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24] 세상을 아는 사람(80~82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3-13 21:28
조회
1004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3월 13일 / 최형묵 목사



제24강 세상을 아는 사람(80~82절)


8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몸을 찾았습니다. 몸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그에게 값진 것이 아닙니다.”

8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부유해진 사람이라면 다스리는 힘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힘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버리도록 노력하십시오.”

8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나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불 가까이 있는 것이고, 나에게 멀리 있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멀리 있는 것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



80. (* 유사병행구: 도마복음 56)

* 세상을 알게 된 사람: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이 구절과 단 한 가지 개념만 다른 56절(“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입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은 세상보다 더 값진 사람입니다.’”)과 비교할 때, 동일한 의미를 반복 강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와는 다른 의미를 강조하는 것인지 깊이 헤아려 봐야 할 것. 문자적적으로 보면 56절에서 ‘시체’라는 말이 본문에서는 ‘몸’이라는 말로 바뀐 것만 다름. 56절은 세상을 ‘시체’에 비유하여 그 시체와 같은 세상, 그 세상을 떠받치는 원리에 집착하기보다는 영적인 거듭남, 곧 깨달음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님. ‘몸’이 ‘시체’라는 말을 단순 대체한 것이라면 크게 보아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몸’은 물질세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그 물질세계의 원리를 알게 되면 오히려 거기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새겨볼 수 있을 듯. ‘시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지닌 말보다는 ‘몸’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오히려 그 의미를 새삼 강조하는 효과. 불교적 개념으로 諸法無我, 諸行無常, 一切皆苦와 상통(오강남). 자유를 역사의 필연에 대한 인식으로 본 헤겔의 인식과도 상통. 물론 이 의미는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님.    


81.

* 힘을 가진 사람: 역시 해석하기 쉽지 않은 구절. 부유해지거나 힘을 가진 것이 세상적, 물질적 의미를 지닌다면 단순하게 이해할 수도 있기는 함. 이렇게 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경험하듯 부유함이 권력의 기초가 되고 그것으로 세상과 사람을 다스리는 현상을 넘어서라는 의미를 지님. 그러나 과연 그 부유함과 권력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 힘을 가진 사람은 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태도 아닐까? 과연 이 말이 지금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에게 주어진 말일까? 물론 그 청중들이 바로 그러한 세상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유혹을 떨치고 깨달음의 길에 나선 도반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면 더 깊은 의미를 지닐 수도 있음. 3절 하반부에서 “여러분이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가난에 처하게 되고, 여러분은 가난 그 자체가 됩니다.”라고 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여기에서 부유해지고 힘을 가진다는 것은 그 반대의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곧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더욱이 도마복음에서 ‘다스린다’는 말이 타인에 대한 지배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떤 깨달음으로 부유해지고 힘을 가진 사람의 경지를 말하고, 그것마저도 부정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음. 선한 업적마저도 부정할 수 있는 경지. 노자가 말한 ‘공을 이루면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과도 상통.


82.

* 하나님 나라의 불씨: 10절에서 세상에 불을 지피러 오신 예수 당신을 말하는 내용과 상통. 여기서 ‘불’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으로 ‘내면의 빛’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음. ‘빛’이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밝힌다’는 데 초점이 있지만, 그 빛의 근원으로 ‘불’은 기존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원천적인 힘. 내면의 빛은 그 만큼 강렬하다는 것. 신성과 동일시되는 그 ‘내면의 빛’ ‘참 나’에 가까운 것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는 것을 말함.


* 다음 제25강(3/20) 주제는 “사람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83절 이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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