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channel>
		<title>천안살림교회</title>
		<link>http://salrim.net</link>
		<description>천안살림교회</description>
		
				<item>
			<title><![CDATA[1980년대와 민중신학 - 팜플렛의 시대 새로운 공론장과 운동의 신학]]></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60]]></link>
			<description><![CDATA[제3시대 연구소·향린교회 선교부 공개강좌 
2026년 10월 18일(일) 오후 2시 / 향린교회 향우실


1980년대와 민중신학 - 팜플렛의 시대 새로운 공론장과 운동의 신학

최형묵


1. 시작하는 말

민중신학은 1970년대 ‘증언의 신학’에서 1980년대 ‘운동의 신학’으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증언의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은 민중사건 가운데 만난 민중의 발견과 체험을 증언하며 민중의 고난을 주목하였다. 운동의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은 선언적 주체에서 실질적 주체로 부상한 민중이 스스로 열어가는 운동의 대열에 동참하는 기독교인의 실천을 뒷받침하는 신학으로서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단순히 세대가 바뀌면서 일어난 신학적 담론의 성격 변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매우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현상으로서, 지식생산 방식의 변화에 따른 신학의 존재 방식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주체, 매체, 공론장의 변화에 따른 담론의 성격 변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변화의 배경에는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신군부의 집권에 따른 국가의 언론·출판 통제, 그에 맞서 오히려 강력해진 민중운동의 성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중운동은 급진화와 더불어 학생·노동·농민·문화운동 등 부문별로 급성장하였다. 공식적인 공론장이 억압되는 상황 가운데서 대학과 교회, 노동현장과 문화운동의 주변부에서는 소책자, 유인물, 기관지, 무크지, 복사물 등의 형태로 새로운 지식과 담론이 생산되고 유통되었다. 이른바 ‘팜플렛의 시대’는 단순한 출판문화의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던 현실 해석의 권위에 맞서 운동 주체들이 스스로 현실을 해석하고 지식을 생산하며 효과적인 매체를 통하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대항적 공론장의 형성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공론장 속에서 민중신학 역시 전문 신학자의 담론에서 벗어나 운동 현장에서 학습되고 토론되며 실천되는 ‘운동의 신학’으로 변화하였다. 주체의 다변화와 역동적 성격, 효과적인 매체의 활용, 그에 따른 공론장의 변화는 신학의 영역에서도 일어났으며, 그것이 운동의 신학을 탄생시킨 요건이 되었다.
‘민중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80년대를 평가하는 문제는 이미 사회과학계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어 왔다. 여러 이유로 그 1980년대를 이례적인 시대로서 “불연속 체제(regime of discontinuity)”로 보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만, “민주적인 문화와 사회를 꽃피운 정치·문화적 에너지로 넘쳐나던 시대”로 조명하며 오늘의 시대와의 연속성을 재조명하려는 시선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재미 역사학자 이남희의 역작 『민중 만들기: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재현의 정치학』은 그와 같은 시선에서 1980년대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 강연은 그 연구와 더불어 그보다 앞서 1980년대 민중운동의 주체를 형성한 당사자의 시선에서 되돌아보며 평가하는 일부 연구자들의 논의를 참조하면서 주어진 과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기왕의 연구를 참조하는 것은 1980년대 당시 이른바 ‘운동권’을 통해 형성된 주체, 매체, 공론장의 면모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왕의 역사학계나 사회과학계의 연구는 민중운동에 참여한 기독교 민중운동 주체들의 문제의식과 신학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불가불 당시 시대상 교회의 역할을 주목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구성하는 기독교인의 문제의식에는 접근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강연은 1980년대 운동의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의 형성과 관련한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조건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이는 앞서 말한 주체, 매체, 공론장의 변화 양상을 기독교 민중운동의 맥락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그 재구성의 시도는 기왕의 연구를 참조하면서 상당 부분 자전적 역사 서술의 방식을 동반할 것이다. 기독교 민중운동의 맥락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는 그 재구성의 시도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조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도는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서의 체험을 재현할 수 있는 기억의 창고를 뒤지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기억의 창고를 뒤지는 일이자 동시에 그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먼지와 곰팡이를 털어내며 집안의 창고를 뒤지는 일이었다. 이 강연은 그 기억의 재현 결과이다.


2. ‘증언의 신학’에서 ‘운동의 신학’으로

‘증언의 신학’에서 ‘운동의 신학’으로의 전환이라는 명제는 매우 명쾌하다. 거시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쉽사리 이해할 만하다. 아니면 너무 자주 반복해서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여겨질까? 기왕의 설명 방식을 참조하며 다시 한번 환기한다.
1970년대 증언의 신학은 1960년대 이래 가속화된 돌진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민중이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일으킨 사건을 주목하고 이를 증언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은 그 극적인 계기였다. 이로부터 충격을 받은 신학자들은 시좌를 민중의 자리로 옮겨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신학자들 자신의 해직과 투옥 등 일종의 ‘민중경험’이 더해지며 그 신학적 성찰은 더욱 깊어졌다. 이로부터 “고난의 담지자인 동시에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 개념이 뚜렷하게 정식화되었다. 이 개념은 양가적이며 적극적 의미를 지니지만, 사실상 1970년대 민중신학의 방점은 민중의 ‘고난’에 있었다. 역사의 주체로 나서는 민중은 결국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주체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당대 민중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한 것이기도 했다. 이를 증언하기에 부적합한 기존의 신학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뤄졌다. 그래서 증언의 신학은 ‘반신학’, ‘탈신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80년대 운동의 신학은 광주민중항쟁의 충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광주민중항쟁은 민중이 선언적 주체에서 실질적 주체로 등장한 극적인 사건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혁명, 1960년 4·19혁명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한 화산맥의 폭발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10일간의 “절대공동체”가 참혹한 좌절로 귀결된 듯하였지만, 1980년대 내내 폭발적으로 성장한 민중운동은 사실상 그 사건의 지속적 재현이었다.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강화된 만큼 그에 맞서는 민중운동이 오히려 강화된 것은 광주민중항쟁을 빼놓고 해명할 수 없다. 민중운동은 197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수준을 넘어선 구조적 사회변혁에 대한 전망을 지니게 되었고, 계급과 계층별 운동 및 다양한 부문 운동으로 분화하는 동시에 유기적 연대를 지향하는 가운데 성장하였다. 기독교 민중운동 또한 그 대열의 일원으로 참여하였고, 운동의 신학은 그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지향하는 신학으로 요구되었다. 그것은 민중의 현실을 증언하는 데서 나아가 연대의 논리와 대안의 전망을 제시하는 과제를 맡게 되었다. 여기서 고난을 딛고 일어선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이 강조되었다.
그 변화는 단순히 신학적 담론의 성격 변화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 담론의 변경 배후에는 공론장의 성격 변화, 그것을 뒷받침하는 매체의 변화,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주체의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는 그저 거시적인 역사적 상황의 변화로 해명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그 역사적 상황 가운데 처해 있던 민중의 주체적 조건의 변화를 통해 충분히 해명할 수 있다. 구체적 상황과 정세의 변화는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지만,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객관적인 구조적 조건이 1970년대의 조건과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신군부 정권은 국면에 따른 변형에도 불구하고 이전 유신체제의 유산을 대부분 그대로 답습하였다.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인 경제발전 모형을 지속하였고 폭력적인 통치체제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사실 지배체제의 구조 변화보다 더욱 두드러진 변화는 지배체제에 맞서는 민중 진영의 변화였다. 경제적 성장의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다양한 욕망이 분출하였고 정치적 민주화의 열망 또한 더욱 강렬해졌다. 국가는 강권력을 총동원하였지만 이에 맞선 민중 진영 또한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였다. 과거의 유산을 답습한 지배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동인은 그렇게 자리하였다. 신군부가 집권한 후 불과 7년만에 민주화의 이행 과정으로 전환을 불러일으킨 동력이었다. 그것은 1980년대 민중운동의 성격을 변화시킨 직접적인 주체적 조건의 변화와 직결되었다. 국가권력의 폭압과 통제가 강력해질수록 그에 맞서는 민중운동의 저항 방식 또한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스스로 각성하고 연대하는 주체들은 그 나름의 효과적인 매체를 동원하여 새로운 대항 공론장을 형성하였다. 그 일련의 과정을 기독교 민중운동의 주체들 또한 공유하였다. 신학은 이제 전문적이고 선구적인 신학자들만의 담론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주체들이 각기 조건에 맞는 매체를 통하여 새로운 대항 공론장을 통해 소통되는 담론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운동의 신학은 단지 구호로 제창된 것이 아니라 그 일련의 역동적인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그것은 “민중의 고난을 해석하고 증언하는 신학”이 아니라 “민중운동 과정 그 자체에서 생산되고 그 주체들에게 전유되는 신학”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 전환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조건을 탐색한다.

* 이하의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 바랍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18 Oct 2026 21:52: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9"><![CDATA[논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추수가 끝난 뒤에도 - 룻기 2:1~23[이성철 목사 / 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9]]></link>
			<description><![CDATA[2026년 10월 18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추수가 끝난 뒤에도
본문: 룻기 2:1~23
이성철 목사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Jfh6QU-2gm8?si=zYEN3mmnFdx2Srot"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결실을 돌아보고, 그 결실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추수의 계절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먹을것이 풍성해집니다. 오랜 시간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온 수고가 결실을 맺는 때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한 해를 살아왔습니다. 계획했던 일을 이루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추수감사절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추수의 계절이라고 해서 모두가 풍성한 결실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들판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고, 누군가는 거두고 난 뒤에 떨어진 이삭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룻기 2장은 바로 그 추수하는 밭에서 하루를 보내는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모두 네 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입니다. 흔히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긴 착한 며느리의 이야기나, 보아스라는 좋은 남자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된 여인의 이야기로 소개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자세히 따라가 보면 이 이야기는 그보다 풍성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기의 배경은 기근입니다. 사사들의 시대, 유다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떠납니다. 고향에서 먹고살기 어려워지자 가족을 데리고 다른 땅으로 이주한 것입니다. 모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가족에게는 연이어 불행이 찾아옵니다. 먼저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게 시어머니 나오미와 모압 출신의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 남게 됩니다.

바빌론 포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상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땅과 성전을 잃은 유대 공동체는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하고 지켜내야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고난의 원인으로 이방민족과의 교류로 이스라엘이 정체성을 잃고 고통을 당했다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와 느헤미야에는 이방 민족과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방 아내와 자녀를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려 한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같은 포로기 이후 룻기는 모압 출신의 한 여성을 통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바깥에 있다고 여겨졌던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룻기는 세 남자가 왜 죽었는지 설명을 비워두었습니다. 모압으로 이주했거나 이방 여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고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룻기에는 악인이 없습니다. 성서는 그 죽음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삶으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다시 먹을 것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기로 합니다. 두 며느리에게는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찾으라고 권합니다. 오르바는 돌아갔고, 룻은 나오미와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위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룻은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 모르는 채, 낯선 땅에서 나오미와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했습니다. 나오미도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죽음과 상실로 이어지던 이야기가 추수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베들레헴에는 곡식이 자라고 있었고, 사람들은 추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추수철이라고 해서 나오미와 룻의 형편까지 나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방 땅에 갔다가 실패해서 돌아왔고 가문을 이어갈 남성이 없는 두 여성은 가장 풍요로울 시기에 가장 취약했습니다. 

그때 룻이 먼저 나섭니다. 나오미에게 자신이 밭으로 나가 떨어진 이삭을 줍겠다고 말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삭줍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마련된 규정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19장과 신명기 24장에는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 가장자리까지 남김없이 베지 말고, 떨어진 이삭이나 잊어버린 곡식단도 다시 거두지 말라는 규정이 나옵니다. 그것을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이 있다고 해서 실제로 이삭을 줍는 사람이 안전하게 보호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룻은 가난한 과부였고, 모압에서 건너온 외국 여성이었습니다. 자신을 보호해 줄 사회적 기반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규정이 있었지만, 실제 밭에서는 주인이나 일꾼들의 태도에 따라 방해를 받거나 쫓겨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여성이었던 룻은 괴롭힘과 폭력에 노출될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밭으로 나간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됩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룻기는 보아스를 재산과 영향력을 가진 유력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누구인지 알아본 뒤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계속 이삭을 주우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여종들과 함께 있으라고 하고, 남자 일꾼들에게는 룻을 건드리지 못하게 이미 지시했다고 말합니다. 목이 마르면 일꾼들이 준비한 물을 마시라고도 합니다.

룻기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는 “헤세드”입니다. 개역개정은 이 단어를 "인자, 인애"로 옮기고 있습니다. 나쁜 번역은 아닙니다. 다만 절반만 옮겼습니다. 
헤세드는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계약의 언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사람과 사람이, 부족과 부족이, 나라와 나라가 계약을 맺을 때, 그 내용은 놀랄 만큼 단순했습니다. '서로 잘 대해 주자.' 서로 해치지 말고, 서로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하고, 내가 너를 대접한 만큼 너도 나를 대접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헤세드의 첫 번째 얼굴이다. '인자, 인애, 자비, 사랑, 은혜'로 번역되는 얼굴이다. 

헤세드에는 두 번째 얼굴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계약을 공증해 줄 기관도, 다툼을 중재해 줄 법원도, 위반을 처벌할 공권력도 없었습니다. 말로 맺은 약속이 마음 하나 바뀌면 그만인 것이라면, 계약을 맺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그래서 한번 맺은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는 강력한 당위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돌무더기를 쌓고, 그 자리에 지명을 붙여 두고두고 회자되게 한 것이 모두 그 때문입니다. 헤세드의 이 두번째 얼굴은 바로 신실함, 성실, 충성, 변함없음, 흔들림 없음이다.

여기서 룻기의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 헤세드라면,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중요한 성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답은 역시 헤세드여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룻기는 그 답을 이방의 모압 여인의 입과 손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1장에서 자신의 남편과 아들들이 모두 죽고 며느리들에게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너희가 각각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남편의 동생과 결혼을 해서 가문을 이어가고 또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남편도 잃고 아들들까지 잃었습니다. 더 이상 며느리들을 보호하고 살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헤세드는 여기까지니 나를 살피지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새로운 삶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와의 관계, 헤세드를 끊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또 다른 인물 보아스 역시 룻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며 친절을 베풀었다고 성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힘과 자원을 통해 룻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받기를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전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권한으로 룻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보아스는 룻을 불러 추수하는 일꾼들과 함께 식사하도록 합니다. 빵과 볶은 곡식을 건네주고, 룻은 그들 곁에 앉아 음식을 먹습니다. 성서는 룻이 먹었고, 배불렀고, 음식이 남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날 아침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밭으로 나온 룻이 충분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음식은 저녁에 나오미에게 가져가게 됩니다. 그렇게 얻은 곡식과 낮에 먹고 남긴 음식을 가지고 나오미에게 돌아옵니다. 

룻기는 이방여인 과부 룻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신실함, 계산없는 책임이었습니다. 룻은 그 사랑과 책임을 베풀었고 또 다른 이에게 같은 배려와 책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되었습니다.

오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참 담담하지만 굳센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곡식 한 자루로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상실의 경험은 오랫동안 삶에 남습니다. 그 슬픔을 안고도 살아가야 할 날들이 이어집니다.

룻이 나오미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밭으로 나갔을 때, 보아스는 룻이 모든 위험을 혼자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룻과 보아스가 보여준 헤세드가 더해졌을 때, 두 여인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 사회가 취약한 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방식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는 29일이면 이태원참사 4주기를 맞습니다. 특별히는 매년 유가족분들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2,3주기 추모대회를 거리에서 드렸었는데, 올해는 국가주도의 추모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목요일에는 별가족들과 함께하는 추모기도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뉴스와 SNS를 통해 속보가 전해지면서 저도 이태원 할로윈데이 축제를 즐기러 간다고 했던 친구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충격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참사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유가족과 많은이들에게 여전히 지나간 과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많은 참사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남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었고, 진실을 밝히고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요구하는 시간도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고와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오랫동안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세월호참사, 산업재해와 많은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많은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은 우리 사회를 바꾸는 중요한 힘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사회의 변화를 요구해 왔습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안전이 국민의 권리이고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생명안전기본법이 올해 5월 통과 되었고 이제 12월에 시행이 될 예정입니다. 최형묵 목사님과 저도 함께 이 법을 검토하고 법이 통과될수 있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좀 더 유가족분들의 마음들을 곁에서 살필 수 있었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법으로 명시한 것입니다. 국가는 계속해서 그 책임을 축소하고자 했고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그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에는 두 가지 권리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누구나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사고와 참사를 겪은 뒤에도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입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후에도 삶을 이어가며,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의 변화를 요구해 왔습니다.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위험을 예방하며, 피해자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누군가의 선의나 희생에만 맡겨둘 수 없는 공적인 책임입니다. 그 책임을 위한 법적인 제도 한걸음이 지난한 시간과 아픔을 지나 만들어졌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이삭줍기 제도와 오늘날의 생명안전기본법은 서로 다른 시대에 마련된 제도입니다. 그러나 두 제도는 법으로 정한 권리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삭을 주울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해서 룻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룻에게는 이삭을 주울 권리와 함께, 괴롭힘이나 폭력의 위험 없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이 가진 권한으로 그 조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나 안전하게 일하고 살아갈 권리는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났는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룻기 2장은 룻이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이삭을 주웠고, 나오미와 함께 살았다는 말로 끝납니다. 두 사람은 그날의 먹을 것을 마련하고,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추수는 끝났지만 룻과 나오미가 살아갈 날들은 계속되었습니다. 아픔과 상실을 겪었지만 베푼 사랑을 통해 그들은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룻기의 마지막 장은 족보 이야기입니다. 그 마지막 이름은 다윗입니다. 다윗 가문의 순수한 피를 지키는 것이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룻기는 그 피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그저 악인도 기적도 없는 이 짧은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돌아보는 결실과 우리의 삶 속에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사랑과 책임, 돌봄을 나누어준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룻과 나오미가 서로의 삶을 지키며 살아갔던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삶을 살피고 사랑을 나누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헤세드가 서로의 삶을 지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이 시간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18 Oct 2026 21:45:3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42 / 10.18.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8]]></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t0r70WGUiGg 

2.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로, 공동식사는 구역별로 준비해 온 것으로 함께합니다.

3. 오늘 오후 청빙준비원회 설명회가 있으며, 다음 주일 오후에 재정위원회가 있습니다.

4. 다음 주일 공동예배 말씀은 대전노회에 방문하는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 서비사야스교구 대표단 가운데 한 분이 맡습니다(통역 이진경 교우).

5. 지난 주일 운영위원회에서 수련회를 11월 21일(토) 광덕의 제이푸드솔루션에서 하는 방안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6. 다음 주일 오후에 여신도회 주관 살림의 날(아나바다장터)이 있습니다. 

7. 2026년 하반기 수요인문강좌 “인간선언의 영화와 우리 교회 연대활동”이 진행중입니다. 
◎ 인간선언의 영화들
  [4]10월21일 &lt;임신한 나무와 도깨비&gt;(2019) : 기지촌 여성의 기억 찾기 판타지
◎ 우리 교회 깊이 알기 - 연대활동 주제 강좌
  [5]10월28일 “우리 교회 연대활동의 특징”(최형묵)
  [6]11월04일 “개신교 인권운동사의 맥”(최형묵)
  [7]11월11일 “미등록 이주 아동의 생애주기별 고충과 제도적 배제”(김규희)
  [8]11월18일 “우리 교단 여성운동의 역사”(송길룡)

8. 담임목사
  18(일) 오전 11:00 서울 향린교회 설교 / 오후 2:00 “80년대와 민중신학: 팜플렛의 시대 새로운 공론장과 운동의 신학” 강연(향린교회 유튜브 생방송)

9. 교회당 사용
  23(금) 오후 1시 /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 서비사야스교구 실무회의]]></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Thu, 15 Oct 2026 11:19: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담대하라”(2026.10.11.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7]]></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10/song20261011.mp3"][/audio]
“담대하라” / 성가대]]></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11 Oct 2026 14:45: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교회가 지키고자 하는 것 - 에베소서 4:22~32[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6]]></link>
			<description><![CDATA[2026년 10월 11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교회가 지키고자 하는 것   
본문: 에베소서 4:22~32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_AjO0jgPMIg?si=32qdxhoTmuVPQSBS"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어떤 공동체의 조직적 효율성과 공정한 절차를 따르는 것과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본래의 뜻 사이에는 항상 모종의 긴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 그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은 늘 유념해야 하는 과제가 됩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그 긴장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서신이지만 사실은 사도 바울이 살아 있을 때보다 한참 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에베소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교회의 비중을 중요하게 전제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고 조직화한 교회의 시대가 시작될 즈음의 상황을 에베소서는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고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함축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믿음의 열정 또는 그 믿음을 지키고 설파하고자 했던 사도들의 생생한 카리스마보다는 조직으로서의 교회, 제도로서의 교회가 현실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숭고한 뜻 또는 어떤 정신과 이념이 제도화될 때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중의 의미를 지닙니다. 한편으로는 정신과 이념이 현실로서 뿌리를 내리게 되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시도하는 것은 그 정신을 현실로 정착시키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제도화는 언제나 퇴행적인 요소를 동반합니다. 제도 자체가 굳어지고 결국 그것이 절대화되는 경향을 띱니다. 그때 어떤 정신을 담고자 했던 틀로서 제도가 그 정신을 짓누르고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제도의 불안정에서 오기도 하지만, 제도의 고착화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에베소서가 반영하고 있는 교회의 시대는 그 이중성을 안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는 복음을 보존하고 그 복음을 따르는 공동체를 보존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었지만 동시에 그로 말미암아 복음의 역동성이 훼손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에베소서는 한편으로 그 위기의 산물이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그 위기의 극복 대안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구약성서 이래 유대의 덕목을 반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 그리스도인들이 처해 있던 그리스-로마 세계의 보편적인 덕목을 반영하면서도, 고유한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을 이루고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음미하자면 저자가 얼마나 깊이깊이 숙고하고 있는지 그 사려 깊음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언뜻 보기에 그저 좋은 말씀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매우 팽팽한 긴장이 서려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옛사람과 새사람의 삶의 대비를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비로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새사람의 삶의 태도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비되고 있는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은 그 이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편지 수신자들은 거의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옛사람을 표상하며 그리스도인은 새 사람을 표상합니다. 
옛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앞의 내용(4:17~19)을 따르면, 그들은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무지와 완고함, 수치감의 상실과 탐욕 등이 옛사람의 특성입니다. 그것은 곧 자기 세계에 매몰된 사람의 특성입니다. 무엇이든 나의 유익을 위하여 내 맘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르고, 소통의 능력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회중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밖에 있는 이방인을 비난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과거 삶을 답습하고 있는 교회 회중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하나의 제도로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과거의 삶을 답습하는 삶에 대한 경고입니다. 교회생활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 아니라 그저 외적인 표지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경고합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교회의 이름으로, 신앙을 명분으로 표현되는 언행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새로운 사람은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의 서두로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게서 듣고, 또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4:20~24)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무지와 완고함, 수치감의 상실과 탐욕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구현된 진리, 곧 예수 안에서 실현된 사랑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의 마땅한 삶으로, 그 삶은 정의와 거룩함을 구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이루는 삶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이루는 삶은 구체적인 생활 규범을 동반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 또한 각각의 덕목에서 분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부정해야 할 패덕과 긍정해야 할 덕행의 대비입니다. 부정해야 할 패덕, 곧 금령은 거짓말하지 말라, 성내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험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그 뜻을 음미해 볼까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4:25)
거짓말하지 말고 참말하라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저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그저 일반적인 교훈은 아닙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여 엉뚱한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뭘까요? 이미 앞서 말한 예수 안에서 구현된 사랑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진리를 믿고 하나의 몸을 이룬 지체들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그 진리 안에서 서로 교통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4:26~27)
이 말씀은 전형적인 대비 형식과는 다르지만, 말씀의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화를 낼 수는 있지만 죄를 짓는 데까지는 이르지는 말라고 합니다.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는 그 말 자체만으로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흥미롭게도 그 한도를 말합니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 떠 있을 때 화가 났다면 해 지기 전에 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에게 틈을 내주는 격이라 합니다. 죄를 짓는 데 이른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권고는 명확하게 대비되는 긍정의 가치를 말하고 있지 않기에, 주어진 이 말씀만으로 그 뜻을 헤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땅히 잘못을 범한 이에게 분노할 수 있으나, 그 분노는 잘못한 상대가 스스로 그 잘못을 깨닫게 하는 데 그 한도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 한도를 넘어설 때 그 분노는 역효과를 나타내어 상대가 돌이킬 기회를 갖기보다는 오히려 완악해질 수 있고, 또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당사자 본인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죄를 범하는 것이요, 악마에게 틈을 내주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4:28)
이 말씀 또한 흥미롭습니다. 다른 덕목과 달리 조금 문맥상 생뚱맞아 보이는데, 이 대목에 이 권고가 포함된 뜻이 무엇일까요?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십계명을 연상시키는 권고이기는 한데, 이 권고가 지금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향하여 선포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도 도둑질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 도둑질이 뭘까요? 말 그대로 그저 남의 물건 훔치는 것을 뜻할까요? 
그 의미는 그와 대비되는 덕목을 함께 생각하면 분명해집니다. 자기 스스로 노동하여 삶을 꾸려갈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생산적 활동을 감당하라는 것이 그와 대비되는 덕목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도둑질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땀을 흘리지 않고 부를 취하는 행위, 곧 불로소득을 취하는 것을 뜻합니다. 유대교의 문헌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희의 고개를 숙여 들일을 하고 농사일을 할 때 밭을 갈기 위해 힘써 수고하라.” “아들에게 수공업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아들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는 셈이다.” 직접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 도둑질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성서의 중요한 밑바탕을 이루는 세계관과 긴밀히 관련된 가르침입니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4:29) 
이 말씀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말은 문자적 의미를 따르면 부패한 말, 부패시키는 말을 뜻합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말이요, 관계를 갈라내고 파괴하는 말입니다. 대신에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을 적절한 때에 하라고 권고합니다. 그것이 좋은 말입니다. 사람을 북돋고 관계를 돈독히 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말입니다. 그 말은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됩니다. ‘은혜가 된다’는 말이 그저 감동을 받는다는 정도의 의미로 남용되고 있지만, 그 뜻은 하나님의 은혜를 실감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해지는 말이 하나님의 은혜를 매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과 말을 주고받는 데서 서로를 세워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말끝마다 하나님을 거들먹거리면 된다는 뜻이겠습니까? 진정성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사소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권고 이후 본문 말씀은 결론에 해당하는 권고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4:30~32)
참 인상 깊은 결구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깊이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이 마지막 결구의 한 대목 한 대목 더 깊이 음미하고 싶지만 줄입니다. 모든 악의를 버림으로써 패덕을 행하지 않고 새 사람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앞서 말한 대로 따를 뿐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이어지는 에베소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이루라고 합니다(5:1~5). 
초기 교회의 사도들과 그 사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지도자들이, 교회가 제도화되어 가는 그 현실 가운데서도 어디에 마음을 쏟고 있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교회 제도를 지키고 교리를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어쩌면 단단해질 수도 있는 조직과 제도를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뜻을 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이루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속 가능한 교회를 꿈꾸는 것은 단지 제도가 유지되고 물질적 자산이 보존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진실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 안에서 온전히 구현된 사랑의 진실, 그것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진실로 소통하며, 서로 연민을 갖고 친절히 대하며, 서로를 용납하는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교회로 부르신 뜻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 위에 그 뜻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11 Oct 2026 14:41: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41 / 10.11.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5]]></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xzgLPNR9Z2Q 

2. 지난 주일 월례 공동의회 결과 
   ① 9월 재정보고, 
   ② 주요 일정으로 전교인 수련회 일정 확인(11/14), 
   ③ 기타 안건으로 2027년도 담임목사 안식년 예고하였습니다.

3. 오늘 오전 당회(안건: 담임목사 안식년 계획)가 열리며, 공동예배 후 운영위원회(안건: 수련회 일정과 장소 확정)가 열립니다.

4.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로, 공동식사는 각 구역별로 준비해 와 함께합니다. 

5. 다음 주일 공동예배와 말씀은 이성철 목사가 맡으며, 마지막 주일 말씀은 대전노회에 방문하는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 서비사야스교구 대표단 가운데 한 분이 맡습니다.

6. 2026년 하반기 수요인문강좌 “인간선언의 영화와 우리 교회 연대활동”이 진행중입니다. 
◎ 인간선언의 영화들
  [3]10월14일 &lt;해리엇&gt;(2019) : 미국 노예해방의 영웅, 해리엇 터브먼 이야기
  [4]10월21일 &lt;임신한 나무와 도깨비&gt;(2019) : 기지촌 여성의 기억 찾기 판타지
◎ 우리 교회 깊이 알기 - 연대활동 주제 강좌
  [5]10월28일 “우리 교회 연대활동의 특징”(최형묵)
  [6]11월04일 “개신교 인권운동사의 맥”(최형묵)
  [7]11월11일 “미등록 이주 아동의 생애주기별 고충과 제도적 배제”(김규희)
  [8]11월18일 “우리 교단 여성운동의 역사”(송길룡)

7. 담임목사
  13(화) 오전 11:30 아우내 / 연세신학회 정기모임
  16(금) 오후 3:00 목포 우리예닮교회 / 전남기독교교회협의회 3차 아카데미 “인권과 교회, 그리고 오늘의 인권 쟁점” 강연
  17(토) 오전 10:00 우리 교회 / 대전노회 교토교구방문단 준비모임
  18(일) 오전 11:00 서울 향린교회 설교 / 오후 2:00 “80년대와 민중신학: 팜플렛의 시대 새로운 공론장과 운동의 신학” 강연(향린교회 유튜브 생방송)]]></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09 Oct 2026 15:56: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아침 해가 돋을 때”(2026.10.4.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4]]></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10/song20261004.mp3"][/audio]
“아침 해가 돋을 때”(찬송 552장) / 성가대]]></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Mon, 05 Oct 2026 09:45: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무리를 향한 예수의 시선 - 마가복음 8:1~10[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3]]></link>
			<description><![CDATA[2026년 10월 4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무리를 향한 예수의 시선
본문: 마가복음 8:1~10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8dYcusMnyAk?si=LwT3t_YFh2JiuviS"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예수님께서 굶주린 무리를 먹인 이야기는 복음서에 두 번 등장합니다. 흔히 오병이어(五餠二魚) 사건으로 알려진 이야기(마가 6:30~44; 마태 14:13~21, 누가 9:10~17, 요한 6:1~14)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본문 말씀은 그와 거의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또한 마태 15:32~39). 오천 명을 먹이고 사천 명을 먹였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차이가 있지만,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같은 점을 주목하면 어떤 것일까요? 무리에 대한 예수님의 연민, 한적한 곳, 당혹스러워하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 무리가 가지고 있는 먹을거리의 확인, 무리를 떼 지어 앉게 하라는 말씀, 예수님의 기도, 제자들의 배식, 식사 후 남은 부스러기를 모은 것, 무리를 헤쳐 보내고 예수님과 일행이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 등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와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거의 같습니다. 
다른 점은 어떤 것일까요? 무리의 수, 떡과 물고기의 수, 남은 광주리의 수 등이 다릅니다. 거의 같은 이야기인데,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요? 복음서의 내용이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이야기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거의 유사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주목하기에 앞서 우선 두 이야기의 공통점을 주목합니다.

두 이야기에서 두드러지게 대비되는 하나의 초점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해법’과 ‘예수님의 해법’의 차이입니다. 걱정하는 제자들의 태도와 상반되는 예수님의 태도 차이입니다. 이 차이는 두 이야기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동시에 오늘날 빵의 문제,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열쇠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제자들을 보면 당황하고 있습니다. 앞선 이야기(6:30~44)에서 당황한 제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생각해 낸 것은, 딴 데 어디 가서 먹을 것을 사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든 돈을 끌어와서 먹을 것을 구매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상상력은 시장의 법칙의 한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해결 방법이 없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걱정할 것이 없다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걱정하지 않는 것은 다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해법은 나눔의 지혜였습니다. 이미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 어이없는 방식이요, 도대체 그렇게 해서는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굶주린 무리 모두가 먹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으로는 무리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돈을 가져와 빵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여기지만 그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비현실적입니다. 경제 규모를 키워 충분히 생산하면 모든 사람이 풍족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부의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한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용할 양식의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장의 법칙에 맡겨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면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 현실을 보면 금방 이해됩니다. 시장경제를 내버려두는 것으로 인간의 삶을 위한 경제가 저절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한국이 올해 1조 달러 수출로 교역규모 4~5대 강국에 들고, 그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5040’(인구 5천만 이상에 국민소득 4만 달러) 반열에 들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극심한 양극화로 중소기업과 빈곤층, 청년층의 고통은 전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 규모의 양적 확대만으로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 놀라운 성취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는 오늘과 같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사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불평등한 경제가 마치 자연적 질서처럼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질서 안에서의 상식에 매여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충족하게 해 주는 나눔의 신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서가 일관되게 일깨워주고 있는 진실입니다. 
이 이야기가 복음서에서 반복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진실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아직 모르겠느냐, 얼마나 더 보여주어야 알겠느냐?’ 반복의 일차적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 본문 말씀 바로 뒤에는 기적을 요구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이야기(8:11~13)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기적을 거부합니다. 이 기적을 보고도 모른다면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의중입니다.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와 사천 명을 먹인 이야기는 그 점에서 공통적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단순히 반복했을까요? 본문 말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 의미를 확장하고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본문 말씀이 시로페니키아 여자 이야기(7:24~30)와 연결되고 있는 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는 이방인의 구원 지평, 곧 보편적 구원의 지평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띤 것으로 보입니다. 등장하는 수치의 차이도 그저 사실적 정황의 차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의 차이로 보입니다. 오병이어 이야기에서 오천 명이 율법(모세오경)을 상징하고 열두 광주리가 열두 지파를 연상시킨다면, 사천 명의 4와 일곱 광주리의 7은 완전한 숫자로서 보다 일반적인 상징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의 달마누다 지방을 특정할 수는 없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맥락과 분위기상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 구원의 보편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에서는 상황에 대처하는 데 제자들의 역할이 두드러진 반면 사천 명을 먹인 이야기인 본문 말씀에서는 시종일관 상황에 대처하는 데 예수님의 주도적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또한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에서는 먹어야 하는 필연적인 요구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미루어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반면 사천 명을 먹인 이야기에는 그 정황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 무렵에 다시 큰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저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다. 내가 그들을 굶은 채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8:1~3)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분명히 전제되어 있고, 이를 보고 예수님께서 무리를 먹여야겠다고 마음먹고 하신 말씀이 이야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에도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고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불쌍히 여기셨다”(6:34)고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지 당장 일용할 양식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반면 본문 말씀이 전하는 정황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무리가 처한 배고픈 상황, 그 무리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 그 마음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같은 이야기가 같지만 반복해서 기록한 진짜 이유일 것입니다.

말씀의 뜻을 다시 음미합니다. “저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다. 내가 그들을 굶은 채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8:2~3)
우리가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저 문자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코 운집한 무리로 환원될 수 없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그들의 상황을 헤아리는 예수님의 시선, 마음입니다. 저마다 개별적으로 고유한 삶의 정황이 있고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 마음입니다. 사흘 동안 다들 제대로 먹지 못하여 그냥 돌아가게 되면 길에서 쓰러질 것을 염려하는 마음, 게다가 더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은 어찌 될까 염려하는 마음입니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철학자 니체의 책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래 십자가 처형 현장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요한 19:5). 이 말은 기독교 역사에서 신학과 철학, 예술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의 사건이 함축하는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그 경구의 의미를 거꾸로 헤아려보고 싶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여 있는 무리 가운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응시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주변에 모인 무리를 그저 한결같이 측은한 무리로, 그야말로 퉁 쳐서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무리를 이루고 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온전한 존재로 들어왔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어떤 집단으로 범주화되어 대상화될 수 없는 개별적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에 대한 시선, 그 시선이 함축한 마음을 예수님께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일관된 태도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선 마음이 그 마음입니다(누가 15:4). 한 마리 찾아내어 백 마리 채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곤란한 지경에 빠진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중요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 마음으로 그 누구든 인간으로 마주하고 어울리는 예수님을 두고 사람들은 못마땅해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해 세상에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마가 2:17) 예수님께서는 안식일마저 어겼다고 비난받았을 때도 그 엄혹한 율법주의에 맞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마가 2:27)라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까지 선언하셨습니다(마태 25:40). 말씀이 육신이 된 진실(요한 1:14)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 가운데 온전히 함께하며 그 질고를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저 천상의 관찰자가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마음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을 하나하나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이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특정한 대상들, 여러 이름을 가진 소수자들을 편견으로 대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은 그 시선, 그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소수자들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거 없는 편견에 자신을 내맡기고 그 누군가를 혐오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북한상’, 표현의 자유인데 뭐 어떻냐는 막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탈북 청소년들의 배움터인 여명학교 건축을 반대하는 이들의 잘못된 마음입니다. 
사람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비율로 그 범주를 확정해 놓고 아무렇게나 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사연이 있고, 저마다 꿈이 있고, 저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함과 애착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 누군가에게 모두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내 가족을 대하듯, 내 친구를 대하듯 이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적어도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근거 없는 편견으로 사람들을 혐오하거나 차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공동체로 모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추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대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진정한 구원을 누리고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마음을 닮고 따르고자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진실을 믿고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04 Oct 2026 15:59: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40 / 10.4.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2]]></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bl2cq5Cqebw

2. 오늘 예배 후 월례 공동의회가 열립니다(안건: 9월 재정보고, 수련회 등 주요일정 점검).

3. 10월 예배 및 봉사 담당안이 준비되었습니다.

4. 2026년 하반기 수요인문강좌 “인간선언의 영화와 우리 교회 연대활동”이 진행중입니다. 
◎ 인간선언의 영화들
  [2]10월07일 &lt;아름다운 청년 전태일&gt;(1995) : 노동운동과 민중신학의 출발점 
  [3]10월14일 &lt;해리엇&gt;(2019) : 미국 노예해방의 영웅, 해리엇 터브먼 이야기
  [4]10월21일 &lt;임신한 나무와 도깨비&gt;(2019) : 기지촌 여성의 기억 찾기 판타지
◎ 우리 교회 깊이 알기 - 연대활동 주제 강좌
  [5]10월28일 “우리 교회 연대활동의 특징”(최형묵)
  [6]11월04일 “개신교 인권운동사의 맥”(최형묵)
  [7]11월11일 “미등록 이주 아동의 생애주기별 고충과 제도적 배제”(김규희)
  [8]11월18일 “우리 교단 여성운동의 역사”(송길룡)]]></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02 Oct 2026 15:33: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참 좋으신 주님”(2026.9.27.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1]]></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9/song20260927.mp3"][/audio]
“참 좋으신 주님” / 호수마을 구역]]></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27 Sep 2026 15:39:1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권리를 가질 권리 - 마태복음 15:21~28[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50]]></link>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27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권리를 가질 권리
본문: 마태복음 15:21~28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gCbPaoQrsfI?si=rTZwBKGF9utusc_3"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증언하는 본문 말씀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인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7:24~30)도 인물과 정황 묘사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이 이야기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 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주인공 여인의 이름은 유스타로 알려졌고, 그 딸은 베르니케라고 전해집니다. 이 여인은 신뢰에서 ‘신앙의 모범’이요, 끈기에서는 ‘인내의 모범’이며, 예수님의 냉정한 말에 대한 그의 대답에서는 ‘겸손의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다는 점에서 또한 ‘기도의 모범’으로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이야기의 파격적 성격과 그 의미를 제대로 새길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처한 비극적 현실 때문에 자신의 운명은 물론 기존의 통념과 질서를 완전히 바꾼 주인공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지평을 바꿔놓은 결정적 계기를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지역이었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오늘날 레바논 지역입니다. 그때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가나안 여자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구분을 명시함으로써 이방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유대인의 세계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주 절박한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자기 딸에게 악한 귀신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질병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모든 질병이 악령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당대의 통념에 비추어볼 때 다른 어떤 심각한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여인은 딸의 그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이어지는 대화 장면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15:22) 절박한 호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호칭으로서 ‘다윗의 자손’은 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였습니다. 그 두 호칭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절절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이 호소에 예수님은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말합니다. “그를 안심시켜 떠나보내 주십시오.”(15:23)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문을 여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15:24) 그러나 그 여자는 간청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15:26) 여인의 간청을 거절한 셈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자식의 질병 때문에 절박하게 호소해야 했던 이 여인은 벽에 부딪히며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15:27) 그제서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15:28) 그때 그 여자의 딸이 나았습니다.

이방 여인의 절절한 마음과 믿음이 사태를 반전하여 구원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중대한 하나의 걸림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이 여인에게 보인 태도를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에 비춰볼 것 같으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라는 이야기,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는 당시 유대인들의 통념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굳이 예수님의 입을 통해 이를 밝히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의 신실한 믿음을 위한 복음서 기자의 배려일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 나름대로 자신들의 전통을 따라 예수님이 자신들의 구세주라고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신중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는 것을 해명해 주는 복음서 기자의 배려입니다. 다른 한편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까지 뒤흔들어놓을 정도로 이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극적으로 표현해 주는 문학적 수사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위대성은 그 유대인들을 위한 논리가 언제까지나 유대인들만을 위한 논리로 굳어지지 않고, 새롭게 제기되는 요청 앞에 무너지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자고 하는 데, 유대인이 따로 있고 이방인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로 상황이 반전하고 있는 데 오늘 말씀의 참뜻이 있습니다. 더욱이 본문이 유대인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고 있는 점은 그 뜻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줍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전통을 대변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보고 이사야서(29:13)를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15:8~9) 한마디로 전통을 소중히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거짓을 일삼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자신들만 의롭다고 함으로써 타인을 배제함으로써 죽음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음을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잘못된 사태를 뒤집습니다. 여기에 말씀의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 

다시 새깁니다. 이 이야기가 자신이 처한 비극적 현실 때문에 자신의 운명은 물론 기존의 통념과 질서를 완전히 바꾼 사건이자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지평을 바꿔놓은 결정적 사건이 되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교훈 그대로 신실하고 집요하고 인내심 있고 겸손합니다. 끝까지 좌절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태도 때문에 이제껏 굳게 닫혀 있던 구원의 문이 열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건의 밑바탕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사태가 있습니다. 귀신 들린 자식의 괴로움입니다. 
자식이 괴로워하는 것을 자신의 괴로움보다 더 깊게 느끼는 것이 모든 부모의 심정입니다. 자식이 괴로워하는 것보다 자신이 괴로운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대신 겪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만큼 부모들에게는 자식의 괴로움보다 큰 일이 없습니다. 자식이 잘못되고, 괴로워하고, 목숨을 잃는 것만큼 큰 슬픔, 큰 고통이 없습니다. 피에타 상, 곧 처참하게 죽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은 그 극한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위대한 어머니로 영원히 추앙받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구세주를 낳은 몸이어서 위대하다기보다는 그 절대적인 고통과 슬픔을 안았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과 슬픔을 안은 어머니이기에 사람들의 아픈 마음, 슬픈 마음을 다 아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주인공 가나안 여자가 지닌 믿음의 밑바탕입니다. 그 아픈 절규가 믿음의 기적, 곧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 여인이 그와 같은 소망의 믿음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자기 딸의 목숨을 살리려는, 자기 딸이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심정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려는 그 열망으로 모든 상황을 감내하고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받아줄 수 없다는 그 질서와 논리까지도 감싸안아 버린 정성이자 열정이요, 믿음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신실함, 인내심과 집요함, 겸손함과 불굴의 정신은 자신이 안고 있는 슬픔 곧 자식의 괴로움에서 비롯됩니다. 그 슬픔을 얼버무리지 않고 정곡으로 체험하고 있었기에 그 어떤 장애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극적 현실을 이겨낼 길을 찾은 것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나 문화적 교양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절박하게 호소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자신이 절박하게 바랐던 소망을 이루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딸이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배제된 이방인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개 같은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 안에 있는 동등한 주체로서 거듭나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린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던 경계의 장벽이 무너진 것을 뜻합니다. 배제되는 소수자를 만드는 모든 장벽이 무너진 것을 뜻합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사건은 보편적인 구원의 사건, 해방의 사건이 된 것입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선생은 바로 이러한 사건 가운데서 ‘고난받는 민중의 메시아성’ 또는 ‘한의 속량적 성격’을 주목하였습니다. 고난받는 민중의 한 맺힌 절규가 자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세상을 구원으로 이끈다는 통찰입니다. 절망적인 현실 가운데서 좌절하고 체념하거나 아니면 개인적 원망과 원한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불행의 악순환을 극복할 길은 묘연해집니다. 반면 고통의 절규를 외치는 것은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절박하게 호소하고 외칠 때 한은 놀랍게 승화됩니다. 예술적으로 승화되기도 하며, 사회변혁의 힘으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아픔에 공감하고 호응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공감하면 함께 살아가는 지혜와 해법이 찾아집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을 두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이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숱한 기적 이야기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내가 너를 구했다’는 말보다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선포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태도를 다시 환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방 여인과의 팽팽한 논쟁은 예수님께서 여인의 호소에 공감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좀처럼 논쟁에서 지는 법이 없는 예수님이 이 여인과의 논쟁에서는 깨끗하게 당신의 처음 주장을 철회하고 승복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논쟁에서 패하여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요? 율법주의적 정통성을 잃었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삶을 얻었습니다. 사랑을 이뤘고 구원을 이뤘습니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삶 그 자체, 생명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뤄낸 놀라운 사건입니다. 고통을 겪는 딸을 둔 어머니의 절박한 호소와 그 호소에 공감한 예수님께서 함께 이룬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수님께는 논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간절한 삶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 밑바탕은 한결같습니다. 
그리스도 복음의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아니, 살리느냐, 죽이느냐?’ 그 갈림길에서 살리는 길을 택하는 것이 그리스도 복음의 요체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복음은 사람들을 갈라놓은 장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구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보편적 인권의 가치는 그 복음의 정신에 부합합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고, 사람인 한 그 누구나 존엄성을 보장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보편적 인권 개념입니다. 그러나 오늘 현실은 놀랍도록 그와 같은 가치 기준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자신의 귀속 집단이 불분명한 사람은 자신을 보호해 줄 공동체가 없기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인권이라는 척도는 상당히 강화되었고, 그에 따라 과거 시대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인권이 보장되고 있지만, 귀속성에 따른 인권 보장의 정도는 놀랍게도 그 차이가 큽니다. 나와 나 아닌 집단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더 미묘하게 강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오늘 어떤 사회 구성원에 대한 자격의 부여 기준은, 또 다른 한편으로 매우 심각한 차별과 배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 현실을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보편적 인권을 확고한 가치로 정립하였지만 시민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오늘 세계의 현실을 직시하였습니다. 그가 “권리를 가질 권리(right to have right)”를 말한 것은 실제로 보편적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였습니다. 시민권이 없어도, 특정한 정치공동체에 속하지 않아도 그저 사람이면 모두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지난 주간 김규희 교우의 칼럼(“경기도, 살림 어려워도 아동 안전망은 지켜주길”, 「한겨레신문」, 2026.9.22.)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조사 보고서 『경기도 미등록 이주 아동 지원방안 연구: 권리보장 현황과 실태 분석을 바탕으로』(경기연구원, 2026)의 결과에 기초한 의견입니다. 경기도가 처음으로 시행한 제도로서, 미등록 이주민 아동들의 교육과 의료, 복지 등을 보장하기 위한 ‘출생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 공적 확인제도’가 예산 때문에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의견입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도가 위태로워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시도들이 하나하나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실질적으로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 구원의 지평을 연 사건으로서 가나안 여인 이야기는, “권리를 가질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는 진실을 일깨웁니다. 본문 말씀은 오늘 교회가 어떤 인간상, 어떤 세계상을 지향해야 할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 모두 그 말씀의 진실을 믿고 따르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27 Sep 2026 14:18: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9 / 9.27.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49]]></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SExWMEWZz6c 

2. 지난 주일 운영위원회 결과 ① 전교인수련회는 11월 14(토)일 10:00~17:00로 예정하고 장소와 내용은 이성철 목사, 박수환 김귀성 교우에게 위임하였고, ② 기독교평신도행동의 종교개혁주일 강단교류에 관한 의견제안 보고했습니다.

3. 다음 주일 공동예배는 성찬예배로 드리며, 예배 후 월례 공동의회가 열립니다(안건: 9월 재정보고, 주요일정 점검).

4. 10월 예배 및 봉사 담당 예정안이 준비되었습니다.

5. 2026년 하반기 수요인문강좌가 “인간선언의 영화와 우리 교회 연대활동”을 주제로 하여 이번 주간 9/30부터 11/18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됩니다.
◎ 인간선언의 영화들
  [1]09월30일 &lt;안녕, 미누&gt;(2020) : 지금 여기의 이주노동자 인권
  [2]10월07일 &lt;아름다운 청년 전태일&gt;(1995) : 노동운동과 민중신학의 출발점 
  [3]10월14일 &lt;해리엇&gt;(2019) : 미국 노예해방의 영웅, 해리엇 터브먼 이야기
  [4]10월21일 &lt;임신한 나무와 도깨비&gt;(2019) : 기지촌 여성의 기억 찾기 판타지
◎ 우리 교회 깊이 알기 - 연대활동 주제 강좌
  [5]10월28일 “우리 교회 연대활동의 특징”(최형묵)
  [6]11월04일 “개신교 인권운동사의 맥”(최형묵)
  [7]11월11일 “미등록 이주 아동의 생애주기별 고충과 제도적 배제”(김규희)
  [8]11월18일 “우리 교단 여성운동의 역사”(송길룡) 

6. 교우들의 독서 모임이 10월 3일(토) 오후 2:30에 김진호, 『난민의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7. 담임목사
   27(일) 저녁 8:00 [온라인] 종교와마르크스 포럼 정기세미나
   30(수) 오전 8:30 [온라인] 환대와온전한포용 정기모임]]></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Wed, 23 Sep 2026 16:47: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마지막 시대 교회의 인권 어젠더, 난민 - 마태복음 24:3~14[이호택 목사 / 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48]]></link>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20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마지막 시대 교회의 인권 어젠더, 난민
본문: 마태복음 24:3~14
이호택 목사('피난처' 대표)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9OXaReOI-4g?si=2RWCMiBN6ehhu1sC"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20 Sep 2026 16:57: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8 / 9.20.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47]]></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5q84Fp1UAD4 

2. 오늘 남신도주일은 맞아 말씀을 나눠주신 이호택 목사님(‘피난처’ 대표)과 수고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 오늘 예배후 운영위원회 열립니다(안건: 11월 전교인수련회 일정과 내용). 

4. 2026년 하반기 수요인문강좌가 “인간선언의 영화와 우리 교회 연대활동”을 주제로 하여 9/30~11/18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됩니다.
◎ 인간선언의 영화들
  [1]09월30일 &lt;안녕, 미누&gt;(2020) : 지금 여기의 이주노동자 인권
  [2]10월07일 &lt;아름다운 청년 전태일&gt;(1995) : 노동운동과 민중신학의 출발점 
  [3]10월14일 &lt;해리엇&gt;(2019) : 미국 노예해방의 영웅, 해리엇 터브먼 이야기
  [4]10월21일 &lt;임신한 나무와 도깨비&gt;(2019) : 기지촌 여성의 기억 찾기 판타지
◎ 우리 교회 깊이 알기 - 연대활동 주제 강좌
  [5]10월28일 “우리 교회 연대활동의 특징”(최형묵)
  [6]11월04일 “개신교 인권운동사의 맥”(최형묵)
  [7]11월11일 “미등록 이주 아동의 생애주기별 고충과 제도적 배제”(김규희)
  [8]11월18일 “우리 교단 여성운동의 역사”(송길룡) 

5. 교우들의 독서 모임이 10월 3일(토) 오후 2:30에 김진호, 『난민의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6. 담임목사
   22(화) 오전 11시 서울 기독교회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18 Sep 2026 10:34: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죽재 서남동 민중신학 사상의 주요 내용과 발전적 전개]]></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45]]></link>
			<description><![CDATA[『농촌과목회』 2026년 가을호(통권 111호) 특집

죽재 서남동 민중신학 사상의 주요 내용과 발전적 전개

최형묵(목사, 천안살림교회, 연세대 겸임교수)


1. 죽재의 삶과 신학 여정

한국 신학계의 안테나로 알려진 죽재 서남동(1918.2.5~1984.7.19)은 과연 그 별명답게 첨단의 신학 사조에 민감하였고 그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발전시켜 나갔다. 죽재는 신학 수업의 여정을 이렇게 술회하였다. “나는 매번 새로운 충격을 받아서 그것을 가능한 한 극단으로 표현해 온 것 같다.”1) 그 몇 차례의 신학적 충격의 계기를 스스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첫 번째는 성경에서 익힌 지명들이 ‘지구 위에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고 한다. 죽재는 신안군의 한 섬 자은도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여 소학교 5학년 때 목포에 있는 교회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성경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2학년쯤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전주 신흥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충격이었던 것은, 성경이 그저 천상의 이야기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가 지상에서의 역사적 실체를 지닌 이야기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받은 “충격은 상당히 크고 영속적인 무엇이었다”고 술회한다.
두 번째 신학적 충격은 대학 예과를 마치고 신학과 1학년에 들어갔을 때(1938년)였다.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시절이다. 일본인 도미노모리 교수의 ‘신약문학개론’, 미국 선교사 캅 교수의 ‘구약문학개론’을 통해 배운 문헌비판에서 학문의 엄격성을 배웠고, 그때 받은 충격이 역력히 기억되었다고 한다. 1941년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성경학교 교사로, 그다음 해부터 대구에서 10년간 목회하는 동안 가장 많은 감화를 끼친 것은 야나이하라의 「嘉信」지, 바르트, 부르너 등의 위기신학, 그리고 니버의 ‘정치적 현실주의’ 신학들이었다. 더불어 함석헌의 성경강해, 그리고 김재준을 통해 접하게 된 소로킨의 사회학, 토인비의 역사관 등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이후 죽재는 새로운 신학 사조를 접할 때마다 충격을 받았고 이를 체화하는 신학적 여정을 걸었다. 그가 시대정신에 얼마나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신학적 성찰을 수행하였는지 그 여정은 잘 보여주고 있다. 죽재가 받은 신학적 충격 가운데 자신의 “신학 형성에 가장 크고 영속적인 힘을 가진 것은 틸리히의 신학”이었다. 1951년 틸리히의 『프로테스탄트 시대』를 처음 읽은 후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가르치는 동안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틸리히의 신학을 강의하였다. 융의 심리학을 접한 것도, 요아킴의 ‘성령의 제3시대’를 안 것도 틸리히의 신학을 통해서였다.
1955년 캐나다 토론토 임마누엘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C.H. 다드와 불트만의 신약신학, 그리고 베르쟈에프의 종교철학과 엘리아드의 종교사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즈음 신학적인 충격다운 충격을 준 것은 1964년에 읽은 본회퍼의 『옥중서신』이었다. 그즈음부터 10년간은 세속화론(1965), 신의 죽음의 신학(1966), 그리고 희망의 신학(1968) 등에 몰입하였다. 이 시기를 죽재는 “거듭거듭 밀려오는 신학의 파도를 타고 넘으려고 안간 힘을 다했다”고 기억한다.
1969년부터 1974년 여름까지는 “침착한 마음으로 한국의 신학계를 등지고 서재에서 현대의 과학기술문명과 더불어 신학적 싸움을 했다.” ‘안간 힘을 다했다’ ‘싸움을 했다’고 고백해야 할 만큼 당대의 첨예한 주제들을 붙들고 씨름했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이즈음 죽재를 사로잡은 신학적 문제의식도 주목거리이지만 신학계를 등지고 서재에서 골몰해야 했던 사정 또한 심상치 않다. 떼이야르의 진화론에 기초한 신학과 과정신학, 날로 발전하는 생명과학에 대한 탐구, 결국 과학과 종교의 종합으로 수렴되는 신학적 성찰의 과제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신학적인 충격을 받고 전율하면서” 몰두해야 할 만큼 버거운 과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신학적 공론장을 등져야 할 만큼 압박감을 주었을까? 이밖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2)을 발표한 이후 파장도 한몫하였을 듯하다. ‘정통’과 ‘이단’의 프레임을 넘어 현대 신학의 성취 맥락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의도하였던 죽재의 충정은 당시 교계나 학계에서 쉽사리 수용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민중신학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기 전까지 죽재의 신학 여정이었다.


2. 민중신학으로의 전환, 방외신학자의 길
   
그렇게 일종의 침잠 가운데 있던 죽재에게 또 다른 충격이 다가왔다. “작년 금년 내가 받은 신학적 충격”이 그것이다. 죽재는 “그 충격의 계기들을 밝히는 것은 보류하기로 하되” “그 충격을 민중의 신학으로 극단화(radicalize)하고 있다”고 고백하였다. 죽재가 이와 같이 신학의 여정을 술회한 시점은 1976년 3월 1일이다. 죽재도 서명한 「3·1민주구국선언」 발표일이다. 
책의 서문에 명기된 이 날짜는 책의 출간일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작 그 서문을 쓸 때는 문익환 목사가 선언을 준비하면서 동의를 구하던 즈음일 수도 있고, 요즘과 같은 컴퓨터 편집이 아니라 활판 인쇄 사정을 감안하면 그보다 이른 시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작년 금년’으로 환기하고 있는 시점은 1974년에서 1976년 초에 이르는 기간일 수 있다. “그 충격의 계기들을 밝히는 것은 보류하기로 하되”라고 자제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당시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와 연루된 처지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즈음이라면 여러 사건이 벌어졌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 벌어지고 같은 학교 동료인 김찬국 교수가 감옥에 갇혔다. 그해 죽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나이로비 총회를 앞두고 열린 신앙과직제위원회 회의로 출국하였다가 해외 인사들로부터 한국 민주화운동 상황과 시인 김지하의 안부를 묻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한국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양심수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시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인한 충격은 컸고, 급히 김지하의 시 세계를 파고 들었다. 죽재의 민중신학이 김지하의 시 세계로부터 가장 짙은 영향을 받은 것도 그 경험 탓이었다. 1974년 한 해 동안만 하더라도 죽재는 학계 및 교계의 여러 시국선언에 동참하였고 당국의 주목 대상이 되었다. 그해 11월에는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이 발표되었고 죽재 역시 이에 서명하였다. 그 성명의 초안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그리고 1975년 2월 처음으로 민중신학을 공표한 글로 여겨지는 “예수·교회사·한국교회”, 이어 4월에 “‘민중의 신학’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975년 6월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이 일련의 사태는 실로 죽재의 삶 자체를 뒤바꾸는 충격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만으로도 이미 그 이전에 지적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결정적인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1976년 3월 1일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되고 그 서명자들은 일제히 구금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과 여성인 이우정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혹독한 옥고를 치러야 했다. 선언을 주도하고도 공동번역 성서 번역작업을 마무리하고자 서명하지 않았던 문익환 목사도 결국 들통나 옥고를 치렀다. 대다수 성직자이자 교수였던 이들은 심각한 인격적 모독을 동반한 옥고를 치렀다. 육체적 고문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후에도 그 경험을 내내 직접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인격 모독을 감내해야 하는 나락의 경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감옥 안에서 이른바 온갖 잡범들을 만나며 민중의 실상을 경험하였다. 그 경험은 상아탑 안에서 겪었던 지적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적 현장에서 스스로 감내해야 했던 경험이었다. 
죽재가 민중신학으로의 전환을 이루기 전 신학 여정을 정리하는 저술의 서문을 작성한 날로 기록된 1976년 3월 1일은 서남동과 안병무4)가 의도적으로 운명의 날을 새기고자 한 ‘공모’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이제 더는 되돌아설 길이 없다는 것을 예고하는 섭리의 결과였을까? 이후 죽재는 종횡무진하는 지적 편력을 자랑하는 신학의 안테나로서보다는 민중신학의 선구로서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다시 대학의 상아탑에 복귀된다면 나는 아마도 다시 과학종교의 비전을 추구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5)고 전망하였지만, 죽재의 생애에서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980년 일시 복직되었다가 다시 해직된 후 1984년 다시 복직의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학교로 되돌아가지 못하였다.6)
죽재 신학의 귀결점은 민중신학이었다. 죽재는 이제 상아탑의 서재에 머무는 신학자가 될 수 없었다. 방외(方外)의 신학자7)로서 실천 현장에의 참여와 그때그때 긴박하게 요구되는 신학적 성찰을 수행해야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로서 선교교육원 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그것이 네모반듯한 연구실 환경을 갖추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선교교육원은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목사 후보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애초 교단의 위촉으로 한신대 제적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이었으나 여러 학교에서 제적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 교수들도 대학 강단에 서지 못하는 해직 교수들이었다. 학생과 교수 모두 실천적 체험에서 비롯되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육 과정에 함께 하였다. ‘서대문 민중신학교’라는 별칭으로 불린 그 과정은 말 그대로 민중신학의 중요한 산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죽재는 해직 교수들을 중심으로 하는 갈릴리교회에 동참하였고, 해직교수협의회와 기독자교수협의회 등의 활동을 펼쳤고, 여러 민중운동 현장과 연대하는 가운데 민중신학을 더욱 첨예화시켜나갔다. 죽재의 운명적 조건이었고 민중신학의 운명적 조건이었다. 민중신학의 방법과 내용은 그 조건 가운데서 벼려졌다.


3. 방외신학의 진면목 『민중신학의 탐구』 

그렇게 실천 현장과의 연대와 교감 가운데 가다듬어진 민중신학의 성과가 서거하기 1년 전 『민중신학의 탐구』로 집약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죽재의 신학 여정에서는 물론 민중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70년대 민중적 관점을 공유한 여러 신학자의 글을 집약한 책으로 처음 출간된 것은 『민중과 한국신학』8)이었다. 그 시점은 1982년이었다. 이미 민중신학이 합의된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던 그즈음 이 책이 민중신학을 표제로 달지 못한 데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그 대본은 먼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에 의해 영어로 먼저 출간되었고, 그 표제로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을 내걸었다.9) 그럼에도 한국어판에서 모호하게 ‘민중과 한국신학’이라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수없이 많은 책이 금서가 되었고 신학 서적으로는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10)이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형편이었으니, 민중신학자들은 아슬아슬하게 그 칼날을 피할 묘책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금서의 목록에 오르지 않은 가운데 유통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중운동이 절정을 향하여 달리던 그즈음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갔고, 따라서 민중신학의 단초가 되는 20편의 글들을 모아놓은 그 책으로는 그 관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즈음 죽재의 『민중신학의 탐구』가 출간되었다. 초판 간행 시기가 1983년 11월이니, 당시 군사정권의 소위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우리말로 된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죽재의 생애에서 두 번째로 출간한 이 책은 이전의 『전환시대의 신학』과는 다른 저작이었다. 생애 동안 출간한 두 권의 책11)은 민중신학 이전과 이후를 분명히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다. 한 신학자의 삶에서 입장의 선회가 이뤄질 때 그 단절성과 연속성의 문제는 늘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죽재의 신학에서도 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민중신학을 배태한 역사적 상황과 그 가운데서 신학자 스스로 겪은 체험의 충격을 고려할 때 우선 그 차이를 주목하여 볼 수밖에 없다. 죽재 자신도 『전환시대의 신학』이 “혼자 배워서 혼자 써낸 것”인 반면 『민중신학의 탐구』는 “혼자서 한 일이 아니”고 “친구들이 같이 토론하고 같이 생각”한 결과로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다.12)
처음부터 단일 저작을 의도하고 조목조목 써 내려간 책이 아니기에 그 내용 구성상의 체계성을 갖춘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반듯한 연구실이 아닌 거리에서 방황하는 가운데13) 쓴 글들을 엮은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내용들을 엮고 있는 확실한 얼개가 두드러진다. 이 책의 진정한 의의는 풍부한 민중신학적 ‘영감’과 그 영감으로 빚어낸 민중신학의 기본 얼개에 있다. 아마도 민중신학 1세대를 대표하는 저작 가운데 그 이론적 얼개와 방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저작일 것이다. 민중신학자들에게 민중의 역사 주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공통되지만 더불어 각기 고유한 이해와 관심의 방향을 드러내고 있는데,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신학적 얼개와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분명한 특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는 죽재 스스로 누누이 밝히듯이 특정한 문제의식을 첨예화하는 사고방식의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4. ‘두 이야기의 합류’와 ‘계시의 하부구조’

죽재는 민중을 발견하고 스스로 그 체험을 공유한 충격 이후 민중을 입지점으로 하는 신학적 구상을 본격화하였다.14) 

1) ‘두 이야기의 합류’

죽재가 추구하는 신학의 방법과 그에 따르는 신학적 얼개는 ‘두 이야기의 합류’ 구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민중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현재 한국교회의 ‘신의 선교’ 활동에서 합류되고 있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현재 눈앞에 전개되는 사실과 사건을 ‘하느님의 역사개입’, 성령의 역사, 출애굽의 사건으로 알고 거기에 동참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15) 

민중을 이 합류의 해석학이 갖는 독특성은, 그것과 전통적 신학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해명하는 대목에서 분명해진다. 죽재는 ‘두 이야기’ 곧 두 전통을 ‘전거’(典據)라는 말로 성격화하며, 그 의미를 ‘참고서’라고 규정한다. 지금 한국 그리스도인에게서 합류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은 동등한 전거, 곧 동등한 참고서가 된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신학의 ‘규범’을 말하고 그 규범의 근거로 성서를 말해왔다. 그러나 죽재의 주장은, 성서가 증언하는 민중사건과 그리스도교 역사에 나타난 민중사건,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나타난 민중사건이 모두 동등한 참고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성서가 그리스도교 전통 또는 신학에서 차지하는 실제적 비중이나 중요성 자체를 무시하는 발상은 아니다. 이 주장의 진의는, 문자로 기록된 성서가 신학의 근거로서 배타적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고정된 하나의 텍스트가 문자 그대로 진리일 수는 없다. 어떤 의미의 생성은 텍스트와 독자 그리고 그 사이에 게재되는 다양한 요소 사이의 상호 작용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대 비평학의 상식이다.16) 그것은 성서의 형성 과정 자체가 증언하는 바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될 만한 순수한 ‘성서적’ 전승이라는 것이 따로 있어서 그것이 다른 전통들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성서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성서 자체 안에 이미 다양한 전통들이 교차하고 있고 그 교차의 과정에서 어떤 전통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계승되어, 다른 것들과 구분할 수 있는 전통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로 고착되어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해석자 또는 계승자를 매개로 하여 다양한 전통과 교차하고 다시 그 내용과 형식을 새롭게 한다. 성서 자체가 그렇게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전통 자체가 그렇게 이어졌다. 문자로서 성서가 배타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서 형성 그 자체,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 자체가 입증한다. 죽재의 민중신학은 그 사실을 비로소 명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죽재는 그와 같은 해석을 스스로 일러 기독론적·통시적 해석과 구별되는 성령론적·공시적 해석이라 한다. 그리고 설명하기를, “기독론적 해석에서는 이미 주어진 종교적인 범주에 맞기 때문에 적합성이 주어지는 것이라 주장하고, 성령론적인 해석에서는 지금 현실의 경험과 맥락에 맞기 때문에 적합성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밝힌다. 기독론적 해석은, 성서가 수미일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한다고 보는 해석 방식이다. 그러므로 기독론적 해석은 단일한 전제로 성서의 다양한 전승을 짜맞추는 폐쇄적 해석 방식을 말한다. 반면 성령론적 해석이란 어떤 경계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의 활동을 강조한 개념으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을 의미한다. “기독론적 해석에서는 나사렛 예수가 ‘나를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속죄한 것이지만 성령론적 해석에서는 내가 예수를 재연하는 것이고 지금 예수사건이 다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17) 통시적이라는 말은 과거 전통을 강조한다는 의미이며, 공시적이라는 말은 오늘 여기의 지평을 강조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해석의 적합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지금 현실의 경험과 맥락”이다. 이와 같은 기준은, 문자적 전통이든 역사적 전통이든 그 자체로는 항구불변한 진리로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바꿔 말하면 “실천으로서 전통을 잇고, 발전시킨다.”18) ‘오늘 여기에서의 실천적 문제의식’이 전통의 수용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의미이다.

2) ‘계시의 하부구조’

당대의 민중사건을 해석하고 증언하며 나아가 그 사건에의 동참을 지향하는 실천의 신학으로서 합류의 해석학은 구체적인 매개 장치를 갖는다. 이른바 ‘계시의 하부구조’가 그것이다. 민중운동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통해 합류한다는 합류의 해석학은 ‘계시의 하부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더욱 구체성을 띤다. 
전통적인 신학 개념으로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말은 죽재 민중신학의 진면목을 밝혀주는 주요 개념이다. 죽재는 평소 스스로 ‘크리스챤 맑시스트’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다.19) 시대적 정황 때문에 때때로 마르크스주의와 민중신학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였지만,20) 그의 신학적 인식은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에서 크게 영향받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오늘의 혁명·정치·해방의 신학이 마르크스주의의 도전에서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와 경쟁으로 그리스도교가 잃었던 활력을 되찾아 민중의 종교로 복귀하려고 한다고 말한다.21) 그가 신학에서는 생경한 ‘하부구조’ 개념을 서슴없이 자신의 신학적 체계 안에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설정한 것부터 그 영향의 흔적이다. 단순히 용어를 차용하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은 확실히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을 적극 수용한다. 
죽재는 두 이야기의 합류 구조를 밝히는 방법론으로 “사회경제사적 내지 문학사회학적 방법을 적용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조심스럽게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횡간의 의도를 읽자면 그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 역사 방법론을 유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사회경제사적 방법 내지는 문학사회학적 방법을 제안하는 대목에서 “역사적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넘어서는 교회사의 새 시대경륜”을 말함으로써 그 속내를 비치고 있다. 그는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제약조건들”을 분명히 밝히는 방법론으로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민중의 역사”가 밝혀지면 “민중의 사회전기, 민중의 집단적 영혼, 민중의 의식과 그들의 갈망들”을 밝혀내는 방법으로 문학사회학을 적용할 것을 말한다. 신학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시대마다 다양한 해석학의 틀을 사용해 온 것을 알 수 있는데, 오늘 “자기 역사와 운명의 주체가 될 민중의 정체”를 포착하는 데 그와 같은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 보고 있다.22) 
죽재는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을 의미하는 ‘사회사적 해석’ 내지는 ‘물질주의적 해석’23)을 기존 신학의 전제들을 비판하고 분석하는 도구로 사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신학을 구성하는 하나의 인식론으로 삼는다. 그것은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제약조건”을 밝힘과 아울러 “역사와 운명의 주체가 될 민중의 정체”를 포착하겠다는 데서 드러난 의도이다. 그래서 죽재는 신의 ‘계시’ 자체가 물질적 하부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개념을 창안한다.24)
이 개념은 죽재가 마르크스주의의 사회과학적 방법을 얼마나 비중 있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 개념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에서 말하는 신의 계시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표현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신의 계시는 ‘사회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계시는 ‘물질적 계시’라고 본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의 선택을 받은 ‘가난한 사람’ 곧 민중은 단순히 계시의 매체가 아니라 계시의 구성적 요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착상에서 시작하여 죽재는 “하부구조에서(몸)에서 유리된 상부구조(이념)만의 전통적 신학”은 “유령이요 아편”이라고 단정지었다.25) 여기에서 죽재는 확실히 마르크스의 종교비판 이후 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민중신학으로의 급진화 이후 죽재는 주로 역사에서의 민중 이야기에 주목하고 그 신학적 의미를 통찰하였다. 그러던 죽재는 생의 말년에 이르러 당대 민중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과 그 현실을 직접 탐색하고자 시도하였다. “빈곤의 사회학과 빈민의 신학”(1983)26)은 그 두드러진 사례이다. 이는 스스로 사회과학적 탐구를 수행하며, 그 기초 위에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한 것이다. 아마도 죽재의 생이 더 지속되었더라면, 자신의 문제의식을 극단화하는 그의 일관된 입장에서 그 과제를 더 본격화하였을 것이다. 죽재 스스로에게 미완으로 남은 그 과제는 후학들에게 넘겨졌다.


5. 신학의 진정성,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메아리

죽재는 『민중신학의 탐구』를 내어놓으면서 그 서문에서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어떤 신학자들의 메아리가 민중신학으로 형성되어 간다”고 술회하였다. 거기에 신학함의 진정성(眞正性)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학에 대해 반문하며 부끄럽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면서도 “신학의 한 중요한 규준은 얻은 셈”이라고 자평하였다.27) 
죽재는 1976년 『전환시대의 신학』을 내어놓으면서 다시 대학의 상아탑으로 복귀하면 다시 과학과 종교의 종합을 시도하는 신학으로의 복귀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있었다. 1983년 민중신학의 여정을 한 매듭짓는 『민중신학의 탐구』를 내어놓을 때도 그 기대를 안고 있었을까? 신학적 여정 가운데서 커다란 충격과 함께 주어진 문제의식이 쉽사리 사라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중의 부르짖음에 대한 메아리로서 신학의 진정성을 깨닫고 그것을 신학의 중요한 하나의 규준으로 삼게 되었다는 자평은 이전의 관심사에 다시 복귀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입지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은 마지막 논문 “빈곤의 사회학과 빈민의 신학”보다 조금 앞선 같은 해의 논문 “세계의 생명과 그리스도”28)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글은 사회적·생태적 위기가 가난한 민중에게 고통을 가하며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현상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그 관점은 오늘의 사회적 위기와 직결된 생태적 위기를 다루는 관점과 관련해서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과학과 신학을 종합하고자 하는 시도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또한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생태적 위기,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만큼 놀라운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한 문제들은 신학에서도 지나칠 수 없는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많은 신학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죽재는 일찍이 그 문제들을 신학의 과제로 삼았을 뿐 아니라 민중신학에 이르러 그에 접근하는 신학적 입지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본래 그리스도교 복음의 정신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 가장 연약한 이들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 관점을 통해 죽재는 진화적 낙관주의 내지는 기술적 낙관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였다.
결국 죽재의 신학 여정 종착지로서 민중신학은, 신학적 지평의 축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성찰의 방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을 주제로 하는 신학이 아니라 민중을 관점으로 하는 신학을 뜻한다. 죽재는 그 신학의 진정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그것은 오늘 우리가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미주

1) 서남동, 『전환시대의 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6), 7. 이하 죽재의 신학적 충격과 그 여정에 관한 내용은 이 책 서문을 참조하였다.
2) “통일교 원리강론의 비판적 연구”라는 제목의 이 글은 앞의 책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처음 발표는 『현대와신학』(1970.3)을 통해서였다. 논문으로 게재된 것이니 그 이전에 다른 공론장에서 발표되었을 수도 있다. 
3)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죽재 서남동이 주도한 것으로 종종 회자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1973년 선언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김관석 목사와 교감하는 가운데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던 지명관 김용복 오재식 등이 주도하였다. 오재식, 『나에게 꽃으로 다가온 현장 - 오재식회고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170-173; 김흥수, 『자유를 위한 투쟁 – 김관석 목사 평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7), 154-160 참조. 죽재가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것은 1974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4) 당시 안병무는 한국신학연구소 소장으로 해당 저작의 발행인이었다.
5) 서남동, 『전환시대의 신학』, 8.
6) 이미 정년을 넘긴 나이였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에 명예교수로서 명예 회복을 요구하였지만, 그 결론이 나기도 전 7월에 서거하였다.
7)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서울: 한길사, 1983), 3; 『민중신학의 탐구』개정증보판(서울: 동연, 2018), 7. 이후 이 책의 인용은 개정증보판으로 한다.
8) NCC신학위원회 편, 『민중과 한국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2).
9) Commission on Theological Concerns ed., Minjung Theology: People as the Subjects of History(Singapore: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1981).
10) Gustavo Gutierrez, A Theology of Liberation, Maryknoll(N.Y.: Orbis Books, 1973). 성염 역, 『해방신학』(왜관: 분도출판사, 1977).
11) 이후 죽재서남동목사유고집편집위원회 엮음, 『서남동 신학의 이삭줍기』(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가 출간되었고, 최근 일본어판에서 번역 출간된 『갈릴리교회 설교집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6)에 두 편의 설교가 빛을 보았지만, 생애 동안 출간된 책은 두 권이었다. 
12)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8.
13)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7.
14) 이하 ‘두 이야기의 합류’와 ‘계시의 하부구조’에 관한 내용은 최형묵, 『민중신학 개념 지도』개정증보판(서울: 동연, 2026), 63-70을 간추린 것이다.
15)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101.
16) 이에 관해서는 김진호, “탈정전적 성서읽기의 모색”, 『반신학의 미소』(서울: 삼인, 2001); 양권석, “한국적 성서읽기의 한 방법으로서 상호텍스트적 성서해석의 가능성”,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편, 「시대와 민중신학」5(1998) 참조.
17)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102. 
18)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52.
19) 장일조, “죽재를 위한 하나의 대화”, 『전환기의 민중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참조. 장일조는, 서남동이 스스로 ‘크리스챤 맑시스트’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이 마르크스주의적이라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반면에 강원돈은 서남동의 신학이 마르크스의 역사방법론을  중요한 장치로 하고 있는 점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강원돈, “죽재 신학의 주제와 방법”, 『物의 神學 - 실천과 유물론에 굳게 선 신학의 모색』(서울: 한울, 1992) 참조.
20)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254-255.
21)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25.
22)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60-61.
23)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86.
24)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86-487.
25)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87.
26)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492-522.
27)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7.
28) 이 글은 원래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 밴쿠버 총회의 주제(“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를 특집으로 한 「기독교사상」 300(1983.6)에 “인류를 위협하는 죽음의 세력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던 것으로, 저작 편집 과정에서 제목을 고친 것으로 보인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Thu, 17 Sep 2026 19:56:2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9"><![CDATA[논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 - 에베소서 2:11~22[이성철 목사 / 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8]]></link>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13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
본문: 에베소서 2:11~22
이성철 목사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PPp3XWd5q5U?si=rvs8v-R-__HEaKmZ"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교회력으로 창조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주 예배가 끝난 뒤 성가대 분들과 교회에 걸린 천과 주보의 색이 바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절기가 바뀔 때마다 우리 교회도 천과 주보의 색을 그 절기의 상징색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창조절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창조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만들어온 질서가 온 땅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있는지도 돌아보는 시기를 우리는 지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더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묻기에 앞서, 우리의 삶과 경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받아들이도록 이야기들이 불어나기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경제적 이해와 자원, 군사동맹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쪽의 군사력이 다른 쪽의 군사력을 불러오고, 안전을 위해 준비한다는 힘이 다시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창조절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이 정말 생명을 지키는 길인지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서 생명은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한 지역과 다른 지역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관계가 폭력과 적대로 결합될 때 누군가의 안전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이게 되고,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땅과 물과 온 창조세계가 함께 상처 입습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는 이렇게 갈라진 관계 한가운데에서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 아시아 지역의 도시로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고 유대인 공동체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서가 정확히 에베소 한 교회만을 대상으로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편지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다룹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방인들이 한때 이스라엘의 시민권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는 외인이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11절에서는 이들을 ‘무할례자’라고 부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문제는 어느 종교가 더 우월한가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13절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전에 멀리 있던 사람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4절은 이 변화를 한 문장으로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명료한 선언입니다. 유대인들의 평화도 아닌, 할례받은 자들의 평화도 아닌, 예수를 따르고 있던 권위있던 목소리 큰 자들의 평화가 아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의 평화라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평화는 서로 멀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사이를 가로막던 담을 허무시고, 적대를 없앴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15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만들다’라고 번역된 말은 명확하게는 ‘창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두 집단을 조금 가까이 붙여놓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받아주면서 흡수되거나 합쳐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만들고 완성한 평화는 분열을 억지로 화해시키는 것을 넘어, 새로운 존재로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서로를 갈라놓았던 관계 자체가 달라지고, 그 자리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가 창조됩니다. 

창조절에 이 말씀이 특별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먼 옛날 하늘과 땅을 지으신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전에는 없었던 관계와 사건을 만들어가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합쳐진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일까요? 오랫동안 누군가를 적으로 여기며 살았다면 경계가 사라진 뒤에도 두려움은 남습니다. 상대를 경계하며 사용해온 말도 남고, ‘저들과 다른 우리’라는 구분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온 습관도 남습니다. 인식이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임과 공동체 안에서도, 먼저온 사람과 나중온 사람이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와서 자리잡고 이렇게까지 만들어놨는데, 나중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아, 내몫을 나눠주는 것 같고, 내가 애써 이뤄온 것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심쓰듯이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에베소서가 왜 담을 허무는 데서 끝나지 않는지도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19절에서 이방인들은 더 이상 외인과 나그네가 아닙니다. 같은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함께 지어져 갑니다.”

이미 완성된 집이 있고 그 안으로 새로운 사람을 하나씩 들이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하나님이 거하실 집 자체가 계속 지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공동체에 맞춰지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 자체도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평화가 시작될 때 상대방만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적대 속에서 살아온 우리 자신도 달라집니다. 아니,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다시 살피고, 익숙하게 사용해온 말을 고치며, 공동체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방식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었다면 그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입니다.

지난주 최형묵 목사님과 저는 “글리온회의 40주년 기념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올해는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과 북의 교회가 처음 직접 만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가차원의 적대 관계를 깨고 그리스도인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평화를 처음으로 실천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편안하게 마주 앉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오랫동안 적으로 배워왔고, 첫날 식탁에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40년전 글리온에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읽었던 성서 본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의 에베소서 2장의 본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읽고 마지막에는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당시의 증언은 그 성찬을 통해 보이지 않던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를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로 만나기 시작했다고 회고합니다.

40년전 그리스도인들이 사전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평화를 다 이루어놓고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단이 해결된 것도 아니었고 서로 다른 입장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화가 완성되기를 기다린 다음 만난 것이 아니라, 적대가 남아 있는 가운데 먼저 만나고 함께 말씀을 읽고 식탁을 나누면서 이전과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40년이 지난 오늘도 한반도의 평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정전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고 군사적 긴장과 상호 불신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더 많은 분쟁과 폭력이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이 한편으로 답답하고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동시에 평화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오래 쌓인 적대와 두려움은 한 번의 선언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고 이야기하고, 상처를 마주하고 관계를 고치며, 다시 신뢰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2장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말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4장 이후로 가면 그 평화가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됩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라고 합니다. 분노가 관계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을 하지 말고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자신이 얻은 것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과 나누라고 합니다.

결국 평화는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 상처 입은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오래 들을 수 있는지, 나의 편안함과 안전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방식이 누군가를 계속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는 일과 이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창조절 둘째주일입니다. 평화는 폭력을 잠시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창조합니다. 멀리 있던 사람이 가까워지고, 외인과 나그네였던 사람이 시민과 가족이 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우리도 이미 평화를 완성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마음을 닫고, 익숙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런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사용하는 말을 바꾸며,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까지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완성된 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어져 갑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우리도 계속 새로워지고, 서로의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함께 일구어가는 천안살림교회 교우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Mon, 14 Sep 2026 15:32: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안살림교회 알림(2026-37 / 9.13. 주보)]]></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7]]></link>
			<description><![CDATA[1. 오늘 주일 실시간 온라인예배 링크입니다. 수고하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유튜브채널: “천안살림교회”). https://youtu.be/XJqkCQOU6ik

2. 지난 주일 월례 공동의회 결과, 
   ① 8월 재정보고, 
   ② 청빙준비위원회 중간보고(청빙 원칙을 규약 또는 세칙화하는 방안), 더불어 교회 규약(8조 3항) 가운데 장로 선출을 구성 비율에 따르는 원칙으로 변경하자는 의견 제기, 
   ③ 11월 전교인수련회 일정과 내용(청빙준비위 논의와 연계)은 운영위원회 위임하기로 하였습니다.

3. 다음 주일은 남신도주일로 지키며 이호택 선생(‘피난처’)께서 말씀을 맡아주십니다.

4. 다음 주일 예배 후 운영위원회 모입니다(안건: 11월 전교인 수련회 일정과 내용). 

5. 교우들의 독서 모임이 10월 3일(토) 오후 2:30에 김진호, 『난민의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하여 진행됩니다. 

6. 담임목사
   12(토)~16(수) 일본기독교단 코토니주오도오리(琴似中央通)교회 방문
          13(일) 주일예배 설교와 담임목사(이상경 목사) 취임 축하 
          14(월) “한국 민중신학과 복음선교” 강연 등]]></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Fri, 11 Sep 2026 16:16: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8"><![CDATA[살림소식]]></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우리 시대 민중은 누구인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6]]></link>
			<description><![CDATA[「종교와 평화」202호(2026년 3월호)

우리 시대 민중은 누구인가?

최형묵(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 연세대 겸임교수)


‘민중(民衆)’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심적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 말 자체로 보면 그저 ‘피지배 다수자들’ 정도의 의미를 지니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역동적 주체로서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민중은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이 발전하는 가운데 그 주체로 인식되었다. ‘민중’은, 정치·경제·사회적 모순관계 속에서 억압과 수탈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 억압과 수탈을 극복하기 위해 저항하는 주체로 인식된 것이다. 민중이 1970년대에 새삼 부각된 까닭은 한국적 근대화가 본격화한 시대적 맥락 때문이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로서 경제개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민중은 그 경제개발을 가능케 하는 실질적 주역이었음에도 경제개발을 위한 동원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 정당한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되지 않았다. 이로부터 저항이 촉발되었고, 민중은 그 저항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민중이 1970년대에 비로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에서 통치의 객체에서 정치적 주체로서 민중의 탄생은 곧 근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였다. 1894년 3월 동학 농민군의 격문은 궐기의 주체를 ‘민중’으로 호명하였다. 자생적 근대화의 길이 좌절되고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한 국면에서 일어난 1919년 3·1혁명 이후 ‘민중’에 대한 의식은 더 분명해졌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1923)은 저항과 혁명의 주체로서 민중을 분명히 내세웠다. 1970년대 민중 인식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정 계급 대신에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부각된 것은 한국 근대화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근대화는 부르주아적 시민계급 주도에 의한 전형적인 자본제 확립과는 다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자생적 근대화의 길이 차단당한 채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국제적인 자본제 질서에 편입되는 역사적 과정을 경유한 까닭에 그 유산의 영향 아래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및 그 세력 구성면에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었다. 민중은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매우 복합적인 사회적 세력으로서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민중의 구성이 국면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고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시대 민중은 누구인가?’ 이 물음은 민중의 개념 자체에 이미 내재하고 있다. 1세대 민중신학의 선구들이 강조하였다시피 민중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그때그때 역사적 국면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역동적 실체이다. 민중신학은 그때그때 역동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민중을 주목하는 가운데 신학적 성찰을 발전시켜 왔다.

앞서 말했듯, 1970년대 새삼 부상한 민중은 피지배층으로서 배제당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현실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이중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1세대 민중신학은 고난의 담지자이자 동시에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이중성을 주목하였다. 사실 1세대 민중신학이 더욱 방점을 둔 것은 ‘고난’의 담지자로서 민중이었다. 사회적 부조리에서 비롯되는 고난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극복 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저항하는 데서 역사의 주체로서 나서는 민중의 잠재력을 주목한 셈이었다. 이때 민중은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아우르는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소외와 배제를 겪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1세대 민중신학은 그 역동적인 민중이 일으키는 사건을 주목하고 이를 증언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민중은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였다. 민중은 선언적 주체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주체로 부상하였다. 민중은 스스로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여러 계급 계층별 부문 운동이 성장하였다. 민중운동은 산발적 양상을 벗어나 조직적 연대의 양상을 띠었다. 여기서 민중은 노동자와 농민 등 생산자층을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아우러지는 사회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1987년 그 민중운동이 절정에 이르러 민주화의 전환을 불러일으켰을 때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역할은 의심의 여지 없었다. 2세대 민중신학은 민중운동에 동참하는 운동의 신학으로서 성격을 지향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1990년대 이후 자본의 지구화가 본격화할 즈음 민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었다.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이 부상하였고 이전의 역동적 민중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민중의 일식(日蝕)이라고 할까?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배제된 민중은 이제 사회적 시민권조차 사실상 부정당할 만큼 주변화하는 듯했다. 이제 그 이름은 집단적 주체로서 민중으로서보다는 다양한 소수자들로 불렸다. 여전히 인구학적으로 다수를 이루고 있는 노동자는 물론 촘촘히 위계화되어 있는 사회질서 안에서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소수자’로 범주화되었다. 그 상황에 직면하여 3세대 민중신학은 민중의 ‘고통’을 주목하였다. 민중의 ‘고난’이 주체화의 전제조건으로 이해되었다면 민중의 ‘고통’은 그 가능성마저 부정당한 절망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민중은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2024년 12·3 권력 집단의 무모한 친위쿠데타는 강력한 민중의 저항을 촉발하였다. 그 저항의 주체는 줄곧 ‘시민’으로 호명되었지만, 실상은 ‘민중’의 전형에 가까웠다. 계급과 계층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구성을 이루었고, 구세대와 신세대가 어우러졌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참여다. 다른 국적의 거주민과 이주민들이 함께하였다. 장애인들이 위화감 없이 동참하고, 성소수자들도 참여 또한 두드러졌다. 정치적 시민권이 없거나 정치적 시민권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시민으로서보다는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이 함께하였다.

시민의 이름으로 귀환한 민중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시대 민중의 등장이다. 고통의 탄식에 머무르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는 민중의 모습이다. 이들이 보여준 정치적 직접 행동과 사회적 연대 행동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향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img src="http://salrim.net/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9/202609/6aa010753e45f2976909.jpg" alt="" />]]></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Tue, 08 Sep 2026 22:40: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9"><![CDATA[논단]]></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십자가를 질 수 있나”(2026.9.6. 성가)]]></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4]]></link>
			<description><![CDATA[[audio mp3="http://salrim.net/wp-content/uploads/2026/09/song20260906.mp3"][/audio]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성가대]]></description>
			<author><![CDATA[살림교회]]></author>
			<pubDate>Sun, 06 Sep 2026 17:20: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13"><![CDATA[영상(음악)]]></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편견의 세계를 넘어 새롭게 열리는 삶 - 누가복음 19:1~10[유튜브]]]></title>
			<link><![CDATA[http://salrim.net/?kboard_content_redirect=9333]]></link>
			<description><![CDATA[2026년 9월 6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편견의 세계를 넘어 새롭게 열리는 삶
본문: 누가복음 19:1~10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JtZlwzazqag?si=VnCSDjrCaeKM4H8b"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창조절 첫 주일입니다. 가장 더운 여름을 보내며, 또한 히말라야에서 벌어진 엄청난 재난 소식을 접하면서, 오늘 인간 삶을 지탱하며 그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삶의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아름다운 창조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지 다시 깊이 생각하여야 할 때입니다.

본문 말씀은 사람들의 통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지, 그 극적인 사태를 흥미롭게 전합니다. 유명한 ‘키가 작은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성경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 내용의 진지함이나 심각성보다는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장면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며 그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성서 말씀의 의미를 새길 때에, 때로는 성서에 대한 초보적 지식이 없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정반대로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체득한 교리나 그에 따른 편견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가능한 한 기존의 어떤 편견을 떨치고 함께 본문 말씀의 의미를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시고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여리고 지역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여리고는 사해 북쪽에 자리 잡은 도시로, 역사가 오래되었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거리를 지나고 계실 때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의로운 자’라는 뜻을 지닌 삭개오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사람은 틀림없는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세리장이자 부자로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애써 달려왔다는 것은 예사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우선 세리는 일반 사람들의 눈에 볼 때 죄인으로 취급되는 부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수께서 세리를 친구로 삼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던(누가 7:34) 데서 알 수 있듯이, 세리는 상종하지 못할 부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세리들은 엄밀히 말해 국가 관리가 아니라 청부업자들이었습니다. 일정한 지역의 유력자가 입찰에 응하는 방식으로 나서 징세권을 얻어내면 하수인들을 두고 세금을 거두어들여 일정액을 상납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거의 도둑이나 강도 취급했습니다. 삭개오가 세리장이었다는 것은 그 지역의 징세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 사람의 통념으로 볼 때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이가 구원을 선포하고 계시는 예수에게 다가선 사건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부자였습니다. 하급 세리라면 가난했을 터인데, 세리장이었으니 부자인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께 접근하고 있는 상황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에 앞선 내용을 보면 세리도 나오고 부자도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세리의 기도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한 반면(누가 18:9~14), 자신이 가진 것 때문에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하는 부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누가 18:25) 그 유명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전반적 문맥을 통해 보면, 부자가 예수께 접근한 것은 범상치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를 만남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길에는 이중의 장벽이 있었던 셈입니다. 예수께서 세리들과 친구라는 소문에 삭개오는 선뜻 달려올 수 있었지만, 공공연한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가진 것 때문에 진정성이 의심받을까 봐 예수께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그가 작은 자였다는 것은 단지 신체상의 조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도 이른바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열에 끼기 어려운 조건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대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 반전의 주인공은 삭개오 자신과 예수님입니다. 이 두 주인공이 일으키는 반전은, 주인공들이 사람들의 통념과 편견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강고하게 지키고 있는 통념과 편견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먼저 삭개오가 공공연한 장소에서 예수를 만나고자 시도했다는 것은 통념과 편견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강력하게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리라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기는 했지만 부를 누리고 있는 만큼 삭개오는 그런대로 살아가자면 오히려 남들의 선망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돈 많은 관리가 구원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것 때문에 그 구원의 길을 따르지 못했던 것과 같은 태도입니다. 삭개오는 자신도 그와 같은 의심을 받을 것이라 염려했겠지만, 어떻게든 예수와 눈을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씁니다. 자신의 진정성을 보이려는 노력입니다. 
예수 앞에서 삭개오의 진정성은 통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알아봅니다. 사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어떤 기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곧바로 그를 알아보고 이름까지 부르며 그에게 뽕나무에서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눈빛만 보아도 진실이 통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를 부를 뿐 아니라 삭개오의 집에 묵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집에 묵겠다는 것은 그저 밤이슬 피할 숙소로 사용하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집에 묵겠다는 것은 한 지붕 아래서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식탁을 같이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받지 못할 죄인과는 식탁을 함께 하지 않는 것이 통념인데, 예수께서는 그 통념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삭개오는 자신이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의혹이 적어도 예수에게는 한 점도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예수께서 ‘어서’ 내려오라고 하는 말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왔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병아리가 연약한 부리로 안에서 쪼아대는 순간 어미 닭이 단단한 부리로 밖에서 쪼아댈 때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순간과 같은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지닌 통념과 편견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 지금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말했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19:7) 예수와 삭개오의 만남, 더욱이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묵게 된 사건은 통념에 비춰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통념 때문에,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을 두고 충격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였을까요? 이들의 예수의 적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주변에 운집해 그 말씀을 들으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이 끼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고자 해도 뚫고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모여 있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이들 때문에 예수를 곧바로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결국 자신의 진정성과 지혜로 예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들은 그 사건에 당혹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을 방해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결코 그런 저의를 갖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통념과 편견에 매여 있는 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길, 구원의 길에 방해가 되는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빠져 있는 잘못입니다.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실제로 차별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대상화하고 배제합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스스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심의 여지 없이 누군가를 차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차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별 언행을 경계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차별행위를 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단에 빠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장면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통념과 편견에 어긋나는 사태를 보고 당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과 마음이 통한 예수와 삭개오에게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통념과 편견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난 삭개오는 이제까지의 삶과는 전적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삭개오는 구체적인 행위의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삶의 전환을 드러냅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을 속여 갈취한 것이 있다면 네 갑절로 갚아 주겠다고 다짐합니다. 통상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재물로 자선할 경우 재산이나 수입의 20%가 권고되었고, 부당하게 갈취한 돈을 되돌려 줄 때에는 1/5을 더 보태주어야 했습니다(레위 6:1~5). 그러나 도둑질했을 경우 네 배의 배상 즉 3배의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삼하 12:6, 나단과 다윗의 대화). 이런 사정으로 보아 삭개오는 아주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돌이키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삭개오에게는 자기가 가진 재산만으로는 누릴 수 없었던 진정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그 진정한 삶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림으로써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진정한 삶은 자기만의 만족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온전한 관계를 회복 가운데 누리는 삶입니다. “소유와 밀착되지 않은 회개란 있을 수 없다.”( 『갈릴래아의 예수』, 215)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 삶의 결단을 내린 삭개오에게 예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9~10) 삭개오의 집에 이른 구원,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관계가 회복된 사건을 뜻합니다. 그 안에서 각각의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삭개오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통념과 편견이 무너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통념과 편견이 무너진 세계 안에서 누구나 자유롭고 공평하게 저마다의 삶을 누리게 되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앞에서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들의 의미를 집약하는 결론이자 동시에 누가복음의 핵심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은 쉽사리 보아도 자신의 잘못은 잘 보지 못합니다. 또한 멀리는 보아도 가까이는 잘 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기도 합니다. 모른다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인권을 옹호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상의 삶은 그와 괴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통령은 비판할 수 있지만 사장은 비판하지 못한 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보호의 본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자기만의 편견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며,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삶의 방식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가 구원을 누리게 된 것은, 진정한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삶의 방식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통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서 그 진정한 갈망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진실을 새기며,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는 통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최형묵]]></author>
			<pubDate>Sun, 06 Sep 2026 14:28:2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alrim.net/?kboard_redirect=3"><![CDATA[설교]]></category>
		</item>
			</channel>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