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천주교: 도덕적 사표로서 교회와 낮은 자리에 함께 하는 교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2-12 17:45
조회
3711
* 천주교 <경향잡지> 2009년 3월호 칼럼 “우리 교회의 초상”(20090212).


도덕적 사표로서 교회와 낮은 자리에 함께 하는 교회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한국 천주교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특별히 사회적 발언과 활동의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중후한 도덕적 권위의 보루로서 교회상이요 또 하나는 생명과 인권의 수호자로서 교회상이다.


도덕적 권위의 보루로서 교회상은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천주교회의 공식적 견해와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교회가 관심을 표명해야 할 사회적 현안들이 제기될 때마다 천주교회의 공식적 입장이나 중직에 있는 분들의 발언은 언제나 거의 예외 없이 도덕적 지표의 마지노선을 제시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예컨대 사회적 갈등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거나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그 원칙을 천명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새삼 확인하는 방식이기에 그 입장천명은 신자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다.


생명과 인권의 수호자로서 교회상은 주로 정의구현사제단이나 그 밖에 몇몇 이름있는 성직자들의 활동을 통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사회적 비리나 갈등의 문제가 제기될 때, 생명의 위기를 불러오는 개발이 문제시될 때, 민족의 화해를 위한 헌신이 요청될 때 언제나 ‘적시타’를 날려주는 천주교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


도덕적 권위의 보루로서 교회의 발언이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 규준을 새삼 확인해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면, 생명과 인권의 수호자로서 교회의 활동은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려는 교회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천주교회의 발언과 활동은 천주교가 풍기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과 복합되어 더욱 고양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해 주고 있다. 예컨대 절제되고 중후한 교회당의 이미지, 평균적으로 봤을 때 소란스럽지 않고 교양 있는 천주교인들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그 긍정적 이미지는 상승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요인들이 근래에 우리 사회에서 천주교에 대한 호감도를 높여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전혀 모순 없이 인식되는 두 가지 이미지가 과연 천주교의 실상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일까? 다들 좋다고 하는데 괜스레 초치는 소리를 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두 가지 이미지를 형성하는 두 가지 근거들 사이에는 모종의 어떤 간격과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도덕적 권위의 보루를 사실상 자처하는 교회는 어떤 면에서 상당히 권위적이다. 교회가 스스로 권위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나 사람들이 그 권위에 은연중 승복하게 만드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교회가 표명하는 도덕적 규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도덕적 규준은 때때로 복잡한 현실에서 더 진전되어야 할 논의를 차단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갈등의 상황 자체를 봉합하고 그 갈등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케 만들기도 한다. 그런 경우 교회 스스로의 정당성과 권위는 내세울 수 있지만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할 수도 있다.


반면에 생명과 인권의 수호 또는 사회적 정의를 위한 교회의 활동은 갈등의 상황과 현장 자체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동시에 그 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 또는 고통받는 생명에 다가서는 지름길이다. 그 현장에 함께 하는 것은 아픔의 호소를 만천하에 드러내 주고 전사회적으로 공동의 해결방식을 찾도록 촉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연대를 촉진시킨다.


일반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의 천주교회 이미지가 모순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천주교로서는 천만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이미지를 형성하는 실제 근거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있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모순적이다. 그것은 방금 지적한 대로 그 효과 면에서 구별될 뿐 아니라 그 주체의 측면에서도 구별된다. 도덕적 권위의 보루로서 교회 역할이 공식적인 주류 교회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생명과 인권의 수호 현장에 나서는 교회 역할은 교회내의 소수파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런데도 그 두 가지 측면이 모순되게 인식되지 않은 현실에서 사실상 주류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은 소수파의 활동에 큰 힘을 입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별로 모순되게 느끼지 않는 현상을 두고 그 속내를 들춰보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교회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고통의 현장에 다가서는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통의 현장에 다가서는 일이 교회의 권위 때문에 제약당해서도 안 된다. 교회의 진정한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고통받는 사람들과 생명들이 있는 낮은 자리에 임할 때 더욱 빛나는 것 아닐까? 한국 천주교회의 활동에 여전히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한 개신교인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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