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18] 참 삶의 조건(58~60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11-07 21:44
조회
1081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2년 11월 7일 / 최형묵 목사


제18강 참 삶의 조건(58~60절)



5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픔을 겪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생명을 찾았습니다.”

5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 살아계신 이를 주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살아계신 이를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60 예수께서 한 사마리아인이 양을 유대로 끌고 가는 것을 보시고[예수께서 유대지방으로 가실 때 양을 들고 가는 사마리아 사람을 보게 되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이 왜 양을 [묶어서/메고] 갑니까?”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잡아서 먹으려는 것입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양이 살아 있을 때는 그가 그것을 먹지 못하지만, 양을 죽여 시체가 된 다음에는 먹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쉴 곳을 찾으십시오. 그래야 여러분도 시체가 되어 먹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한글 역주 3> 참조)



58.

* 아픔과 생명: 이 구절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 마태복음의 구절(5:10~11)과, 예수를 따른다는 이유 때문에 배척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 누가복음(6:22)의 구절을 연상시킴. 이 두 경우는 명백히 외부의 핍박으로 인한 고통을 말하는 데 과연 도마복음이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도마복음의 이 구절은 보다 일반적인 인간의 실존적 정황을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임. 해산의 고통 이후에 따르는 생명의 탄생을 말하는 것. 여기서 말하는 고통은 참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한 여정에서 동반되는 수고로움. 어떤 종류의 아픔이든 그 아픔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됨. 아픔을 자각한다는 것은 그 아픔을 극복한 삶의 전망을 찾아 나서게 하는 계기.


59.

* 삶과 죽음: 진정한 삶에 대한 응시를 일깨우는 말씀. 여기서 ‘살아 계신 이’는 예수를 두고 하는 말. 도마복음의 첫 구절에서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이라고 한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음. 이에 상응하여 지금 그분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살아 있다고 말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음. 삶을 삶답게 사는 예수를 응시할 수 있는 사람, 곧 그 삶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 그런 의미에서 살아 계신 이를 응시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신을 응시하는 것이기도 함. 그로부터 눈을 뗄 때 죽음에 이르는 것. 그것은 육체적 생명의 종말로서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함. 이 말씀에는 죽음 이후의 부활 또는 죽음 이후의 천당 관념 같은 것은 없다고 봐야 할 것. 참 삶에 대한 직시.


60.

* 죽으면 음식이 되는 양: 도마복음서에서는 이례적으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는 구절. 원문이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애매한 대목도 있음. 원문의 문맥에서 유대로 가는 주체는 예수일 수도 있고(오강남 역) 사마리아인일 수도 있는데(김용옥 역), 유대의 정통성과는 먼 사마리아인이 유대를 향한다는 것보다는 예수가 유대를 향하고 있는 정황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물론 본문 의미상 결정적인 것은 아님). 이 구절은 또한 분위기상 심오한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함. 그러나 사실 그렇게 복잡할 것 없는 내용. 양이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그것을 먹는 것처럼, 사람 또한 죽으면 누군가에게 먹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식인의 관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도록 일깨우는 말씀.  

* 참 삶의 조건으로서 안식: 산송장과도 같은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쉴 곳을 찾으라고 일깨움. ‘쉼’은 구원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쉴 자리는 곧 ‘아버지의 나라’와 동일시. 그 안식은 삶의 휴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된 삶의 중요한 한 측면. 50절에서 빛의 자녀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움직임’과 ‘쉼’, 곧 ‘동(動)’과 ‘정(靜)’이라고 한 점을 환기할 것. 59절에서 삶의 한 측면으로서 아픔, 곧 수고로움을 말하고 있다면 여기서는 그 삶의 완성으로서 안식을 말하고 있음. 안식이 구원의 이상으로 제시되는 것은 안식 없이 분주한 삶이 곧 죽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 안식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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