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의 탄식과 간구 - 로마서 8:18~30[이성철 전도사 / 유튜브]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24-07-19 10:55
조회
3026
2024년 7월 14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성령의 탄식과 간구
본문: 로마서 8:18~30
이성철 전도사



오늘 바울의 메세지는 로마서입니다. 예수를 처형한 제국의 수도에서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세지 입니다. 본문은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모순과 부정의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권면하고 지지하며 성령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대한 성서의 증언은 다양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사도행전에서 전하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의 증언이 있습니다. 그날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세찬 바람처럼" 또 "불의 혀처럼" 임하셔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장악하였습니다. 세차고 뜨겁고 강렬하고 내가 통제할수 없고 통제 될수 없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성령의 이미지를 떠올렸을때 오순절 다락방이 떠올립니다.

요한복음에서 성령이 처음 등장하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말하였다. "나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요 1:32)

성령이 예수의 위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이 모습은 오순절 다락방의 모습과 다른 모습입니다. 성령은 가까이 있으나 통제하지 않고 강권하지도 않습니다. 성령은 예수에게 임하였지만, 예수의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동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읽은 바로 앞절인 로마서 8장 16절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뜻하는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 입니다. 그 뜻은 조력자, 변호인,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조력자 변호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성령은 상대를 존중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친근하고 따사롭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의 악정과 교회내의 분쟁의 상황 속에 있는 이들의 고통과 고난에 집중합니다. 그들은 신음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령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본문을 개역개정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στενάζω),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22-23).
이어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피조물이 고통을 겪고 탄식합니다. 속량을 기다립니다. 성서의 많은 인물은 찬송을 했고 또 탄식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신음합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이 탄식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ᅠ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또 다윗, 예레미야, 에스라, 솔로몬, 히스기야,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아모스, 요나, 미가, 하박국, 스가랴, 마태, 바울, 그리고 예수까지 성경의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는 탄식이 있었습니다.

예수는 사역의 중요한 전환점 마다 탄식하며 마음을 쏟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때,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실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실때에,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실때에 탄식하고 슬퍼하셨습니다. 말을 잃고 끙끙앓고 있을 그때에, 성령은 곁에 머물러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함께 하셨습니다.

지난 7월 4일은 목요기도회 5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엄혹했던 시절, 유신독제 체제가 출범하고 그 체제를 굳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이 땅의 억압의 시기였습니다. 박형규 목사님이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으로 잡히시고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후에 구속자들이 늘어갔습니다. 어떠한 집회와 소통도 통제받던 시절, 가족들은 수소문 끝에 형무소에 자식이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되어 서대문 형무소를 비롯해 그 앞을 어떠한 말도 없이 서성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때에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곳에 모여 가족들은 자신의 자녀들의 이야기를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탄식했습니다. 그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현실을 파악하고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목요기도회가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서로를 위로할 많은 아픔이 존재했다는 현실이 슬프지만 그 슬픔을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게 만들어 왔습니다.

다른 장면으로, 지난주 청년들은 독서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얼마전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인용하셨던 [증발하고싶은 여자들]이라는 책을 읽고 나누었는데요. 한국사회에서 청년여성의 삶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암울한 현실입니다. 오늘을 허투루 살고있지 않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것만 같습니다. 삶이 고통인데 겪는 고통을 표현할 수 없어 탄식합니다.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이상으로서 인권은 시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며 만들어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좋아지지 않는것 같습니다. 교회는 혐오와 멸시를 부끄럽지 않게 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어갑니다.

그러는 사이 사회와 교회에게 외면당해 홀로 고통을 담지하는 재난참사,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와 가족들과 불의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지만 그 존재는 우리에게서 지워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저당잡히고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곁에 있습니다.

고통에도 감수성이 존재합니다. 고통이 다른 고통에게 손내밀어 함께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공감은 아파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재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지원하고 연구한 채정호는 그의 책 [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에서 사회적 아픔을 겪은 사람은 다른이와 아픔을 나눌때, 자신의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공감과 연민, 당신의 고통을 함께 견디겠다는 마음이, 우리를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습으로 성령의 모습으로 사회속에서 함께 머물고 탄식하는 여전히 이들이 있습니다.

청년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나눔을 위한 질문지가 있었습니다. 그중 3번 질문을 공유합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와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암울한 현실입니다. 기쁜소식보다 슬픈현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슬픔에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이 사회를 더 나은곳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이들이 존재하고 이땅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싶다. 신앙의 힘이다'라는 고백을 적었습니다. 이어서 독서모임의 마지막 질문은 이 현실 속에서 우리, 교회의 역할이 무엇일까 나누었습니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교회의 활동에 참여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는 지금 서로를 지키며 잘하고 있다는 위로와 격려를 서로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세워지고 서로를 위로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큰 위로와 힘을 받았습니다. 저 이층 작은 다락방에 성령이 함께 탄식하시고 간구하심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탄식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탄식 하시길 바랍니다. 탄식은 슬픔과 고통의 소리이겠지만, 동시에 이 탄식은 기도하는 영혼의 목소리가 됩니다. 그 순간 우리와 함께 탄식하는 성령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가 갈피를 잃어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고 어떻게 말하고 표현해야할지 모르는 말그대로 탄식하는 순간에 우리와 같이 탄식하고 갈길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고통에 공감하는 이들을, 탄식하는 이들을 위로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그 탄식이 기도가 되게하시고, 의롭게 행동하도록 우릴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게 이끄십니다. 우리는 공감과 연민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줄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고 대신해 간구하시는 성령을 의지해 그 길을 지켜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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