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윤리 - 로마서 14:13~23[유튜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4-11-17 13:16
조회
246
2024년 11월 17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윤리
본문: 로마서 14:13~23



사도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기에 앞서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로마서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정연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다른 서신서들이 공동체의 특수한 상황을 유념하고 그에 대처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로마서는 그에 비해 교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일반적인 권고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로마교회 공동체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채 자신의 입장을 펼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로마교회 공동체의 어떤 문제를 유념하고 그에 대한 권고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권위에 대한 복종(13:1~7)을 말한 대목, 그리고 음식물을 둘러싼 교회의 상황을 언급하고 있는 대목(14:1~15:13)이 그렇습니다.

“서로 남을 심판하지 맙시다”(14:13). 이렇게 시작하는 본문 말씀은, 먹고 마시는 문제로 불화를 겪고 있는 공동체의 상황을 유념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말씀의 한 대목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14:17). 이 말씀은 매우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답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대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본문 말씀의 뜻을 헤아리기 위하여 그 전체 맥락을 살펴봅니다.

첫대목(14:1~4)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과 강한 사람들을 대비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과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구분은 음식물에 대한 태도에 따라 결정되는 별칭입니다. 특정한 음식을 삼가는 태도, 또는 특정한 날에 특정한 음식을 삼가는 금욕적 태도를 지키는 사람들을 일러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라 일컫고, 그것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을 일러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라 일컫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교회에서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답을 준 적이 있습니다(고전 8:1~13). 고린도교회에서 쟁점이 된 것은 이교 신전에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에는 조금 더 일반적인 성격을 띱니다. 아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문제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을 유념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이든 이교의 전통을 따르든 어떤 음식에 대한 금기에 매여 있는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로, 그에 개의치 않은 사람들은 믿음이 강한 사람들로 대별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첫머리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14:3). 서로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대개의 종교 전통은 음식에 관한 금기를 갖고 있습니다. 불교가 육식을 금하고, 유대교와 이슬람이 돼지고기를 금하는 경우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중요한 언명입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서 이례적으로 술담배 문제를 중대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런 것과 상관없다는 것을 천명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마가 7:15~16). 사도 바울도 같은 입장을 유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먹고 마시는 문제에 매이는 사람을 믿음이 약한 사람, 그에 매이지 않는 사람을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말한 사연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한 사람’, ‘강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자칫 우열의 관계를 함축하는 것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라고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강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배제하지 말라고 함으로써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서로 존중하라고 함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용인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14:5~12)을 통해 그 취지를 강조합니다. 한마디로 믿음에는 등급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각기 자기 소신대로 하는 것일 뿐 그것이 우열의 등급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음식을 먹든 먹지 않든, 그리스도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적인 자세로 살아갈 수 있으면 그뿐입니다. 각 사람의 소신이 정말로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를 따질 수 있을 뿐이지, 먹고 마시는 문제와 결부하여 그 소신을 옳고 그른 것으로 구별해서 차별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먹지 않는 사람은 먹지 않는 대로 자신의 신앙 때문에 그러하며, 먹는 사람은 먹는 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그뿐이지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 남을 심판하지 마십시다”(14:13). 이 말씀으로 시작하는 본문 말씀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이 따로 없다(14:13~18)는 것을 강조하며,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신앙의 대의를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에 등급이 없을 뿐 아니라,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 또한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차별을 무의미하게 한다는 것이 바울의 확신입니다.
바울은 그 진실을 막연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진리나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말하기 위하여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매우 구체적인 판별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마음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신이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마음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마다 양심과 소신에 따라 옳다고 여기는 것, 선하게 여기는 것이 도리어 비방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의를 위해 일하다 박해받는 경우도 있으니, 바울의 이와 같은 주장을 다시 도그마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만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그 기준으로 타인을 배제하는 경우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바울은 지금 하나의 공동체를 유념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기본 원리는 이타적인 사랑에 있습니다. 그 사랑에 거스르게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느냐는 외적인 표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으로 판별됩니다(14:17). 정의와 평화, 그리고 기쁨, 그것이 사랑의 실체입니다. 바꿔 말해 사랑은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표징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대의를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4:19~23). “하나님이 이룩해 놓으신 것을 음식 때문에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14:20).
믿음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외적인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마시느냐, 아니면 무엇을 먹지 않느냐 무엇을 마시지 않느냐 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구별해주는 자기만의 소신과 생활방식을 옳다고 주장하며 타인에게 강제를 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각자 신앙 양심과 소신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14:22). 이 말씀은 그 신앙 양심의 고귀함을 말합니다.
다만 바울은 공동체의 유익함을 위하여 사리를 분별해야 필요성을 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포기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믿음이 강한 사람들을 향해 권고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먹고 마시는 문제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절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약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합니다. 여기서도 대전제가 있습니다. “서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씁시다”(14:19).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역설하는 한편 동시에 공동체의 윤리를 더불어 역설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기에 먹고 마시는 문제는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지만, 바로 그 사소한 문제에 얽매여 왈가왈부하며 신앙의 대의를 망각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상황을 두고 매우 깊은 통찰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대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신학자이자 동시에 구체적인 공동체를 돌보는 목회자로서 바울의 위대한 통찰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대한 교훈을 일깨워 줍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로 형제자매를 정죄한다면, 색깔이 다른 신앙을 두고 서로 정죄한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일깨우고자 했던 그 진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14:10). 저마다 신실한 믿음대로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실하게 믿고 행한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책잡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소신을 유일한 진리로 알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며 그것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그 소신의 진정성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아야 할 신앙 양심의 문제를 함부로 침범하는 것을 뜻합니다. 걸핏하면 이단 운운하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정죄하려는 사람들의 잘못입니다. 이들은 대개 자신들의 흠을 가리는 수단으로 타인을 정죄하는 데 몰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정의와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한 사랑의 실현입니다. 그 대의를 잊고 형제자매를 책한다면 신실한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의 교회가 그 믿음에 신실하게 응답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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