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소리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1-13 23:20
조회
3623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63번째 원고입니다(080113).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소리


자라나는 아이들이 부모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소리가 뭘까? “장하다!”, “잘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제발 공부좀 해라!” 아마도 그런 소리만 귀가 따갑도록 듣는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어떤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졌다. 도대체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 소리를 가장 듣고 싶어 할까? 곧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집사람과 나는 아이들에게 확인한 후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큰 녀석은 “엄마[아빠]가 돈 줄께! 얼마면 돼?”라고 답했다. 작은 녀석에게 물으니 “뭐 먹고 싶니?”라고 답했다. 그냥 확인하지 말걸! 아니, 이건 목사 아빠를 무색하게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매주일 강단에서 물질과는 초연한 고상한 삶을 역설하는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신을 때리는 소리라니!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물질주의적이란 말인가?


아이들을 너무 궁핍하게 키웠나 보다 하는 자괴감이 들 만한 사태였다. ‘그래, 가난한 목사 아빠가 너희들 원하는 거 어떻게 다 들어 주겠니?’ 싶었다. 그러나 사태를 그렇게 수습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다른 여지를 찾아볼 요량으로 다시 물었다. “정말이야?” 그랬더니 작은 녀석이 답한다. “‘장하다’,  ‘잘했다’는 소리는 자주 듣는 소리거든. 지난번 성적표 받아 왔을 때도 아빠는 ‘장하다’, 엄마는 ‘잘했다’ 딱 그렇게 말했어요.” 큰 녀석도 피식 웃는다. 엄마 아빠의 무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대답일지언정, 그제서야 안도가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뭔가 결핍된 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 그러니까 적어도 돈만 알고, 먹고 싶은 것만 아는 건 아니란 말이지.’


이 녀석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를 당혹케 하는 물음을 종종 던졌다. “우리 부자야? 아니면 가난해?” 그 때마다 에둘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질적으로 부유한지 가난한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은 많은 것을 넉넉하게 누리고 있다.’ 대개 그런 취지로 답을 해 왔다. 맞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짓던 녀석들이 이제는 실상을 뻔히 안다. 이제 고3이 되고, 고1이 되니 다 알지 않겠는가? 엄마 아빠의 감언이설로만 넘어갈 때는 지났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들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아는 것 같다. 치기어린 원색적인 답변으로 엄마 아빠를 또 다시 당혹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녀석들 속마음이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모든 것을 무한정 다 들어 줄 수 없는 부모의 자기 위로 삼은 오해가 아니길 바란다. 다소간의 물질적 결핍이 적절한 절제와 동시에 오히려 풍부한 삶의 지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말 제대로 알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물질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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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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