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35]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 - 창세기 32:1~32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8-22 22:01
조회
2258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35 (8/22)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 - 창세기 32:1~32


1. 야곱의 귀향, 그러나 불안한 발걸음(32:1~21)


가진 것 없는 ‘둘째 아들’ 야곱의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형 에서와의 갈등과 불화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야곱은 오랜 도피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야곱에게 최고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여우와 같은 라반과 화해를 이끌어낸 야곱은 이제 호랑이와 같은 에서와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다. 야곱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야곱이 길을 떠나면서 곧바로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불안한 야곱의 심정을 나타내주는 역설적 반증이다. 집을 떠날 때에도 야곱은 천사를 만났다. 천사의 보호를 받고서야 길을 떠나고 되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야곱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천사를 만나 다소 안도감을 찾을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을 떨치기는 쉽지 않았다. 야곱은 매우 주도면밀하게 형 에서와의 대면을 준비한다. 에돔 벌 세일 땅에 사는 형 에서에게 심부름꾼을 먼저 보낸다. 야곱은 심부름꾼을 통해 최대한 정중하게 형 에서에게 자기 소식을 전한다. 야곱은 형을 ‘주인’으로 부르고 자신을 ‘종’으로 자처한다. 야곱이 형을 다시 만나는 일은 그렇게 두려운 일이었다.

심부름꾼이 되돌아와 전한 상황은 더더욱 예사롭지 않다. 에서가 무려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향해 오고 있다고 했다. 에서는 예언대로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직 에서가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야곱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심부름꾼은 야곱을 ‘치려고’ 나선 것으로 보고를 한다. 야곱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야곱은 자기 일행과 가축떼들을 두 패로 나눈다. 에서가 한 패를 칠 경우 또 다른 한 패라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야곱은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을 환기시키면서 절절하게 호소한다. 그 기도만으로 불안감을 달랠 수 없었다. 약자로서 생존의 지혜에 익숙한 야곱은 형의 마음을 사기 위한 대비책을 세운다. 형 에서에게 수백 마리의 가축떼를 선물로 보낸다. ‘선물’은 곧 ‘축복’을 뜻한다. 야곱이 형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자신이 가로챈 축복을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은 주도면밀하게 그 선물을 나누어 보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축떼들을 차례차례 보내고, 자신은 맨 마지막에 형 앞에 나서는 방식을 계획한다. 형이 분노해 있다면 그 분노감을 서서히 누그러뜨리고 가장 안전한 순간에 자신이 등장하려는 계획이었다. 그 계획을 실행시키고 그 날 밤 장막에서 묵는다.  


2.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32:22~32)


그 날 밤 얼마나 불안했을까? 아마도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야곱은 밤중에 일어나 식솔들을 거느리고 얍복 나루를 건넌다. 그리고 맨 뒤에 홀로 남는다. 긴박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형과 대결을 해야 한다면 그나마 애써 일군 것마저 다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 보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 긴박하고 불안한 상황 가운데서 야곱은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만난다. 야곱은 처음에 알 수 없었던 초인적 존재와 예고 없는 씨름에 돌입한다. 누가 먼저 씨름을 걸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순식간에 씨름에 돌입하고 날이 새기까지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 전개된다. 날이 밝을 무렵이 되어서야 그 씨름은 끝이 난다. 끈질기게 덤벼드는 야곱을 물리칠 수 없었던 초인적 존재는 날이 샐 무렵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비로소 그 상황을 종식시키려 한다. 그 존재가 결국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결말을 짓고 있지만, 이 대목에서 고대적 종교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귀신 또는 영적 존재는 어둠 속에서 활동한다는 관념이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홀연히 떠나는 귀신 이야기는 우리의 설화 가운데서도 자주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으로 인식된 그 초인적 존재와의 대결에서 야곱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이미 다리를 절뚝거리는 상황에서도 그 존재를 붙잡고 축복을 확약 받는다. 축복을 받은 야곱은 마침내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다.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다’ 또는 ‘하나님이 겨루다’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것이다. 절름발이 인생 야곱의 새로운 탄생이다.

그가 밤새워 하나님과 겨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배제당하고 박탈당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정녕 당신은 첫째들만의 하나님입니까? 둘째는 어찌하란 말입니까?’ 이것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항변이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갈망을 들어줬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살아남은 그 땅, 곧 브니엘에서 나설 때 해가 솟아올라 그를 비췄다. 야곱은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 다음 주제는 “야곱과 에서의 화해”(창세기 33:1~20)입니다.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