서, 최고의 보편적 가치에서부터 보다 구체화된 가치의 순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우리들의 몫을 그 역순으로 일깨워준다. 지상의 평화, 궁극적으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이르는 출발점은 곧 이 땅에서 정의를 이루는 것이다.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새삼 새겨야 할 바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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