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그리스도교 신학과 인권운동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12-09 15:10
조회
82
한국교회 인권운동 50년 기념행사
약한 것을 강하게 -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고후 12:9)
1차 인권포럼: “민주화에서 평등법 시대로 - 마지막 한 사람까지”
2023년 12월 7일(목) 오후 3시~6시 / 기독교회관 조에홀

그리스도교 신학과 인권운동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


1. 그리스도교 신학과 인권

1-1. 근대 서구사회의 정치적 혁명과 함께 형성된 인권의 개념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쉽사리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프랑스혁명 등 반종교적 성격을 띤 근대의 정치적 혁명과 그로부터 제기된 근대적 가치들을 선뜻 인정하기 어려웠다. 종교개혁이 결과적으로 근대적 인권의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신교 역시 근대적 정치혁명을 통해 등장한 세속적 인권 개념을 곧바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프랑스혁명에 이어진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지배 현상은 혁명과 그 가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그 현상은 하느님에 대항하는 자율정신의 오만한 반역의 결과로 인식되었다.
1-2. 그러나 그 어두운 일면 때문에 그로부터 제기된 인권과 여러 근대적 가치들이 전적으로 부정당할 수는 없었다. 그리스도교적 배경을 가진 많은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은 점차 인권 등 근대적 가치들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인권에 대한 태도가 결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나치 국가 및 소련의 스탈린 국가의 반교회적·반인권적 경험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교가 인권의 문제를 중요한 신학적 문제로 인식한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 규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결국 국제연합(UN)주도의 「세계인권선언」이 이뤄지게 된 것과 같은 배경에서였다. 에큐메니칼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인권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이뤄지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인권의 문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정되고 있다.
1-3. 신학적 차원에서 인권은 기본적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 이해된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지평 안에서 이해되는 신학적 인권의 개념은 성서의 여러 전거들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성서가 현대적 의미에서 인권을 제창한 것은 아니지만, 성서의 핵심 메시지는 오늘날 인권 개념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인권선언」의 형성에도 성서의 그 유산은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로 수용되었다.


2.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이해

2-1. 근대의 정치적 혁명과 함께 등장한 인권의 개념은 고대 민주주의의 이념을 근대 민주주의 이념으로 발전시키는 데서 핵심적인 다리 역할을 했다.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인간적 이상으로서 인권은 인간들 상호간에 그 원칙을 지킬 수 있을 때 보장된다. 여기서 인권의 상호인정은 정치적 구성 행위가 되고, 그 행위는 본성상 민주적인 정치적 구성 행위가 된다. 사람들은 상호간에 권리를 인정하면서 집합적 정치적 주체로서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내적으로 필연적인 관계를 이룰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가치규범으로서 역할을 한다.
2-2. 현실의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완벽할 수 없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집합적인 정치적 주체를 적법하게 인정하는 제도 안에서 일부 구성원이 배제되거나 무시되는 결함이다. 여기에서 특정한 정치공동체의 성원 내지는 시민의 권리와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보편적 권리로서 인권의 대립이 발생한다. 인권은 항상 이 지점에서 제기된다. 배제당하고 무시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에 대한 요구로서 인권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권은 현실에 존재하는 부당함을 드러내 주며, 이때 인권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가 된다. 특정한 정치적 주체의 권리에 대항하여 모든 인간의 권리로서 제기되는 인권은 그 자체로서 보편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여기서 그 인권이 스스로 보편성을 자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허구인 것은 아니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요구로 제기되는 인권은 기존의 특수한 집단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적 관계의 재편을 요구하고 따라서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바로 이 점에서 보편적 인권에의 요구는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는 규범적 효능을 갖고 있다.
2-3.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권 개념은 대략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구체성을 확보해 왔다.
2-3-1. 제1세대 인권에 해당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로서 인권(자유권적 기본권)은 서구 계몽주의의 유산으로서, 봉건적 체제에 대항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기본 내용으로 하여 개인의 생명권, 종교와 의사표현의 자유, 그리고 재산권 등을 그 구체적 내용으로 하고 있다.
2-3-2. 제2세대 인권에 해당하는 경제적·사회적 권리로서의 인권(사회권적 기본권)의 확장은 19세기 산업혁명과 노동운동의 성장으로 이뤄졌다. 계몽주의 이래 자유주의적 인권의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무산계급, 곧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발언권이 없이는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며 운동을 펼쳤다. 이로부터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물질적 조건의 보장을 요구하는 경제적·사회적 권리 의식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사회적 삶을 평균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생존과 생활 수단을 확보하는 데 그 핵심이 있으며, 이는 경제적 평등, 제반 노동의 권리, 교육의 권리, 어린이 및 청소년 복지, 기타 사회복지 권리 등을 구체적 내용으로 하고 있다.
2-3-3. 제3세대 인권은 문화적 및 연대의 권리로서, 그것은 애초 소수 민족의 자결권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되어 오늘날 보다 광범위한 소수집단들, 예컨대 소수 인종,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요구들을 함축하게 되었다.
2-3-4. 그러나 인권의 목록이 이상 예시한 것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되는 역사적 과정 가운데서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배제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당한 권리에 대한 요구의 목록 또한 계속 추가되고 있다.
2-3-5. 더불어 오늘날 인권을 둘러싼 쟁점 가운데 하나로 인권체제의 실효성 자체를 문제시하는 인식이 대두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는 그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사실상 특정한 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뜻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그 권리의 보장은 국민국가 안에 한정되었다.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하여 여러 국제적인 인권규약이 있지만, 사실상 그에 대한 보장은 국민국가의 주권적 결정에 좌우되고 있다. 따라서 “권리들을 가질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보편적 인권을 세계적 지평에서 어떻게 실효적으로 보장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과제를 함축하고 있다.
2-3-6. 근래에 이르러서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자연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권리에 대한 인식지평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인권 개념과 동물을 포함한 자연의 권리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과제가 제기된다. 애초 ‘인권’이 ‘인간의 자연권’이라 불렸던 것은 자연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권리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만, 그 발상을 참조한다면 자연적 질서 가운데서 인간만이 배타적 권리를 갖는지 여부는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 나아가 자연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해법은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


3. 인권의 신학적 정당성 – 성서의 진실, 복음의 진실

3-1. 구약성서의 창조론은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중요한 초점으로 하고 있다. 하느님에 의해 피조된 존재로서 하느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인간은 창조신학의 맥락에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먼저 ‘존재론적 차이’를 지니고 있고, 다음으로 ‘인격적 상응’의 관계에 있다. 존재론적 차이의 측면은 인간과 나머지 피조물들이 존재상 동일한 지위를 갖고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피조된 세계 안에서 인간 홀로 자족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인격적 상응의 측면은 피조된 실존성을 지닌 인간이 책임을 지고 성숙해지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책임적인 존재로서 창조주의 위임을 받아 활동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형상을 구현하며 창조주의 요구에 응답한다. 창조신학이 말하는 이 두 가지 측면은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피조물들과 연대 가운데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가운데서 책임적인 존재로서 하느님의 형상을 구현한다. 신학적인 의미에서 인간이 부여받은 하느님의 형상은 인권의 가장 근본이 되는 근거이다.
3-2. 그러나 역사적 현실에서 창조신학이 말하는 하느님의 형상은 온전히 구현되지 않았다. 창조신학에 의하면 하느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임무는 피조물들과의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피조세계를 보존하는 데 있다. 창조의 질서 안에서 각각의 생명체에게 각각의 생활공간이 할당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뭍에 사는 다른 동물들과 인간의 생활공간이 겹치는 데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그 갈등은 규율되지 못했고 인간은 공생관계를 넘어 다른 피조세계를 지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지배의 욕망은 다른 인간에 대한 지배의 욕망으로 확대되었다. 창세기가 전하는 형제살해 사건(창세 4:1~16)은 그 지배의 욕망으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마저 파괴되었다는 통찰을 담고 있고, 바벨탑 이야기(창세 11:1~9)는 그 지배의 욕망이 마침내 인간 자신을 신격화하고자 하는 데 이르렀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의 연대 속에서 삶을 온전히 일구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모두가 동등하게 책임적 존재로 삶을 영위하지도 못했다. 인간사회 안에 억압과 불평등이 생겨났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3-3. 성서는, 이런 역사적 현실 한 가운데서 하느님이 억압받는 백성을 선택하여 계약을 맺고 그들을 해방하였다고 선포한다.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억압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켰고, 그 백성과 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가장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생존과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인간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룬다는 성서의 근본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계약은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출애 23:6, 신명 15: 7~11), 외국인(출애 21:21~24), 나그네(신명 10:19), 과부와 고아(신명 24:19~22), 무산자(신명 14:27), 긴급보호대상자(레위 25:25, 신명 15:1~18) 등을 보살피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배제된 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근현대적 인권 개념은, 이미 성서에 그 오랜 기원을 갖고 있는 셈이다.
3-4. 하느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느님 앞에 선 주체로서 인간과 그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성서의 정신은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성육신 사건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육신 사건은 하느님이 몸소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으로 구체화되었다. 하느님이 인간과 동일시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의 삶을 긍정하고 그 삶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온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훼손된 하느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인간으로서(로마 5:14 이하), 죄 가운데 있는 인간들, 곧 하느님의 형상을 훼손당한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함으로써(마태 7:12, 19:19) 인간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존엄한 존재가 되는 관계를 형성할 것을 가르쳤다. 나아가 예수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부정당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였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쳤는가 하면(마태 25:40), 스스로 죄인과 가난한 자, 과부와 고아, 억압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3-5.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른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보편적 인권의 논리적 근거를 더욱 분명하게 확립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것을 역설하였다(갈라 3:28~29). 그 가르침이 보편적 인권의 근거를 확고히 한 것은, 그것이 인의론(認義論)에 근거한 까닭이다.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인정된다는 인의론의 핵심 요체는 일체의 업적주의를 배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 또는 업적에 의해 어떤 성원의 자격이 부여되는 사회적 질서 안에서는 항상 배제된 자들이 발생한다. 인의론은 그 현실적인 원리를 부정하고 있다. 이것은 가난한 자와 배제된 자의 권리를 옹호해온 성서적 관점이 단순히 시혜적 관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 인권의 확고한 신학적 근거가 된다.
3-6. 이상의 논거에 비추어볼 때 신학적 인권 개념은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현대적 인권 개념과 곧바로 상통한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엄성을 인정받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현대적 인권 개념은 성서의 신학적 인권 개념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된다. 물론 인간 자체를 최종적 목적으로 삼는 현대적 인권 개념에 비해 신학적 인권 개념은 그것을 뛰어넘는 신적 근거를 전제한다. 신적 근거를 전제하는 신학적 인권 개념은, 인간 자체를 최종적인 목적으로 하는 현대적 인권 개념이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다차원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는 한계와 함께 목적으로서 인간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당대의 여러 가치들을 절대화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한계를 지니는 데 반해, 그 한계를 넘어 보다 고양된 인권의 지평을 열어 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한국교회와 인권

4-1. “한국교회 인권운동 50년”을 이야기할 만큼 한국교회의 인권운동의 전통은 결코 빈약하지 않다. ‘50년’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가 구성된 1974년을 그 기점으로 삼고 있지만, 한국교회 인권운동은 비단 그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앞선 기원을 갖고 있다. 가깝게는 1960년대말 민중의 생존권과 정치적 권리가 제약받고 있던 시절 이를 위한 교회의 헌신의 역사가 있으며, 더 멀리는 3.1운동과 근대적 계몽운동 등의 역사를 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인권’ 또는 ‘인권운동’이라는 인식을 언제부터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늘날 인권운동이라 부르는 범주 내에 있는 여러 활동에 참여한 전통의 역사가 결코 일천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4-2. 그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인권에 대한 한국교회의 신학적 인식의 지표를 보여주는 유산 또한 적지 않다. 첨예한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인권 지향을 명백히 표방한 많은 역사적 선언서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 1974년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 등을 비롯하여 그때그때마다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 선포된 선언서들은 한국교회의 인권 인식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들이다. 더욱이 그 인권운동의 결과로 한국의 고유한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을 형성한 만큼 인권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바탕이 허약한 것은 아니다.
4-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인권’ 또는 ‘인권운동’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기대한 것에 비하면 그다지 풍요롭지 않다. 인권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역사적 유산과 신학적 바탕이 빈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에 대한 신학적 담론의 형성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 인권 인식은 여전히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다. ‘보편종교’라 할 만큼 인권 지향이 일반화되어 있고 풍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신학과 교회의 형편이 그러한 것은 뼈저린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4. 더욱이 보수적인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반인권’이 당연한 듯 통용되고 있다. 인권은 복음과 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상당히 유포되어 있다. 근래 성소수자의 권리를 둘러싼 논쟁에서 이러한 현실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을 회복하고 신뢰를 확보하는 과제 앞에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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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