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다시 5월을 보내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5-23 20:07
조회
2462
* <주간 기독교> 다림줄15번째 원고입니다(110523).


다시 5월을 보내며


얼마 전에 한 일간지로부터 날아온 설문에 응한 적이 있다. 이제는 486, 586이 되었지만, 이른바 386세대들에게 30년 전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이 오늘의 시점에서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파악하는 취지의 설문이었다. 30년 전 군사독재가 엄혹하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세상 많이 달라졌다. 경제성장도 가히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고 더불어 정치적 민주화도 진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전 상황에 비해 모든 것이 좋아진 것만은 아니다. 완전한 경쟁체제에 몰입해 있는 교육의 문제는 더 심각해진 것 같다. 노동 문제는 30년 전 노동자들이 인간적 대우마저 받지 못하던 상황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좋아진 것인지 회의적이다. 적어도 고용 불안만큼은 없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언제 일자리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불안감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코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비정규직이 50퍼센트를 넘어 60퍼센트 가까이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한 10년 꾸준히 개선되던 사회 여러 분야의 문제들이 근래 몇 년 사이에 악화된 경우가 많다. 한동안 인권 개선의 모범국가로 평가되었던 상황은 다시 인권 후진국의 상황으로 떨어졌다.


그런 현실을 확인하자면, 절로 탄식이 나온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열망이 뜨거웠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겪었는데,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싶어지면 정말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그렇게 목소리 높여 외쳤을 때, 훗날 자식들의 세대는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맞이하리라 기대했다. 개인적으로는 평온한 가운데 맞이하는 훗날 일상의 평안함을 머리 속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 후 자식들 세대에 이르러 어떤 면에서는 더 가혹한 상황을 맞고 있다니, 허망한 마음마저 든다.


‘젊은 시절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오, 나이가 들어서도 그 열정에 빠져 있다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속설이 있다. 젊은 시절 세상을 뒤바꾸겠다는 열정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는 이야기이며, 나이 들어서도 그 열정을 지니고 있다면 철이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세상과 인간이 변화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이제 그만 접어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 기대를 접어야 한다면 정말 비극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매 주일 인간 구원의 희망을 선포해야 하는 목사로서 존재 의의마저 위협받는 사태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렇게 절망하지 않는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지만,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지켜보자면 그래도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넘어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이 아름다운 계절 5월을 보내며 드는 생각이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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