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3/1 온라인 가정예배] 공동의 운명, 공동의 책임 - 창세기 3:8~13[음성]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0-02-29 21:20
조회
3510
2020년 3월 1일 사순절 첫째 주일, 온라인 가정예배
시작 오전 11:00
인도 담임목사 피아노 백수현 박은경 박영옥 장구 정경록 정문자 이승철



* 주일 11시 기준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하되, 형편에 따라 정한 시간에 예배에 임합니다.

예배에의 부름 / 인도자


입례송 / “가서 외치라”(살림의 노래 5) / 다같이


함께 드리는 기도 / / 다같이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
그 아름다운 세상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여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현실 가운데서
우리들 모두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되돌아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더불어 생명을 누려야 하는
하나님의 뜻을 다시금 새기게 하여 주시고
새로운 삶의 결단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당장 처해 있는 두려운 현실 가운데서
외치는 기도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무엇보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펼쳐 주시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펼쳐 주십시오.
다른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서로 마음과 지혜를 모으게 하여 주십시오.
평온한 일상 가운데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고
그 삶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서로를 돌보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광송/“내 평생에 가는 길”(새찬송 413 / 통일찬송 470)/ 다같이


묵상과 성찰 / 바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 다같이

평화의 선언/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롬5:13)/인도자 *회중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회중기도 / 이상정 교우


찬양으로 드리는 주의 기도 / Malotte, “주기도문”(신영옥) / 다같이


성경말씀 봉독/ 창세기 3:8~13 / 인도자
말씀나누기/ 공동의 운명, 공동의 책임 / 최형묵 목사


2020년 3월 1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공동의 운명, 공동의 책임
본문: 창세기 3:8~13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 주일입니다. 지난 2월 26일 ‘재의 수요일’(참회의 수요일)에서 시작되어 4월 12일 부활주일 전날에 이르기까지 주일을 제외하고 40일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되새기는 가운데 우리의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기간입니다.

그 첫째 주일인 오늘은 3월 1일 3.1운동 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자 한 국권회복운동이자 동시에 민이 주체로 나선 민권확립운동의 기원, 그러니까 민권을 바탕으로 하는 국권회복의 출발점이요, ‘대한민국’의 탄생 기원이 되는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태도로 스스로 처한 운명을 타개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코로나19 사태로 온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그런 정황 가운데서 오늘 우리는 창세기 3장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낙원에서 인간이 선악과를 범함으로써 고통에 빠지고 급기야는 낙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의 한 대목입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 삶의 실상, 인간 문명의 실상을 되돌아보게 해 줍니다.

창조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어째 아름다운 동산에 선악과나무를 만들어 인간에게 시험거리를 던져주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먼저 창조 이야기의 분명한 초점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창조 이야기는 자연과학적인 의미에서 세계의 기원을 해명하거나 그야말로 신비로운 사연을 해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인간 문명의 역사적 기원과 그 문명의 속성을 통찰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한정해서 읽은 본문말씀에서, 선악과를 범한 인간 삶의 실상을 단적으로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범한 이후 나타난 현상으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사실은 선악과를 범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맨 먼저 옷을 해 입습니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인간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구별짓기’를 뜻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그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뱀의 유혹을 못 이겨 ‘선악과’를 범하는 것으로 표상됩니다.
인간사회 윤리의 기초가 좋음과 나쁨, 선과 악, 그리고 옳음과 그름을 판별하는 것인데, 그것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일까요? 창조 이야기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끝끝내 궁극적 판단의 영역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 특정한 인간에 의해 임의로 좌우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의 자리를 대신한 듯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그 선과 악이 구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조 이야기를 살펴보면, 세계가 시작되는 처음 구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 구별이 시작되면서 세계가 시작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땅과 하늘이 구별되고, 그 위에 사는 식물과 동물이 구별되고, 다시 거기에서 인간이 구별되고, 인간 안에서도 서로 다른 동반자의 관계로 구별되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태초의 세상 모습은 그렇게 구별되어 있었으나 그것이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한 구별이 어느 편은 선이고 어느 편은 악을 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기 저마다 존재 의의를 지니고 모두가 어울려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다시 말해 인간이 임의로 선악을 구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구별되어 있는 것이 관계를 형성하는 조건이 되었는데, 이제 관계를 차단하는 조건이 됩니다. 구별이 차별로 바뀐 것입니다.
차별은 고통을 낳습니다. “벗은 몸인 것을 알고, 옷을 해 입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다른 상대가 각기 온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더 확연하게 구별짓고 더욱 두텁게 자기를 감싸는 일이 벌어집니다. 스스럼없이 일체감을 느꼈던 인간의 연대성은 무너지고,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태도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사회의 소외의 발생입니다. 그것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고 서로를 불신하게 된 인간 삶의 실상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어떻게 해서 그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지 그 까닭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대성이 무너진 현실에서 인간은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고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어쩌다가 일을 저질렀느냐고 물었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자기성찰이 없이 책임전가에 급급한 인간 사회의 실상입니다.

본문말씀은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위중한 사태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창조 이야기 가운데 실낙원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의 추구가 어떤 파국을 초래하는지 성찰하도록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파탄은 곧 모든 피조물들 사이에서의 관계의 파탄, 인간관계의 파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서 존속할 때 지켜집니다.
오늘 우리는 그 실체를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의 등장이 인간의 욕망이 제어되지 않은 가운데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자연을 훼손해 온 문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최근 여러 전문가들의 진단과 매체들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오늘의 사태는,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삶의 방식,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생활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마음은 다급합니다. 지금 당장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 더 급합니다.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요, 다급함입니다. 그러나 그 직접적인 절박함에 대처하는 데도 이 땅을 사는 모두가 공동의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각자가 건강을 지키고 안전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한 함께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으는 태도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바이러스마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공생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박멸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로 인한 실질적인 위험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모두가 협력해야 합니다.
정치권 한 편에서는 정쟁거리로 삼아 오히려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에서처럼 서로에게 책임전가 하는 태도는 여전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극복 대안이 마련되기 어렵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소식들을 접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염자가 확산되고 있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온 힘을 다하여 대처하며 그 현황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 나올 수 있다는 진단이 근거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다행스러운 소식도 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호소에 28일 현재 853 명의 의사들이 자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를 거저 내 준 주민도 있습니다. 함께 난국을 타개해나가고자 하는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모으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 역시 듣기 좋은 소식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안이하게 생각하기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엄연한 진실, 곧 우리의 삶은 지속되고 있고, 그 삶은 모두가 공존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보장된다는 진실을 새기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우왕좌왕할 것 없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그 누군가에게 전가하려는 이들에 현혹되지 않고, 저마다 평정심을 되찾아 각기 건강과 안전을 위해 애쓰면서 동시에 공동의 지혜와 힘을 모으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지 않으면서도 서로 마음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도, 그렇게 지혜와 힘을 모으는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마침 3.1운동기념주일이기도 하여 3.1독립선언의 한 구절을 환기합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남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불어 세우는 길이 되어야 한다는, 독립선언의 숭고한 정신은 오늘의 상황에서도 결코 퇴색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상대에 대해서도 온전히 배려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의미와 더불어 그 뜻을 새기며, 더욱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각기 가정에서 형편대로 정성을 모읍니다.

봉헌송/ “아 하나님의 은혜로”(새찬송 310/ 통일찬송 410) / 다같이


봉헌기도 / 인도자


* 봉헌기도 후 세상을 향해 나아가 하늘의 뜻을 이루고자 결단하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결단송 / “산 밑으로 내려가자”(살림의 노래 112) / 다같이


축복기도 /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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