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34] 약한자의 지혜, 야곱의 승리 - 창세기 31:1~55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7-18 21:19
조회
2401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34 (7/18) 약한자의 지혜, 야곱의 승리 - 창세기 31:1~55


1. 라반의 집을 떠나는 야곱(31:1~21)


이 대목에 이르면 야곱과 라반의 갈등관계의 실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앞서 살펴 본 대로 야곱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합의한 대로 정당하게 자신의 재산을 늘렸다. 라반의 입장에서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가 빚어진 탓일까? 라반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 재산으로 야곱이 재산을 늘린 것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 라반의 태도 역시 예전과 달라졌다. 야곱 또한 마음이 편할 턱이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떳떳함에도 불구하고 장인과 그 가족이 마땅치 않게 여기니 편할 리 없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근심거리를 해결해주신다. 고향으로 떠나라고 하신 것이다.

야곱은 라헬과 레아 두 아내에게 동의를 구한다. 자신은 정성껏 장인을 위해서 일했으나 장인께서는 자신의 몫을 열 번이나 바꿔치기 할 정도로 부당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 사실을 아신 하나님께서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명하신다고 했다. 야곱의 두 아내 역시 그 사실에 동감한다. 라반의 딸들의 입장에서도 아버지는 부당했다. 자기들을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길 뿐 아니라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혼한 딸들에게 주어야 할 몫을 정당하게 주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야곱의 아내들은 전적으로 남편 야곱의 편이었다.

야곱은 라반이 전혀 낌새를 차리지 못하게 떠날 채비를 해두었다가 마침내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나간 틈을 이용해 자신의 가족과 모든 소유를 챙겨 라반의 집을 떠난다. 유목민들에게 양털을 깎는 일은 중요한 추수행위나 마찬가지이며 그 경우 통상적으로 온 가족이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긴다. 야곱의 가족이 라반의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딸들의 말처럼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라헬은 아버지가 무척이나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라헬은 친정집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낸다. 고대 근동에서 이 수호신상은 상속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상속자에게 대대로 물려지는 것이었다. 그 수호신상을 훔친 것은 자신들을 섭섭하게 한 아버지에 대한 화풀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야곱이 사실은 자기 아버지의 상속권자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 일까? 이야기 초반에 라반의 아들들이 등장하지 않다가 나중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애초 야곱은 라반의 상속권자로 간주되었는지도 모른다. 고대 근동에서 양자 상속은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야곱은 아내가 드라빔을 훔친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하여간 그렇게 야곱의 가족은 자신들을 부당하게 붙잡아둔 라반의 집을 떠난다. 사실상 탈출이다.        


2. 야곱을 추격하는 라반(31:22~42)


야곱의 가족이 밧단아람에서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가나안의 경계 길르앗 산악지대에 이르렀을 즈음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라반은 야곱을 추격한다. 이렛동안 길을 달려 마침내 라반은 야곱과 만난다. 양쪽에 장막을 편 채 각기 가족을 대표하여 라반과 야곱은 설전을 벌인다. 이 설전을 통하여 그간의 라반과 야곱의 관계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라반은 어른으로서 위신과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듯이, 그러나 강자로서의 위세 또한 숨기지 않으며 말한다. 어째서 말도 없이 자신의 딸들을 전쟁포로 잡아가듯이 그리 떠날 수 있느냐? 적어도 딸들, 그리고 손자들과 인사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느냐? 자네를 해치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해칠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있느냐? 이런 이야기들은 라반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그는 꿈에 하나님으로부터 야곱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터였다. 그 경고는 그간 라반의 부당함을 일깨우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 경고가 없었더라면, 그 자신의 부당함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라반은 자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라반은 분을 삭이며 자제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책잡을 것이 있었다. 자신의 수호신상을 훔쳐간 것을 두고 다그쳐 물으며 수색을 한다. 야곱은 그 사실을 몰랐기에 당당했다. 그것을 훔친 사람은 죽여도 좋다고까지 한다. 아마도 이 순간 라헬은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라헬은 낙타 안장 밑에 그것을 감추고 그 위에 올라타 달거리중이라 움직이지 못하노라고 말한다. 결국 라반은 수호신상을 찾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야곱을 궁지로 몰아넣을 단서를 얻지 못한다.

야곱은 더욱 당당해진다. 이제 화를 버럭 내며 장인 라반에게 따진다. 야곱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했고, 한결같이 장인 라반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인은 자신의 몫을 바꿔치기 해가면서까지 자신을 부당하게 대했다고 항변한다. 뿐만 아니라 장인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고 말한다. 양과 염소 떼 가운데 낙태시킨 일도 없고, 잡아먹은 일도 없고, 들짐승에게 잡아먹히면 자기 것으로 대신하고, 도둑을 맞으면 물어주는 등 다했다고 한다. 야곱의 이 항변은 당시의 관례(출애굽기 22:10~13 참조)를 뛰어넘는 것으로 라반이 야곱에게 부당하게 과한 책임을 물었다는 것을 말한다. “낮에는 더위에 시달리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낸 것, 이것이 저의 형편이었습니다.” 정말 절절한 항변이다. 스무 해를 한결같이 그렇게 보냈는데도 장인은 자기를 속이고 자기 몫을 부당하게 갈취했다고 한다. 만일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빈손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3. 야곱의 멋진 승리, 라반의 아름다운 패배(31:43~55)  


라반은 머쓱해졌을까? 그래도 끝까지 그는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은 야곱과 화해를 해야 했지만, 자신의 딸들과 그리고 손자들마저 자신의 소유라며 재삼 강조한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정당하게 해야 할 바를 다했기에 부당한 것이었지만 화해를 하자고 하는 판에 그 부당성을 계속 추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만난 장소에 돌무더기를 쌓아두고 맹세를 한다.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증거의 무더기), 히브리어로 ‘갈르엣’ 또는 ‘미스바’(망루)로 불리는 돌무더기를 사이에 두고 협약을 맺는다. 이 협약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자신의 딸들을 박대하지 말 것과 양편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이었다. 아내로 준 딸들에 관한 협약은 가족들 사이에 흔히 맺어지는 약속이었고, 경계에 관한 것은 부족 집단이나 나라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약속으로 히브리인들과 아람인들 사이의 후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다. 양편이 함께 식사를 나눔으로 그간의 갈등관계는 평화롭게 종결되었다. 야곱은 약자로서 노심초사하였지만, 그리고 그의 노심초사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몫을 정당하게 챙김으로써 승리자가 되었다. 라반은 복덩이 야곱을 붙잡아둠으로써 모든 것을 움켜쥐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움켜쥐려 했던 라반의 입장에서는 야곱의 몫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패배였다. 그러나 라반이 패배한 것일까? 그의 입장에서 패배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패배’였다. 그로 인해 공존과 공생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에서 강자의 그 ‘아름다운 패배’를 기대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 다음 주제는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창세기 32:1~3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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