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칼럼] 충남 인권조례, 복원되어야 한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8-09-05 13:37
조회
20
대전일보 칼럼 03 / 2018년 9월 5일자

충남 인권조례, 복원되어야 한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올해 초 충남인권조례가 폐지되었을 때 착잡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보편적인 인권의 규범을 따라 실생활의 영역에서 인권을 지키고자 한 조례가 의회의 다수를 점한 정당의 주도로 폐지되는데 이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우선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웠다. 더더욱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충남인권조례의 폐지가 일부 기독교인들의 질긴 요구에 따른 결과였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같은 신앙을 갖고 있다는데 어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고, 또한 기독교 내부에서도 건전한 토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인권조례에 반대한 기독교인들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이 동성애를 조장할 뿐 아니라 그것이 성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몇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주장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인권보호의 지표가 되어 왔는데, 충남인권조례는 반대의견에 부딪혀 폐지된 첫 사례가 되었다. 줄기차게 그 폐지를 주장해왔던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개가를 올릴 만한 사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성서를 근거로 하여 성적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는 성서해석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함축하는 것으로, 마땅히 성서해석은 그 자체의 역사적 맥락과 더불어 오늘의 보편적 가치관을 함께 고려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그 점에서 흔히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성서의 구절들이 과연 동성애를 정죄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거리이다.
예컨대, 성서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창조 이야기에서 남녀를 축복한 것은 특정한 성적 지향을 정죄하는 것과는 상관없고, 오히려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뤄지는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그 도시들이 멸망하게 된 원인이 동성애에 있는 것으로 흔히 곡해되고 있지만, 그 도시들의 진짜 범죄는 나그네들을 환대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것을 성서 자체가 증언해주고 있다. 남자들끼리 동침을 금지하는 성서 레위기의 규정(18:22)은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 성서구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구절이라도 성서가 금지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성서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할까? 그렇다면 같이 언급되고 있는 각종 음식물 금기 규정과 사제의 자격 규정들이 오늘날 기독교에서도 그대로 준수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당대의 시대적 관념의 한계 안에서 망측한 것으로 여겨진 행위의 하나를 예로 들고 있는 것일 뿐이다. 신약성서의 바울 서신에도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문맥과 당대의 역사문화적 상황을 헤아려 보면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성적 착취 또는 성폭력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지 특정한 성적 지향 자체를 정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예언자나 예수에게서는 동성애를 정죄하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다. 사회적 편견에 따른 장벽을 거부하고 그 편견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성서적 가르침의 핵심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가르침과 오늘의 보편적 인권의 규범을 함께 생각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의 결과는 시민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차별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 정치세력을 확실히 심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충남 인권조례는 복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충남도의회는 건전한 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제대로 된 인권조례의 복원을 서둘러 주기를 바란다. 차제에 단지 정치적 다수 논리에 의해 보편적 가치 규범에 반하는 정치적 선택과 결정을 하는 일이 얼마나 경솔한 짓인지 확실히 교훈을 새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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