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출애굽기 12] 홍해를 건너다 - 14:1~31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7-16 21:51
조회
2196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1 <출애굽기 읽기>  

2008년 4월 16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12 (7/16) 홍해를 건너다 (14:1~31)



1. 파라오의 추격(14:1~9)


열 번에 걸친 재앙 끝에 파라오는 마침내 그 고집을 꺾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로소 이집트 땅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파라오는 여전히 물러설 수 없었다. 사회적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민심이 흉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파라오에게는 아직 믿을 만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파라오는 자신의 군대를 믿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파라오는 병거를 동반한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한다. 결국 권력에 눈이 먼 파라오는 파멸로 치닫고 이로써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시며 당신의 뜻을 드러내려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친 바알스본과 비하히롯은 그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도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 지중해변의 어떤 지역이었을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14:13~18)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 탈출은 벅찬 감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라오와 이집트 군대의 추격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불안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불안의 도를 넘어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에 죽을 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불귀의 객이 되게 하느냐고 원망한다. 이집트에 있을 때 광야에 나가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나으니 내버려두라고 했던 사실까지 환기한다. 이집트에 있을 때 그렇게 이의제기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모세와 아론의 요청 때문에 강제노역이 더 심해졌을 때 그들을 두고 항의했던 것은 분명하다(5:21). 어쨌든 탈출 이후 첫 번째로 닥친 위기 앞에 이스라엘 백성은 심하게 동요한다. 대중은 기억이 없다던가? 당장 닥친 위기 앞에 동요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확실히 그렇다. 이것은 아직 서막에 불과하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백성을 안심시킨다.


3. 홍해를 건너다(13:19~31)


추격하는 이집트 군대와 불안에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의 천사가 자리를 차지하여 백성들을 보호한다. 구름기둥이 이집트 군대 진영을 가로막고 이스라엘 백성 진영 앞은 환하게 밝혀졌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바다가 말라 바닥이 드러났다. 또한 바닷물이 갈라져 좌우로 벽을 이루어 그 사잇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뒤늦게 쫓아온 이집트 군대는 바닷길에 들어섰다가 혼란에 빠졌고 결국 몰살당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이집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다는 그 바다는 홍해로 알려져 있다. 그 바다가 과연 홍해일까? 그것은 흥미꺼리이자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만일 오늘날 홍해 한가운데를 건넜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도달한 곳은 시나이반도(시내광야)가 아니라 아라비아반도여야 했다. 오늘날 수에즈운하와 통하는 해협을 건너야 시나이반도에 이를 수 있다. 그 해협 또한 홍해의 일부로 볼 것 같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바다를 홍해라 하는 데 하등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소 다른 묘사가 등장한다. “바다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다”는 표현과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는 묘사는 서로 다른 표현이다. 서로 일치되지 않은 묘사가 혼재되어 있다. ‘홍해’(Red Sea)로 번역된 히브리어 ‘얌숩’은 본래 ‘갈대바다’(Reed Sea)를 뜻한다. 오늘날은 수에즈운하 건설로 사라졌지만 그 이전에는 갈대가 무성한 바다가 있었다. 이집트 신화에는 태양신 라에게 반란을 일으킨 인간들이 진압당한 그 지역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초기 전승은 갈대바다 지역을 유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전승은 오늘날 홍해로 동일시하는 바다를 유념하게 되었을 것이고, 성서번역본이 모두 그렇게 번역을 함으로써 그 전승이 확고하게 굳어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그 사실성이 확인되어야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홍해를 걸어서 건너는 일처럼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강조하고 있다.



* 다음 주제는 “해방의 찬가,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출애굽기 15:1~2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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