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미드바르, 그리고 노마드[조헌정 목사 / 음성]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8-11-25 14:51
조회
68
2018년 11월 25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40, 미드바르, 그리고 노마드
본문: 창세기 12:1~9; 마태복음 1:1~3; 16~17
조헌정 목사(향린교회 은퇴목사, 평화통일연구소 이사장, 민플러스 이사장)





마태가 족보를 쓴 이유는 첫째 예수 가문이 정통 유대 가문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건 이 족보의 대수가 정확히 40대라는 것입니다.성서에서 40이라는 숫자는 대부분 광야에 맞물려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는 므드바르입니다. 여기서 므는 장소를 뜻하는 접두어인데, 드바르 dbr라는 단어는 말씀 혹은 언약을 뜻합니다. 다바르는 그냥 말씀이 아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사건 능력의 말씀입니다. 곧 우리말로 광야로 번역된 므드바르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 역사에 변혁을 불러오는 시간과 공간을 뜻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는 히브리어로 본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임하여 인간 역사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마태가 예수의 족보를 40대로 정리한 것은 이제 곧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의 족보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이 족보가 당시의 풍습에서 벗어나 여자의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빼면 네 명이 나옵니다.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다 범상치 않은 주인공들인데, 밧세바의 경우 아예 우리야의 아내라고 한 것은, 권력에 대한 고발과 다름없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me too 고발의 한 장면입니다. 나아가 이 여인들은 모두 이방여인들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유대율법사회는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선민사상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선민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거짓이요 허위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 시작하는 새로운 역사는 아브라함의 자손과 비아브라함의 자손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배타의 역사가 아닌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화해와 포용의 역사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브라함의 본래 고향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을 피우던 곳인데, 갈대아 우르라는 말은 갈대아지방의 우르왕국을 의미했습니다. 곧 아브라함과 아버지 데라가 이곳을 떠나게 된 이유는 자신들의 왕국이 외적 곧 구바빌로니아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꿈은 왕국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조카 롯과 헤어졌다는 말은 롯 또한 왕손이었지만, 자신은 이제 왕국 회복의 꿈을 포기하고 그냥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선 것입니다. 이삭을 바친 이야기는 무엇이냐? 이는 왕국 회복의 꿈을 포기하였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와서 살면서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우르제국을 회복한 들, 또 다시 패망한 왕족들은 또 다시 자기같이 와신상담 칼을 갈아 재침략을 해올 것이다. 그러면 계속 전쟁을 하게 된다. 이건 하늘의 뜻도 아니고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니다. 모든 민족은 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자매이니 한 가족같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이게 아브라함이 늦게 깨달은 진리였습니다. 자신이 이 멀리까지 온 이유가 거기에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이란 바로 반제국으로서의 유목의 삶의 가치와 세계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이 무기를 내려놓고 함께 공존해가는 세상 이것이 바로 진정한 축복입니다. 마가가 사용한 ‘복음’이라는 단어는 본래 로마의 황제가 선포하는 전쟁 승리의 소식을 말했습니다. 참 복음은 로마 황제가 아닌 피압박민의 한 사람이었던 갈릴리의 한 청년 예수에게서 선포되고 있다는 반제국으로서의 복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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