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33] 라반의 속셈과 야곱의 꾀 - 창세기 30:25~43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7-11 21:56
조회
2747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33 (7/11) 라반의 속셈과 야곱의 꾀 - 창세기 30:25~43



외삼촌 라반과 조카 야곱 사이의 긴장은 야곱 이야기의 중심 주제를 잘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말한다. 본문에는 그 때가 언제쯤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약속한 기한 14년이 족히 넘었을 시점이었을 것이다. 7년을 일한 후 또 결혼하여 열두 명의 자녀를 두었으니 12명을 나을 기간이면 대략 12년, 그러니까 총 19년은 지난 시점이 아닐까? 서로 배다른 형제들이기는 하지만 순차적으로 낳았다고 한 것을 보면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시점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마도 충분히 계약기간을 상회한 기간을 외삼촌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야곱은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제발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야곱의 말은 그런 사정을 충분히 가늠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둠으로써 자신의 잇속을 채우고, 그런 외삼촌 밑에서 야곱은 부당하게 붙잡혀 있는 형국이었던 셈이다. 야곱은 여전히 결여된 존재이며, 부당하게 당하는 존재이다.

라반은 엉뚱하게도 음흉한 소리를 한다. “자네가 나를 좋아하면, 여기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네.” 도망자 신세나 다름없는 야곱을 받아주고 그 딸들까지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까? 그러나 약속한 기간을 넘겨가면서 붙잡아 두는 외삼촌이 좋았을까? 라반은 은근히 자신의 호의를 환기시키며 힘없는 조카를 붙잡아두려고 한다. 사실은 야곱이 복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야곱을 붙잡아둠으로써 자신의 재산을 불리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지만, 이미 시혜를 누린 사람이 꼼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붙잡아두려고 한다. 그리고 품삯의 결정권까지 야곱에게 주며 호의를 베푸는 듯이 행세한다. 권력이란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일 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라반은 진짜 권력을 행사하는 한 전형이다. 강압적으로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얼르고달래가며 붙잡아 둘 줄 알고, 게다가 자기가 이미 베푼 호의까지 환기시켜가며 ‘의리’를 저버리지 말라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니까. 그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해놓고도 머물고 떠나는 일, 그리고 머물 경우 그 보상을 받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도권을 야곱에게 주고 있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라반은 주도면밀하게 야곱이 계속해서 자기 수하로 머무르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야곱은 덫에 걸려 빠져나갈 수 없는 짐승 처지인 듯하지만, 그 사태를 뒤집을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한다. 일단 야곱은 야곱 나름대로 명실상부하게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신경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외삼촌, 아니 장인이 재산을 불린 것은 자기의 노고 덕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자신의 노동의 대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쉽사리 여기지 말라는 뜻일 터이다.

그런데 엉뚱한 제안을 한다. 단순히 노동력을 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자기 몫은 자기가 챙길 터이니 그것을 허락해달라고 한다. 상황이 예측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자의 입장에 있는 라반의 처지에서 선택은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장 대가를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야곱은 이미 자기 손안에 있기에 야곱의 어떤 묘책도 결국은 라반 자신을 위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예측했을 것이다. 야곱이 택한 방법은 일종의 ‘유전자공학’을 통한 양들의 번식이다. 얼룩진 나무 껍질을 이용해 얼룩진 염소와 양을 양산해내고, 그것들을 자신의 몫으로 챙기는 방법이었다. 무슨 ‘유전자공학’일 까마는, 고대인들은 그와 같은 주술적 효과를 믿었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직접 양과 염소떼를 치며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자기 몫을 챙길 수 있는 방법으로 야곱이 자신의 재산을 증식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며 관리 감독하는 처지에서는 손볼 수 없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자신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부를 늘리고자 하는 장인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한다. 야곱은 단순한 노동력의 대가 이상을 자신의 몫으로 챙길 수 있었고 부자가 되었다.

이제 게임은 끝난 것일까? 이어지는 뒷이야기는 누리고 부리는 자의 입장에 선 라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항상 당하는 자의 처지에 있는 야곱이 바라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 다음 주제는 “약한 자의 지혜, 야곱의 승리”(창세기 31:1~5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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