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12] 껍데기를 벗어버리고(34~37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9-19 22:04
조회
1514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2년 9월 19일 / 최형묵 목사


제12강 껍데기를 벗어버리고(34~37절)



34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35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먼저 힘센 사람의 손을 묶어놓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 그 집을 털어갈 수 있겠습니까?”

3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37 그의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는 언제 당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들처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옷을 벗어 발 아래 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을 때, 여러분은 살아계신 분의 아들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


34. (* 유사병행구: 마태 15:14, 누가 6:39)

*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 다른 복음서들 나오는 것과 거의 다르지 않은 도마복음서의 이 구절은 예수 당대의 현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을 매우 적절하게 꼬집고 있음. 우선 ‘눈먼 사람’이란 도마복음서 전체 맥락에서 볼 때 ‘깨침을 얻지 못한 사람’ 곧 마음의 눈이 어두운 사람을 뜻함.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있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지만, 정말 깨침을 얻은 지도자가 얼마나 되는지 되묻게 하는 구절. 물론 이 구절은 비단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의 관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 저마다의 내면적 각성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음. 변화되지 않은 자아가 자신을 잘못 인도하는 경우에 대한 성찰을 일깨우는 말씀이기도 함.


35. (* 유사병행구: 마태 12:29, 마가 3:27, 누가: 11:21~22)

* 도둑질의 비법(?): 말 그대로 보자면 ‘도둑질의 비법’에 관한 가르침^^. 물론 그것은 하나의 은유일 뿐(당시 하나의 속담일 수도 있음), 도마복음서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이 구절은 깨우침의 비법을 일러주는 말씀. 다른 복음서들의 병행구들은 축귀(逐鬼)와 관련된 문맥에서 등장. 축귀와 관련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지만, 도마복음서의 일관된 깨우침에 관한 가르침으로 보는 것이 적절.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지 내면적 각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각성을 방해하는 실체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짐. 힘센 사람을 무력화시켜야 그 집에서 보화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진정한 각성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의 실체를 붙들어 매지 않고서는 깨달음의 길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함. 깨우침은 단지 마음의 다스림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 참 마음에 이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힘의 실체를 인식하고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것. 그 힘은 내면화된 욕망으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들로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씀.


36. (* 유사병행구: 마태 5:25~34, 누가 12:22~23)

*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 것: 다른 복음서들의 병행구가 먹을 것까지 포함하고 있는 반면 이 구절은 오직 입을 것에 관해서만 말함. 이는 다음 구절과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감안하고 있는 듯. 일상의 삶 가운데서 입는 다양한 ‘옷’을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은, 통념상 인격과 동일시되는 온갖 껍데기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역설함.


37.

* 언제 당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와 대면하고 있는 제자들이 예수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하는 이 질문은 다소 뜻밖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함. 한편으로는 당대 팽만해 있는 종말론적 기대에 따라 예수의 재림에 관한 물음으로 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인 해후’(김용옥)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음.  

* 부끄럼 없이 벌거벗을 것: 뜻밖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이 구절은 사고의 전환을 역설. 물음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서 물음을 제기한 당사자의 문제로 전환하고 있음. 다른 복음서에서도 이런 경우는 종종 나타나고 있음. 언제 당신을 볼 수 있느냐는 물음에 여러분들이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벌거벗은 상태의 어린아이가 되면 곧바로 볼 수 있다고 답함. 옷을 벗어버린다는 것이나 벌거벗은 어린아이의 상태가 된다는 것은 도마복음서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모티프로서, 무구한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갈 것을 말함. 물론 그것은 ‘퇴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을 뜻하는 것임. 여기서 ‘살아계신 분의 아들’은 중의적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음. 곧 제자들의 물음이 겨냥하는 예수의 참 모습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물음을 던진 제자들이 깨달아 발견한 스스로의 참 모습을 뜻하는 것이기도 함. 앞의 내용과 일관된 맥락에서 볼 때, 결국 현재의 육신의 삶을 떠받치는 조건들을 극복할 때 하느님과 하나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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