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10-06 11:10
조회
2229
* <주간기독교> 다림줄 51번째 원고입니다(141006).
사이버 망명
사이버 공간에서 망명이 줄을 잇고 있다. 최고통치자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는다며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 수사팀을 신설하고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이다. 이미 오래 전에 개인간의 이메일 내용이 무방비 상태로 수사대상이 되어 메일계정의 망명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지만, 이번에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망명 사태는 훨씬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사용하는 메신저의 대화 내용까지 검열 받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단지 우려만은 아니다. 최대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이미 수사 대상이 되었고 그 관계자가 검찰의 대책회의에 참석한 지경이니, 그 검열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인테넷 공간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중요한 소통수단이 된지 오래이다. 앞선 정보통신산업과 광범위한 인테넷의 보급 덕분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공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국가 공권력이 그것을 선거국면에 활용한 것도 그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한 개인간의 친밀한 소통을 확장시켜주는 데도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간격으로 직접적인 대면이 쉽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어 친밀성을 강화시켜 주는 매체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요컨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공적인 영역에서나 사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소통의 매체가 되고 있다. 그 안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의사의 자유로운 표현은 물론 아주 내밀한 사적인 의사소통과 감정의 교감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와 같이 공적ㆍ사적으로 중요한 생활의 일부가 된 소통의 장을 국가 공권력이 통제하겠다고 나서고, 그것을 주도하는 기업이 국가 공권력에 협력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저항은 당연하다. 기본적인 의사표현마저도 통제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공공적 책무를 저버린 국가 공권력,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아무렇지 않게 공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내다주는 윤리 부재의 기업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러시아의 언론통제를 벗어나 독일에 기반을 두고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자.”는 기치를 내건 텔레그램에 사람들이 쏠리는 현상이 갖는 의미를 깊이 곱씹을 일이다.
우월한 기술적 기반과 성숙한 시민 역량에도 불구하고 뒷걸음치는 정치사회 현실이 개탄스럽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는 무능력한 공권력이 거슬리는 소리를 통제하고 훈육하려는 데는 기민한 모습을 보며 차라리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봉건시대도 아닌 민주시대에 훈육의 대상은 시민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사이버 망명
사이버 공간에서 망명이 줄을 잇고 있다. 최고통치자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는다며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 수사팀을 신설하고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이다. 이미 오래 전에 개인간의 이메일 내용이 무방비 상태로 수사대상이 되어 메일계정의 망명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지만, 이번에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망명 사태는 훨씬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사용하는 메신저의 대화 내용까지 검열 받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단지 우려만은 아니다. 최대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이미 수사 대상이 되었고 그 관계자가 검찰의 대책회의에 참석한 지경이니, 그 검열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인테넷 공간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중요한 소통수단이 된지 오래이다. 앞선 정보통신산업과 광범위한 인테넷의 보급 덕분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공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국가 공권력이 그것을 선거국면에 활용한 것도 그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한 개인간의 친밀한 소통을 확장시켜주는 데도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간격으로 직접적인 대면이 쉽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어 친밀성을 강화시켜 주는 매체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요컨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공적인 영역에서나 사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소통의 매체가 되고 있다. 그 안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의사의 자유로운 표현은 물론 아주 내밀한 사적인 의사소통과 감정의 교감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와 같이 공적ㆍ사적으로 중요한 생활의 일부가 된 소통의 장을 국가 공권력이 통제하겠다고 나서고, 그것을 주도하는 기업이 국가 공권력에 협력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저항은 당연하다. 기본적인 의사표현마저도 통제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공공적 책무를 저버린 국가 공권력,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아무렇지 않게 공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내다주는 윤리 부재의 기업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러시아의 언론통제를 벗어나 독일에 기반을 두고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자.”는 기치를 내건 텔레그램에 사람들이 쏠리는 현상이 갖는 의미를 깊이 곱씹을 일이다.
우월한 기술적 기반과 성숙한 시민 역량에도 불구하고 뒷걸음치는 정치사회 현실이 개탄스럽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는 무능력한 공권력이 거슬리는 소리를 통제하고 훈육하려는 데는 기민한 모습을 보며 차라리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봉건시대도 아닌 민주시대에 훈육의 대상은 시민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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