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법과 도덕을 넘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10-16 10:28
조회
3089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16번째 원고입니다(081016).


법과 도덕을 넘어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연예인들의 죽음이 잇달아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적 스타 최진실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으레 그렇듯 유명인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화제를 낳기 마련이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죽음과는 직접적으로 얽힌 사연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각기 나름대로 그 죽음의 의미를 전유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유명인사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결코 편히 떠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만큼,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며 그 죽음의 의미를 전유하러 든다. 아마도 그와 같은 현상은 그의 죽음의 진실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어떤 단면을 드러내주는 것일 게다.


‘다들 한마디씩 하는데 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소냐?’ 하는 마음으로 그 화제의 대열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애초 없었다. 그런데 한마디 거들고 싶은 충동이 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의 죽음을 빌미삼은 정부의 불온한 시도 때문이며, 또 하나는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여러 가지 이유들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르는 사회적 시선 내지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나는 법적인 문제요, 또 하나는 도덕적인 문제이다.


정부는 그의 죽음을 계기로 인터넷 언론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을 서두르고 있다. 그의 죽음이 인터넷 매체상의 근거 없는 소문과 ‘악플’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그가 평소 우울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된 데에는 그 이유도 분명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촛불 이후에 인터넷 언론을 규제하려고 해 온 정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입법을 서두르는 것은 불온하기 짝이 없다. 인터넷을 그렇게 법으로 규제하면 과연 그로 인한 선의의 피해가 줄어들까? 의문이다.


그 다음 그가 우울증에 시달린 것은 사채와 관련된 근거 없는 소문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이유는 복합적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싱글맘’으로서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았지만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중압감이 있었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한 여자로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망이 없었을까? 여기서 남자에게는 관대하지만 여자에게는 결코 관대하지 않은 사회적 시선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 수 없는 사실을 두고 더 이상 어떤 상상을 펼치고 싶지는 않지만, 이름난 연예인을 두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선은 지나치게 도덕적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법으로 세상을 마치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듯이 여기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도덕적 잣대만으로 사람의 삶을 평가하고 기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는 것이 우리 사회의 풍토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새삼 드러난 현상이다. 그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진짜 사연을 헤아리고 이해할 수는 없을까?


법과 도덕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법과 도덕의 기만성을 말하고 자 할 따름이다. 사람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법과 도덕의 기만성을 말하는 것이다. 법과 도덕 이전에 어떤 사람의 고통에 진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시선과 마음이 우리 사회에 결여된 것이 문제다.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하고 극한의 상황에 내몰릴 때 그 상황을 헤아리고 그 자리에 함께 하는 마음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그 시선과 그 마음이 우선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언제나 메마를 수밖에 없다.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동정이 사라지고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사회 안에서 법과 도덕이라는 것은 인간을 더욱 가혹한 상황으로 내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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