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19] 당신은 누구시기에(61~63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11-14 22:12
조회
1058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2년 11월 14일 / 최형묵 목사


제19강 당신은 누구시기에(61~63절)



6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 것입니다.” 살로메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특별한 이로부터 오신 것처럼 내 자리에 앉아 내 상에서 드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완전한 분으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받기까지 했습니다.” 살로메가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말합니다. 완전한 사람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갈라진 사람은 어둠으로 가득합니다.”

6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비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내 비밀을 밝힙니다. 여러분의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여러분의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6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나는 돈을 들여 씨를 뿌리고 거두고 심고, 내 소산물로 창고를 가득하게 하겠다. 그러면 내게는 모자랄 것이 없겠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계획이 있었지만 그 농부는 그 날 밤 죽고 말았습니다. 귀 있는 이들은 들으십시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



61. (* 유사병행구: 마태 24:40~42, 누가 17:34~35)

* 한 침상에 오른 두 사람: 도마복음 전반적인 대의에 비춰 어느 정도 그 뜻을 가늠할 수 있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들은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구 가운데 하나. 한 자리에 있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는다는 이야기는 마태와 누가의 병해구와 비슷하지만 역시 도마복음에는 다른 복음서가 바탕에 깔고 있는 종말론적 전제는 없고 깨달음과 관련된 내용. 여기서 삶과 죽음은 앞 구절들에서 말한 것과 연속성을 가진다고 봐야 할 터인데,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두 사람이 개별적 존재들을 말하는 것인지(오강남) 한 사람 가운데 있는 두 자아를 말하는 것인지(김용옥)는 재고의 여지가 있음. ‘쉼’, 곧 ‘안식’의 순간에 두 사람의 운명이 교차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에서, 그리고 후반부에서 분열된 자아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본래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를 일컫는 것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음.

* 완전한 사람 / 하나된 사람: 살로메는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15:40)과 부활(16:1)을 목격한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 다른 복음서들이 여성들을 ‘제자’의 반열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반해 도마복음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자’로 기록하고 있음. 예수와 살로메가 만나 이야기하는 상황은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한 요소. 예수가 살로메의 ‘자리’/‘침상’에 오르고 ‘식탁’을 함께 나누는 장면은 낯선 외간 남자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 그러한 일이 너무나 태연스럽게 이뤄진 상황에 대한 살로메의 당황스러움과 경이감이 배어 있음.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문. 합일의 경지. 살로메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 또한 그 상황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 ‘완전한 분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답. 완전하다는 것은 분열되지 않은 합일의 경지를 말함. 그 대목에서 살로메는 ‘제자’임을 고백. 스스로 합일을 깨달음. 이 대목에서 완전한 분으로부터 뭔가를 받았다는 것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음. ‘제자들’로 보는 견해. 살로메가 제자임을 고백하자 당신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여기고, 예수는 완전한 사람은 빛으로 가득하지만 분열된 사람은 어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말함. 한 인간이 온전한 전체로 존재하면 그 내면에 빛이 가득하지만 분열된 상태로 존재하면 그 내면에 어둠이 가득해진다는 것.

* 송창식의 <당신은 누구시길래>를 연상해도 좋을 듯.


62. (* 유사병행구: 마태 4: 11, 13:11, 누가 8:10)

* 비밀: 다른 복음서들의 병행구는 선행에 관한 도덕적 교훈과 관련이 있으나 도마복음서에서는 말씀을 깨닫는 차원을 말함.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을 함부로 말하지 말 것. 살로메에게도 그 뜻을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에 말한다고 하였음. 심오한 진리에 대한 승인은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혜안과 인격을 갖추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    


63. (* 유사병행구: 누가 12:16~21)

* 부의 축적의 허망함: 지금 쭉 이어지는 구절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의 비밀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의 표본으로서 부자를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누가복음의 병행구에 비해 훨씬 간결한 형태를 띠고 있는 이 본문은 훨씬 일반적 성격을 띠고 있는 동시에 간명한 의미를 담고 있음. 누가복음의 병행구는 이기적인 부자가 하나님의 징벌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도마복음의 이 구절은 그저 부자로서는 당연한 일상적 과정으로서 투자와 수확을 구상하고 있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말하고 있음. 악한 부자를 질책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삶에 매여 물질적 풍요로움만을 추구하는 삶 자체의 한계를 말하는 이야기로 봐야 할 것.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면 허망하다는 것. 그렇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말씀이 언제나 비밀로 남아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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