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회주의 혁명과 정의: 사회정의론의 급진적 재구성을 위한 탐색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02-07 15:12
조회
255
종교와 맑스 포럼 제2차 학술대회 / 2023년 2월 6일(월) 9:00-18:30 / 서울 새길교회

사회주의 혁명과 정의: 사회정의론의 급진적 재구성을 위한 탐색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기독교사회윤리학)


I. 시작하는 말


사회적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된 매우 오래된 가치기준으로서 정의 개념은 근대세계에 들어서면서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각자에게 정당한 몫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정의의 의미는 오랫동안 기왕에 주어진 조화로운 질서 안에서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 정의 개념에서 벗어나 평등한 인간들이 스스로 구성하는 사회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지면서 정의는 명확하게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것은 곧 평등한 인간들의 통합된 의지에 따라 구성되는 사회 안에서 권리와 특권, 부담과 고통을 분배하는 원칙으로서 정의의 개념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Johnston, 2011: 9, 268-269). 이른바 ‘사회정의’ 개념의 형성이다. 오늘날 정의는 곧 사회정의를 의미할 만큼 일반화된 이 개념은 사실상 근대에 들어 비로소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근대적 사회정의 개념은 인간 스스로 정의로운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역사적 운동으로서 사회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회에 대한 인식은 근대의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격랑, 그리고 이와 더불어 발전해온 계몽주의 사상과 그 사상의 급진화 현상 가운데서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 스스로 형성하는 사회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사회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들간의 연대를 강조하는 새로운 경향은 마침내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수렴되었다. 사회주의는 새롭게 형성된 사회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방법을 함축하는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바로 그 점에서 사회주의와 정의는 의심의 여지없이 긴밀한 상호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자 하는 역사적 운동으로서 사회주의를 종합하고 주도한 마르크스(Karl Marx)는 정의의 개념을 건설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이 입장은 초기 저작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1843)에서부터「고타 강령 초안 비판」(1875) 에 이르기까지 일관된다. 그러기에 그 점을 무시하고 단순히 마르크스가 사회정의를 지지한 것으로 말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Johnston, 2011: 284).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계급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곧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통상적인 이해에 비춰볼 때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의 입장은 다양한 사회주의 조류 가운데 하나로만 간주할 수 없는 역사적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 가운데 차지하는 역사적 무게감을 감안할 때 마르크스의 그 입장이 갖는 의미를 캐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의 핵심은 바로 그 문제를 해명하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사회정의 개념의 요체를 확인하고, 그것과 사회주의 운동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사회정의 개념의 형성과 사회주의 운동의 긴밀한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의 제창자로서 마르크스가 정의 개념을 거부한 뜻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캐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입장이 갖는 의미를 분명히 해명할 수 있다면 오늘날 사회정의의 개념을 보다 철저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지평을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I. 사회의 발견과 사회정의 개념의 형성


중세와 근세의 분기점이 되는 주권국가의 탄생과 부르주아계급 주도의 정치혁명, 그리고 이어진 산업혁명 등으로 확립된 자본주의 질서는 기존의 세계관을 여러 측면에서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회’의 실체에 대한 발견과 인식이었다(Polányi, 2009: 337이하). 사회에 대한 발견은 ‘국가’ 또는 ‘시장’과는 구별되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주권국가가 탄생하고 한 동안 근대의 초기 사상가들은 국가를 하나의 통일된 실체로 인식하였으며, 자본주의 경제가 자리를 잡을 즈음에는 시장을 중요한 실체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거기에서 나아가 그와 구별되는 사회에 대한 인식은 국가의 법령과 명령에, 그리고 시장의 경제 법칙에 내맡겨질 수 없는 인간사회의 실체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 그것은 마르크스에게서 “인간의 본질은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Marx, 1991: 186)*1)이라는 명제로 집약되었다.
사회에 대한 발견은 근대적 격변의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도달한 것이었다. 이미 선구적 계몽주의자들에게서 사회에 대한 인식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상 국가와 동일시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많은 계몽주의자들이 사회계약론을 주장하였으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 국가의 기원과 성격에 관한 것이었지 국가와 구별되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구별된 사회에 대한 인식은 부르주아적 세계의 확립과 동시에 그 균열이 발생하는 지점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하였다. 흥미롭게도 프랑스 혁명에 이어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의 평등권 보장과 관련된 문맥에서 ‘사회’라는 주어가 등장한다(장석준, 2013: 24). 프랑스 혁명이 만인의 ‘자유’를 제창하였지만 그것이 사실상 재산을 소유한 부르주아의 자유에 한정되는 한계를 지닐 수 있다고 감지되는 순간 혁명의 정신은 그 자유의 실질적 요건으로서 ‘평등’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보호하는 사회를 인식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 혁명의 또 하나의 가치인 ‘우애’의 의미가 사회적 연대의 이상으로 강조되었다(Eley, 2008: 51).
프랑스 혁명 당시 평등파에 의해 촉발된 그 인식(장석준, 2013: 25-29)은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노동계급의 등장과 함께 더욱 뚜렷해졌다. 생시몽(Saint-Simon)과 로버트 오언(Robert Owen) 등은 훗날 사회주의로 불리게 될 새로운 사조의 선구자였다. 생시몽은 18세기 계몽주의가 자연법칙을 밝혔다면 19세기는 사회법칙을 연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의 발견을 고무하였다(장석준, 2013: 39). 오언에게서는 비로소 사회가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언은 개인의 삶을 자신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기존의 기독교 및 자유주의의 인간관을 허구라 보며 모든 사람의 인격과 인생행로를 결정하는 ‘사회’라는 차원을 강조하였다. “개인과 사회 전체, 개인적인 이득과 공공선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연관성”을 주목한 것이다(장석준, 2013: 39-40). 앞서 말한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은 바로 그와 같은 선구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였다. 그 연관성에 대한 인식은 사회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에 이르렀다. 폴라니(Karl Polanyi)가 말하듯, 사회 안에 묻어 들어 있던(embedded) 경제생활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이르러서는 사회를 파괴하는 효과를 지니게 되었을 때 사회에 대한 인식은 뚜렷해졌다(Polányi, 2009: 337-369). 이에 따라 사회주의자들은 시장경제의 법칙에 인간을 맡겨두는 것도 아니며 국가의 법령과 명령으로 후퇴하는 것도 아니라 사회라는 실체를 강화하고 재구성하는 과제를 제창하게 되었다. 자본도 국가도 아닌 사회가 인간 문명을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사회의 자기 통치가 그 대안이었다. 그래서 ‘사회주의’가 되었다(장석준, 2013: 42). 여기서 사회주의는 개인의 해방이라는 자유주의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 ‘경쟁하는 개인’이 아닌 ‘연대하는 개인’이 실질적인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의 재구성을 지향하였다(Eley, 2008: 41).*2) 로버트 오언 등 그 선구자들로부터 마르크스로 이어져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로 일컬어지기까지 그 운동은 새로운 근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요컨대 사회의 발견은 인간 스스로 그 사회적 세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그 사회를 형성해나가는 인간 모두가 동등하다는 인식을 동반하였다. 이 혁신적인 사고와 더불어 사회 안에서 일궈진 모든 부가 단지 개인의 생산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는 깨달음(아담 스미스, Adam Smith)이 결합되면서 근대적 사회정의의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Johnston, 2011: 9). 정의는 이제 신의 율법이나 자연법적 근거에 따라 위로부터 주어진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인간사회 안에서 스스로 형성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물론 정의라는 개념을 형성했던 오랜 신학적ㆍ자연법적 관념이 전적으로 배제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다. 서구 정신사의 맥락에서 볼 때, 신의 약속의 신실성으로서 그 백성의 온전한 삶을 보장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학적 정의(‘체다카’) 개념(Höffe, 2004: 20)이나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배분하는 원리로서의 고전적 정의 개념이 여전히 정의라는 개념 그 자체의 저변 동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형성하는 사회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정의는 갈등하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저마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원리로서 탐구되기 시작했다(Bloch, 2011: 93). 사회에 대한 인식에서 마침내 자본주의에 맞서 새로운 근대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운동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그 경향은 뚜렷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사회정의의 개념은 그렇게 이전 시대의 정의 개념을 대체하였다.


III. 사적 소유의 폐지로서의 사회주의와 정의


사회의 발견으로부터 이어지는 사회주의 운동의 등장과 더불어 근대적 사회정의 개념이 형성된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사회주의는 오늘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의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사회주의의 의미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가운데 이 글이 전제하는 사회주의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란,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반대하고 생산수단을 공유화함으로써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학설 및 정치운동”(브리태니카 백과사전), 또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경제의 협동적 운영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체제”(위키피디아)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르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반대해 사회적 소유 또는 공동 소유를 주장하고 시장 경쟁 대신 협동과 계획을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이념 및 운동이라 할 수 있다(장석준, 2013: 8).
이상의 일반적 통념으로 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 질적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둘을 엄밀하게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다. 예컨대 사회주의가 “사적 소유를 공산주의와 같이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조직화와 재화의 합리적 분배에 의해 평등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 개량 사상”(마토바 아키히로 외 편, 『마르크스 사전』)이라고 하는 경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질적 차이를 지닌다(장석준, 2013: 8). 이는 사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로부터 유래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두 개념을 동시에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사회주의보다는 공산주의를 선호했다. 1846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를 사적 소유의 철폐와 생산과 교환에 대한 공동의 규제를 통해 “현재의 상태를 제거하는 실질적인 운동”으로 정의하고 있으며(Marx & Engels, 2019: 78), 1848년「공산주의당 선언」에서는 전통적인 소유관계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관념과도 가장 근본적이고 급진적으로 단절하는 공산주의 혁명을 제시한다(Marx & Engels, 1991: 397-433). 여기서 ‘사회주의’ 대신 ‘공산주의’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1875년 「고타 강령 초안 비판」에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생산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로 정의한다(Marx, 1995: 375; Michael et al. 2018: 38). 여기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로 나눈다. 낮은 단계에서는 노동에 따라 몫을 분배하고, 높은 단계에서는 필요에 따라 몫을 분배한다(Marx, 1995: 375-377). 통상 전자를 사회주의로, 후자를 공산주의로 나누는 방식은 이런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로부터 그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예컨대 ‘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당’(Nazi)과 같이 그 개념이 완전히 오용된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오늘날 사회주의는 매우 폭넓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통용되는 예가 이른바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경우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제3인터내셔널 이전에는 스스로 사회민주주의자로 부르기도 했지만, 오늘날 그 개념은 사실상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과제를 폐기하고 복지자본주의의 관리 역할에 한정되는 경우에 통용되고 있다. 곧 사회보장에 호의적인 강령을 주장하거나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주장하는 경향에 통용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민주적 사회주의’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사실상 자본주의 체제를 용인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스스로 표방하는 경우이다(Michael et al. 2018: 9; 장석준, 2013: 10). 한편 사회주의는 실제 국가체제를 형성한 역사를 갖고 있고,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 또한 실존하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로 일컬어지는 그 경우 사회주의 체제라기보다는 사실상 국가자본주의의 한 형태라는 평가도 있거니와(김수행, 2012: 147이하), 사회주의 없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없는 공산주의라 일컬어지기도 한다(Rancière, 2021: 307-325). 이런 사실들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개념이 여전히 논쟁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역사적 운동으로서 사회주의의 일관된 성격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국가 및 시장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관계로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 사회를 형성하는 평등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성은 분명히 드러난다. 사적 소유에 기반한 자본주의와는 달리 공동 소유와 분배를 지향한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이다. 물론 기존의 자본주의와 관련하여 그 성취 정도에 따라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로 구분될 수는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기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사회로서 불가피한 성격이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이행하게 되면,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 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Marx, 1995: 375-377)
그 사회는 부의 공평한 분배, 곧 경제적 평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여긴 것은 부의 불공정한 분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주의가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그리고 소외된, 무의미한 노동으로 만들기 때문이며, 인간을 정신적, 육체적 불구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외된 노동의 지양으로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사유 재산의 철폐로서 공산주의를 말한 것은 그것이 소외된 노동의 필연적 귀결이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사유 재산의 철폐이며, 인간소외의 극복이고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본질의 회복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적 존재, 곧 참으로 인간적인 존재로의 인간회복이며, 이전까지의 발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완전하고 의식적인 회복이다. 공산주의란 충분히 전개된 자연주의로서 휴머니즘이며, 충분히 전개된 휴머니즘으로서 자연주의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해온 모순의 참된 해소이다. 실존과 본질, 대상화와 자기확신, 자유와 필연, 개인과 유 등등 사이에 존재해온 투쟁의 참된 해소이다. 공산주의란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곳이며, 스스로를 해답으로 의식하는 사회이다.”(Marx, 1987a: 84; 이 인용문은 Fromm & Popitz, 1983: 46-47에서 재인용)

이와 같은 사회에 대한 전망과 함께 마르크스가 말하는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묘사를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형태에 있어서 인간은 “사냥꾼이거나 아니면 낚시꾼이거나 양치기 혹은 비판적인 비평가이며 그 누구든 자신의 생활수단을 잃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배타적인 활동 범위를 갖지 않고, 오히려 각자가 좋아하는 부문에서 자신을 육성할 수 있으니 여기서는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조절하며, 그 결과 나는 오늘은 이것을 또 내일은 저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사냥꾼, 낚시꾼, 양치기 혹은 비평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즐거움을 느끼는 대로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는 비평을 할 수도 있다.”(Marx & Engels, 2019: 72-73)
사적 소유의 폐지를 통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유적(類的) 존재로서 인간의 온전한 성취를 지향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은 사회정의의 개념을 형성하는 계기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그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었다(Bloch, 2011: 350). 그 정의는 어쩌면 성서에서 기원하는, 인간 실존을 보장하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것으로서의 정의(체다카) 개념에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IV.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와 정의를 초월한 사회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3) 이는 사적 소유가 폐지된 이후 사회주의의 높은 단계 곧 공산주의 사회에서 실현될 정의의 원리를 함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를 정의의 개념으로 말하지 않는다(Buchanan, 2019: 140). 오히려 공산주의는 자유, 정의 등 모든 사회 상태들에 공통되는 영원한 진리들을 철폐한다고 말한다(Marx & Engels, 1991: 419). 더 구체적으로 ‘온전한 노동 수익’이라든지 ‘평등한 권리’라든지 ‘공정한 분배’ 등이 일정한 시기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그 낡아빠진 표상들이 교리처럼 부여되는 것의 정당성을 부정한다(Marx, 1995: 377; Douzinas, 2021: 156).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부여하는 원리로서 정의의 개념은 권리의 개념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데, 마르크스는 늘 그 점을 주목하며 부르주아 사회의 권리 개념을 비판함으로써 부르주아적 정의 개념을 거부한다(이종은, 2015: 618). 정의라는 개념 자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부르주아적 정의 개념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에서 그 입장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모든 형태의 예외적인 해방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가하면서, 부르주아 공화제 안에서 본격화되는 근대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다룸으로써 부르주아적 권리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마르크스가 주목한 근대사회의 모순은,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민(公民)과 시민사회의 성원으로서 사인(私人)간의 분열”로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적 보편적 인권 개념이 이러한 분열을 미봉하는 것으로 보았다(최형익, 2005: 62-63; 2010: 287). 마르크스는 “왜 시민사회 구성원의 권리가 인권이라 불리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공민권과 구별되는 인권이 시민사회 구성원의 권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 말해서 인간 및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이기적 인간들의 권리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았다(Marx, 2021: 51). 이를 다루는 데서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을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부르주아적 권리에 지나지 않는 보편 인권의 허구성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다. 특별히 인권선언이 중요하게 표방하고 있는 자유의 권리가 지니는 보편적 권리로서의 허구성, 아니 부르주아적 권리로서의 실체성을 비판한다.

“자유의 인권은 인간과 인간의 결합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분리에 기초를 둔다. 그것은 분리의 권리이고, 자기 자신으로 철수한 편협한 개인의 권리이다. 자유권의 실천적 적용이 사적 소유권이다. ... 사적 소유의 인권은 타인과 관계없이, 사회와 독립적으로, 그의 재산을 마음대로 향유하고 그것을 처분할 권리, 즉 사욕(私慾)의 권리이다. 그 개별적 자유 및 자유의 응용이 시민사회의 토대를 형성한다. 시민사회는 모든 인간이 타인 속에서 자유의 실현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제한을 발견하도록 한다.”(Marx, 2021: 52-53)

부르주아적 권리 개념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른바 사회정의 개념이 지향하는 사회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동시대의 관념적 허구를 파헤치고 사회주의자의 지향을 분명히 하였다.

“역사의 최초의 행위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을 제조하는 것 곧 물질적인 삶 자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역사적 행위이자, 모든 역사의 근본적 조건이다. ... 삶의 생산이란 곧 노동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생산하는 것이며 동시에 증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생산하는 것이다. ...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에 대한 관계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관계로서 나타난다.”(Marx & Engels, 2019: 63, 66)

여기서 마르크스는 사회적인 생산력과 관련된 삶의 물질적 조건들을 우선시함으로써 허구적 보편성과는 다른 실질적 조건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부르주아적 권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한정된 추상적인 권리 개념의 허구성을 넘어 구체적인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 실질적 조건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뜻한다. 마르크스가 이해한 부르주아적 권리 개념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가진 자는 잉여가치를 자기 것으로 삼을 뿐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할 권리가 있다. 자본가는 스스로 노동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본에서 생긴 이익과 재산에서 생긴 이자와 배당금에서 수입을 가져가는 계급으로서 타인의 노동에 의존해 살고 있다(이종은, 2015: 618-619). 부르주아적 권리 개념이 보편적 인간의 권리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와 같은 부르주아적 권리에 따른 정의의 허구를 넘어서는 대안으로서 마르크스의 관심은 「고타 강령 초안 비판」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바로 이 명제가 등장하는 맥락에서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공산주의 사회의 첫 단계에서 배분의 원칙은 ‘노동의 수익’에 따르며, 이는 곧 ‘각자의 생산에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각각의 생산자가 사회에 준 것을 사회로부터 돌려받는 것을 뜻한다. 물론 여기서 생산수단의 보전을 위한 배상분, 생산 확대를 위한 추가분, 사고와 재해 등을 대비한 예비기금, 그리고 생산에 직접 속하지 않는 일반 관리비용, 학교나 위생설비 등 공동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비용,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한 기금 등은 공제된다. 엄밀하게 말해 생산자는 그가 기여한 것과 동일한 사회적 생산물을 돌려받는 것은 아니지만 공제 후 그의 몫은 기여한 것에 비례한다. 이로써 부르주아 사회에서 인정된 잉여생산물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는 사라진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은 ‘각자에게 기여에 따라’ 배분한다는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보았다(Marx, 1995: 373-375; 이종은, 2015: 619-620). 적어도 공산주의의 첫 단계, 흔히 사회주의 사회로 불리는 그 단계에서는 등가교환의 원리가 작동한다. 즉 “어떤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은 다른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과 교환된다.”(Marx, 1995: 376)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와 같은 진보에도 불구하고 그 원리에 의해 보장되는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부르주아적 제한에 들러붙어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생산자의 권리가 그의 노동 제공에 비례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즉 평등의 요체는 평등한 척도인 노동으로 측정된다는 데 있다. 문제는 각 사람의 능력의 차이로 노동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시간 동안 노동할 수도 있다. 노동이 척도의 역할을 하려면 균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노동의 척도에 따른 평등한 권리는 사실상 불평등한 노동에 대한 불평등한 권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모든 권리가 다 그렇듯이 내용상 불평등의 권리이다.” 마르크스는 이 폐단을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방금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단계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으며, 권리는 사회의 경제적 형태와 이 형태가 제약하는 문화 발전보다 더 높은 수준일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Marx, 1995: 376-377).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 이르러서야 그 폐단이 극복될 것으로 보았다.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개인들의 전면적인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넘치고 난 후에, 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Marx, 1995: 377)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 기여에 따른 배분의 원칙으로서 정의 개념이 유효했던 반면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 조화와 생산성이 증대되면 기여에 따른 분배의 원칙으로서 정의 개념은 사실상 무의미하게 된다. 분배 정의의 원칙은 결핍의 환경에서 사회생활에 일정한 역할을 하는 규정적 원칙, 곧 희소성이 있는 사회에서 각 개인들이 자신의 몫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데, 생산성이 높아져 기본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 충족되는 사회가 되면 그 원칙이 요구되는 상황이 종료된다는 뜻이다(Buchanan, 2019: 67-68; 이종은, 2015: 621).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를 넘어 ‘정의를 초월한 사회’를 전망한 셈이다(Rawls, 2003: 4).


V. 정의를 초월한 사회,
당위적 요청인가 역사적 기술인가?


정의의 원칙이 요구되는 상황이 종료되는 사회에 대한 전망은 당위적 요청일까, 아니면 역사적 기술일까?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적 권리 개념, 나아가 낡은 시대의 도덕적 또는 법적 개념을 거부하고 역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역사적 진보의 과정을 기술하고자 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과학적 사회주의의 지향을 분명히 한 것은 그 태도를 말해준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실재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생산력과 생산과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근거하여 진보한 역사적 전망을 기술한 것이다(이종은, 2015: 623-624; Buchanan, 2019: 130, 144).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의 우월성과 함께 인간 역사의 진보를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이다. 인간 역사를 필요를 충족하는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공산주의는 바로 그 점에서 우월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정의롭지 않거나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비난받고 공산주의가 정의의 원칙이나 다른 도덕적 이상에 더 잘 부합하기 때문에 우월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지 못한 반면 공산주의는 필요를 더 만족시키기 때문이다(Buchanan, 2019: 79-80). 바로 그 점에서 ‘각자에게 능력에 따라’에서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라는 배분의 원칙은 공산주의 사회의 규범적인 원칙이라기보다는 그 사회가 성취하게 될 현실을 기술한 것이다(이종은, 2015: 624; Buchanan, 2019: 144).
그러나 문제는 분배의 원칙으로서 정의와 권리를 필요로 하는 사회로부터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로의 이행은 곧 혁명을 의미한다는 점이다(Douzinas, 2021: 156).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질서에 대한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전복 또는 한 사회의 지배집단의 교체를 의미하는 혁명(Michael et al., 2018: 237)은 마르크스에게서는 “전통적인 소유관계들과의 가장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단절”을 의미한다(Marx & Engels, 1991: 419). 그 혁명은 결과적으로 이전 사회와의 근본적 단절이 되겠지만, 일련의 과정 곧 이행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초안 비판」에서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는 정치적 이행기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Marx, 1995: 385). 그것은 이전의 소유관계와 계급관계가 저절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Buchanan, 2019: 170). 이로부터 국가와 혁명에 관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고 그것은 훗날 실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레닌(Vladimir I. Lenin)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지만(Lenin, 1988), 그것은 또 하나 중대한 논제이기에 여기서는 정의 및 권리 개념과의 관계 안에서 혁명의 의도성의 문제에 관심을 한정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혁명이 기존 사회관계를 폐지하는 의도적 실천행위에 해당한다면 그 동기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어떤 도덕적 요소가 포함되는지 아니면 엄격하게 과학적인 것으로 해명되는지 하는 문제이다(Buchanan, 2019: 227). 마르크스는 혁명의 동기로서 정의나 어떤 도덕적 기준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것은 그 정의나 권리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에서뿐 아니라 그 개념에 매인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애초에 기존의 소유관계에 매인 개념일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주의 분파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로 혼란이 초래된다고 보았다(Marx, 1995: 374; Buchanan, 2019: 180). 마르크스가 혁명의 동기로 주목한 것은 계급적 이해관계였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그 모순들이 심화되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집중하게 될 때 그 계급은 혁명적 행동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회는 풍요롭게 되지만 오히려 더욱 극심한 빈곤에 처하는 역설에 직면한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의 전복을 위해 나선다는 것이다(Marx & Engels, 1991: 411-412; Buchanan, 2019: 178). 비단 프롤레타리아트에게만 아니라 그 계급적 이해관계는 항상 혁명에서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18세기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 마찬가지였다. 마르크스는 물론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차이에도 주목하였다. 소수의 혁명적 계급으로서 부르주아가 다른 계급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특수한 이익을 보편적 권리로 표방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면, 다수를 이루게 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권리와 정의에 관한 모든 핑계를 벗어던져버릴 수 있다고 보았다(Buchanan, 2019: 179).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입장은 생산력과 생산과정의 기초 위에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특정한 역사적 국면을 분석하고 기술하는 데서 마르크스의 그 의도는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자본』(1859)을 저술하는 데서 그 열정은 응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에게서 과학적인 방법과 도덕적 동기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마르크스에게는 과연 투명한 과학적 방법만이 전부일까? 생산관계에 조응하는 사회관계와 의식의 형태에 관한 그의 지론, 또한 더불어 부르주아적 도덕 관념의 허구성에 대한 비판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그러한 방법을 추구하며 다가올 사회를 전망하는 동기를 형성한 데 이미 인간역사가 성취한 정신적 유산과 무관할 수 있었을까?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이다.”(Marx, 1991: 189)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의 결론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를 함축하는 이 명제부터 바람직한 세계에 대한 이상이 그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소외 현상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종종 후기의 마르크스에게서 이 개념들은 폐기된 것처럼 여기는 견해도 있지만*4) 유적 존재 개념과 소외 개념은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예컨대 『요강』(1857~1858)에서는 자본주의 경제분석과 소외론이 결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명백하게 유적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구절들로 가득 차 있다(Marx, 1977: 365-370). 『자본』에서는 유적 존재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반면 소외론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상품 물신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보는 바와 같다(Marx, 1987b: 89-103; Buchanan, 2019: 49). 『자본』에서는 또한 경제적ㆍ정치적 제도에 적용하는 도덕적 원칙이 배제되어 있지 않다. 그는 자본주의를 대신하게 될 “더 높은 형태의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들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이 지배적인 원칙을 형성한다.”고 말한다(Marx, 1987b: 672; 이종은, 2015: 622). 한편 『경제학ㆍ철학 수고』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유적 존재로부터의 인간 소외와 공산주의에서의 유적 존재의 실현을 대비한다(Marx, 1987a: 54-68; Buchanan, 2019: 53). 이는 단지 역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엄정한 관찰과 분석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이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부연하면 자본주의가 착취적이라는 점, 자본주의는 하나의 공동체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점, 자본주의가 비인간적인 제도이며, 왜곡된 노예제도 형태라는 마르크스의 비난은 도덕적 또는 규범적인 개념들에 의존한다(Buchanan, 2019: 228). 비록 정의와 권리 개념을 근거 삼아 그렇게 비판하지 않고,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그것이 동기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마르크스가 스스로 도덕적 관념 자체를 떨쳐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저작 곳곳에서 드러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탄식과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로서 자본가에 대한 묘사(Marx, 1987b: 273; Buchanan, 2019: 108)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도덕적 내지 윤리적 동기라는 면에서 계몽주의 유산에서 비켜 서 있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망, 그리고 인간을 자기 자신과 자연, 역사의 주인으로 보는 비전에 이끌렸다. 그는 어떤 경우든 노예화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Kamenka, 1985: 17, 30-31; Fromm & Popitz, 1983: 11; 南原, 2020: 178). ‘소유’를 넘어 ‘자유’를 온전히 구가하는 ‘자유의 나라’에 대한 열망은 그의 일관된 비전이었다(Marx & Engels, 1988: 1024-1025; Bloch, 2011: 311-313; 장석준, 2013: 54). 그의 실천과 사유에서 강력한 윤리적 동기가 배제되지 않은 것을 뜻한다. 그에게서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기술적(descriptive) 정확성은 바람직한 인간사회를 추구하는 규범적 적합성과 괴리된 것은 아니었다(Buchanan, 2019: 290).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도덕적 개념들을 거부한 것은 모든 의식의 형태가 당대의 지배적인 생산관계에 기초한 사회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노예제 사회에서 자유를 말하는 것과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의와 평등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많은 도덕적 개념들이 당대의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는 것으로 오용되고 있는 현실의 허구를 드러내고 그것이 단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 개념들에 매이기보다는 현실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고, 실현 가능한 세계에 대한 전망을 그리는 데 집중하였다. 자유의 나라로서 그 새로운 세계는 기존의 모든 도덕적 개념을 낡은 것으로 만들고 전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의식의 형태를 발전시키리라 전망한 것이다.


VI. 마치는 말


마르크스에게서 중요한 것은 ‘정의를 넘어선 사회’를 전망하면서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와 명확히 구별했다는 점일 것이다. 마르크스에게서 더욱 급진적인 것은 이른바 정의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조차도 그 안에서 제시되는 정의의 개념으로 그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 점이다. 여전히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안에서 그 관념을 반영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이해 또한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를 떠받치는 생산관계를 재구성하지 않고서는 이른바 정의가 함축하는 뜻을 구현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 여전히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마르크스가 말한 뜻을 투명하게 적용하자면 사적 소유관계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혁명을 이루는 것이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자신도 예견했고, 훗날 레닌이 고심했던 것과 같이 여전히 기존의 생산관계와 소유관계가 잔존하는 조건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의 과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 더욱이 오늘날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낙관적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여전히 강력한 생존력을 갖고 유지되고 있다. 생산력이 발전하는 것에 따라 새로운 생산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사적 소유의 폐지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의식의 형태가 발전하리라는 전망은 여전히 성취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 부는 무한히 확장되고 있지만 계급간의 격차와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예견에 따르면 혁명적 조건이 무르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 소유에 근거한 자본주의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생산력이 발전해도 저절로 정의가 보장되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 가운데 있는 셈이다. 이런 조건 가운데서 우리는 정의의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적 소유관계가 폐지되지 않은 조건 가운데서 다양한 정의 개념들이 경합하는 까닭에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그 개념을 거부한 또 하나의 이유이지만,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지양하는 혁명을 추구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통해 그 의의를 재전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블로흐(Ernst Bloch)가 지적하듯이 사회주의 혁명은 출발 동기부터 아래로부터의 정의를 내재한다. 그 개념이 의심스럽다 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으로 행해진 정의의 충격은 인간의 권리 개념을 새롭게 하였다(Bloch, 2011: 349-350). 권리 개념은 애초 소유권으로부터 발생하였지만, 피착취자, 피억압자, 박해받은 자, 무시당하는 자들에 의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채택되었다(Douzinas, 2021: 157-158). 그래서 블로흐는 “어디서든 간에 우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동일한 깃발을 들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저항의 권한으로 작용할 것이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비판의 권한 내지 비판의 의무로 활용될 테니까 말이다.”(Bloch, 2011: 312)
마르크스가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회와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를 구분하고,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로의 이행조건을 면밀히 검토 분석한 시도는, 오늘 여전히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강력한 생활력을 지니고 존속하는 조건에서 더욱 급진적인 정의를 모색하도록 하는 자극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환기해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조건을 탐색하는 방법과 실천의 철저성을 일깨워준다.

각주)
1) 또한 마르크스는 테제 10에서 “낡은 유물론의 입지점은 시민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라고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시장과 동일시되는 부르주아적 시민사회와 구별되는 인간사회를 주목하며 인간사회의 역사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마르크스의 ‘사회’에 대한 인식은 간단치 않은 논쟁점을 함축하고 있다. 우선 독일어에서 사회적인 것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두 가지 개념, 곧 gesellschaftlich와 sozial의 용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sozial은 프랑스혁명이후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서 독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수식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사회문제, 사회운동, 사회과학, 사회국가, 사회정책 등을 말할 때 그 형용사로 사용되었다. 이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sozial은 규범적 성격을 함축하였다. 마르크스는 현존하는 사회를 분석대상으로 삼을 때 주로 gesellschaftlich를 사용하였다.『자본』에서 ‘사회적’이라는 형용사는 거의 gesellschaftlich이다. 반면 sozial은 자본주의에 나타난 변화를 지칭하기 위해 한정적으로 사용하였다. 백승욱은 그 차이를 주목하며, 마르크스가 “das Gesellschaftliche라고 부른 장소는 이미 국가를 내적으로 포함하는 정치-경제적 공간이며, 그 해결로서의 정치 또한 외부가 아닌 공간 내부에서 사고되어야 하는 것”인 반면 “das Soziale의 공간은 오히려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효과의 장소가 될 것”이며 따라서 “gesellschaftlich에 비해 sozial은 ‘허구적’”이라 해석한다(백승욱, 2017: 227-298).
2) 마르크스에게서도 그와 같은 인식은 지속되었고 매우 분명하게 천명되었다. 김수행은 마르크스의 여러 저작에 근거하여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를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명명한다(김수행, 2012).
3) 이는 본래 19세기 사상가이며 운동가인 루이 블랑(Louis Blanc)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Johnston, 2011: 281).
4)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보는 견해로는 알튀세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Althusser, 2017, 68). 이와는 달리 마르크스의 전기사상과 후기사상이 긴밀히 얽혀 있다고 보는 블로흐는 대별되는 그 경향을 ‘난류’와 ‘한류’로 비유하기도 한다(Bloch, 2009: 5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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