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17]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53~57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10-31 22:48
조회
1068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2년 10월 31일 / 최형묵 목사


제17강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53~57절)



53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할례가 쓸떼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례가 유익했다면 아이들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배에서 이미 할례받은 아이들을 출산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받는 참된 할례가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54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여러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55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는 이들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으며, 자기 형제자매들을 미워하고 내가 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내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5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입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은 세상보다 더 값진 사람입니다.”

5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좋은 씨를 가진 사람과 같습니다. 밤에 그의 원수가 와서 좋은 씨 사이에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농부는 일꾼들에게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까 걱정입니다. 추수 때가 되어 가라지가 드러나게 될 때 뽑아 불 태울 것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



53. (* 유사병행구: 로마 2:28)

* 할례의 무용성: 할례는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식. 기도, 금식, 구제를 배격할 만큼 도마복음서는 일관되게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거부하고 있음. 할례가 유익한 것이라면 뱃속에서부터 받게 했을 것이라는 대답은 유어가 깃든 대답. 중요한 것은 영적인 할례, 곧 진정한 거듭남.


54. (* 유사병행구: 마태 5:3, 누가 6:20)

*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 누가복음, 마태복음에도 등장하는 공통적인 말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한 마태복음과 다른 누가복음과 같은 문구. 누가복음이 더 본래적이라는 것을 시사. 누가복음이 말하는 가난은 절대적 빈곤을 말함.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태. 그러나 마태복음의 말씀 또한 굳이 왜곡이라 보기는 어려움.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기 때문.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를 소유한다는 것은 재물의 소유 여부를 따라서가 아니라 그것과 상관없이 삶을 직시하고, 삶의 가치와 행복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함.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 더욱이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 그러나 예수님의 근본 메시지는 재물에 의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지어진다는 세상의 통념을 전적으로 배격.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이기도 함. 이를 거스르는 종교생활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 근본부터 잘못된 종교가 주류가 된 현실을 어찌할까?


55. (* 유사병행구: 마태 10:37, 누가 14:26)

* 출가: 정말 부모와 형제자매를 미워해야 하는 것일까? 금식, 기도, 구제를 금지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 말씀의 의미를 헤아릴 필요가 있음. 부모와 형제자매는 평범한 삶의 원초적 기반, 곧 ‘집’에 해당. 일상적인 것, 인습적인 것, 의문의 여지없이 당연시되는 모든 것을 표상. 그 집은 이기적 자아의 온상일 수 있음. 예수의 길은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출가.

* 십자가: 예수가 훗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실을 예언한 것이라 볼 필요는 없음. 당시 십자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고통의 표상.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의 난에 대한 십자가 처형, 기원전 4년 헤롯대왕이 죽었을 때 신권통치를 요구한 유대인들에 대한 십자가 처형. 가족을 떠난다는 것은 그 만큼 큰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함.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은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 사람들.


56.

* 시체와 같은 세상: 앞에서 형식인 종교와 재물과 가족을 버릴 것을 요구한 데 이어, 이 대목에서는 그 모든 것을 집약하는 의미로 그러한 것들로 떠받쳐지는 세상을 시체와 같은 것으로 비유. 이것이 물질적 세계의 부정, 염세주의, 도피를 말하는 것은 아님.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에 대한 거부요 영적인 거듭난 안목에서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을 뜻함. ‘상여행렬을 보고 나면 재수 좋다’는 속설에 담긴 뜻.


57. (* 유사병행구: 마태 13:24~30)

* 좋은 씨와 가라지의 공존: 마태복음과 병행하는 구절로, 마태복음이나 도마복음 모두 일반적 상식에는 어긋남. 좋은 씨앗의 새싹과 가라지의 새싹은 노련한 농사꾼에게는 확연하게 구별되고 따라서 가라지를 골라내는 것이 상례. 이 구절은 그런 상례를 벗어나 마지막 추수 때까지 내버려두라는 것. 물론 마태복음에는 종말론적 긴박감이 배어 있으나 도마복음에는 그런 긴박감마저 없음.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악을 서둘러서 일소하려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으로 여유로움을 강조하는 듯.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모든 것이 판별되는데 어찌 서두르냐는 것. 그 이유는 분명하고, 우리는 그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음.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 염려가 있다는 것. 악을 일순간에 뿌리 뽑고 싶지만, 그로 인한 혼란과 고통 가운데서 더욱 성숙해지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 선악과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마녀사냥’, ‘빨갱이/종북세력 척결’을 시도하는 이들과 같은 태도를 경계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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