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아, 워찌케 경우대로만 하고 살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8-27 12:01
조회
3438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59번째 원고입니다(070827).


“아, 워찌케 경우대로만 하고 살어?”  


농협 대부계에서 갑갑한 일을 보고 있는 중인데 어느 동네 아저씨인지 지긋한 양반이 나랑 똑같은 일을 보러 온 모양이다. 대출 기한이 차서 연장 신청하러 온 것이다. 대부계 담당 직원이 일러 준대로 면사무소 가서 이것저것 서류를 떼 와 대충 마무리를 하고 있는 도중 이 양반 목소리가 제법 높아진다. “아, 워찌케 사람이 경우대로만 하고 살어? ‘유도리’[여유]가 있어야지. 올해 안에 다 갚을껴!” 대부계 직원은 난감해 하며 대꾸한다. “아저씨, 입력이 안돼요. 구매계에서라면 모를까 대부계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것저것 서류를 갖추어 신청서를 새로 작성하고 일정 금액을 상환해야 연장 신청이 된다는 것인데, 그냥 생짜로 연기해달라고 하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를 보고 피식 웃는 대부계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아저씨를 두고 농협 문을 나섰다. 아마도 도리 없이 그 아저씨는 농협 직원이 일러 준대로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그게 빈틈없이 짜여진 조건이니. “나, 살아오면서 별로 실수한 거 없어!”라며 올해 안에 다 갚겠다고 해도  시골 아저씨의 진정성이 그 짜여진 조건 안에서 통할 리 만무하다.


언젠가 작은 녀석이 시골에서 살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했다. 그 기회를 놓칠 세라 재빨리 뭐가 좋으냐고 물었다. 학교 오가는 길에 들판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흙을 밟을 수도 있고, 또 도시 아이들이 하지 못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는 이야기였다. 흔히 막연히 시골생활을 동경할 때 그리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게 막연한 동경에서 나오는 일종의 환상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쭉 시골에서만 살아온 녀석이 스스로 경험하는 것들을 긍정하고 수용한다는 데 내심 감탄을 했다.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보다 시골생활의 여유로움을 누릴 줄 아니 기특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게 정말 환상이었단 말인가? 시골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는 꽉 짜여진 삶의 단면을 새삼 발견하는 순간 그 만족감에 대해 의심해야 했다. 자유무역이다 뭐다 해서 날로 피폐해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보자면 목가적 농경생활의 아련한 풍경은 옛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것 아니던가? 그래도 산천은 의구하니 그것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것일까? 하지만 곳곳에 들어선 공장들과 뿌연 빛깔에 냄새까지 풍기는 하천을 보자면 그 만족감마저도 반감된다. 도시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는 그런 농촌현실을 생각하면 갑갑해질 따름이다.


그래도 그 날 그 아저씨의 생짜는 선선한 바람처럼 신선했다. 나나 그 아저씨나 다 갑갑한 상황에 부딪혀 있는 터였지만, 교양 있게 순순히 일을 처리한 나는 뿜어낼 수 없는 여유를 그 아저씨는 내뿜고 있었다. 금융자본의 막강한 위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앞에서 자신의 성실성과 진정성을 주장할 수 있는 당당함이 살아 있다는 게 신선했다. 결국 도리 없이 꺾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또 어느 날 농협 창구에서 그렇게 당당히 외치는 시골 사람들을 계속 보고 싶다. 자본의 위력 앞에 때 묻지 않은 영혼들이 큰 소리 치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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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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