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다중인격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4-14 22:00
조회
3414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66번째 원고입니다(0800414).


다중인격자


“아빠는 이중인격자야!” 이 무슨 흉악한 소리인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을 자식에게서 직접 들었다면 그건 볼 장 다본 격 아닌가? 언젠가 작은 놈이 그렇게 말하는 데도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이야기인즉슨, 교회에서 제법 근엄한 목사로서 모습과 집에서 거의 개구쟁이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의 모습이 다른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무슨 인격파탄자라는 뜻에서 한 말이 아니니 그냥 웃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집사람은 그 사실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니야, 삼중인격자야! 운전대만 잡으며 평소와 달리 성격이 급해지고 입이 험해지잖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사실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서는 허허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건 사실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이니까.


그 바람에 내심 스스로를 돌아보자니, 삼중 인격이라는 말로도 충분치 않을 것 같다. 지금 맡고 있는 공적인 역할과 직함만을 열거해도 적지 않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사양하지 못해 받아들였을 뿐인데, 어쨌거나 그것들이 또 다른 내 얼굴들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역할들까지 합해 그 모든 얼굴들을 포함하면, 다중인격자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최근에는 여기에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인격을 더했다. 선생 노릇에 학생 노릇까지 겸하게 되었다. 때늦게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한 탓이다. 무슨 영화를 누리자는 것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목엣 가시처럼 적이 ‘불편’하게 만드는 조건을 피해 가지 못해 시작한 일이다.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은 이전에도 했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대학원 졸업 후 20여년만에 다시 학생 신분이 되니 이것저것 새삼스럽다.


어떤 날은 한 시간 시차를 두고 그 역할이 바뀐다. 아침에는 쉴 새 없이 열변을 토해내는 선생 노릇을 하지만, 점심 먹고 나면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학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남짓 차를 달리고 저녁이 되면 권위 있고 지혜로운 목사로 돌변해야 한다. 이쯤 되면 뛰어난 변신술의 주인공이 된 듯 착각에 빠질 법하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어찌 나만이 다중인격자이겠는가 싶다. 사실은 사람 자체가 그런 것 아닐까? 겉으로 드러나는 역할만이 아니라 내적인 욕망과 갈등까지 생각하면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가 커다란 모순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괜히 속내를 살짝 비추는 이야기를 해놓고 엉겁결에 수습하려 든다는 느낌을 스스로 지우기 어렵지만, 그건 진실인 것 같다. 모순덩어리로서 인간, 분열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모순되고 분열된 세계 안에서 불가피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구원을 갈망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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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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