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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안살림교회</title>
		<link>http://salrim.net</link>
		<description>천안살림교회</description>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14 / 4.5.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8]]></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1ZUiaCUvM1w 

2. 오늘 견신례와 세례를 받은 교우들을 축하합니다: 견신례: 김화인 김정은, 성인세례: 김미로 이상희 이주호 오유진, 유아세례: 이봄(부모 이상명 류지혜). 

3. 오늘 예배후에는 월례 공동의회가 있으며(안건: 3월 재정보고, 청빙준비위원회 구성, 교회앞 도로 개선방안, 주요일정 점검), 공동식사는 각 구역별로 준비해온 음식을 함께 나눕니다.

4. 4월 예배 및 봉사 담당안이 준비되었습니다. 다음 주일 예배 인도와 말씀은 이성철 목사가 맡습니다.

5. 이번 주간부터 2026년 상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인문강좌를 “종교영화 보며 우리교회 깊이 알기”를 주제로 하여 시작합니다.
  &lt;4월 종교영화 관람&gt;&gt;
  [1] 4월08일(수) 영화 &lt;사일런스&gt;(2016, 마틴 스코시즈)
  [2] 4월15일(수) 영화 &lt;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gt;(2018, 가스 데이비스)
  [3] 4월22일(수) 영화 &lt;북간도의 십자가&gt;(2019, 반태경)
  [4] 4월29일(수) 영화 &lt;개벽&gt;(1991, 임권택)
  &lt;5월 우리교회 깊이알기&gt;&gt;
  [5] 5월06일(수) “우리교회의 공동예배형식”(최형묵)
  [6] 5월13일(수) “독일 헤른후트형제단의 성서일과”(최형묵)
  [7] 5월20일(수) “천안지역 종교문화유적”(송길룡)
  [8] 5월27일(수) “사진으로 보는 우리교회 초기모습”(송길룡)

6. 교우들의 독서모임이 18일(토) 오후 2:30에 문동환 외,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갈릴리교회 설교집』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7. 남신도회 주관으로 4월 25일(토)에 전 교우 산행 나들이 예정입니다. 

8. 담임목사
   6(월) 오후 2:00 서울 조곤조곤TV 녹화/ “시온주의 이스라엘의 폭주, 한국교회의 침묵”
   7(화) 오후 2~5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출강 “민중신학의 탐구”]]></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Thu, 02 Apr 2026 16:20: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다이렉트자동차보험비교견적사이트]]></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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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이수정]]></author>
			<pubDate>Tue, 31 Mar 2026 15:39: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다이렉트자동차보험비교견적사이트]]></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6]]></link>
			<description><![CDATA[<div style="height:0px;width: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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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이지희]]></author>
			<pubDate>Sun, 29 Mar 2026 16:53:4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난의 길(via dolorosa)”(2026.3.29.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5]]></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3/song20260329.mp3"][/audio]
“고난의 길(via dolorosa)” / 성가대]]></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29 Mar 2026 14:42:3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영혼을 움직이는 힘 - 마가복음 14:1~9[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4]]></link>
			<description><![CDATA[2026년 3월 29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영혼을 움직이는 힘 
본문: 마가복음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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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늘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지금 마주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른 긴박한 여정 가운데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의 지배층들이 예수를 죽일 흉계를 꾸미고(14:1~2), 예수의 제자 유다가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예수를 넘길 기회를 노리는(14:10~11) 그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바로 그즈음 예수께서 예루살렘 부근 감람산 언덕 베다니 마을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물며 식사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 깨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같이 있던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14:5) 그리고 여자를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나무라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14:6~9)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니 삼백 데나리온이면 일 년 치 임금이 되는 셈입니다. 그 돈으로 차라리 자선을 할 것이지 어째 그것을 낭비하느냐는 사람들의 태도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께서는 그 행위를 칭찬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얼른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상식으로 봐도 그렇고, 당시 예수님의 언행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여자의 행위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의 대비입니다. 여자의 행위는 참 무모해 보입니다. 단지 예수님 한 사람을 위해서, 그것도 아무런 효용성도 없어 보이는데, 값비싼 향유를 한순간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자의 행위가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흔히 이 이야기는 교회에 대한 물질적 헌신을 강조할 때 그 근거로 자주 활용되지만,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요?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선한 일을 두 가지로 나누어 이해합니다. ‘자선’과 ‘좋은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자선은 돈을 줌으로써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에 해당하고, 좋은 일은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으로 매우 특별한 행위입니다. 죽은 사람의 장례를 위한 배려도 이 좋은 일에 해당합니다. 
이 여자가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것은 ‘전인격적인 자기 헌신’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손님을 대접할 때 발에 기름을 발라 주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지만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왕이 임명을 받을 때나 행하던 아주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행위는 일상적인 손님 접대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특별한 행위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기회가 아니면 돌아올 수 없는 기회에 특별한 정성을 쏟아 부은 것은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단 한 번밖에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귀한 사람, 어쩌면 가장 사모하는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전적인 헌신이었으며 전인격적인 결단이었습니다. 그 비싼 가치를 지니는 향유도 사실은 그 여자가 가진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상일 뿐, 그 물건이 비싸다는 것이 중요한 초점은 아닙니다. 이른바 시장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을 정말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분을 위하여 사용한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전 존재를 드러내놓는 그 행위가 다른 어떤 선행보다도 우선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것은 자선 행위로 대치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도덕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종교적 계율에 맞게 행한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결단과 헌신, 기꺼이 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갓 겉치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선이 중요한지 예수를 섬기는 것이 중요한지’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를 때 전인격적인 결단과 헌신을 동반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을 문제시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진심으로 마주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을 문제시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선이 ‘아니라’ 예수를 섬길 일이다” 하는 어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 두 가지 일을 단순히 대립시켜 양자택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원을 달리 이해함으로써 사실상 우리에게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 곁에 있지 않다.”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자선과 예수에 대한 헌신 가운데 양자택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내가 전 존재를 드러내놓아야 할 그분이 내 앞에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전 존재를 드러내놓을 수 있는 헌신이 없다면, 그 모든 행위는 겉치레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행위의 밑바탕을 이루는 전 존재의 개방, 전 존재의 헌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요구일까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불가능한 요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드린 여인의 행위는 가장 진실한 사랑의 표현 행위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고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일화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가장 존경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그분에 대한 가장 지극한 정성, 그것이 여인의 행위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의 삶에 그것이 빠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지탱하는 데에는 정의와 평화, 그밖에 숭고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의 바탕을 이루는 지극한 사랑, 그것이 없다면 삶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옥합을 깨트린 여인의 행위는 바로 그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정략과 이해타산을 따지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전하는 이야기 한 가운데 등장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이 이야기 가운데서 교환가치에 매여 있는 사람들의 태도와 여자의 행위가 충돌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인간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 정략과 소위 합리적 이해타산, 통상적인 시장의 교환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소중한 그 무엇입니다. 옥합을 깨트린 여자는 그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돈으로 보상하면 그 행위가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기도 합니다. 그 행위 자체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삶은 그렇게 오묘합니다.

흔히 ‘거룩한 낭비’라고 일컬어지는 이 여인의 행위는 예부터 논란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초기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 말씀을 빌미로 예수를 섬기는 것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을 구분하려는 태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누가 거룩한 물건들을 만들거나 봉헌하는 것을 보거든 그리고 교회 벽과 바닥을 장식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거든 ··· 그의 열성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일을 하기 전에 묻는다면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명령하라.” 이렇게 지혜로운 해법을 던져 주기도 했습니다. 그 정성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정성을 어찌 표해야 할지 묻는다면 그때 합리적 대안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해법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족적인 조건들을 생각하면서 그 조건들을 충족함으로써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서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적이거나 교리적인 이해와 승인, 도덕적인 행위나 사회적 정의의 실천, 또는 금욕이나 경건, 아니면 열광을 동반하는 종교적 행위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요건들 모두 아니면 그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충족되면 신앙생활은 온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신앙인들은 그 어느 것 가운데 하나를 신앙의 전부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드러내놓는 헌신이며 전인격적인 결단입니다. 진정으로 간절히 뭔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그 모든 것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헌신과 정성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 환원 불가능하고 대체 불가능한 마음과 정성입니다. 신앙은 그것으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완결됩니다. 아니,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앙은 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는 정성, 믿을 만한 사람과 삶이 있고 그 믿을 만한 사람과 삶에 쏟는 정성, 그것이 잊혀져서는 안 되는 삶의 정수라는 것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옥합을 깨트린 여인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여러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lt;세상의 모든 아침&gt;이라는 영화는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그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프랑스 영화로서 바로크 시대 비올을 연주하는 고음악가 이야기입니다.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비올 연주의 대가에게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찾아와 제자 삼아 달라 요청하기에 연주를 시켜보는데, 스승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작곡이나 연주 모두 뛰어나 음악으로 충분히 밥벌이할 수 있겠지만, 결코 음악가는 아니어서는 못 받겠다고 선언합니다. 절규하다시피 간청하여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제자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원하던 궁정 음악사가 되어 스승 곁을 떠납니다. 주인공은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스승의 말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재능이 탁월한 자신이 어째 음악가일 수 없었을까 평생 화두 삼아 왔는데, 자신의 음악이 영혼을 움직이는 힘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됩니다. 여차저차해서 스승과 협연하고 마침내 인정을 받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판소리를 주제로 한 우리 영화 &lt;서편제&gt; 또한 비슷한 문제를 던집니다. 소리가 단지 기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영혼을 움직이는 힘, 옥합을 깨트린 여인의 정성을 그렇게 이해하면 조금 이해할 만할까요? 
기능적인 역할과 효율성이 중시되는 오늘의 세태 가운데서 그 뜻이 우리에게 얼마나 실감될지 의문이기는 합니다. 일찍이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논하면서, 그 진품성, 곧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 예술작품의 의의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던졌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르러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단지 인간의 기능적 역할을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마음을 흉내 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인간 삶의 진정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적 조건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조건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은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도 피하면 안 될 것 같은 모종의 부담감이 있어 함께하고자 하면 편하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마다 믿고 있는 가치를 실현하는 방편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는 뜻이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며 삶의 진정성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온 생명을 부여하여 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모였다면, 서로의 영혼을 울리는 삶의 교감을 나누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 모두 그 믿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세상 널리 펼쳐나가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29 Mar 2026 14:38:5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3]]></link>
			<description><![CDATA[<div style="height:0px;width: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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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김민주]]></author>
			<pubDate>Sat, 28 Mar 2026 13:48:3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13 / 3.29.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2]]></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AOeOlRhX7fU

2. 다음 주일 부활절 공동예배는 성찬예배로 드리며, 예배후에는 월례 공동의회가 있습니다. 공동식사는 각 구역별로 준비해온 음식을 함께 나눕니다.

3. 다음 주일 부활절 예배중 세례식을 베풀 예정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세례자 교육이 오전 9:50에 진행됩니다(견신례: 김정은 김화인, 성인세례: 김미로 오유진 이상희 이주호, 유아세례: 이봄[부모 이상명 류지혜]).

4. 4월 예배 및 봉사 담당 예정안이 준비되었습니다.

5. 오늘 오후에 원예반은 꽃나무를, 작목반은 감자를 심습니다.

6. 교우들의 독서모임이 18일(토) 오후 2:30에 문동환 외,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갈릴리교회 설교집』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7. 남신도회 주관으로 4월 25일(토)에 전 교우 산행 나들이 예정입니다.

8. 지난 주일 이장희 교우(김 선 교우) 어머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9. 담임목사
   30(월) 오후 6:30 원성동공유공간100 / 천안너나들이마을협동조합 정기총회 
   31(화) 오후 2~5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출강(“민중신학의 탐구”)
   1(수) 오후 4시 서울 기독교회관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 간담회
   3(금) 오후 2시 서울 인사동 송현광장 / 제주 4‧3 78주년 ‘아픈 역사의 정의로운 해결과 치유를 위한 개신교 추모기도회’]]></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27 Mar 2026 16:41:4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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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김여운]]></author>
			<pubDate>Wed, 25 Mar 2026 16:14: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4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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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letter-spacing:-100em;"><a href="https://hokyung.kr/"> 다이렉트자동차보험비교</a></span>

</div>]]></description>
			<author><![CDATA[이수정]]></author>
			<pubDate>Tue, 24 Mar 2026 12:25: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3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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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이혜정]]></author>
			<pubDate>Tue, 24 Mar 2026 05:07: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3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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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이주아]]></author>
			<pubDate>Sun, 22 Mar 2026 17:33:5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성문 밖의 그리스도 - 히브리서 13:12~16[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37]]></link>
			<description><![CDATA[2026년 3월 22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성문 밖의 그리스도   
본문: 히브리서 13:12~16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PhBczRjBOfQ?si=r51C81ICd-sg4R55"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 삶을 지탱시켜 주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고 있든 아니든 그것이 사라지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 어떤 것입니다. 흔히 ‘마음의 지성소’라고도 합니다. 
지성소(至聖所)란 일 년에 딱 한 번 모든 백성을 대표해서 대제사장이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 안의 가장 깊은 장소를 말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에서 볼 때 지성소는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는 중심이었고, 그것은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을 보증해 주는 지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어떤 마음의 지성소를 갖고 있습니까?

히브리서는 구약성서 시대의 제사와 지성소 관념을 전제하고 있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형태와 의미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 가운데서 최고 수준의 헬라어를 구사하는 히브리서는 유대인의 전통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사 종교로서 유대교의 전통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화해자로서 진정한 제사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이 지닌 믿음의 연장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상식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빌어 말하되 그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말합니다. 전통적인 관념을 뒤집어엎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는 제사에 빗대어 말하지만, 유대교의 제사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의미의 제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내적 위기에 응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도 무엇을 믿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하고 회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믿음을 역설합니다.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다니지 마십시오. 음식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튼튼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규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다.”(13:9) 이 말씀은 그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청중들은 유대교의 전통에는 익숙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는 아직 불완전합니다. 그러기에 유대교의 상식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의미를 말하되, 그 의미를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하므로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13:12~13)
안병무 선생은 한국 민중신학의 의의를 이 한마디로 집약하기도 했습니다. 본문 말씀의 핵심이자 동시에 히브리서의 대미에 해당하는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제사의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기 위해 제사를 드릴 때, 속죄 제물을 잡아 피를 성전 안 지성소에 바치고 그 몸은 성 밖에서 태워버렸습니다. 지성소는 일 년에 단 한 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희생제물이 되는 동물의 부정한 몸은 성문 밖에서 태워버리고 오직 순결한 피만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온 백성이 순결에 이른다고 믿었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에서는 지성소만이 거룩한 곳이고 성문 밖은 부정한 곳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문 밖’ 곧 ‘진영 밖’으로 나아가자는 말씀은 그 통념을 뒤집어엎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은 지성소를 뒤바꾸는 말씀입니다. 성문 안에 있는 성전,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있는 지성소에서 드려지는 피로써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성문 밖에서 고난을 겪으시고 세상의 화해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정한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제 지성소는 성문 안이 아니라 성문 밖에 있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제사 종교와 그 추종자들이 지니는 위선과 허위의식을 질타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피만 지성소에 드리고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희생 동물의 몸뚱어리를 소각하는 장막 밖으로 나가자는 말씀은 놀라운 가치의 전도를 뜻합니다. 희생제물의 피를 드리는 것으로 인간 사회의 짐이 덜어질 수 있을까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본문 말씀은 선포한 것입니다. 더불어 무엇이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인지 선포한 것입니다.

‘성문 안’과 ‘성문 밖’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성은 하나의 확고한 질서와 체제를 의미합니다. 성벽이 둘러 있고 궁전이 있고 성전이 있고 지성소가 있어 조직화된 질서가 절대시되는 곳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의 삶은 그 격에 맞는 법도와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그 성문 안에 사는 것은 그 질서와 체제가 보장해 주는 삶의 안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문 밖은 성벽도 울타리도 없고 반듯한 길도 없고 화려한 집도 없습니다. 성문 안의 질서를 따르는 시각에서 보면 무질서한 곳입니다. 사람들도 보잘것없습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래서 성문 안의 사람들은 그 성문 밖을 부정한 곳으로 여깁니다.
성문 안과 성문 밖은 그렇게 대조됩니다. 성문 안에는 지체 높은 사람들이 안락하게 살아가지만 성문 밖에서는 항상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성문 안 사람들은 항상 성문 밖 사람들 덕분에 살아갑니다. 성문 밖 사람들의 고단한 노동과 소출 덕분에 성문 안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문 안 사람들은 군림하고 영광을 누리는 반면 성문 밖 사람들은 섬기며 희생합니다. 
‘성문 밖의 그리스도’는 비단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이 성문 밖에 있다는 사실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성문 안 사람들과 달리 성문 밖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문 밖 갈릴리 민중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했지만, 성문 안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로마의 총독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고 결국 성문 밖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성문 밖 사람들을 표상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문 밖으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성문 밖에서 사셨고, 그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치욕을 겪으신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자는 뜻입니다. 그것은 성문 안의 질서와 가치에서 볼 때 치욕일 뿐입니다. 그 치욕은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하지 않고 진정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13:14~16)
성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주어진 것들에서 안녕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주어진 삶의 질서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이 다가오리라는 믿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성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은 도피가 아닙니다. 성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얻으려면 너무 고단하기에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위한 선택이요 결단입니다. 
성문 안에서는 누군가의 힘에 의뢰하여 자신의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손에 들리어진 희생제물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단 한 사람의 제사장 말고는 모든 사람이 자기 운명을 자기가 선택하지 못합니다. 통치자이든 제사장이든 나보다 힘 있는 누군가에게 내 몫을 넘겨야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문 밖의 삶은 다릅니다. 제도가 보장하고, 제사장이 대신해 주는 어떤 의례를 따라야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구원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입술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스스로 선을 행하고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진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바로 거기에서 진정한 구원의 희망을 맛봅니다. 눈에 보이는 건축물로서 지성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입술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스스로 선을 행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자리가 지성소가 되고, 바로 그 일을 행하는 때가 지성소를 찾는 순간이 됩니다. 성문 밖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성문 밖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것을 뜻합니다. 

저마다의 마음의 지성소는 과연 무엇일까요? 스스로 물음을 던지며 답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진정한 지성소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성문 안 성전 안에 있지 않습니다. 성문 밖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복판이 곧 그리스도인의 지성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미하고, 선을 행하며 가진 것을 나누기로 결단하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 곧 진정한 예배요 그 일이 이뤄지는 자리가 곧 지성소입니다.

그 명쾌한 진실이 어째서 각별한 의미를 지닐까요? 어째서 히브리서는 그 진실을 힘주어 강조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왜 그 진실을 거듭 새겨야만 할까요? 세상은 여전히 자기의 아성을 쌓는 일에 급급해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의 파국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각 나라의 주권과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규범이 무너진 현실에서 겪고 있는 고통입니다. 왜 그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그 규범 대신 자신의 힘만 믿는 패권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자신들만의 협약에 따라 패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전략을 실행중입니다. 트럼프의 사저 이름을 딴 ‘마라라고 플랜(Mar a Lago Plan)’에 따른 전략입니다. 미국 달러 패권의 유지, 관세 및 대미투자 압력, 경제와 안보의 교환 논리로 집약되는 자신들만의 계획입니다. 흥미롭게도 스페인어 ‘마라라고(Mar a Lago)’는 ‘바다에서 호수로’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나마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유지해 온 밑바탕이 된 공공재를 희생시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전략을 절묘하게도 상징합니다. 우리말로는 ‘제 논에 물 대기’ 정도의 의미를 지닐까요? 지금 벌어지는 전쟁 또한 그 전략이 극단화한 한 형태일 것입니다. 자기만의 아성 쌓기가 불러일으키는 불행입니다. 
역설적으로 그 극단적 선택이 마침내 자신들이 추구하는 패권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 그나마 희망적일까요? 마치 2024년 12월 3일 아무개의 비상계엄 선포와 같다고 할까요? 
하지만 지금 세계는 혼돈의 어둠 가운데 빠졌고, 온 세계가 얼마나 더 극심한 고통에 처하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강고한 자기만의 성을 쌓고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질서가 빚어내는 파국입니다. 그 파국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면, 마땅히 그 질서 밖의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우리 눈에 더더욱 자명해집니다.

성문 밖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겪으신 것은, 소수만이 삶의 안위를 보장받는 체제와 삶의 방식을 넘어 모든 생명이 진정한 삶을 누리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 진실을 새기며 그 길을 따르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22 Mar 2026 17:27: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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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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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김채원]]></author>
			<pubDate>Fri, 20 Mar 2026 22:13: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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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12 / 3.22. 주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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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G1fOnDITT00

2. 올해 부활절(4/5)에는 세례식을 베풀 예정으로, 세례와 견신례를 원하는 교우는 청원서를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례자 교육은 3/22,29일 두 주일에 걸쳐 오전 9:50에 진행됩니다.

3. 지난 주간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 제82회 정기노회중 16(월) 이성철 목사가 임직하였습니다. 

4. 교우들의 독서모임이 18일(토) 오후 2:30에 문동환 외,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갈릴리교회 설교집』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5. 남신도회 주관으로 4월 25일(토)에 전 교우 산행 나들이 예정입니다. 

6. 담임목사
   22(일) 저녁 8시 [온라인] 마르크스와 종교 포럼 정기 세미나
   24(화) 오후 2~5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출강(“민중신학의 탐구”)
   24(화) 저녁 7:30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 에큐메니칼 공동 신학 세미나]]></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20 Mar 2026 17:00: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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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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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김유나]]></author>
			<pubDate>Thu, 19 Mar 2026 22:17:0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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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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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김묘향]]></author>
			<pubDate>Wed, 18 Mar 2026 15:43:0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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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김소영]]></author>
			<pubDate>Tue, 17 Mar 2026 00:27: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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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김유진]]></author>
			<pubDate>Mon, 16 Mar 2026 21:21: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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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이유정]]></author>
			<pubDate>Mon, 16 Mar 2026 02:59: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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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 이사야서 66:10~14[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228]]></link>
			<description><![CDATA[2026년 3월 15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본문: 이사야서 6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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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는 그 내용이 방대할 뿐 아니라 오늘까지 이어지는 신앙의 중요한 요체를 담고 있어서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 말씀을 포함한 세 번째 이사야의 선포는 신앙의 지평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놀라운 표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단지 이전의 신앙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적 전환을 함축하는 선포입니다. 
이사야서는 시대를 달리하는 세 대목의 예언으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 이사야(1~39)가 주전 8세기 곧 왕국이 존속하는 시대에, 두 번째 이사야(40~55)가 주전 6세기 곧 왕국이 멸망하고 바빌로니아제국의 지배 시대에 예언 활동을 펼쳤다면, 세 번째 이사야(56~66)는 그보다 한 세기 후 곧 페르시아제국의 등장과 함께 포로로 붙잡혀 있던 유대인들이 해방된 시점에 예언 활동을 펼쳤습니다.

세 번째 이사야가 활동을 펼치던 때는 어떤 시대였을까요? 두 번째 이사야가 활동하던 때는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을 내라는 말씀(40:3~5)은 그 기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서 부딪힌 현실은 그렇게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순수한 신앙공동체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경제적 빈곤, 정치적 왕국의 회복 불능, 성전 주도권을 둘러싼 제사장 계층 내의 갈등(사독 가문과 레위인들의 충돌), 정착민과 귀환민의 갈등,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이 중첩된 상황이었습니다.
그 환멸의 상황을 경험하며 예언의 선포는 이전의 색조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원성은 드높아지고 환멸의 탄식이 지속되는 상황 가운데서 예언은 더욱 급진화합니다. 이른바 종말론적 전환입니다. 이전의 예언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 유다가 다시 번영을 누리리라는 것이었다면, 이제 예언은 그 역사를 넘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와 더불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리라는 것으로 바뀝니다. 점진적인 개혁의 기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근본적인 혁명의 기대가 증폭된 것입니다. 역사의 연속이 아니라 단절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불꽃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선포한 말씀(누가 4:18~19)도 세 번째 이사야의 선포를 반복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61:1~2)
주님의 은혜의 해는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희망으로 증폭됩니다.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 울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 할 것이며 ···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65:17~25) 
모든 적대와 갈등이 사라진 현실 가운데서 저마다 삶을 온전히 누리게 되리라는 희망입니다. 정의로운 평화가 실현되는 세계에 대한 희망입니다. 좌절과 환멸의 상황에서 희망이 꺾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되었습니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이 더욱 깊어지고 근본부터 다시 구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통찰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저 환상이 아니라 마땅히 이뤄져야 할 인간과 세계의 새로운 현실에 대한 갈망이 더욱 철저해지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세 번째 이사야가 선포한 종말론적 희망은 신체와 민족,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뛰어넘는 진정한 정의의 재구성을 지향합니다.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가 되는 세계에 대한 희망을 선포합니다. 야곱의 후손이라도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고(58:1~5), 반면에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설령 고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철저히 따르면 그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며 영광을 누립니다(56:3~5). 이는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이 오히려 더 많은 자녀를 보리라고 선포한 두 번째 이사야의 예언과도 상통합니다(54:1). 
모든 적대가 사라지고 진정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세계에 대한 전망은 기왕의 세계 질서 안에서 부여받은 지위와 신분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신체적 조건, 생식능력과 성적인 역할이나 지향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그 누구의 특권도 용인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이사야는 다양한 주민들로 구성된 공동체 안에서 편견과 적대의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예언자가 그린 세계, 마땅히 인간이 도달해야 할 세계,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구현되는 세계는 그 편견과 적대가 완전히 사라진 세계입니다. 그것은 소유의 욕망으로 빚어진 에덴의 저주, 곧 실낙원의 고통을 넘어 새롭게 창조되는 세계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그 희망은 여전히 오늘 우리에게도 위대한 꿈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장엄한 희망의 대미를 장식하는 말씀의 일부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아,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슬퍼하던 사람들아, 너희는 모두 그 성읍과 함께 크게 기뻐하여라.”(66:10) 분열과 갈등으로 슬픔의 눈물이 그치지 않던 예루살렘이 정의와 평화의 샘물이 쏟아져 나오는 원천으로(6:12) 뒤바뀌는 사건이 이루어진다는 선포입니다. 
그 희망을 선포하는 언어가 놀랍습니다. 그 구원의 사건은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긴 자식이 누리는 평안과도 같습니다. “위로를 주는 예루살렘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게 하고, ··· 풍요로운 젖을 빨아들여 기쁨을 누리게 하려 함이다.”(66:11) “너희는 예루살렘의 젖을 빨며, 그 팔에 안기고 그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을 것이다.”(66:12) 앞선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해산의 고통이 오기도 전에 아이를 낳는다.”(66:7) 이는 무너진 창조의 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출산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되어버린 현실(창세 3:16)을 넘어 진정한 기쁨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운 구원의 평화를 누립니다. “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66:13)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선포는 절정에 이릅니다. 하나님을 여성적인 칭호로 부르는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여성적인 칭호를 혐오하는 모든 태도를 단번에 부정하고 있으며, 여성의 역할을 폄하하고 혐오하는 모든 태도를 단번에 일축합니다. 나아가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길인지 단번에 일깨워 줍니다.
그 평화로운 구원을 누릴 때 어떻게 될까요? “너희가 이것을 보고 마음이 기쁠 것이며 너희의 뼈들이 무성한 풀처럼 튼튼할 것이다.”(66:14 상반절)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 안에서 생동감 넘치는 삶을 누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갈망하는 평화로운 세계, 평화로운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의가 무너지고 평화가 파괴된 세계의 적나라한 현실 가운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넘기고 민주주의를 정상화해 가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가고자 애쓰는 가운데 심각한 세계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실상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약탈적인 관세와 투자 약속을 강요받는가 싶었는데, 그렇게 우리를 압박한 그 나라는 자신의 힘만 믿고 무모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혼돈 가운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유가가 얼마나 올랐습니까? 이것은 산업 전반,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만큼 사람들이 체감하는 고통을 심화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참담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세계는 그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했습니다. 이른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입니다. 그것은 각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모든 나라가 대등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규범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1945년 탄생한 국제연합(UN)은 그 질서를 대표합니다. 이는 세속적 질서이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규범은 명백히 성서를 중요한 하나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국제연합 본부 근처에 이사야서의 말씀이 새겨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이사 2:4)
더불어 세계는 각 나라가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규범을 확립하였습니다. 1948년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이 그 규범입니다. 그것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법적 효력을 지닐 수 있도록 국제연합은 사회권 규약과 자유권 규약을 제정하여 각 나라가 인권 존중의 의무를 감당하도록 제도를 확립했습니다. 또한 민주적 헌정을 지향하는 모든 나라는 헌법에 각기의 주권과 더불어 그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는 규범을 법조문으로 명문화였습니다. 예컨대 대한민국 헌법은 제1조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하였고, 독일 기본법은 제1조 1항으로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이다.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이다.”라고 명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간 나라 사이에 갈등이 없지 않았고, 인권 유린의 현실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는 과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각 나라의 주권 존중과 모든 사람의 인권 존중의 규범 자체가 부정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군사적 행동을 하면서도 그 정당성을 강변하는 명분을 찾아야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 벌어지고 있는 세계 현실은 그 규범을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 규범이 지켜지도록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해 온 나라가 그 규범을 팽개쳐 버렸습니다. 적나라한 경제적 야욕과 자원에 대한 탐심, 그리고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패권이 그 규범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원시적인 약육강식의 사태보다도 훨씬 심각한 지경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공지능이 살육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70여 명의 무고한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살육을 당하는 사태를 두고도 전쟁을 벌인 자는 참람하게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 자식들은 경제적 잇속을 챙기고 있습니다.
악마가 구체적인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오늘 이 세계에서 전쟁을 벌인 두 사람의 얼굴과 같을 것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얼굴입니다. 그들의 악행으로 지금 세계는 혼돈과 고통 가운데 빠져들었습니다. 이들을 축복하는 미국 개신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벌이는 악행에 동참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율배반입니다. 이들이 기억해야 할 말씀은 본문 말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주님의 권능이 종들에게 알려지며, 주님께서 원수들에게 진노하실 것이다.”(66:14 하반절)

본문 말씀은 극심한 절망의 상황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희망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그저 환상이 아닙니다. 삶에의 의지요, 구원의 길입니다. 
“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 약속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평화로운 세계가 펼쳐지며, 그 가운데 참삶의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믿음 가운데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하여 헌신하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15 Mar 2026 15:05:3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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