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즐거운 상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11-07 13:39
조회
3563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61번째 원고입니다(목회단상 071107).


즐거운 상담


과연 공중파 방송의 위력은 큰가보다.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거리에서 신앙을 파는 사람들”을 제목으로 노방전도의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방송이 종교 문제를 다룬 경우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그 파장이 적지 않게 일었다.

긴 시간 인터뷰한 것에 비하면 아주 짧은 순간 등장했지만, 그 방송에 출연한 까닭에  나 역시 그 여파에서 비켜갈 수 없었다. 노골적인 공격은 물론 항의성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대개 그 초점은 성서해석에 관한 문제였다. 방송 중에 나온 성서본문 해석에 관한 문제가 기존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방송이 성서해석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타인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 길거리 전도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신앙관의 밑바탕에 성서에 대한 어떤 이해가 깔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대한 격렬한 반응은, 그 가정이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해 주는 것 같다.

방송을 보면서 새삼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당’ ‘지옥’을 외치는 이들의 신앙 밑바탕에는 ‘보상’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의 불안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서에 대한 이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확고한 신앙을 보장하는 반면 성서를 비평적으로 접근하며 그 뜻을 헤아리는 것은 신앙을 파괴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신앙관, 성서관이 교회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현실이 문제다. 항의성 질문을 해온 경우에는 대개 그런 취지에서 답변을 했다.

그러나 공격과 항의만 받은 것은 아니다. 3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오는가 하면 아예 내친 김에 달려 와 옛 정을 새삼 나누는 일까지 생겼다. 그것은 덤으로 주어진 기회였다. 전혀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이들로부터 많은 상담을 받아야 했다. 항의성 질문보다는 오히려 진지하게 상담해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메일과 전화로 상담을 해오는가 하면 타지에서 교회까지 찾아와 상담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뭔가 교회가 달라져야 하고, 성서와 신앙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성서나 신앙 자체에 대해 질문하는가 하면, 스스로 가진 문제의식을 나누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교회의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말을 걸어오니 즐거운 일이다.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 방송제작 책임을 맡은 PD가 던진 말이 새삼 떠오른다. “왜 이렇게 다르지요? 너무나 다릅니다.” 과연 뭐가 다른 것일까?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기쁨을 이 땅에서 누리고자 하는 희망 때문에 갖는 신앙의 차이일 것이다. 그 희망을 찾아 나선 이들이 지금도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그  희망을 함께 나누는 일이라면 언제든 기꺼이 상담에 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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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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