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21] 핍박을 받으면(68~71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11-28 22:11
조회
1122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2년 11월 28일 / 최형묵 목사



제21강 핍박을 받으면(68~71절)


6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미움과 핍박을 받으면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박해받지 않을 곳을 찾을 것입니다.[너희가 박해를 당하는 그곳에는 아무 자리도 발견되지 않으리라.]”

6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행복합니다. 원하는 사람마다 그 배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배고파 하는 자의 배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로다.]”

7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속에 있는 그것을 열매 맺게 하면 여러분에게 있는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그것을 열매 맺게 하지 못하면 여러분 속에 없는 그것이 여러분을 죽일 것입니다.”

7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집을 헐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도 그것을 [다시]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한글 역주 3> 참조)



68. (* 유사병행구: 마태 5:11~12, 누가 6:22~23)

* 외부로부터의 박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박해를 받은 상황을 반영. 마태와 누가의 산상설교/평지설교에도 유사 병행구가 나오지만 동일한 뜻을 지니는지는 의문. 오강남의 번역을 따르면 그와 유사해져 그 의미가 하나님 나라의 보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김용옥의 번역을 따르면 다른 의미를 지님. “박해를 받는 곳에서 아무 자리도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바로 그 자리에 머무는 마음이 없다는 것. “머무는 자리가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금강경)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는 현실은 분명하지만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것. 외부의 박해가 스스로의 길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음.


69. (* 하반절 유사병행구: 마태 5:6, 누가 6:21)

* 내부로부터의 박해: 앞 구절이 외부적ㆍ사회적 박해를 말한다면 이 구절은 내면적ㆍ정신적 박해를 말함.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도마복음의 맥락에서 내면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과 통하는 것. 마음 속에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진정한 앎의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말함.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는 것은 진정한 앎을 추구하기 때문에 겪는 것. 진정한 앎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내면의 갈등도 있을 까닭이 없음.    

* 굶주린 자: 마태와 누가에도 유사 병행구가 있지만, 누가와 마태 사이에도 차이가 있고, 도마복음 또한 두 본문과 차이를 지님. 누가는 주린 자가 장차 배부르게 될 것을 말하고, 마태는 의의 주린 자로 말하고 있음. 도마의 구절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데, 주린 자와 배부르게 될 자가 동일한 주체가 아니라 어떤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암시. 예수의 제자들이 청빈한 삶으로 배가 주린다면 다른 사람들의 배가 채워질 수 있다는 것. 하나님 나라가 관념상의 낙원이 아니라 실제 삶의 관계 속에서 맛볼 수 있는 낙원이라면 그 해석이 원 뜻에 가까울 것. 한편에서는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식욕과 탐욕을 부추기는 오늘의 삶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 주는 구절.  


70.

* 내 안의 빛: 도마복음의 정수를 재삼 확인해 주는 구절.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살아 있다면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은 내면의 빛이요, 내면의 하나님. 도마복음은 타력적 신앙보다는 자력적 신앙을 강조.


71. (* 유사병행구: 마태 26:61, 마가 14:58, 요한 2:19)

* 다시 지을 수 없는 집: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기존의 성전을 허물고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한 선언으로 알려져 있음. 구약의 율법을 대신한 예수의 복음을 말하는 것. 사흘만에 짓는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알레고리. 그러나 도마복음은 성전을 언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이 이 구절에서 한 번 허문 집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짓겠다고 하지도 않음. 여기서 말하는 집은 기존의 삶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모든 조건. 진정한 앎, 진정한 깨달음은 기존의 삶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집을 허묾으로써 가능하다는 것. 다시 짓기 위해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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