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 땅을 살아간다는것 - 신명기 32:44~52[이성철 전도사 / 유튜브]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23-11-24 15:46
조회
952
2023년 11월 19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그 땅을 살아간다는것
본문: 신명기 32:44~52
이성철 전도사



오늘 본문은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했던 율법과 설교, 당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는 율법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단순 반복은 아닙니다. 기원전 8세기 왕정시대의 불평등 상황을 반영하는 동시에 기원전 6세기 유배기에 최종 편집되던 당시의 정황을 반영하여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신명기를 포함한 모세오경을 작성한 시기는 바벨론 포로기 시기였습니다. 포로인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신앙을 다시 바로새우기 위해 자신들의 전통을 되짚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출애굽과 가나안 땅에 이르는 이야기들을 기록했고, 그들은 오래된 모세의 이야기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의 이야기는 훨씬 후대의 유대인들, 포로기에 있거나 포로기를 회상하는 유다인들의 경험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현실과 겹쳐진 모세의 이야기를 되짚으며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전승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모세오경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애굽을 탈출하고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로 나온지 40년이 지났습니다. 3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던 그 땅에 40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그길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습니다. 건물도, 숲도, 나무도, 심지어 해를 피할 그늘도 없이 황량한, 말 그대로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도 기다려온 그 땅, 가나안 땅은 어떤 땅이었을까요? 가나안 땅에 대한 설명과 기대는 유토피아 같은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골짜기와 산에서 시냇물이 흐르고, 밀과 보리,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고, 올리브기름과 꿀이 납니다. 먹을 것이 모자라 결핍을 느껴야 할 필요가 없는 땅입니다. 게다가 철과 구리 등 자원도 풍부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에대해 성서는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의 진짜 모습이 이러한 설명과 얼마나 같았을까요? 객관적인 사실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과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탈출한 이집트 땅에 비해 가나안 땅은 여러모로 보잘것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탈출한 이집트의 넓고 풍요로운 나일 강 유역에 비해 가나안 땅은 짜투리 땅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풍요로운 축복의 땅이라 여긴 것은 그저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그땅이 풍요로운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새로운 희망을 꿈꿀수 수 있기 때문에 풍요로운 축복의 땅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풍요로운 제국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종이었기에 노동의 결과를 스스로 누릴 수 없었습니다.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언제나 결핍된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 땅에서의 삶은 그와는 다르다는 것, 아니 달라야 한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고 주어진 것을 함께 누리는 사회에 대한 기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은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본문의 모세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40년을 함께지냈지만 더이상 모세는 함께가지 못합니다. 이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간다고 해도 잘 지낼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합니다. 저는 그동안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것을 세대의 교체로 이해했습니다. 시대의 상황과 흐름 속에서 공유하는 정신이 변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것처럼 모세의 역할은 거기까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모세의 감정을 따라 살펴보니 다르게 읽혔습니다.

이집트를 나오고나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원망했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죄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졌기 때문이라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느보산 위에 올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봅니다. 모세는 이제 그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본인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 그 앞까지 왔습니다. 모세는 그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은 실패한 40년 광야생활을 정리했을까요? 지금 모세가 본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땅을 보고 지금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후회도 억울함도 아닙니다. 광야를 통과해 온 오랜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은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오늘 본문의 49-52절이 말하는것처럼 므리바 물가에서 백성들의 행동이 앞으로도 일어나지는 않을까 염려합니다. 이것이 가나안땅을 앞둔 모세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마틴 노트라는 신학자는 “신명기와 이후의 역사서는 모세로부터 포로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정리하여 북왕국의 멸망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책들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말그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입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평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르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은 성전이라는 자리에 대한 집착, 장소에 대한 욕망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철저히 물신을 배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솔로몬 시대를 지나면서 권력은 하나님을 공간에 머무르게 만들었고, 그 중심에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런 예루살렘의 장악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갖는 사람들끼리 수천 년간 이어져 오고 있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끊임없는 분쟁과 폭력과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서 열린 무기박람회에서 평화를 외치는 이들이 끌려나가 불법을 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것이 전쟁과 폭력, 혐오가 일상이 되어버린 희망은 없이 죽임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넷플릭스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아직 다 보진 못했습니다만 4화에서 이런 독백이 나옵니다.
“모든 병은 상실에서 온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거나 자기 자신을 잃었거나 또는 행복한 순간들을 잃었거나 그럴 때, 우린 이제 너무나 뻔해서 얘기하는 사람조차 낡아 보이는 희망이라는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 뻔한 희망, 그 뻔한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들은 여기에 있다.”

말그대로 이스라엘의 역사, 그 신앙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그 실패의 역사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려는 노력의 증거가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모세가 마지막으로 전한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셨고 지금과 앞으로도 너희와 함께 계셔 지켜주신다는 희망의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말합니다.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당신들은 마음에 간직해 두고, 자녀에게 가르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십시오. 율법은 단지 빈 말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의 생명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그래야만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 차지하는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텅 빈 율법을 지켜내느라 그 율법의 정신인 생명과 희망을 잃었습니다. 텅 비어버린 율법을 지켜내느라 그 율법이 무엇을 의미했었는지조차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한번 율법의 정신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젖과 꿀이 흐르는땅을 살아가는 방법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낡고 의미없어 보이는 희망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가나안 땅은 완성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과정이며 상태입니다. 그래서 더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때로는 언제쯤 마음편히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의 땅, 축복의 땅을 살아가는 방법은 실패의 역사 속에서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고, 포기 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생명을 사랑하고 지키셨던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닮아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더이상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어디던지 다시금 종살이하던 애굽이며 광야일것입니다. 신앙은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며 흘려보내야 할것을 흘려보내며 함께 앞으로 나아갑니다.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희망을 마중물로 삼아 평화를 계속 길어내는것이 우리가 지녀야할 진정한 율법의 정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가야하는 평화와 희망도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며 상태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맥이 빠지는 일인지 우리는 매일을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약속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현실을 뛰어넘을 힘을 우리에게 줍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그 길에 무엇보다 우리의 평화, 여러분의 평화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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