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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안살림교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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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천안살림교회</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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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마지막 시대 교회의 인권 어젠더, 난민 - 마태복음 24:3~14[이호택 목사 / 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48]]></link>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20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마지막 시대 교회의 인권 어젠더, 난민
본문: 마태복음 24:3~14
이호택 목사('피난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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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20 Sep 2026 16:57: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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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8 / 9.20.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47]]></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5q84Fp1UAD4 

2. 오늘 남신도주일은 맞아 말씀을 나눠주신 이호택 목사님(‘피난처’ 대표)과 수고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 오늘 예배후 운영위원회 열립니다(안건: 11월 전교인수련회 일정과 내용). 

4. 2026년 하반기 수요인문강좌가 “인간선언의 영화와 우리 교회 연대활동”을 주제로 하여 9/30~11/18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됩니다.
◎ 인간선언의 영화들
  [1]09월30일 &lt;안녕, 미누&gt;(2020) : 지금 여기의 이주노동자 인권
  [2]10월07일 &lt;아름다운 청년 전태일&gt;(1995) : 노동운동과 민중신학의 출발점 
  [3]10월14일 &lt;해리엇&gt;(2019) : 미국 노예해방의 영웅, 해리엇 터브먼 이야기
  [4]10월21일 &lt;임신한 나무와 도깨비&gt;(2019) : 기지촌 여성의 기억 찾기 판타지
◎ 우리 교회 깊이 알기 - 연대활동 주제 강좌
  [5]10월28일 “우리 교회 연대활동의 특징”(최형묵)
  [6]11월04일 “개신교 인권운동사의 맥”(최형묵)
  [7]11월11일 “미등록 이주 아동의 생애주기별 고충과 제도적 배제”(김규희)
  [8]11월18일 “우리 교단 여성운동의 역사”(송길룡) 

5. 교우들의 독서 모임이 10월 3일(토) 오후 2:30에 김진호, 『난민의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6. 담임목사
   22(화) 오전 11시 서울 기독교회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18 Sep 2026 10:34: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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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죽재 서남동 민중신학 사상의 주요 내용과 발전적 전개]]></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45]]></link>
			<description><![CDATA[『농촌과목회』 2026년 가을호(통권 111호) 특집

죽재 서남동 민중신학 사상의 주요 내용과 발전적 전개

최형묵(목사, 천안살림교회, 연세대 겸임교수)


1. 죽재의 삶과 신학 여정

한국 신학계의 안테나로 알려진 죽재 서남동(1918.2.5~1984.7.19)은 과연 그 별명답게 첨단의 신학 사조에 민감하였고 그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발전시켜 나갔다. 죽재는 신학 수업의 여정을 이렇게 술회하였다. “나는 매번 새로운 충격을 받아서 그것을 가능한 한 극단으로 표현해 온 것 같다.”1) 그 몇 차례의 신학적 충격의 계기를 스스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첫 번째는 성경에서 익힌 지명들이 ‘지구 위에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고 한다. 죽재는 신안군의 한 섬 자은도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여 소학교 5학년 때 목포에 있는 교회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성경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2학년쯤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전주 신흥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충격이었던 것은, 성경이 그저 천상의 이야기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가 지상에서의 역사적 실체를 지닌 이야기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받은 “충격은 상당히 크고 영속적인 무엇이었다”고 술회한다.
두 번째 신학적 충격은 대학 예과를 마치고 신학과 1학년에 들어갔을 때(1938년)였다.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시절이다. 일본인 도미노모리 교수의 ‘신약문학개론’, 미국 선교사 캅 교수의 ‘구약문학개론’을 통해 배운 문헌비판에서 학문의 엄격성을 배웠고, 그때 받은 충격이 역력히 기억되었다고 한다. 1941년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성경학교 교사로, 그다음 해부터 대구에서 10년간 목회하는 동안 가장 많은 감화를 끼친 것은 야나이하라의 「嘉信」지, 바르트, 부르너 등의 위기신학, 그리고 니버의 ‘정치적 현실주의’ 신학들이었다. 더불어 함석헌의 성경강해, 그리고 김재준을 통해 접하게 된 소로킨의 사회학, 토인비의 역사관 등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이후 죽재는 새로운 신학 사조를 접할 때마다 충격을 받았고 이를 체화하는 신학적 여정을 걸었다. 그가 시대정신에 얼마나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신학적 성찰을 수행하였는지 그 여정은 잘 보여주고 있다. 죽재가 받은 신학적 충격 가운데 자신의 “신학 형성에 가장 크고 영속적인 힘을 가진 것은 틸리히의 신학”이었다. 1951년 틸리히의 『프로테스탄트 시대』를 처음 읽은 후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가르치는 동안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틸리히의 신학을 강의하였다. 융의 심리학을 접한 것도, 요아킴의 ‘성령의 제3시대’를 안 것도 틸리히의 신학을 통해서였다.
1955년 캐나다 토론토 임마누엘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C.H. 다드와 불트만의 신약신학, 그리고 베르쟈에프의 종교철학과 엘리아드의 종교사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즈음 신학적인 충격다운 충격을 준 것은 1964년에 읽은 본회퍼의 『옥중서신』이었다. 그즈음부터 10년간은 세속화론(1965), 신의 죽음의 신학(1966), 그리고 희망의 신학(1968) 등에 몰입하였다. 이 시기를 죽재는 “거듭거듭 밀려오는 신학의 파도를 타고 넘으려고 안간 힘을 다했다”고 기억한다.
1969년부터 1974년 여름까지는 “침착한 마음으로 한국의 신학계를 등지고 서재에서 현대의 과학기술문명과 더불어 신학적 싸움을 했다.” ‘안간 힘을 다했다’ ‘싸움을 했다’고 고백해야 할 만큼 당대의 첨예한 주제들을 붙들고 씨름했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이즈음 죽재를 사로잡은 신학적 문제의식도 주목거리이지만 신학계를 등지고 서재에서 골몰해야 했던 사정 또한 심상치 않다. 떼이야르의 진화론에 기초한 신학과 과정신학, 날로 발전하는 생명과학에 대한 탐구, 결국 과학과 종교의 종합으로 수렴되는 신학적 성찰의 과제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신학적인 충격을 받고 전율하면서” 몰두해야 할 만큼 버거운 과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신학적 공론장을 등져야 할 만큼 압박감을 주었을까? 이밖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2)을 발표한 이후 파장도 한몫하였을 듯하다. ‘정통’과 ‘이단’의 프레임을 넘어 현대 신학의 성취 맥락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의도하였던 죽재의 충정은 당시 교계나 학계에서 쉽사리 수용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민중신학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기 전까지 죽재의 신학 여정이었다.


2. 민중신학으로의 전환, 방외신학자의 길
   
그렇게 일종의 침잠 가운데 있던 죽재에게 또 다른 충격이 다가왔다. “작년 금년 내가 받은 신학적 충격”이 그것이다. 죽재는 “그 충격의 계기들을 밝히는 것은 보류하기로 하되” “그 충격을 민중의 신학으로 극단화(radicalize)하고 있다”고 고백하였다. 죽재가 이와 같이 신학의 여정을 술회한 시점은 1976년 3월 1일이다. 죽재도 서명한 「3·1민주구국선언」 발표일이다. 
책의 서문에 명기된 이 날짜는 책의 출간일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작 그 서문을 쓸 때는 문익환 목사가 선언을 준비하면서 동의를 구하던 즈음일 수도 있고, 요즘과 같은 컴퓨터 편집이 아니라 활판 인쇄 사정을 감안하면 그보다 이른 시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작년 금년’으로 환기하고 있는 시점은 1974년에서 1976년 초에 이르는 기간일 수 있다. “그 충격의 계기들을 밝히는 것은 보류하기로 하되”라고 자제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당시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와 연루된 처지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즈음이라면 여러 사건이 벌어졌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 벌어지고 같은 학교 동료인 김찬국 교수가 감옥에 갇혔다. 그해 죽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나이로비 총회를 앞두고 열린 신앙과직제위원회 회의로 출국하였다가 해외 인사들로부터 한국 민주화운동 상황과 시인 김지하의 안부를 묻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한국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양심수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시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인한 충격은 컸고, 급히 김지하의 시 세계를 파고 들었다. 죽재의 민중신학이 김지하의 시 세계로부터 가장 짙은 영향을 받은 것도 그 경험 탓이었다. 1974년 한 해 동안만 하더라도 죽재는 학계 및 교계의 여러 시국선언에 동참하였고 당국의 주목 대상이 되었다. 그해 11월에는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이 발표되었고 죽재 역시 이에 서명하였다. 그 성명의 초안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그리고 1975년 2월 처음으로 민중신학을 공표한 글로 여겨지는 “예수·교회사·한국교회”, 이어 4월에 “‘민중의 신학’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975년 6월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이 일련의 사태는 실로 죽재의 삶 자체를 뒤바꾸는 충격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만으로도 이미 그 이전에 지적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결정적인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1976년 3월 1일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되고 그 서명자들은 일제히 구금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과 여성인 이우정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혹독한 옥고를 치러야 했다. 선언을 주도하고도 공동번역 성서 번역작업을 마무리하고자 서명하지 않았던 문익환 목사도 결국 들통나 옥고를 치렀다. 대다수 성직자이자 교수였던 이들은 심각한 인격적 모독을 동반한 옥고를 치렀다. 육체적 고문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후에도 그 경험을 내내 직접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인격 모독을 감내해야 하는 나락의 경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감옥 안에서 이른바 온갖 잡범들을 만나며 민중의 실상을 경험하였다. 그 경험은 상아탑 안에서 겪었던 지적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적 현장에서 스스로 감내해야 했던 경험이었다. 
죽재가 민중신학으로의 전환을 이루기 전 신학 여정을 정리하는 저술의 서문을 작성한 날로 기록된 1976년 3월 1일은 서남동과 안병무4)가 의도적으로 운명의 날을 새기고자 한 ‘공모’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이제 더는 되돌아설 길이 없다는 것을 예고하는 섭리의 결과였을까? 이후 죽재는 종횡무진하는 지적 편력을 자랑하는 신학의 안테나로서보다는 민중신학의 선구로서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다시 대학의 상아탑에 복귀된다면 나는 아마도 다시 과학종교의 비전을 추구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5)고 전망하였지만, 죽재의 생애에서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980년 일시 복직되었다가 다시 해직된 후 1984년 다시 복직의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학교로 되돌아가지 못하였다.6)
죽재 신학의 귀결점은 민중신학이었다. 죽재는 이제 상아탑의 서재에 머무는 신학자가 될 수 없었다. 방외(方外)의 신학자7)로서 실천 현장에의 참여와 그때그때 긴박하게 요구되는 신학적 성찰을 수행해야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로서 선교교육원 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그것이 네모반듯한 연구실 환경을 갖추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선교교육원은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목사 후보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애초 교단의 위촉으로 한신대 제적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이었으나 여러 학교에서 제적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 교수들도 대학 강단에 서지 못하는 해직 교수들이었다. 학생과 교수 모두 실천적 체험에서 비롯되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육 과정에 함께 하였다. ‘서대문 민중신학교’라는 별칭으로 불린 그 과정은 말 그대로 민중신학의 중요한 산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죽재는 해직 교수들을 중심으로 하는 갈릴리교회에 동참하였고, 해직교수협의회와 기독자교수협의회 등의 활동을 펼쳤고, 여러 민중운동 현장과 연대하는 가운데 민중신학을 더욱 첨예화시켜나갔다. 죽재의 운명적 조건이었고 민중신학의 운명적 조건이었다. 민중신학의 방법과 내용은 그 조건 가운데서 벼려졌다.


3. 방외신학의 진면목 『민중신학의 탐구』 

그렇게 실천 현장과의 연대와 교감 가운데 가다듬어진 민중신학의 성과가 서거하기 1년 전 『민중신학의 탐구』로 집약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죽재의 신학 여정에서는 물론 민중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70년대 민중적 관점을 공유한 여러 신학자의 글을 집약한 책으로 처음 출간된 것은 『민중과 한국신학』8)이었다. 그 시점은 1982년이었다. 이미 민중신학이 합의된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던 그즈음 이 책이 민중신학을 표제로 달지 못한 데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그 대본은 먼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에 의해 영어로 먼저 출간되었고, 그 표제로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을 내걸었다.9) 그럼에도 한국어판에서 모호하게 ‘민중과 한국신학’이라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수없이 많은 책이 금서가 되었고 신학 서적으로는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10)이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형편이었으니, 민중신학자들은 아슬아슬하게 그 칼날을 피할 묘책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금서의 목록에 오르지 않은 가운데 유통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중운동이 절정을 향하여 달리던 그즈음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갔고, 따라서 민중신학의 단초가 되는 20편의 글들을 모아놓은 그 책으로는 그 관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즈음 죽재의 『민중신학의 탐구』가 출간되었다. 초판 간행 시기가 1983년 11월이니, 당시 군사정권의 소위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우리말로 된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죽재의 생애에서 두 번째로 출간한 이 책은 이전의 『전환시대의 신학』과는 다른 저작이었다. 생애 동안 출간한 두 권의 책11)은 민중신학 이전과 이후를 분명히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다. 한 신학자의 삶에서 입장의 선회가 이뤄질 때 그 단절성과 연속성의 문제는 늘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죽재의 신학에서도 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민중신학을 배태한 역사적 상황과 그 가운데서 신학자 스스로 겪은 체험의 충격을 고려할 때 우선 그 차이를 주목하여 볼 수밖에 없다. 죽재 자신도 『전환시대의 신학』이 “혼자 배워서 혼자 써낸 것”인 반면 『민중신학의 탐구』는 “혼자서 한 일이 아니”고 “친구들이 같이 토론하고 같이 생각”한 결과로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다.12)
처음부터 단일 저작을 의도하고 조목조목 써 내려간 책이 아니기에 그 내용 구성상의 체계성을 갖춘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반듯한 연구실이 아닌 거리에서 방황하는 가운데13) 쓴 글들을 엮은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내용들을 엮고 있는 확실한 얼개가 두드러진다. 이 책의 진정한 의의는 풍부한 민중신학적 ‘영감’과 그 영감으로 빚어낸 민중신학의 기본 얼개에 있다. 아마도 민중신학 1세대를 대표하는 저작 가운데 그 이론적 얼개와 방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저작일 것이다. 민중신학자들에게 민중의 역사 주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공통되지만 더불어 각기 고유한 이해와 관심의 방향을 드러내고 있는데,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신학적 얼개와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분명한 특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는 죽재 스스로 누누이 밝히듯이 특정한 문제의식을 첨예화하는 사고방식의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4. ‘두 이야기의 합류’와 ‘계시의 하부구조’

죽재는 민중을 발견하고 스스로 그 체험을 공유한 충격 이후 민중을 입지점으로 하는 신학적 구상을 본격화하였다.14) 

1) ‘두 이야기의 합류’

죽재가 추구하는 신학의 방법과 그에 따르는 신학적 얼개는 ‘두 이야기의 합류’ 구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민중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현재 한국교회의 ‘신의 선교’ 활동에서 합류되고 있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현재 눈앞에 전개되는 사실과 사건을 ‘하느님의 역사개입’, 성령의 역사, 출애굽의 사건으로 알고 거기에 동참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15) 

민중을 이 합류의 해석학이 갖는 독특성은, 그것과 전통적 신학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해명하는 대목에서 분명해진다. 죽재는 ‘두 이야기’ 곧 두 전통을 ‘전거’(典據)라는 말로 성격화하며, 그 의미를 ‘참고서’라고 규정한다. 지금 한국 그리스도인에게서 합류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은 동등한 전거, 곧 동등한 참고서가 된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신학의 ‘규범’을 말하고 그 규범의 근거로 성서를 말해왔다. 그러나 죽재의 주장은, 성서가 증언하는 민중사건과 그리스도교 역사에 나타난 민중사건,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나타난 민중사건이 모두 동등한 참고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성서가 그리스도교 전통 또는 신학에서 차지하는 실제적 비중이나 중요성 자체를 무시하는 발상은 아니다. 이 주장의 진의는, 문자로 기록된 성서가 신학의 근거로서 배타적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고정된 하나의 텍스트가 문자 그대로 진리일 수는 없다. 어떤 의미의 생성은 텍스트와 독자 그리고 그 사이에 게재되는 다양한 요소 사이의 상호 작용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대 비평학의 상식이다.16) 그것은 성서의 형성 과정 자체가 증언하는 바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될 만한 순수한 ‘성서적’ 전승이라는 것이 따로 있어서 그것이 다른 전통들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성서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성서 자체 안에 이미 다양한 전통들이 교차하고 있고 그 교차의 과정에서 어떤 전통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계승되어, 다른 것들과 구분할 수 있는 전통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로 고착되어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해석자 또는 계승자를 매개로 하여 다양한 전통과 교차하고 다시 그 내용과 형식을 새롭게 한다. 성서 자체가 그렇게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전통 자체가 그렇게 이어졌다. 문자로서 성서가 배타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서 형성 그 자체,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 자체가 입증한다. 죽재의 민중신학은 그 사실을 비로소 명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죽재는 그와 같은 해석을 스스로 일러 기독론적·통시적 해석과 구별되는 성령론적·공시적 해석이라 한다. 그리고 설명하기를, “기독론적 해석에서는 이미 주어진 종교적인 범주에 맞기 때문에 적합성이 주어지는 것이라 주장하고, 성령론적인 해석에서는 지금 현실의 경험과 맥락에 맞기 때문에 적합성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밝힌다. 기독론적 해석은, 성서가 수미일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한다고 보는 해석 방식이다. 그러므로 기독론적 해석은 단일한 전제로 성서의 다양한 전승을 짜맞추는 폐쇄적 해석 방식을 말한다. 반면 성령론적 해석이란 어떤 경계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의 활동을 강조한 개념으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을 의미한다. “기독론적 해석에서는 나사렛 예수가 ‘나를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속죄한 것이지만 성령론적 해석에서는 내가 예수를 재연하는 것이고 지금 예수사건이 다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17) 통시적이라는 말은 과거 전통을 강조한다는 의미이며, 공시적이라는 말은 오늘 여기의 지평을 강조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해석의 적합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지금 현실의 경험과 맥락”이다. 이와 같은 기준은, 문자적 전통이든 역사적 전통이든 그 자체로는 항구불변한 진리로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바꿔 말하면 “실천으로서 전통을 잇고, 발전시킨다.”18) ‘오늘 여기에서의 실천적 문제의식’이 전통의 수용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의미이다.

2) ‘계시의 하부구조’

당대의 민중사건을 해석하고 증언하며 나아가 그 사건에의 동참을 지향하는 실천의 신학으로서 합류의 해석학은 구체적인 매개 장치를 갖는다. 이른바 ‘계시의 하부구조’가 그것이다. 민중운동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통해 합류한다는 합류의 해석학은 ‘계시의 하부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더욱 구체성을 띤다. 
전통적인 신학 개념으로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말은 죽재 민중신학의 진면목을 밝혀주는 주요 개념이다. 죽재는 평소 스스로 ‘크리스챤 맑시스트’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다.19) 시대적 정황 때문에 때때로 마르크스주의와 민중신학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였지만,20) 그의 신학적 인식은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에서 크게 영향받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오늘의 혁명·정치·해방의 신학이 마르크스주의의 도전에서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와 경쟁으로 그리스도교가 잃었던 활력을 되찾아 민중의 종교로 복귀하려고 한다고 말한다.21) 그가 신학에서는 생경한 ‘하부구조’ 개념을 서슴없이 자신의 신학적 체계 안에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설정한 것부터 그 영향의 흔적이다. 단순히 용어를 차용하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은 확실히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을 적극 수용한다. 
죽재는 두 이야기의 합류 구조를 밝히는 방법론으로 “사회경제사적 내지 문학사회학적 방법을 적용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조심스럽게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횡간의 의도를 읽자면 그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 역사 방법론을 유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사회경제사적 방법 내지는 문학사회학적 방법을 제안하는 대목에서 “역사적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넘어서는 교회사의 새 시대경륜”을 말함으로써 그 속내를 비치고 있다. 그는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제약조건들”을 분명히 밝히는 방법론으로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민중의 역사”가 밝혀지면 “민중의 사회전기, 민중의 집단적 영혼, 민중의 의식과 그들의 갈망들”을 밝혀내는 방법으로 문학사회학을 적용할 것을 말한다. 신학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시대마다 다양한 해석학의 틀을 사용해 온 것을 알 수 있는데, 오늘 “자기 역사와 운명의 주체가 될 민중의 정체”를 포착하는 데 그와 같은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 보고 있다.22) 
죽재는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을 의미하는 ‘사회사적 해석’ 내지는 ‘물질주의적 해석’23)을 기존 신학의 전제들을 비판하고 분석하는 도구로 사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신학을 구성하는 하나의 인식론으로 삼는다. 그것은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제약조건”을 밝힘과 아울러 “역사와 운명의 주체가 될 민중의 정체”를 포착하겠다는 데서 드러난 의도이다. 그래서 죽재는 신의 ‘계시’ 자체가 물질적 하부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개념을 창안한다.24)
이 개념은 죽재가 마르크스주의의 사회과학적 방법을 얼마나 비중 있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 개념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에서 말하는 신의 계시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표현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신의 계시는 ‘사회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계시는 ‘물질적 계시’라고 본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의 선택을 받은 ‘가난한 사람’ 곧 민중은 단순히 계시의 매체가 아니라 계시의 구성적 요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착상에서 시작하여 죽재는 “하부구조에서(몸)에서 유리된 상부구조(이념)만의 전통적 신학”은 “유령이요 아편”이라고 단정지었다.25) 여기에서 죽재는 확실히 마르크스의 종교비판 이후 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민중신학으로의 급진화 이후 죽재는 주로 역사에서의 민중 이야기에 주목하고 그 신학적 의미를 통찰하였다. 그러던 죽재는 생의 말년에 이르러 당대 민중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과 그 현실을 직접 탐색하고자 시도하였다. “빈곤의 사회학과 빈민의 신학”(1983)26)은 그 두드러진 사례이다. 이는 스스로 사회과학적 탐구를 수행하며, 그 기초 위에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한 것이다. 아마도 죽재의 생이 더 지속되었더라면, 자신의 문제의식을 극단화하는 그의 일관된 입장에서 그 과제를 더 본격화하였을 것이다. 죽재 스스로에게 미완으로 남은 그 과제는 후학들에게 넘겨졌다.


5. 신학의 진정성,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메아리

죽재는 『민중신학의 탐구』를 내어놓으면서 그 서문에서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어떤 신학자들의 메아리가 민중신학으로 형성되어 간다”고 술회하였다. 거기에 신학함의 진정성(眞正性)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학에 대해 반문하며 부끄럽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면서도 “신학의 한 중요한 규준은 얻은 셈”이라고 자평하였다.27) 
죽재는 1976년 『전환시대의 신학』을 내어놓으면서 다시 대학의 상아탑으로 복귀하면 다시 과학과 종교의 종합을 시도하는 신학으로의 복귀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있었다. 1983년 민중신학의 여정을 한 매듭짓는 『민중신학의 탐구』를 내어놓을 때도 그 기대를 안고 있었을까? 신학적 여정 가운데서 커다란 충격과 함께 주어진 문제의식이 쉽사리 사라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메아리로서 신학의 진정성을 깨닫고 그것을 신학의 중요한 하나의 규준으로 삼게 되었다는 자평은 이전의 관심사에 다시 복귀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입지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은 마지막 논문 “빈곤의 사회학과 빈민의 신학”보다 조금 앞선 같은 해의 논문 “세계의 생명과 그리스도”28)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글은 사회적·생태적 위기가 가난한 민중에게 고통을 가하며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현상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그 관점은 오늘의 사회적 위기와 직결된 생태적 위기를 다루는 관점과 관련해서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과학과 신학을 종합하고자 하는 시도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또한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생태적 위기,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만큼 놀라운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한 문제들은 신학에서도 지나칠 수 없는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많은 신학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죽재는 일찍이 그 문제들을 신학의 과제로 삼았을 뿐 아니라 민중신학에 이르러 그에 접근하는 신학적 입지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본래 그리스도교 복음의 정신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 가장 연약한 이들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 관점을 통해 죽재는 진화적 낙관주의 내지는 기술적 낙관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였다.
결국 죽재의 신학 여정 종착지로서 민중신학은, 신학적 지평의 축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성찰의 방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을 주제로 하는 신학이 아니라 민중을 관점으로 하는 신학을 뜻한다. 죽재는 그 신학의 진정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그것은 오늘 우리가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미주

1) 서남동, 『전환시대의 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6), 7. 이하 죽재의 신학적 충격과 그 여정에 관한 내용은 이 책 서문을 참조하였다.
2) “통일교 원리강론의 비판적 연구”라는 제목의 이 글은 앞의 책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처음 발표는 『현대와신학』(1970.3)을 통해서였다. 논문으로 게재된 것이니 그 이전에 다른 공론장에서 발표되었을 수도 있다. 
3)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죽재 서남동이 주도한 것으로 종종 회자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1973년 선언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김관석 목사와 교감하는 가운데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던 지명관 김용복 오재식 등이 주도하였다. 오재식, 『나에게 꽃으로 다가온 현장 - 오재식회고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170-173; 김흥수, 『자유를 위한 투쟁 – 김관석 목사 평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7), 154-160 참조. 죽재가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것은 1974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4) 당시 안병무는 한국신학연구소 소장으로 해당 저작의 발행인이었다.
5) 서남동, 『전환시대의 신학』, 8.
6) 이미 정년을 넘긴 나이였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에 명예교수로서 명예 회복을 요구하였지만, 그 결론이 나기도 전 7월에 서거하였다.
7)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서울: 한길사, 1983), 3; 『민중신학의 탐구』개정증보판(서울: 동연, 2018), 7. 이후 이 책의 인용은 개정증보판으로 한다.
8) NCC신학위원회 편, 『민중과 한국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2).
9) Commission on Theological Concerns ed., Minjung Theology: People as the Subjects of History(Singapore: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1981).
10) Gustavo Gutierrez, A Theology of Liberation, Maryknoll(N.Y.: Orbis Books, 1973). 성염 역, 『해방신학』(왜관: 분도출판사, 1977).
11) 이후 죽재서남동목사유고집편집위원회 엮음, 『서남동 신학의 이삭줍기』(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가 출간되었고, 최근 일본어판에서 번역 출간된 『갈릴리교회 설교집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6)에 두 편의 설교가 빛을 보았지만, 생애 동안 출간된 책은 두 권이었다. 
12)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8.
13)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7.
14) 이하 ‘두 이야기의 합류’와 ‘계시의 하부구조’에 관한 내용은 최형묵, 『민중신학 개념 지도』개정증보판(서울: 동연, 2026), 63-70을 간추린 것이다.
15)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101.
16) 이에 관해서는 김진호, “탈정전적 성서읽기의 모색”, 『반신학의 미소』(서울: 삼인, 2001); 양권석, “한국적 성서읽기의 한 방법으로서 상호텍스트적 성서해석의 가능성”,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편, 「시대와 민중신학」5(1998) 참조.
17)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102. 
18)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52.
19) 장일조, “죽재를 위한 하나의 대화”, 『전환기의 민중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참조. 장일조는, 서남동이 스스로 ‘크리스챤 맑시스트’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이 마르크스주의적이라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반면에 강원돈은 서남동의 신학이 마르크스의 역사방법론을  중요한 장치로 하고 있는 점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강원돈, “죽재 신학의 주제와 방법”, 『物의 神學 - 실천과 유물론에 굳게 선 신학의 모색』(서울: 한울, 1992) 참조.
20)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254-255.
21)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25.
22)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60-61.
23)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86.
24)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86-487.
25)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87.
26)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92-522.
27)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7.
28) 이 글은 원래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 밴쿠버 총회의 주제(“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를 특집으로 한 「기독교사상」 300(1983.6)에 “인류를 위협하는 죽음의 세력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던 것으로, 저작 편집 과정에서 제목을 고친 것으로 보인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Thu, 17 Sep 2026 19:56: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9"><![CDATA[논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 - 에베소서 2:11~22[이성철 목사 / 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8]]></link>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13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
본문: 에베소서 2:11~22
이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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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교회력으로 창조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주 예배가 끝난 뒤 성가대 분들과 교회에 걸린 천과 주보의 색이 바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절기가 바뀔 때마다 우리 교회도 천과 주보의 색을 그 절기의 상징색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창조절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창조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만들어온 질서가 온 땅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있는지도 돌아보는 시기를 우리는 지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더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묻기에 앞서, 우리의 삶과 경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받아들이도록 이야기들이 불어나기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경제적 이해와 자원, 군사동맹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쪽의 군사력이 다른 쪽의 군사력을 불러오고, 안전을 위해 준비한다는 힘이 다시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창조절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이 정말 생명을 지키는 길인지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서 생명은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한 지역과 다른 지역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관계가 폭력과 적대로 결합될 때 누군가의 안전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이게 되고,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땅과 물과 온 창조세계가 함께 상처 입습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는 이렇게 갈라진 관계 한가운데에서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 아시아 지역의 도시로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고 유대인 공동체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서가 정확히 에베소 한 교회만을 대상으로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편지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다룹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방인들이 한때 이스라엘의 시민권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는 외인이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11절에서는 이들을 ‘무할례자’라고 부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문제는 어느 종교가 더 우월한가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13절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전에 멀리 있던 사람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4절은 이 변화를 한 문장으로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명료한 선언입니다. 유대인들의 평화도 아닌, 할례받은 자들의 평화도 아닌, 예수를 따르고 있던 권위있던 목소리 큰 자들의 평화가 아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의 평화라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평화는 서로 멀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사이를 가로막던 담을 허무시고, 적대를 없앴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15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만들다’라고 번역된 말은 명확하게는 ‘창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두 집단을 조금 가까이 붙여놓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받아주면서 흡수되거나 합쳐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만들고 완성한 평화는 분열을 억지로 화해시키는 것을 넘어, 새로운 존재로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서로를 갈라놓았던 관계 자체가 달라지고, 그 자리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가 창조됩니다. 

창조절에 이 말씀이 특별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먼 옛날 하늘과 땅을 지으신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전에는 없었던 관계와 사건을 만들어가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합쳐진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일까요? 오랫동안 누군가를 적으로 여기며 살았다면 경계가 사라진 뒤에도 두려움은 남습니다. 상대를 경계하며 사용해온 말도 남고, ‘저들과 다른 우리’라는 구분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온 습관도 남습니다. 인식이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임과 공동체 안에서도, 먼저온 사람과 나중온 사람이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와서 자리잡고 이렇게까지 만들어놨는데, 나중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아, 내몫을 나눠주는 것 같고, 내가 애써 이뤄온 것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심쓰듯이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에베소서가 왜 담을 허무는 데서 끝나지 않는지도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19절에서 이방인들은 더 이상 외인과 나그네가 아닙니다. 같은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함께 지어져 갑니다.”

이미 완성된 집이 있고 그 안으로 새로운 사람을 하나씩 들이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하나님이 거하실 집 자체가 계속 지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공동체에 맞춰지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 자체도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평화가 시작될 때 상대방만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적대 속에서 살아온 우리 자신도 달라집니다. 아니,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다시 살피고, 익숙하게 사용해온 말을 고치며, 공동체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방식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었다면 그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입니다.

지난주 최형묵 목사님과 저는 “글리온회의 40주년 기념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올해는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과 북의 교회가 처음 직접 만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가차원의 적대 관계를 깨고 그리스도인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평화를 처음으로 실천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편안하게 마주 앉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오랫동안 적으로 배워왔고, 첫날 식탁에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40년전 글리온에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읽었던 성서 본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의 에베소서 2장의 본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읽고 마지막에는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당시의 증언은 그 성찬을 통해 보이지 않던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를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로 만나기 시작했다고 회고합니다.

40년전 그리스도인들이 사전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평화를 다 이루어놓고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단이 해결된 것도 아니었고 서로 다른 입장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화가 완성되기를 기다린 다음 만난 것이 아니라, 적대가 남아 있는 가운데 먼저 만나고 함께 말씀을 읽고 식탁을 나누면서 이전과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40년이 지난 오늘도 한반도의 평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정전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고 군사적 긴장과 상호 불신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더 많은 분쟁과 폭력이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이 한편으로 답답하고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동시에 평화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오래 쌓인 적대와 두려움은 한 번의 선언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고 이야기하고, 상처를 마주하고 관계를 고치며, 다시 신뢰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2장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말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4장 이후로 가면 그 평화가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됩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라고 합니다. 분노가 관계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을 하지 말고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자신이 얻은 것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과 나누라고 합니다.

결국 평화는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 상처 입은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오래 들을 수 있는지, 나의 편안함과 안전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방식이 누군가를 계속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는 일과 이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창조절 둘째주일입니다. 평화는 폭력을 잠시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창조합니다. 멀리 있던 사람이 가까워지고, 외인과 나그네였던 사람이 시민과 가족이 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우리도 이미 평화를 완성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마음을 닫고, 익숙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런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사용하는 말을 바꾸며,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까지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완성된 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어져 갑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우리도 계속 새로워지고, 서로의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함께 일구어가는 천안살림교회 교우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Mon, 14 Sep 2026 15:32: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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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7 / 9.13.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7]]></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XJqkCQOU6ik

2. 지난 주일 월례 공동의회 결과, 
   ① 8월 재정보고, 
   ② 청빙준비위원회 중간보고(청빙 원칙을 규약 또는 세칙화하는 방안), 더불어 교회 규약(8조 3항) 가운데 장로 선출을 구성 비율에 따르는 원칙으로 변경하자는 의견 제기, 
   ③ 11월 전교인수련회 일정과 내용(청빙준비위 논의와 연계)은 운영위원회 위임하기로 하였습니다.

3. 다음 주일은 남신도주일로 지키며 이호택 선생(‘피난처’)께서 말씀을 맡아주십니다.

4. 다음 주일 예배 후 운영위원회 모입니다(안건: 11월 전교인 수련회 일정과 내용). 

5. 교우들의 독서 모임이 10월 3일(토) 오후 2:30에 김진호, 『난민의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6. 담임목사
   12(토)~16(수) 일본기독교단 코토니주오도오리(琴似中央通)교회 방문
          13(일) 주일예배 설교와 담임목사(이상경 목사) 취임 축하 
          14(월) “한국 민중신학과 복음선교” 강연 등]]></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11 Sep 2026 16:16: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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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우리 시대 민중은 누구인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6]]></link>
			<description><![CDATA[「종교와 평화」202호(2026년 3월호)

우리 시대 민중은 누구인가?

최형묵(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 연세대 겸임교수)


‘민중(民衆)’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심적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 말 자체로 보면 그저 ‘피지배 다수자들’ 정도의 의미를 지니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역동적 주체로서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민중은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이 발전하는 가운데 그 주체로 인식되었다. ‘민중’은, 정치·경제·사회적 모순관계 속에서 억압과 수탈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 억압과 수탈을 극복하기 위해 저항하는 주체로 인식된 것이다. 민중이 1970년대에 새삼 부각된 까닭은 한국적 근대화가 본격화한 시대적 맥락 때문이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로서 경제개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민중은 그 경제개발을 가능케 하는 실질적 주역이었음에도 경제개발을 위한 동원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 정당한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되지 않았다. 이로부터 저항이 촉발되었고, 민중은 그 저항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민중이 1970년대에 비로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에서 통치의 객체에서 정치적 주체로서 민중의 탄생은 곧 근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였다. 1894년 3월 동학 농민군의 격문은 궐기의 주체를 ‘민중’으로 호명하였다. 자생적 근대화의 길이 좌절되고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한 국면에서 일어난 1919년 3·1혁명 이후 ‘민중’에 대한 의식은 더 분명해졌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1923)은 저항과 혁명의 주체로서 민중을 분명히 내세웠다. 1970년대 민중 인식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정 계급 대신에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부각된 것은 한국 근대화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근대화는 부르주아적 시민계급 주도에 의한 전형적인 자본제 확립과는 다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자생적 근대화의 길이 차단당한 채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국제적인 자본제 질서에 편입되는 역사적 과정을 경유한 까닭에 그 유산의 영향 아래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및 그 세력 구성면에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었다. 민중은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매우 복합적인 사회적 세력으로서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민중의 구성이 국면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고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시대 민중은 누구인가?’ 이 물음은 민중의 개념 자체에 이미 내재하고 있다. 1세대 민중신학의 선구들이 강조하였다시피 민중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그때그때 역사적 국면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역동적 실체이다. 민중신학은 그때그때 역동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민중을 주목하는 가운데 신학적 성찰을 발전시켜 왔다.

앞서 말했듯, 1970년대 새삼 부상한 민중은 피지배층으로서 배제당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현실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이중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1세대 민중신학은 고난의 담지자이자 동시에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이중성을 주목하였다. 사실 1세대 민중신학이 더욱 방점을 둔 것은 ‘고난’의 담지자로서 민중이었다. 사회적 부조리에서 비롯되는 고난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극복 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저항하는 데서 역사의 주체로서 나서는 민중의 잠재력을 주목한 셈이었다. 이때 민중은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아우르는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소외와 배제를 겪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1세대 민중신학은 그 역동적인 민중이 일으키는 사건을 주목하고 이를 증언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민중은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였다. 민중은 선언적 주체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주체로 부상하였다. 민중은 스스로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여러 계급 계층별 부문 운동이 성장하였다. 민중운동은 산발적 양상을 벗어나 조직적 연대의 양상을 띠었다. 여기서 민중은 노동자와 농민 등 생산자층을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아우러지는 사회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1987년 그 민중운동이 절정에 이르러 민주화의 전환을 불러일으켰을 때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역할은 의심의 여지 없었다. 2세대 민중신학은 민중운동에 동참하는 운동의 신학으로서 성격을 지향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1990년대 이후 자본의 지구화가 본격화할 즈음 민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었다.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이 부상하였고 이전의 역동적 민중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민중의 일식(日蝕)이라고 할까?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배제된 민중은 이제 사회적 시민권조차 사실상 부정당할 만큼 주변화하는 듯했다. 이제 그 이름은 집단적 주체로서 민중으로서보다는 다양한 소수자들로 불렸다. 여전히 인구학적으로 다수를 이루고 있는 노동자는 물론 촘촘히 위계화되어 있는 사회질서 안에서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소수자’로 범주화되었다. 그 상황에 직면하여 3세대 민중신학은 민중의 ‘고통’을 주목하였다. 민중의 ‘고난’이 주체화의 전제조건으로 이해되었다면 민중의 ‘고통’은 그 가능성마저 부정당한 절망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민중은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2024년 12·3 권력 집단의 무모한 친위쿠데타는 강력한 민중의 저항을 촉발하였다. 그 저항의 주체는 줄곧 ‘시민’으로 호명되었지만, 실상은 ‘민중’의 전형에 가까웠다. 계급과 계층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구성을 이루었고, 구세대와 신세대가 어우러졌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참여다. 다른 국적의 거주민과 이주민들이 함께하였다. 장애인들이 위화감 없이 동참하고, 성소수자들도 참여 또한 두드러졌다. 정치적 시민권이 없거나 정치적 시민권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시민으로서보다는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이 함께하였다.

시민의 이름으로 귀환한 민중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시대 민중의 등장이다. 고통의 탄식에 머무르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는 민중의 모습이다. 이들이 보여준 정치적 직접 행동과 사회적 연대 행동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향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img src="http://salrim.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609/6aa010753e45f2976909.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Tue, 08 Sep 2026 22:40: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9"><![CDATA[논단]]></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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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십자가를 질 수 있나”(2026.9.6.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4]]></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9/song20260906.mp3"][/audio]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성가대]]></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06 Sep 2026 17:20: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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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편견의 세계를 넘어 새롭게 열리는 삶 - 누가복음 19:1~10[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3]]></link>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6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편견의 세계를 넘어 새롭게 열리는 삶
본문: 누가복음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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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첫 주일입니다. 가장 더운 여름을 보내며, 또한 히말라야에서 벌어진 엄청난 재난 소식을 접하면서, 오늘 인간 삶을 지탱하며 그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삶의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아름다운 창조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지 다시 깊이 생각하여야 할 때입니다.

본문 말씀은 사람들의 통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지, 그 극적인 사태를 흥미롭게 전합니다. 유명한 ‘키가 작은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성경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 내용의 진지함이나 심각성보다는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장면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며 그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성서 말씀의 의미를 새길 때에, 때로는 성서에 대한 초보적 지식이 없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정반대로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체득한 교리나 그에 따른 편견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가능한 한 기존의 어떤 편견을 떨치고 함께 본문 말씀의 의미를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시고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여리고 지역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여리고는 사해 북쪽에 자리 잡은 도시로, 역사가 오래되었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거리를 지나고 계실 때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의로운 자’라는 뜻을 지닌 삭개오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사람은 틀림없는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세리장이자 부자로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애써 달려왔다는 것은 예사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우선 세리는 일반 사람들의 눈에 볼 때 죄인으로 취급되는 부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수께서 세리를 친구로 삼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던(누가 7:34) 데서 알 수 있듯이, 세리는 상종하지 못할 부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세리들은 엄밀히 말해 국가 관리가 아니라 청부업자들이었습니다. 일정한 지역의 유력자가 입찰에 응하는 방식으로 나서 징세권을 얻어내면 하수인들을 두고 세금을 거두어들여 일정액을 상납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거의 도둑이나 강도 취급했습니다. 삭개오가 세리장이었다는 것은 그 지역의 징세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 사람의 통념으로 볼 때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이가 구원을 선포하고 계시는 예수에게 다가선 사건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부자였습니다. 하급 세리라면 가난했을 터인데, 세리장이었으니 부자인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께 접근하고 있는 상황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에 앞선 내용을 보면 세리도 나오고 부자도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세리의 기도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한 반면(누가 18:9~14), 자신이 가진 것 때문에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하는 부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누가 18:25) 그 유명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전반적 문맥을 통해 보면, 부자가 예수께 접근한 것은 범상치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를 만남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길에는 이중의 장벽이 있었던 셈입니다. 예수께서 세리들과 친구라는 소문에 삭개오는 선뜻 달려올 수 있었지만, 공공연한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가진 것 때문에 진정성이 의심받을까 봐 예수께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그가 작은 자였다는 것은 단지 신체상의 조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도 이른바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열에 끼기 어려운 조건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대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 반전의 주인공은 삭개오 자신과 예수님입니다. 이 두 주인공이 일으키는 반전은, 주인공들이 사람들의 통념과 편견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강고하게 지키고 있는 통념과 편견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먼저 삭개오가 공공연한 장소에서 예수를 만나고자 시도했다는 것은 통념과 편견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강력하게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리라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기는 했지만 부를 누리고 있는 만큼 삭개오는 그런대로 살아가자면 오히려 남들의 선망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돈 많은 관리가 구원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것 때문에 그 구원의 길을 따르지 못했던 것과 같은 태도입니다. 삭개오는 자신도 그와 같은 의심을 받을 것이라 염려했겠지만, 어떻게든 예수와 눈을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씁니다. 자신의 진정성을 보이려는 노력입니다. 
예수 앞에서 삭개오의 진정성은 통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알아봅니다. 사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어떤 기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곧바로 그를 알아보고 이름까지 부르며 그에게 뽕나무에서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눈빛만 보아도 진실이 통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를 부를 뿐 아니라 삭개오의 집에 묵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집에 묵겠다는 것은 그저 밤이슬 피할 숙소로 사용하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집에 묵겠다는 것은 한 지붕 아래서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식탁을 같이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받지 못할 죄인과는 식탁을 함께 하지 않는 것이 통념인데, 예수께서는 그 통념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삭개오는 자신이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의혹이 적어도 예수에게는 한 점도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예수께서 ‘어서’ 내려오라고 하는 말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왔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병아리가 연약한 부리로 안에서 쪼아대는 순간 어미 닭이 단단한 부리로 밖에서 쪼아댈 때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순간과 같은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지닌 통념과 편견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 지금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말했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19:7) 예수와 삭개오의 만남, 더욱이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묵게 된 사건은 통념에 비춰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통념 때문에,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을 두고 충격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였을까요? 이들의 예수의 적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주변에 운집해 그 말씀을 들으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이 끼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고자 해도 뚫고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모여 있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이들 때문에 예수를 곧바로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결국 자신의 진정성과 지혜로 예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들은 그 사건에 당혹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을 방해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결코 그런 저의를 갖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통념과 편견에 매여 있는 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길, 구원의 길에 방해가 되는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빠져 있는 잘못입니다.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실제로 차별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대상화하고 배제합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스스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심의 여지 없이 누군가를 차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차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별 언행을 경계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차별행위를 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단에 빠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장면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통념과 편견에 어긋나는 사태를 보고 당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과 마음이 통한 예수와 삭개오에게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통념과 편견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난 삭개오는 이제까지의 삶과는 전적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삭개오는 구체적인 행위의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삶의 전환을 드러냅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을 속여 갈취한 것이 있다면 네 갑절로 갚아 주겠다고 다짐합니다. 통상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재물로 자선할 경우 재산이나 수입의 20%가 권고되었고, 부당하게 갈취한 돈을 되돌려 줄 때에는 1/5을 더 보태주어야 했습니다(레위 6:1~5). 그러나 도둑질했을 경우 네 배의 배상 즉 3배의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삼하 12:6, 나단과 다윗의 대화). 이런 사정으로 보아 삭개오는 아주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돌이키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삭개오에게는 자기가 가진 재산만으로는 누릴 수 없었던 진정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그 진정한 삶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림으로써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진정한 삶은 자기만의 만족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온전한 관계를 회복 가운데 누리는 삶입니다. “소유와 밀착되지 않은 회개란 있을 수 없다.”( 『갈릴래아의 예수』, 215)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 삶의 결단을 내린 삭개오에게 예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9~10) 삭개오의 집에 이른 구원,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관계가 회복된 사건을 뜻합니다. 그 안에서 각각의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삭개오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통념과 편견이 무너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통념과 편견이 무너진 세계 안에서 누구나 자유롭고 공평하게 저마다의 삶을 누리게 되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앞에서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들의 의미를 집약하는 결론이자 동시에 누가복음의 핵심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은 쉽사리 보아도 자신의 잘못은 잘 보지 못합니다. 또한 멀리는 보아도 가까이는 잘 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기도 합니다. 모른다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인권을 옹호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상의 삶은 그와 괴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통령은 비판할 수 있지만 사장은 비판하지 못한 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보호의 본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자기만의 편견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며,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삶의 방식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가 구원을 누리게 된 것은, 진정한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삶의 방식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통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서 그 진정한 갈망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진실을 새기며,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는 통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06 Sep 2026 14:28:2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6 / 9.6.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2]]></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ZWBis2ndFy8 

2. 오늘 예배 후에는 월례 공동의회가 열립니다(안건: 8월 재정보고, 주요일정 점검 등).

3. 교회 수련회 및 주요 일정입니다: 
   청년회 수련회(9/11-12), 전교인 수련회 11월중 예정, 남신도주일(9/20) 이호택 선생(‘피난처’) 초청 신도주관 예배.

4. 9월 예배 및 봉사 담당안이 준비되었습니다.

5. 교우들의 독서 모임이 10월 3일(토) 오후 2:30에 김진호, 『난민의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6. 담임목사
   9(수)~11(금)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외 / 2026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 참석
   12(토)~16(수) 일본기독교단 코토니주오도오리(琴似中央通)교회 방문, 13(일) 주일예배 설교와 담임목사(이상경 목사) 취임 축하, 14(월) “한국 민중신학과 복음선교” 강연 등]]></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Wed, 02 Sep 2026 15:28:3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모든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어”(2026.8.30.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1]]></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8/song20260830.mp3"][/audio]
“모든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어”/ ‘바깥살림’구역]]></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30 Aug 2026 17:03: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공동선을 지향하는 갈등의 해법 - 사도행전 6:1~7[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0]]></link>
			<description><![CDATA[2026년 8월 30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공동선을 지향하는 갈등의 해법
본문: 사도행전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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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나 공동체이든 갈등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문제는 갈등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해법의 적절성 여부에 있습니다. 갈등에 직면하여 한쪽의 일방적인 힘으로 눌러 무마하려 한다면 오히려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고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반면에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갈등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조정하여 모든 구성원에게 만족할 만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갈등은 오히려 발전의 동력이 되고 그 사회와 공동체는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최초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 갈등의 해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공동체에 발생한 갈등에 관한 현명한 해법을 들여다볼 수 있고, 오늘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에 대한 해법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은 열두 사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렇게 성장해 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헬라계 유대인들이 히브리계 유대인들을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헬라계 유대인은 그리스 말을 하는 사람들이고, 히브리계는 토착어 곧 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불평한 까닭은 헬라계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홀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초기 교회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 그리스어를 하는 유대인과 토착어를 하는 유대인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은, 그리스어를 하는 유대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왔기 때문입니다. 흩어져 있는 유대인 가운데서는 노년에 정신적 기원이 되는 땅에서 여생을 보내고, 그 땅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편 이 이야기는 당대의 구제 사업, 곧 공동체의 복지에 관한 관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구제 사업은 유대교 회당을 통해서도 지속되어 왔습니다.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매주 금요일마다 14끼 식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원했고, 주민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은 그때그때 먹을 것을 주는 방식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도 그 구제의 전통을 따랐지만, 그 방식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홀로 된 할머니들은 사실상 정착한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구제를 받는 방식으로 지원받은 것 같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가족 공동체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고, 따라서 지역 공동체의 지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주해 온 유대인들 가운데 홀로 된 할머니들이 홀대받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들은 이를 문제시하여 항의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성서가 전하는,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의 최초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곧 차별로 인한 갈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도 이 갈등에는 단지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지 출신의 차이만이 아니라, 신앙 색깔의 차이, 성향의 차이가 개재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차별은 늘 그렇게 중첩됩니다. 토착 유대인들은 대체로 성전 제의와 율법에 대해 충실한 반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율법에 대해 자유로웠습니다. 바울의 선교활동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그 문제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안에서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구제를 담당하는 사람이 지역 토착민으로서 자기에게 친숙한 이들을 우선하여 돌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격입니다.

이 갈등 상황을 놓고 열두 사도와 회중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열두 사도는 효과적인 역할 분담을 그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사도들은 이 사태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지고 있지만, 효율적인 역할 분담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고, 별도의 사람들을 뽑아 음식 베푸는 일을 맡기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별도의 역할을 부여받을 사람들의 선출을 회중에게 맡고, 그 결과 일곱 명의 일꾼이 뽑힙니다. 
이 이야기는 최초의 교회 직분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곱 집사의 선출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집사’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장로’라고 불러야 할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딱히 명시하지 않습니다. 역할의 분담은 분명하지만, 직분이 고착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늘날처럼 제도화된 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역할이 배타적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지도자인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는 일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무관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더불어 정반대로 새로 뽑힌 이들 역시 그 역할이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뽑힌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이 청중들 앞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증언입니다(7:1~53). 역할의 분담은 위계적인 서열을 매기는 것과는 상관없을 뿐 아니라 배타적 경계를 확정하고자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공동체의 온전한 보전을 위한 효과적인 역할 분담 체계를 형성한 것입니다. 각기 맡은 은사를 선용하고자 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 뽑힌 일곱 일꾼은 한결같이 헬라계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모두 그리스식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안디옥 출신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니골라라는 사람까지 포함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오래 전부터 유대인 정체성을 지닌 반면 니골라는 자신의 당대에 유대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두 토착 유대인은 아닙니다. 이주해 온 유대인 가운데 홀로 된 할머니들이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로부터 소홀히 되었을 때, 그 공동체가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그 당사자들을 대표할 만한 사람들을 일꾼으로 선출한 것입니다. 당사자 대표의 원칙을 따른 것입니다. 
이제 당신들 알아서 하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본문 말씀은, 이들이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 또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배제된 이들의 처지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의 덕을 온전히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함께하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공동체의 갈등에 대한 해법의 핵심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결여된 이들의 대표성을 전적으로 보장하되, 그 대표성이 전체 공동체의 온전함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한 해법입니다.

갈등이 발생한 상황과 그 해결 과정을 보면, 그 해법이 매우 슬기롭게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신에 따른 차별의 문제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은 공동체 안에서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역할 분담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두 가지 층위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합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요?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6:7)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갔고, 심지어는 적대적이었던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믿음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특별히 산헤드린을 지배하고 있던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인을 척결하고자 했던 상황(5:17~42)을 전제할 때 매우 극적인 반전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적대자들까지 감화시켰습니다.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공동체 안의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함으로써 그 공동체가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욱 빛나게 되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인간 사회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한 사회가 건강한지 아닌지는 갈등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갈등의 해결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갈등에 직면하여 한쪽의 일방적인 힘의 의지를 관철한다면 그 사회는 미숙한 사회요, 갈등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조정하여 모든 구성원에게 만족할 만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갈등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현명하게 대처하는 성숙한 사회입니다.
이때 갈등의 조정은 기본적인 원칙과 현실적인 조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이에 관한 현대적 지혜로, 존 롤스의 정의론을 환기합니다. 간결하게 집약하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불가피하게 불평등이 인정될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에서 처지가 가장 곤란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물론 통찰력이 뛰어난 한 사상가의 숙고 결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단지 뛰어난 한 사람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오랜 지혜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지혜의 한 원천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가장 우선하여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성서만큼 강조하는 또 다른 지혜의 전통이 있을까요? 그와 같은 지혜가 사람들의 관계 안에 작동할 때 그 사회는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어떤 사회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까요? 추운 겨울의 밤을 밝혔던 빛의 혁명, 그 빛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누구에게 먼저 눈길을 주어야 하는지 그 시선이 흐트러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본문 말씀은 바로 이와 같은 현실에서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무엇보다 이해당사자의 형편을 헤아리는 데서 시작하여, 공동체 전체에 덕을 세우는 방안으로 그 해법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존재할 수 있었기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본분이 여기에 있거늘, 거꾸로 기득권의 질서에 편승하여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상처를 안기는 역할을 맡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교회가 진정으로 성숙한 교회를 이룰 뿐 아니라, 그렇게 선취한 그 삶으로 우리의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30 Aug 2026 13:32: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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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5 / 8.30.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9]]></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gU7ZBRr402c 

2. 오늘 주일 오후에는 여신도회 주관 살림의 날(아나바다장터)이 열립니다.

3. 다음 주일 공동예배는 성찬예배로 드리며, 예배 후에는 월례 공동의회가 열립니다(안건: 8월 재정보고, 주요일정 점검 등).

4. 교회 수련회 및 주요 일정입니다: 
   교회학교 나들이(9/5) 용인 에버랜드, 청년회 수련회(9/11-12), 전교인 수련회 11월중 예정, 남신도주일(9/20) 이호택 선생(‘피난처’) 초청 신도주관 예배.

5. 9월 예배 및 봉사 담당 예정안이 준비되었습니다.

6. 담임목사
   2(수) 오전 8:30 [온라인] 환대와 온전한 포용 정기 모임
   4(금) 오전 9시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민중신학의 역사와 미래” 출강
   9(수)~11(금)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외 / 2026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 참석
   12(토)~16(수) 일본기독교단 코토니주오도오리(琴似中央通)교회 방문, 13(일) 주일예배 설교와 담임목사(이상경 목사) 취임 축하, 14(월) “한국 민중신학과 복음선교” 강연 등]]></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28 Aug 2026 16:47: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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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무지’도 문제지만, ‘무지에의 욕망’이 더 문제다]]></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8]]></link>
			<description><![CDATA[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2026년 제4차 에큐포럼
‘무지의 충돌’을 넘어 -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평화로운 공존을 향하여
2026년 8월 27일(목) 오후 3~5시

<a href="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8/Islam20260827.jpg"><img class="alignnone size-large wp-image-26627" src="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8/Islam20260827-1024x682.jpg" alt="" width="821" height="547" /></a>

‘무지’도 문제지만, ‘무지에의 욕망’이 더 문제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20여 년 전 9.11 테러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한 권의 책을 번역한 적이 있다. 칼 언스트, 『무함마드를 따라서 – 21세기에 이슬람 다시 보기』(Carl W. Ernst, Following Muhammad: Rethinking Islam in the Contemporary World)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터라 선뜻 번역 작업을 맡았다.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다. 동시에 이슬람 세계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제3시대연구소에서 몇 차례 강의를 진행하였고, 교회에서도 몇 주간 교우들과 더불어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책 번역 후기 가운데 일부를 그대로 회고하고 싶다.

“기독교 신학을 하는 역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번역한 일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수반한다. 먼 길을 떠날 때면 항상 그 교차되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결국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떠나기 전에 가졌던 두려움의 기억은 사라지고 그 여행의 보람과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찬다. 마치 그런 느낌이다.
통념상 기독교와 이슬람, 또는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전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인식 기반에서 서구 문명은 흔히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곧 성서의 예언 전통과 그리스의 철학 전통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골간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들은 서구 문명의 배타적인 원천만은 아니다. 그 두 가지 기둥은 이슬람 문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꾸란에 나와 있듯이 무슬림들은 유대교인 및 기독교인과 함께 자신들을 ‘성서의 백성들’이라 생각한다. 무슬림들의 성서 꾸란은 히브리 성서와 기독교의 성서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신학과 윤리 사상은 그리스 철학을 커다란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서구 세계에 라틴어로 소개된 그리스 철학의 고전이 사실은 아랍어 번역본을 대본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평균적인 서구인들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중세 기독교 신학의 거장 토마스 아퀴나스가 읽은 그리스 철학의 고전들은,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옮겨진 것을 다시 유대인들이 라틴어로 옮긴 것들이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명간의 관계의 본질이 충분히 해명될 수 있다.
사무엘 헌팅톤은 문명의 충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서구 내지는 미국 중심의 위기관의 반영일 뿐이다. 역사적 진실을 바로 보자면 문명은 서로 교류하는 가운데 발전하고 공존한다. 서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간의 관계 역시 그와 같은 교류와 공존을 중요한 기축으로 하여 왔다는 것을 역사는 입증해 주고 있다. 그것이 서로 별개이고 이질적이어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관념, 또는 한편의 우월한 문명이 열등하고 쇠락한 문명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는 관념은 지극히 일방적인 억견일 뿐이다.
기독교 신학을 하는 입장에서 나는 신앙의 요체를 타자를 향한 개방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절대자에 대한 관심은 사실은 낯선 곳, 낯선 이들을 향한 관심으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병행시키는 성서의 요체는 바로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내가 서슴없이 이 ‘이방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악의 축’과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말이 흉흉하게 떠도는 오늘 세계 현실에서 우리들이 견지해야 할 태도를 이 책은 시사해 주고 있다.”(2005.11.)

오늘 이주화 이맘께서 이슬람 신앙의 요체를 간결 명료하게 알려주시고, 더불어 특히 기독교인들의 편견과 무지를 콕 짚어 주셔서 감사드린다. 덕분에 무지의 편견을 넘어 평화의 공존을 향한 훌륭한 안내도를 갖게 되었다. 여기서 제기한 과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확실히 무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 어떤 이의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할 때, 그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편견을 갖게 된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보다는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편견을 강화하지는 않을까? “진리란 우리가 싫어하는 그 무엇”(마이다 슈이치)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른다. 사람은 알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알고 싶어하지 않은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경구이다.
왜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 어째서 진실 앞에 서는 것을 주저할까? 자신의 세계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지키고 있는 신념, 그리고 그에 따른 세계상이 무너질 때 겪을 수 있는 혼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자신의 세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살아간다. 이른바 확증편향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오늘 한국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널리 자리하고 있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편견은 이로부터 비롯되는 측면이 더 크지 않을까?

분단 체제하의 한국 현대사 가운데서 오랜 시간 동안 한국 기독교는 타자를 정죄함으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습성에 익숙해져 왔다. 반공주의를 신앙의 차원으로까지 내면화하여 ‘빨갱이’를 저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그 단적인 사례이다. 분단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생기고 국제적 정세의 변화와 사회적 다원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 적대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중국인’을 둘러싼 음모론,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이슬람 공포’(Islamophobia)의 조장 등에 공조하며 주도하는 현상이 그 예이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교세의 감소까지 더해지며 내적 위기를 겪고 있는 교회가 수세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대응은 단기적으로는 내부 결속을 강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서는 사회적 고립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철회는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는 교세의 감소가 아니라 시민사회로부터 신뢰의 철회라는 것이 그 본질적 요체이다.

한국 기독교가 신뢰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공성을 지향함과 동시에 타자에 대한 개방성을 지향하여야 한다. 더불어 그것이 가능한 내적 조건을 형성해야 한다. 이것은 자기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그것이 곧 신앙의 요체와 부합한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이슬람 신앙을 따르는 무슬림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은 기독교 신앙을 위태롭게 하기보다는 훨씬 풍요롭게 한다.

<a href="https://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863">“‘무지의 충돌’을 넘어: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평화로운 공존을 향하여” 세미나 열어</a>]]></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Thu, 27 Aug 2026 20:32: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9"><![CDATA[논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무너진 자리에서 넓어지는 경계 - 에스겔서 47:1~23[이성철 목사 / 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7]]></link>
			<description><![CDATA[2026년 8월 23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무너진 자리에서 넓어지는 경계
본문: 에스겔서 47:1~23
이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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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였습니다.

기원전 597년, 바빌론제국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면서 유다의 왕과 지도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던 에스겔도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10년 뒤인 기원전 586년에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고 성전마저 파괴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사건은 전쟁에서 한 번 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었던 땅을 잃었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왕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흩어지면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해주던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입니다.

에스겔은 바빌로니아의 포로 생활을 하며 이 절망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에스겔서에는 유난히 많은 환상이 등장합니다. 골짜기에 널브러져 있던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고, 예루살렘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있는 47장에서는 성전에서 작은 물줄기가 흘러나와 마침내 큰 강을 이룹니다.

이런 환상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스겔은 오히려 무너진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눈앞의 현실 너머를 보며 예언한 예언자였습니다. 그 열망을 환상같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는 본문은 에스겔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면 다시 회복될 이후에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 다시 세워질 공동체는 이전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에스겔은 이 질문을 붙들고 새로운 세계를 그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겔이 말하는 회복을 단순히 무너지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꿈꾸었던 것은 해방된 이후는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는 것보다는 이전과 다른 세계를 다시 세우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무너지기 전의 이스라엘에도 이미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백성을 돌보아야 할 지도자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힘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47장은 에스겔이 꿈꾸었던 새로운 세계를 아주 인상적인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데,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물줄기였습니다. 

에스겔을 이끌던 사람이 손에 줄을 들고 천 규빗을 잰 다음, 에스겔에게 물을 건너보게 합니다. 한 규빗은 팔꿈치부터 손까락 끝까지 길이로 45센티미터정도 됩니다. 

처음에는 물이 발목까지 찼습니다. 다시 천 규빗을 가니 무릎까지 차오르고, 다시 천 규빗을 가니 허리까지 올라왔습니다. 다시 천 규빗을 더 가자 이제는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성전에서 흘러나올 때만 해도 아주 작은 물줄기였는데 물은 점점 깊어집니다.

에스겔은 자신이 본 것을 환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다시 성전으로부터 시작될 생명이 흘러가면서 얼마나 풍성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은 성전 안에 머물지 않고, 성전에서 흘러나와 광야를 지나고, 마침내 사해를 향해 갑니다.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뀝니다. 성전에서 시작된 생명이 흘러가면서 죽어 있던 것을 살리고,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것을 만들어내며, 아픈 것을 치료합니다. 아주 작은 물줄기에서 시작했지만 그 물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죽음의 바다까지 이르렀습니다.

12절까지는 물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3절부터 이제 에스겔은 땅을 이야기합니다. 북쪽은 어디까지인지, 동쪽과 남쪽과 서쪽은 어디까지인지 경계를 정하고, 그렇게 구분한 땅을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앞에서는 물이 경계를 넘어 흘렀는데, 그 다음으로는 오히려 땅에 선을 긋습니다. 얼핏 보면 서로 반대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두 장면을 함께 읽어야 에스겔이 꿈꾸었던 회복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두 장면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죽었던 땅에 생명이 돌아왔다면 이제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회복은 죽었던 것이 살아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생명이 흘러 살아난 곳에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누리며 살아갈 것인지까지 변해야했습니다. 

각 지파가 회복되어 살아갈 땅의 분배가 이어진 다음, 그 땅을 나누는 마지막 부분에 오늘 본문의 구체적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너희는 말할 것도 없고, 너희 가운데 거류하는 외국 사람들, 곧 너희들 가운데서 자녀를 낳으면서 몸붙여 사는 거류민들도 함께 그 땅을 유산으로 차지하게 하여라."

여기에서 '거류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게르입니다. 다른 본문에서 주로 ‘나그네, 이방인’이라고 표현되는 존재가 오늘 본문의 거류민, 게르입니다.

이 시기의 이방인인, 게르를 오늘날의 외국인, 난민 같은 개념으로 동일하게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고대사회에는 지금과 같은 국가도 없었고, 시민권과 국적으로 사람의 소속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제도도 없었습니다. 

게르는 대체로 자신이 속했던 친족과 지역공동체를 떠나 다른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친족과 토지는 사람을 지켜주는 중요한 보호망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은 취약한 위치에 놓이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정체성 역시 혈통, 친족 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을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묶어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출애굽이라는 공동의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이 거류민, 이방인을 이야기할 때 이스라엘의 기억을 반복해서 불러냅니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구약의 다양한 법전은 이 기억을 꼭 상기시켰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서 안에서도 이방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왕정시대로 나라가 생기고 통치와 제도가 생기면서 삶을 유지하고 세금을 내고 제사에 참여하는 행위들로 그것에 속한 자들과 속할 수 없는 존재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포로생활을 경험한 뒤에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경계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려는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위기를 경험하면 경계를 좁히기 쉽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실존이 위태로울수록 정체성에 대해 배타적이고, 누가 우리 안에 속하는지를 더 엄격하게 정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기에 누가 '우리'이고 누가 '그들'인지 나누는 일은 이스라엘에게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간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기를 살아내며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고 다시 세워질 이스라엘을 그려내는 그 마지막에 오늘 본문의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너희는 거류민들을 본토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족속과 똑같이 여겨라."
"그들도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끼어서 제비를 뽑아 유산을 받아야 한다."
그들을 '똑같이 여겨라'는 말 이후 '그들도 유산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가엽게 생각하고 환대하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동등하게 여기라고 하고, 그 동등함이 말로만 남지 않도록 실제로 앞으로 누리게 될 땅의 몫까지 나누도록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삶을 이어갈 기반이었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이 보장되어 있다는 표지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 게르는 어느 날 갑자기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아닙니다. 이미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으면서 몸붙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환상에서 새롭게 달라지는 것은 그들의 존재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권리가 달라진것입니다.

이미 함께 살아가던 존재들이 공동체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되고,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몫을 갖게 됩니다. 에스겔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린 새로운 세계는 오히려 생명이 살아나고 권리와 경계가 넓어지는 세계였습니다.

경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겔은 땅의 경계를 지파별로 아주 자세하게 다시 그립니다. 다만 새롭게 그어진 경계 안에서 온전한 권리를 가진 사람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모든 경계를 막연히 없애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경계를 만들고 있는지 살피고, 그 경계 안에서 누구의 생명과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에스겔이 새롭게 그린 경계 안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몫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누가 차별을 받고 있는지, 무엇을 차별이라고 할 것인지를 두고서는 생각이 수없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수 많은 차이 속에서 살아갑니다. 삶의 조건과 살아가는 방식도 서로 다릅니다. 그 차이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차이가 서로 다른 권리와 삶의 조건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인정과 승인이 필요한 일이 됩니다. 그렇게 차이는 권리의 차이가 되고, 권리의 차이는 다시 힘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우리곁의 가장 가까운 나그네,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의 현실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1일, 아산의 KTX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아웅민우 님이 작업 도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림교회도 함께 유가족을 위로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웅민우 님은 한국사회 바깥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용할 철도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했고, 이곳에서 노동하고 생활하며 이미 이 사회를 함께 이루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 아래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의사만으로 자유롭게 사업장을 옮기기 어렵고,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사유와 횟수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일터가 위험할 때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선택 가운데 하나는 그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떠날 자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위험을 거부할 힘도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하청과 비정규 노동에 넘겨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위험의 상당 부분을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외주화가 위험의 이주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체류자격 때문에 일자리에 제약을 받는 이주민들의 상황은 더 열악합니다. 뚜안 님은 유학생으로 한국에 와 대학을 졸업한 뒤 구직비자로 체류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직비자로 일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었고, 생계를 위해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중 출입국 단속을 피해 숨어 있다가 추락해 돌아가셨습니다.

올해 노동부는 산업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야", "너"라고 부르지 말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자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한 사람을 익명의 노동력으로 취급하지 않고 온전한 존재로 대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름을 제대로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위험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아침에 인사를 하고 나간 일터에서 저녁에 다시 집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아웅민우님은 정말 이례적이게도 하청과 원청에게 사과를 받고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그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출입국ﾷ외국인정책본부에 사망이 신고된 사람 가운데 사망 당시 미등록 상태였거나 노동 가능한 체류자격을 가진 이주노동자는 3,340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된 사망은 137명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주노동자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곳에서 태어나 함께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별은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제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안정하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고, 어떤 사람은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연하며,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존재와 관계를 계속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데서도 차별은 지속됩니다.

에스겔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누구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환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누구의 권리는 여전히 온전한 권리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가, 그 몫을 나누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무너진 자리에서 꿈꾸었던 회복은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렇게 살아난 생명들이, 함께 살아갈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에스겔의 마지막은 새롭게 만들어질 성읍의 이름은 ‘여호와 샴마’ 라고 하고 마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신다’라는 말입니다. 
그 새로운 성읍에서는 나그네에게도 살아갈 자리와 몫이 주어졌습니다. 더 많은 이들의 몫을 함께 넓혀가는 것이 에스겔이 보여준 진정한 회복이었습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그려갈 현재와 미래에서 다른 이들의 몫을 늘려갈 때에 '여호와 샴마'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심을 믿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23 Aug 2026 13:34:1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4 / 8.23.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6]]></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dX0-e6xnX0s 

2. 다음 주일 오후에는 여신도회 주관 살림의 날(아나바다장터)이 열립니다.

3. 교회 수련회 및 주요 일정입니다: 
   교회학교 나들이(9/5) 용인 에버랜드, 청년회 수련회(9/11-12), 전교인 수련회 11월중 예정, 남신도주일(9/20) 이호택 선생(‘피난처’) 초청 신도주관 예배.

4. 담임목사
   27(목) 오전 10시 서울 민주화운동기념관 / 한국교회인권센터 운영이사회
   27(목) 오후 3시 서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 에큐메니칼 포럼 “‘무지의 충돌’을 넘어 -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평화로운 공존을 향하여” 토론]]></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21 Aug 2026 11:10: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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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2026.8.16.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5]]></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8/song20260816.mp3"][/audio]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성가대]]></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16 Aug 2026 16:19: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자기를 비우는 진실함 - 누가복음 18:9~14[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4]]></link>
			<description><![CDATA[2026년 8월 16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자기를 비우는 진실함
본문: 누가복음 18:9~14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PrlFf1fxSD4?si=tDUtlyqm23xQB9f9"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합니다. 복음은 그렇게 당연한 세계, 당연한 상식을 되돌아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본문 말씀은 누구나 과오를 범할 수 있음과 동시에 그 과오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를 대비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비유라기보다는 실제 현실을 극적으로 대비하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당당하게 서서 자기가 행한 행실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기도합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돈을 밝히고, 불의를 행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저기 있는 세리와도 같지 않다고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을 자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18:10~12). 반면에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그저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8:13).
이 말씀을 마친 예수님께서는 그 두 사람 가운데 의롭다 인정받고 자기 집으로 간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리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18:14).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요? 단순하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바리새파 사람은 잘난 체했기 때문에 의롭다 인정받지 못했고 세리는 전적으로 겸손했기 때문에 의롭다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우리는 두 사람이 처한 정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그 사람의 처신과 믿음으로 보자면 거짓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 내용은 그 자신에게는 사실일 뿐 아니라 진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을 떠올리면 그저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떠 올리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윤리적으로 모범적이었고, 종교적으로 헌신적이었습니다. 기도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 두 번 금식하는 관례를 엄격히 지켰습니다. 또한 통상 곡식과 올리브 그리고 포도를 수확한 후 드리는 십일조 관례를 넘어 박하와 운향의 판매 수입 등 모든 수입의 십일조는 물론 심지어는 구매한 물품의 십일조까지 드리기도 했습니다. 생산자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모범적이고 헌신적이었던 만큼 하나님 앞에서도 감사할 조건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의 기도 또한 진실합니다. 세리는 당대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받았고 따라서 상종 못할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세리가 고백한 대로 별로 감사할 조건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리라면 경제적으로는 넉넉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하급 세리의 경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엄밀히 말해 국가 관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청부업자들이었습니다. 일정한 지역의 유력자가 입찰에 응하는 방식으로 징세권을 얻어내면 하수인들을 두고 세금을 거두어들여 일정액을 상납한 것이 당대 관례였습니다. 단계별로 임의적 징수와 착복이 당연하게 이뤄졌지만, 아래로 갈수록 수입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거의 도둑이나 강도 취급했습니다. 그러니까 하급 세리들은 세상의 따가운 시선은 시선대로 받고 자기 손에 쥐는 것 또한 변변치 않았을 테니, 감사할 조건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비유의 주인공이 하급 세리인지 상급 세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급 세리였다 하더라도 늘 불의한 구조에 일조한다는 자책감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세리의 기도는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바리새파 사람이나 세리나 모두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보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셈인데, 어째서 바리새파 사람은 의롭다 인정받지 못하고 세리만 의롭다 인정받았을까요?
그것은 자기 세계에 집착하며 지키며 경계를 짓느냐 않느냐 하는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누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이 자랑스럽고, 또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할 만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바로 그 조건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갈라 경계를 짓습니다. 나아가 나는 옳고 나와 다른 사람은 그른 것으로 단정합니다. 자기의 가치 기준, 자기 의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세상을 그에 따라 질서 지으려고 합니다. 의인의 세계, 정상인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로부터 배제되는 차별 대상과 비정상인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질서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기 세계에 집착하거나 내세울 만한 어떤 조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세리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때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이 저마다 금을 그어놓은 경계 안 어디에도 들어설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주류 세계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자기의 가치 기준, 자기 의에 따라 그 누구를 판단하고 세상을 질서 지을 만한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멀찍이 서서 기도하였을까요? 성전 뜰 안에 들어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을 뿐입니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바리새파 사람은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었고, 세리는 의롭다 인정받습니다. 자기의 업적과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느냐 않느냐에 따라 사람은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도덕적으로 의롭고 종교적으로 헌신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 듯했지만 자기의 판단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다른 사람을 질시했습니다.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나마 동정심을 지니고 있었다면 교정과 교화의 대상으로 간주하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치부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 타인에게 거북스러운 일을 했지만, 자신과 같이 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많은 사람이 도덕적으로 의롭게 되고 종교적으로 신실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경계 밖에 있는 죄인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세리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타인에게 거북스러운 일을 해야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삶의 구조가 흔들리고 정말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겉으로 드러난 태도와 행위 이면의 진실을 그렇게 간파하시고, 이 극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설파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편에 가까울까요?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가 워낙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어서 그 양극단 가운데 어느 한편이라고 쉽사리 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으로 잘난 체하는 것도 아니고, 정반대로 그렇게 가슴을 치며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해야 할 처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바리새파 사람과 같은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삶의 환경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 신화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기 경영의 주체가 되어 삶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구호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것이 주체적 인간으로서 자각을 뜻한다면 다행이지만, 그 구호는 사실상 사회적 공동체를 지속하는 데 필수적인 공동의 책임과 연대를 배제한 가치를 나타낼 뿐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참 아름다운 말처럼 들리지만, 이는 그 독단적 삶의 원리를 집약하는 구호가 되었습니다. ‘사회란 없다, 오로지 스스로 책임져라.’ 이와 같은 가치를 대변할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독단은 더욱 심각합니다. 자기의 의로움만을 주장하는 거친 목소리 가운데서만 그 독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만의 안락한 선민의 공동체에 안주하고자 한다면 이 또한 그 독단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면 우선 ‘이단’으로 정죄하는 한국교회의 습성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타자를 정죄하고 배제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낯선 이를 환대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미숙한 교회의 태도는, 교회 역시 그 독단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자기 의에 빠져 타인을 정죄하는 방식으로는, 복음이 구현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건전한 신앙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고 자비를 구하는 태도가 아니면, 진실한 신앙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그 마음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하지 않고서는 진실한 신앙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보고, 과연 스스로 하나님 앞에 겸허한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또한 이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공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임하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믿고 구현하는 데서 성취됩니다. 남을 정죄하는 데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의 삶을 구현하는 데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현되는 진실을 새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 신실한 믿음의 대열에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16 Aug 2026 14:47: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3 / 8.16.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3]]></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4VRiN9U4ZE 

2. 다음 주일 공동예배는 이성철 목사가 인도와 말씀을 맡습니다.

3. 교회 수련회 및 주요 일정입니다: 청년회 및 교회학교 수련회 9월중, 전교인 수련회 11월중 예정, 남신도주일(9/20) 이호택 선생(‘피난처’) 초청 신도주관 예배.

4. 담임목사
   18(화) 오후 4시 서울 기독교회관 / 박형규 목사 10주기 추모예배
   19(수) 오전 8:30 [온라인] 환대와 온전한 포용 모임
   19(수) 오후 6시 서울 / 김찬국 교수 17주기 추모 모임]]></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14 Aug 2026 16:05: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서시”(2026.8.9.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2]]></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8/song20260809.mp3"][/audio]
“서시”/ 성가대]]></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15:59: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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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 - 출애굽기 19:1~6[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21]]></link>
			<description><![CDATA[2026년 8월 9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
본문: 출애굽기 19:1~6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E6GGNW2YN1o?si=5aCWY3VH2B8o4Kyt"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어떤 민족이나 공동체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선민의식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특별한 의식입니다. 그것이 주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동반할 때 긍정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배타성을 강화하게 될 때 부정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선민의식’이 긍정적 의미로서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더 널리 통용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백성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사건을 전하는 본문 말씀은, 그 선민의식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 일깨워줍니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 될 것이며, 나아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는 야곱 가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19:3b~6)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 될 것이라 합니다.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신다는 말씀은 오경 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주제일 뿐 아니라 성서 전반을 통하여 환기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문제를 두고 씨름해야 할 만큼(로마 11:25~32) 신약성서에 이르기까지도 환기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타적 선민의식, 그리고 오늘 그와 다르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배타적 선민의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여겨지고 있지만,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다는 점입니다(신명 7:7~8). 그것은 이스라엘의 어떤 우월한 능력이나 장점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뤄진 선택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선택받은 백성은 그에 상응하는 몫을 감당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방적 계약이 아니라 쌍무적 계약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 과제를 감당하지 못하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그 사명을 저버린 백성을 두고 ‘로암미’, 곧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선포합니다(호세 1:9).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진실이 망각되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기억되었지만, 선택받은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망각되었습니다. 진실을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편한 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실존적 정황을 말해 줍니다. 
본문 말씀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선민이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언약이 무엇일까요? 본문 말씀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건을 전하는 이야기의 첫머리입니다. 언약이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십계명을 서두로 하여 일종의 법전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계약법전(출애 20:22~23:19)입니다. 구약성서는 이 밖에도 신명기법전(신명 12~26장), 성결법전(레위 17~26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계약법전은 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법전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착시대 초기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성서의 문맥에서는 출애굽 여정 가운데 시내산에서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계약법전의 정신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 그 첫머리에 나오는 십계명(출애 20:1~17)입니다. 그것은 이집트의 억압에서 해방된 백성, 곧 자유민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합니다. 그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고 해방된 백성으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그 도리는 여러 관계의 차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첫 번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켜져야 할 도리로서 종교적 차원을 함축합니다. 두 번째는 인간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로서 윤리적 차원을 함축합니다. 물론 더 세분화해서 말하면, 인간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직접적인 인간관계의 차원과 인간과 사물과의 차원을 동시에 함축합니다. 계약법의 정신은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서 지켜져야 하는 도리와 인간들 사이에서 지켜져야 하는 도리를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야 할 정의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정의는 그 두 가지 차원이 온전히 이뤄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충족될 때 해방된 자유민으로서 백성의 삶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십계명은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계약법전은 그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규율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법전들 모두 그 내용과 형식상 고대 근동의 대표적 법전들(주전 3,000여 년경 수메르의 관습, 주전 7세기의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고유한 역사와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이라는 해방의 사건이 기본 출발점입니다. 고대의 모든 법전이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에 대한 보호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대개 기존의 위계적 사회질서를 온존하는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반면 성서의 법전은 기본적으로 백성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한 형제라는 전제를 분명히 할 뿐 아니라 특별히 약한 사람들에 대한 보호를 하나님의 친권 행위라는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율법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서의 법전이 지닌 그와 같은 성격은 이집트에서의 억압과 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경험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 법이 함축하고 있는 정의를 이룰 때, 이스라엘 백성은 진정한 선민이 되어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본문 말씀은 선포합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가교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동시에 사람들의 염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선민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정의를 온전히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그 진실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망각되었습니다. 다들 하나님이 선택해 주셨다는 사실만 기억하였을 뿐, 진정한 선민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망각하였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 곧 왕과 제사장들도 그 진실을 망각했고, 백성들도 그 진실을 망각했습니다. 그 진실이 망각되었을 때 그 진실을 일깨운 사람들이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제사보다도 정의를 외쳤습니다. 제사에는 열심이지만 정의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질타했습니다.

오늘 현실에서도 그 진실은 망각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민족들 사이에 이뤄야 할 정의와 평화의 사명을 망각하고, 오히려 정의와 평화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이스라엘 백성과 그대로 동일화될 수 없는 외래 집단 유대인이 거꾸로 원주민을 점령하고 말살하는 참혹한 폭력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참혹한 사태를 정당화하는 데 성서의 선민 논리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오도된 선민의식은 이 땅에서까지 착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극우 세력의 광기 어린 광장 집회에 어째서 태극기와 더불어 성조기, 그리고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할까요? 오도된 선민의식의 계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진실을 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도된 선민의식은 세상의 근심거리일 뿐입니다. 정의를 해치고 평화를 해칠 뿐입니다. 정의와 평화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가능합니다. 자신들만 옳다고 생각하며 타인을 배척하는 의식과 태도로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 태도로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역행하는 것입니다. 오도된 선민의식이 초래하는 결과입니다. 교회가 이익집단이 되어 버리고 권력집단이 되어 버렸다는 사회적 지탄을 언제까지 받아야 할까요? 그렇게 지탄받는 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언약을 지키는 백성이라야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받은 백성이라 여긴다면 자신의 잘남을 내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겸허하게 이 땅 위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나의 나됨은 불가불 타인과의 관계 안에 있다는 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서는 철저하게 그 점을 강조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의 처지에 함께 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라고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가치 또한 그와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놀랄 만큼 큰 자랑거리를 지니고 있는 것과 동시에 역시 놀랄 만큼 부끄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놀라운 발전과 전 세계적인 한류의 열풍,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세계적 추세 가운데서도 그 보루로서 자랑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그에 기생하는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혐오와 배제 현상 또한 만연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일까요? 특별히 8·15해방 81주년을 앞두고, 평화·통일주일로 지키고 있는 오늘 우리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동학 민중운동 이래 줄기차게 이어진 정신을 다시 환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자기밖에 모른다고[各自爲心] 탄식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어찌 남의 나라를 침략하느냐 개탄하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길[侍天主]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해월(海月)에게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정신[事人如天]으로 이어졌고, 손병희에 이르러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정신[人乃天]으로 이어졌습니다.
 3·1독립선언은 숭고한 뜻을 만천하에 선포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해방 정국에서 김구 선생은 아름다운 나라의 미래를 소망했습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한국 현대사가 겪었던 그 경험의 반전을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요? 약자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정의와 사회적 연대, 억압에 맞서 싸워 일궈낸 민주주의와 인권의 고양, 이념과 체제의 대립을 넘어선 평화의 실현, 그것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처구니없는 배타의 논리로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나라 걱정하는 듯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위기요, 그 위기로 강퍅해져 가는 마음의 질병입니다. 
교회가 어디에 마음을 쏟아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마음을 쏟아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정녕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을 실천하고 그 위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데 몸과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대열에 함께 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태도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09 Aug 2026 13:28:5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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