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1] 창세기 읽기를 시작하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6-21 21:36
조회
2730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1 (6/21) 창세기 읽기를 시작하며


1. 상징과 신화, 성서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실마리


(1) 성서와 신화

모든 종교 경전에 공통되는 신화적 양식은 고대인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 및 세계 이해방식이며 그 표현 방식이다. 성서 역시 기본적으로 신화적 양식을 취하고 있고, 창세기는 고대적 신화의 보고와도 같은 책이다.

(2) 신화적 양식과 상징

신화적 양식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신화적 양식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동화: 개인적 염원 - 미담 → 전설: 보편적 성격 - 영웅 → 신화: 우주론, 세계관 - 신과 인간, 선과 악의 대결, 처음과 나중,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 등의 근본적 물음을 함축.

신화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집단무의식의 발로이며, 의식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태고부터 인류가 겪은 경험과 깨달음을 집성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자연발생적 또는 의도적 상징들이 무수히 등장하고, 그러한 상징체들이 또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관을 갖으며 어떤 의미를 전달한다.

더욱이 종교적 세계관(사실상 인류 사상의)의 모체로서 신화는 한 번 형성된 다음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화가 통용되는 한에서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소위 문화적 교류과정을 통한 교차와 흡수 등의 과정이 일어나 더더욱 복잡해진다.

상징의 위력은 다의성이다. 상징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어찌 보면 언어 개념 자체도 고도의 상징이기 때문에 똑같은 언어와 개념을 사용해서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상례이다. 하물며 개념어라기보다는 상징어에 해당하는 신화적 표현은 더욱 무수히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신화적 인물이나 사건 자체가 사실은 단일 인물이나 단일 사건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인물, 그러한 사건의 원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러 변수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될 소지를 처음부터 안고 있는 법이다.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 하나의 표본이다. 신화를 이해하는 것은 곧 상징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의 표현이자 경험의 표현(도전과 좌절 / 한계지워진 인간의 비극-신화의 세계에서 무제약적으로 승승장구하는 인간은 없어)인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옛부터 인간들이 물어온 인간 이해, 사물의 질서, 우주의 질서에 관한 물음을 이해할 수 있다.

(3) 신화적 세계관과 경전

성서나 여타 종교의 경전들도 신화란 말인가? 그렇다. 창조 이야기는 말할 것 없거니와 예수 이야기, 요한 계시록, 그리고 대단히 논리적인 글로 보여지는 바울의 서신들도 그렇다. 인도의 베다나 불교의 경전들도 마찬가지다. 노장이나 유교의 사서삼경(논어 맹자 중용 대학 /시경 서경 주역 / 예기 춘추)은 어떨까? 흔히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인 <산해경>은 그렇다 쳐도 그 밖의 경전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언어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괴력난신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신화적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고대 그리스 철학(동양철학도 마찬가지)의 사유까지도, 예컨대 사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을 현대적 의미에서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은 신화적 사유와 과학적 사유가 전혀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축하기도 한다(날고 싶은 욕망-비행기 발명).

  

2. 신화와 역사 - 신화는 역사와 무관한가?


의식하지 못한 집단무의식의 한 발로라는 점에서 신화는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한편 신화는 자연발생적 성격만 지니고 있지는 않다. 많은 경우 신화는 의식하고 기억하고 있는 인물과 사건을 재현하기도 한다. 성서를 포함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종교 경전이 그런 경우다. 그 점에서 신화는 역사와 무관하지 않으며 많은 역사적 사실을 함축한다(호메로스의 신화를 통한 미케네 문명의 발견 / 성서의 고고학적 발견).

또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가 거꾸로 의도적으로 신화를 채용하기도 한다(대부분의 건국 신화: 단군신화 등 삼국유사, 심지어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 / 일본서기 / 고려사 / 용비어천가).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조작과 같이 보일지 모르나, 역사에서 채용되는 신화는 조작으로서보다는, 신화의 본래 의미대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의 비중 또는 그 의미를 특별히 부각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역사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성서를 포함해 종교의 경전들이 대부분이 그런 방식을 취한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여 기록한 것이라기보다 그 사실이 함축하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사실 보도에 관심이 있지 않고, 자유롭게 기록자(동시에 해석자)입장에서 사실의 의미를 신화적으로 변용하고 있다. 여기서 여러 사건이나 인물이 한 사건이나 인물로 통합되기도 하며 한 사건이나 인물이 여러 사건이나 인물로 재현되기도 한다(단군신화/ 예수 탄생/ 아브라함ㆍ이삭).

이와 같은 신화적 양식은 어떤 전형성을 띠고 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문화권들 사이에 공통된 신화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천지창조 이야기 / 탄생 이야기 - 동정녀 탄생/ 마리아의 이미지 / 홍수 이야기 / 공통되는 각종 상징물들). 이것은 역사적 경험의 공통성 또는  인간 사고의 보편성에서 비롯된다.

역사적 진술 역시 해석의 다의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특정한 사실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일의성을 띠지만, 신화적 진술은 애초부터 그 상징성으로 인해 거의 무한한 다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화의 생명력이다.

                

3. 신화적 진리의 현대적 의미


현대에도 신화는 정신사의 보고로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또한 새롭게 변용된 신화들이 계속 탄생하고 있다. 정신사의 보고로서 신화는 그 의미가 철학 윤리 예술, 심지어는 과학 등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하여 다른 형태로 승화되고 있다(종말론-진보사관). 여기에서 해석(학)이 문제가 된다. 시대별로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의 등장(성서해석사 / 주역해석사). 또 한편으로 변용된 신화들의 탄생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해석이자 동시에 재현으로서 문학, 영화, 예술(슈퍼맨/ 스타워즈/ 지옥의 묵시록/ 율리시즈/오딧세이)을 우리는 만난다.


4. 창세기 읽기의 의미와 그 구조


창세기 읽기는 의미로 충만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그 의미를 새삼 음미하면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동시에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① 창세기  1-11장  원역사

                   1-2장  창조와 창조질서

                   3장    창조질서의 파괴

                   6-9장  노아와 홍수 이야기

                   11장   바벨탑 이야기

② 창세기  12-50장 이스라엘 족장의 역사

                   12장-25:18 아브라함

                   25:19-36  이삭과 야곱

                   37-50장  요셉


* 다음 주간은 2. <신화와 역사> 부분 이후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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