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정치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환상과 희망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2-22 00:55
조회
3210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원고입니다(080222).


정치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환상과 희망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새 정부가 출범한다. 경제성장이라는 장밋빛 환상으로 유례없는 지지율을 받은 정부다.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 가계의 팍팍한 살림살이가 펴질 수 있다면 반길 일이다.  


하지만 너무 섣부른 예단일까? 새 대통령이 내건 경제성장 목표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기업친화적인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주도해나갔을 때 그 성과가 저절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펴게 해 줄지 또한 의문이다. 사회적 재화를 나눌 수 있는 대비책이 없는 한, 경제성장으로 국가경제 전반의 규모는 커질지언정 서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사태를 지금까지 계속해서 경험해왔기에 갖는 의구심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무릇 모든 허황된 환상은 환멸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하고 싶다.


새 정부, 새 대통령이 기대감 속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상황 가운데서 먼 옛날 예언자 외침을 다시 새기는 일은 순진한 몽상가의 일만은 아닐 터이다.

옛 예언자 이사야는 외쳤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되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시절 선포된 이 예언은 유대의 과거 영광을 노래하거나 제국 바빌론의 위용에 동요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요란한 방식으로 현혹하고 요란하게 열광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구원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메시아를 통해 펼쳐질 구원의 역사는 그 요란한 모든 환상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이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 어떤 현란함도 화려함도 갖추지 못한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로 공의를 베풀기 때문이다. 그 공의는 결코 메마른 것이 아니며, 가장 연약한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마음이다.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며 효율성을 내세우는 가치관에서 보면 참으로 무모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사람들에게 쉽사리 외면당한다. 오늘도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큰 목소리에 파묻혀 버리고 그들을 위한 정책은 모호한 수사 속에 얼버무려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마음으로 진정한 공의를 이루고자 하는 그 희망은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언자 이사야는 다시 외친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 구원을 이끌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한갓 정치 지도자에 견주어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까? 무리일 수도 있다. 그 기대를 말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환상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현실을 보자면 명백히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희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직 진실로 공의를 실현할 정치 지도자에 대한 희망이라도 사람들 가운데 살아 있어야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그 흉내라도 내기 위해 애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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