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낯선 세계를 향한 발걸음 - 사도행전 16:6~15[음성]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9-02-24 14:25
조회
35945
2019년 2월 24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낯선 세계를 향한 발걸음
본문: 사도행전 16:6~15



1980년대에 화제가 된 영화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선불교의 시선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 존재에 관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바울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유럽 선교에 나세게 된 계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요? 본문을 암만 읽어도 그 사연을 속 시원하게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추정 가능한 여러 가지 정황에 상상력을 더하여 그 사연을 헤아려볼 수밖에 없을 따름입니다. 이 시간 본문말씀을 따라가며 그 사연을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본문말씀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앞부분은 사도 바울 일행이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본격적 선교활동을 나서게 되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고, 뒷부분은 그곳에서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나 복음을 전함으로써 유럽 땅에 최초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대목을 보겠습니다. 6절을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오늘날 아시아대륙 전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 곧 터키 지역에 해당합니다. 바울일행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지나 무시아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들어가려 했다고 전합니다.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는 터키 중부지역에 해당하고 무시아는 서부지역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비두니아는 서북부지역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터키지역 안에서 중부에서 서부를 거쳐 그 서북부로 가려고 했던 행보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울 일행은 무시아를 거쳐 드로아에 이릅니다. 드로아는 유럽으로 통하는 항구도시입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밤중에 환상을 봅니다. 건너편 마케도니아, 곧 유럽지역에 해당하는 지역 사람이 나타나 외칩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으로 확신하고 마케도니아로 건너가기로 작정합니다.
이 일련의 사건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바울이 다메섹에서 전향을 하게 된 사건도 순전히 인간적 차원에서 이해하자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 실체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데, 유럽 선교사로서 바울의 역할을 확정지은 이 사건도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바울일행이 스스로 선교여정에 관한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그 계획을 뜻대로 이룰 수 없었다는 것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령이, 예수의 영이,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셨다는 표현은 바울 일행의 스스로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힘에 이끌려 이방인 지역 선교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말씀에서 우리는 일단 그 사실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절 이하에 이어지는 본문은 그렇게 인도를 받아 유럽지역에 첫발을 내디딘 후 벌어진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이튿날 네압볼리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빌립보에 이릅니다. 바울의 유럽지역 첫 선교지인 빌립보는, 본문이 전하는 대로 로마의 식민지로서 마케도니아 지역의 첫째가는 도시였습니다.
여기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바울 일행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강가를 찾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사실적 정보를 알려줍니다. 이방인 지역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처소를 먼저 찾았다는 것은 바울의 초기 선교활동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미 바울은 소아시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바울이 선교활동을 펼친 거점은 항상 유대인 회당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이르러서도 똑같은 방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회당이 아니라 강가에 있는 기도처라 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에 번듯한 유대인 회당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처소가 있다는 것은 소수의 무리이지만 유대인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모임이 강가에서 이뤄지는 것은 정결례를 치르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강가의 기도처에서 바울은 모여 든 여자들을 만납니다. 남자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없고 여자들만 만난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통상 유대인들의 모임은 남자가 10명 정도 모여야 정식 예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강가 기도처의 모임은 정식 예배가 아니라 그저 여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정도의 모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여자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어 처음으로 바울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여자의 존재도 흥미롭습니다. 우선 이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유대인은 아니되 유대교와 그 공동체에 우호적이고 또한 함께 협력하는 이방인들에 대한 통칭입니다. 그들은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대개 유대인 공동체의 유력한 후원자로서 역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개종자들이 사회적 신분상으로 대개 낮은 계층에 속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대개 유력한 계층에 속했습니다. 본문은 이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수였다고 합니다. 두아디라는 터키지역의 도시로서 루디아라는 이름은 개인의 고유명사라기보다는 광의의 지역 이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아디라가 포함된 루디아 지역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자색 옷은 황제를 비롯한 유력한 귀족들이 즐겨 입는 옷입니다. 루디아 여인의 고객들이 유력계층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따라서 자주색 옷감 장수였다는 것은 그의 재력과 신분이 어느 정도였는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 여인이 바울일행의 유럽 선교의 처음 열매가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으로 모셔 묵게 했습니다. 이 여인에 대한 개별적 정보는 이후에 더 등장하지 않지만, 바울의 선교에 의한 유럽지역에서의 첫 교회인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선교활동에 적지 않은 후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심에 이 여인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본문말씀에 의하면 성령이, 예수의 영이,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말씀의 증언이 의도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울이 순전히 임의대로 선교활동을 펼친 게 아니라는 것을 증언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간적 노력이 허사였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스스로 예정하고 계획한 범위, 다시 말해 바울 자신의 인식 범위를 벗어난 사건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 뜻을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굳이 바울이 서쪽으로 간 까닭을 재삼 캐묻는 것은, 그 사건이 바울 자신에게는 어떤 경험으로 다가왔을까 하는 것을 헤아려보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암만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산다고 하지만, 항상 우리의 인식과 판단은 구체적인 경험의 세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납득 가능한 경험 세계의 차원에서 그 사건의 실체를 헤아려볼 수 있다면, 바울의 행적을 보다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앞서 이야기했지만, 본문말씀에 담겨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정보들을 통해 우리는 바울의 그 인간적 경험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가 바울의 선교활동이 언제나 유대인의 회당을 거점으로 해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전향 이후에 이미 이방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만 볼 것 같으면 바울은 아시아지역 선교를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지역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그 갈라디아지역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터키의 중부지역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이미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의 열매를 거뒀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바울은 그 지역에서 더 많은 열매를 거두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은 더 많은 열매를 거두기에 확실히 유리한 조건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지역 역시 예루살렘과는 떨어진 이방인 지역이지만 주요 도시 거점마다 유대인 공동체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공동체들은 바울이 선교활동을 펼치기에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증언하는 것처럼, 바울은 유럽지역에서조차도 유대인이 있는 곳을 찾았을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틀림없이 그렇게 주요 거점들을 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전략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에 의하면 그 계획이 계속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 상황을 일러 성령이, 예수의 영이 막았다고 전하고 있고, 마침내 하나님이 완전히 낯선 땅으로 인도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계획을 방해한 결정적 요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선교 여행길 자체가 험난한 사정이거나 어떤 천재지변이었을까요? 그러한 요인 바울의 계획을 방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울의 증언에 따르면 수없이 많은 난관을 겪으면서도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역시 유대인 회당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을 비방하고 반대하는 세력의 존재, 소위 정통 유대교의 입장에서 바울의 낯선 복음을 공격하는 세력들의 존재가 보다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바울이 그들과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는데 그것이 방해요인이었을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바울 일행은 그 때문에 수없이 현실적 위협을 겪었습니다. 유럽지역인 빌립보에서도, 데살로니카에서도 그런 반대에 부딪혀 공격당하고 고발당해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유대인 공동체가 미약한 지역에서도 그랬으니 유대인 공동체가 더 강고한 소아시아지역에서 그 반발은 아예 처음부터 발도 내딛지 못하게 할 만큼 컸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를 거점으로 한 바울의 선교활동의 양극적인 상황입니다.

스스로 이방인 지역 출신으로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더욱 유리한 이점을 활용하여 선교활동을 펼치고자 했던 바울은 그런 현실적인 난관 때문에 전적으로 낯선 지역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했을 때 바울에게는 그야말로 낯선 땅이 시야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때 환상을 봅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길로 접어듭니다.
로마의 식민지로서 철저하게 이방문화가 지배하는 도시, 유대인 공동체도 미약하여 어디 의존하려 해도 여의치 않은 도시, 전적으로 낯선 땅에 바울은 발을 내딛습니다. 거기에서 호응하는 사람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결국 반대자로 돌아설지언정 그래도 우선 말귀를 알아들을 법한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여인이 그의 말귀를 알아듣는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이방 세계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낯선 미지의 땅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에게서 그 낯선 땅에서의 놀라운 경험은 이방인 선교사로서 바울의 활동 기간 내내 커다란 용기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지의 땅에 나서는 두려움이 앞섰을 텐데, 그 놀라운 경험으로 바울은 용기를 얻고 기대감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낯선 미지의 땅에서 거두게 될 열매, 바로 장차 그 열매를 거두게 될 장도의 첫 번째 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미지의 세계에 자신을 내맡겼을 때 누리게 되는 신비한 은총, 그 은총을 누리게 되는 출발점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서쪽으로 간 까닭, 그것은 이미 주어진 세계를 떠나 미지의 낯선 세계로 나서고자 한 데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는 것이요, 세계를 확장하는 길입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기 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세계와 통하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3.1운동은 일제에 저항하여 독립을 이루고자 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인 것은 틀림없지만,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의 쟁취’로 그 의의가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 사건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한 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그 나라의 주인이 곧 민중 자신이라는 것을 표방한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국권회복운동이자 동시에 민권쟁취운동이었습니다. 만천하에 독립을 선포한 계기이자 동시에 민주공화국의 출발점이 되는 계기였습니다. 나아가 그 사건은 모든 나라와 민중들이 이루어야 할 보편적인 정의와 평화의 숭고한 이념을 만천하에 표방한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낡은 시대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건이었습니다. 저마다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낡은 세계로부터 벗어나 저마다의 자유를 구가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점이었습니다.
당시 이 숭고한 행렬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건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손길로 받아들이고 헌신하였습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남강 이승훈 선생은 머뭇거리는 교회지도자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 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에 가? 이 백성이 모두 지옥에 있는데 당신들만 천당에서 내려다보면서 거기 앉아 있을 수 있어?” 그분은 또한 일제의 재판정에서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내실 때 각각 자유를 주었는데 우리는 이 존귀한 자유를 남에게 빼앗겼다. ... 우리는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적의 칼에 쓰러질지언정 부자유 불평등 속에서 남에게 이끌리는 짐승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의 이번 일은 제 자유를 지키면서 남의 자유를 존중하라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신앙이 있었기에 한국 그리스도인은 3.1운동에서 헌신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2천만 명이 채 되지 않은 인구 가운데 200여만 명이 참여한 사건에서 그리스도인의 두드러진 참여율은 몇 가지 수치만 보더라도 확인됩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1.5%에 지나지 않았지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인, 전체 피검자의 17.6%, 여성의 경우 압도적인 65.5%, 교회지도자의 경우 244명으로 다른 종교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가진 가시적 조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믿음을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비록 소수였지만, 당시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가 그 정신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지만, 오늘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숱한 열매들이 사실은 그로부터 비롯되는 은총의 열매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 숭고한 뜻을 기리는 오늘, 우리는 특별히 입학과 졸업을 하는 학생들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의 과정을 마치고 또 다른 과정에 진입하는 것은 낯선 세계로 나서는 것을 뜻합니다. 더욱이 우리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정말 물설고 낯설은 세계로 떠나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낯선 세계를 경험하며 더욱 높은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성장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세계를 더욱 확장하며 모두에게 유익을 끼치는 높은 뜻을 이뤄가는 인재들로 성장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 모두 그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할 뿐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높은 뜻을 이뤄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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