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아니, 지금 당장 - 시편 54:4; 욥기 21:19~22[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연합기도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9-11-14 23:31
조회
80070
2019년 11월 14일(목) 오후 7시 / 광화문광장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연합기도회
제목: 아니, 지금 당장
본문: 시편 54:4; 욥기 21:19~22

최형묵(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





2017년 5월 21일 안산에서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함께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이제 머지않아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촛불의 염원으로 새 정부가 막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년 반이 흘렀습니다. 이곳에서 세월호 리본을 달고 가족들과 함께 했던 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그 기간과 맞아 떨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때 가졌던 기대, 즉 세월호 참사에 대한 완전한 진실규명,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책임있는 자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고 호소해왔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를 예정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 덕분일까요? 지난 11월 6일 검찰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을 꾸리겠다고 발표했고, 마침내 11일 공식 출범하였습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가족들, 그리고 함께 하는 시민사회 여러 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진실규명을 위해 외쳐온 절규와 그에 대한 연대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더욱 가슴 무너지는 일이지만, 구조지연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명백한 사례가 사회적 참사 특별위원회(사참위)에 의해 밝혀진 것이 중요한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또 다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니 다시 외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번에는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 기대를 안고 오늘 우리는 시편의 말씀과 욥기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신실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지만, 더 절박한 심정으로 함께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욥기의 말씀이 우리가 처한 정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춰주고 있습니다.

까닭을 알지 못한 채 고통을 겪는 욥을 두고 친구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는커녕 오히려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욥이 항변하고 있는 대목의 한 부분입니다.
친구들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정의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시기 때문에 악한 사람을 벌하시고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신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욥은 악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혹 우리 가족들은 지금까지 이런 류의 비방에 시달리지는 않았을까요?
욥 역시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지 않지만, 인간의 행복과 불행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하기 때문에 불행을 겪고, 하나님 앞에서 선하기 때문에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선한 사람이 불행을 겪고 악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더 많지 않느냐고 항변합니다.
욥의 그 항변에 대해 친구들은 말합니다. 악한 사람들이 잘 사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벌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당대에 벌을 내리지 않으면 후대에라도 벌을 내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 갚으신다.” 친구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욥은 무슨 소리냐고 항변합니다. “죄지은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죄를 깨닫는다.” 오늘 본문에서 욥은 그렇게 항변합니다. “아니, 지금 당장!”이라고 외칩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정의를 신실하게 믿는다면 친구들의 말을 믿고 싶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악한 사람들이 벌을 받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 믿고 싶을 것입니다. 징벌의 유예, 또는 하나님의 뜻의 유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유예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기필코 실현된다고 우리 역시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악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는 분이 분명하다면, 친구들의 그와 같은 신념은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죄를 지었다면 죄지은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그 사람이 깨닫지 어째서 영문도 모르는 그 자식이 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박합니다.
욥의 이와 같은 주장은 모든 유예의 논리가 지닐 수 있는 함정을 들추어내며 그 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습니다. 바로 지금 당면한 문제를 역사에 맡기는 태도, 또는 미래에 맡기는 태도의 함정을 들추어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유예의 태도는 모든 경우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한편의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현실을 얼버무려 진실을 은폐하고 정의를 호도하기 위해 그 유예의 논리를 폅니다. 반면에 또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바로 그 유예의 논리가 현실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미래의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욥의 주장은 어쩔 수 없이 유예의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고의적으로 유예의 태도를 취하는 이들에게 ‘아니, 지금 당장!’을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먼 훗날에 가서야 정의가 이뤄지고, 또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공평함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부조리합니다. 그렇게 유보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호도할 뿐입니다. 욥의 외침은 그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의 뜻은, 진실은 지금 이 순간 투명하게 드러나야 하며 정의 또한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규명을 미루고, 정의구현을 유예함으로써 잘못된 질서를 유지하고 그 안에서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논리의 허구와 기만을 폭로하고 지금 마땅히 모두가 누려야 할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지금 모두가 누려야 할 삶을 소중히 하고, 그렇게 지금 이 순간 누리는 삶 가운데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우리를 더욱 극심한 고통의 상황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릅니다. 맥박이 뛰는데도 응급조치를 제 때에 하지 못한 임경빈 군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그 마음이 더욱 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보다 우리를 더 괴롭고 고통스럽게 하는 어떤 진실이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실을 마주하기를 원합니다. 그 진실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다시는 그렇게 잘못된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한 순간에 스러지고, 게다가 그 생명의 여섯 배에 달하는 또 다른 고귀한 생명이 매년 일터에서 스러져가고, 49년 전(1970)의 전태일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26년 전(1993)의 해상참사에도 불구하고, 1년전 김용균 군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런 사태가 지속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절대로 정상이 아닙니다. 그 사회는 끊임없이 그렇게 수많은 생명을 제물로 삼아 버티고 있는 괴물과 같은 사회, 마치 몰록 신과 같은 그런 실체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실규명을 바라는 것은 그 사회를,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일상의 소소한 삶을 소중히 하면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바꾸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책임자 처벌을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한의 보복을 위해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한 것을 알아야 사회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이 세상은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이 중요합니다.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거나, 그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불어 평화로운 세계, 정의로운 세계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그로부터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참사 특별 수사단의 책임자는 그 각오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수사가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모든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겠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또 다시 우리의 기대, 우리의 믿음이 배반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더 늦기 전에 진실이 밝혀지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랍니다. 그 진실규명 위에 정의가 이뤄지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삶을 누리는 평화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함께 연대하는 모든 이들이 그 한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이시며, 주님은 내게 힘을 북돋우어 주는 분이시다.”(시편 54:4) 그 마음으로 나아갈 때 이 말씀의 진실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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