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기독교 정당은 계속 실패해야 한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4-11 16:11
조회
3272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12번째 원고입니다(080411).


기독교 정당은 계속 실패해야 한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총선이 끝났다. 거의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독교 정당의 정치적 실험에 대한 촌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실 나 역시 정작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진보세력의 정치적 성패에 관한 것일 뿐 기독교 정당의 정치적 실험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촌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딱하게 느껴진다.


4년여 전 전 17대 총선을 앞두고도 기독교 세력은 독자적인 정당정치 진입을 시도했다.  그 때 그 정당을 추진하는 일선에 선 분과 방송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이유로 나는 기독교 정당 불가론을 제기했다.


기독교 세력이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어 정치참여를 시도하는 것은 정치적 권력 게임 안에서 기독교 신앙 자체를 협소화시키고 왜곡시킬 수 있다. 물론 신앙의 정치적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관계 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신앙이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불가피하다. 서구 사회의 경우 기독교적 가치를 표방한 정당들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정당정치 참여 타당성 여부는 계속 논란이 될 수밖에 없기는 하다. 하지만 다종교 상황인 우리 현실에서 특정 종교인 기독교를 대표하는 정당은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정치집단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실제로 기독교 정당을 추진한 세력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비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 현실에서 기독교 정당은 일종의 정치적 이익집단으로서 다른 종교 세력과의 경합관계를 야기할 뿐 보편적 공공성을 관철시키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는 무관심한 듯 지켜보았지만, 사실은 전부터 가졌던 우려는 더욱 깊었다. 근래 몇 년 사이에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쳐졌고 따라서 그 사회적 공신력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시 이번 총선에 등장한 모 정당이 기독교에서 이단시하는 특정 종교 세력을 대변하고 있어 기독교 정당이 그 세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매우 궁색한 변명으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정치적 경합관계 안에서 스스로의 속셈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애초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낙후한 정치지형도를 변화시킬 만한 대의를 천명해도 미심쩍은데, 고작 특정 세력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내부 지지자를 결집하려는 시도는 아무래도 궁색해 보였다. 그것은 매우 특수한 이익집단으로서 자기 성격을 사실상 드러낸 것과 다름없었다.  


결과는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기독교 정당의 원내 진출 실패로 끝났다. 또 다른 특정 종교 세력의 원내 진출도 실패로 끝났다. 이번에 기독교 정당을 추진한 세력은, 지난 번 총선에서보다 득표율이 오른 것을 고무적으로 평가하며 다음 총선을 기약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기대처럼 혹 다음 번 총선에서는 최소한 3%이상의 득표율로 원내 진출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 기대가 실현될 수 있을지 대단히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장차 기독교 정당이 그 정도의 ‘저력’은 발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정당이 계속 실패하기를 바란다. 기독교 정당의 정치적 성공은 기왕에 강화되고 있는 기독교의 권력화에 기여할 뿐이라는 전망이 너무나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정치적 성공으로 얻는 것보다는 실패를 통해 지킬 수 있는 것이 더 소중하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실패한 기독교가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자기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의지를 앞세우는 정치적 욕망을 따르기보다는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길이 신앙의 진정한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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