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비정규노동의 증가와 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8-09 19:43
조회
3526
한국교회인권센터 ‘인권지킴이’ 토론회

기독교 입장에서 본 비정규직 문제

2007년 8월 9일(목) 오후 2시 / 기독교회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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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의 증가와 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신학적 성찰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



1. 비정규직 보호법의 실효성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 노동의 문제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된 것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부터이다. 그 이전부터 사실 비정규 노동 형태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최근에 이르러서는 고용 노동인구 가운데 그 비율이 절반을 넘어가고 있어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마침내 비정규직 보호 법률(<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의 취지와는 달리 그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2년을 초과하여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그 법의 규정을 피하기 위하여 비정규직을 대거 해고하거나 비정규직이 담당했던 업무를 외주용역으로 돌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이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 사태는 그 하나의 예로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에 해당한다.  

이 법의 시행은 3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금년 7월부터, 300명 미만 1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2008년 7월부터, 10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2009년 7월부터 적용하도록 되어 있고 그 연한이 적용시점부터 해당되기에 아직 유예 기간이 최소 2년가량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들은 서둘러 법의 저촉을 피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형국이다. 며칠 전 발표된 노동부 설문조사 결과를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를 두고 있는 기업 가운데 30.2%가 외주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65.6%가 정규직 전환 계획이 있다고 답해 그 법이 본래 취지대로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규직 전환 계획이 있는 응답 비율에 해당하는 노동자 수는 27.2%에 불과하다(<한겨레신문> 2007.8.7.). 이로 미루어 볼 때 비정규직 보호법이 그 취지대로 실효성을 거두게 될지는 상당히 의문시된다. 일부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혜택을 누리게 되겠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그 혜택과 상관없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법률만으로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그에 대한 다각적인 대안 모색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2. 비정규 노동의 대폭 증가, 그 원인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그 현상에 대한 진단이 필수적이다. 과연 고용 노동인구의 절반을 상회하는 비율이 비정규직에 해당할 뿐 아니라 그 비정규직이 정규직과는 극심한 차별을 겪고 있는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비정규 노동의 증가 추세가 한국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① 오늘날 세계적으로 비정규 노동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는 가장 일반적으로 세계화와 정보기술혁명, 그리고 이에 따른 산업구조 및 기업조직의 변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꼽는다. 이것은 주로 노동수요의 측면에서 그 요인을 지적한 것으로, 여기서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기업조직의 변화와 그에 따른 기업경영전략과 고용전략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경제환경의 변화로 인한 경쟁의 격화와 노동수요의 불확실성 증가로 비정규 노동이 증가하는 측면을 말한다. ②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공급의 측면에서 비정규 노동 증가의 요인을 들 수 있다. 노동력의 인적 구성 변화가 그 요인으로, 예컨대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 청소년과 고령자의 노동시장 진입 증가로 시간제 노동이 선호되는 측면을 말한다. 여기에 세계화로 인한 노동의 국제적 이동의 증가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정규 노동을 담당하는 요인 또한 가세하고 있다. ③ 여기에 정부의 정책 또한 비정규 노동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업의 경영 및 인사전략의 변화를 추인하고 시장원리로부터 보호를 받아온 노동 부문에 대한 규제를 풀어버림으로써 비정규 노동의 증가를 가속화하고 있다. ④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약화 내지는 정규직 중심의 조직화 경향이 비정규직의 증가와 차별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비정규 노동의 증가 요인을 해명하자면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그 요인을 들 수 있고, 한국 사회는 세계적 추세와 동일하게 위에 열거한 모든 요인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떤 요인이 주도적인지는 노동시장 구조의 특성에 따라 좌우된다. 거시적으로 세계화와 정보기술 혁명, 그리고 그에 따른 산업구조 및 기업조직의 변화가 공통되는 요인이고 여타의 요인들이 가세하여 비정규 노동을 증가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비정규 노동을 증가시키고 정규 노동과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주요 경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좌우된다. 그 점에서 한국의 노동시장은 분절형으로서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노동 부문간의 단절과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기업규모별 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여타의 분절적 계기에 의한 차별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 격차를 활용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절감하기에 용이한 조건이 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특히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경영전략은 초단기적 수익관리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보장하는 정부의 정책과 함께 이른바 구조조정으로 정규 노동인력을 대규모 감축하고 비정규 노동력을 대체 활용하는가 하면 외주용역을 활용하는 추세를 뚜렷이 보였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경제가 변동할 때 노동시장이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는가를 의미하는데, 이는 다시 경제가 변동할 때 고용, 임금, 노동시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가를 뜻하는 ‘수량적 유연성’과 노동자의 교육훈련, 작업조직 재편 등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뜻하는 ‘기능적 유연성’으로 나뉜다. 이 점에서 초단기적 수익관리 중심의 경영전략을 취한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수량적 차원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에 따라 비정규 노동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기업들과 정부는 그러한 조치를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사태로 보고 있지만, 과연 초단기적 수익관리 중심의 경영전략이 기업들에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의 원천을 보장을 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노동자에게 고용안정과 생활안정을 보장하는 경영전략을 취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의 원천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점에서 현재 일반적 추세가 되고 있는 기업들의 초단기적 수익관리 중심의 경영전략과 이로 인한 비정규 노동의 증가는 꼭 불가피한 것만은 아니다. 그에 대한 판단은 비정규 노동의 증가로 인한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여러 가지 부정적 효과에 대한 진단을 통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3. 비정규 노동 증가로 인한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비정규 노동의 비율이 고용 노동인구 가운데 절반을 상회하고 있는 것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고용불안정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기본적인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에 더하여 임금 격차와 사회보험 등 부가급부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격한 차별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분절형 노동시장의 조건 안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을수록 그 차별의 정도는 더욱 심하다. 자본주의 노동시장 안에는 기본적으로 분절적 성격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미국이나 일본 또는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한국의 노동시장은 그 정도가 훨씬 크다. 그러니까 기업규모, 성별, 학력, 연령, 국적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그 격차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런 형편은 비정규 노동자 개인들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적으로 여러 가지 폐해를 연쇄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성찰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그와 같은 현상들일 것이다.

첫째, 분절적 특성이 강한 노동시장 안에서 비정규 노동의 증가는 노동 상품화를 극단화시키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의 존재방식 자체가 노동을 상품으로 하는 원리에 근거하고 있기에 노동의 상품화는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나 노동자의 인간적 권리라는 측면에서나 노동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노동 기본권 개념은 그와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다. 불행하게도 다층적으로 위계화되어 있는 한국의 노동시장 안에서 절대다수의 노동자는 그 기본권을 누리지 못한다. 실질적인 노동 능력과 상관없이 이미 여러 분절적 요인에 따라 등급화되어 가치가 매겨진 노동력은 적나라한 시장원리 안에서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가혹한 상태에 내몰려 있다. 예컨대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차이 나는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노동시간에 시달리지만 그것으로도 그 격차를 쉽사리 극복하기 어렵다. 비정규직일수록 과도한 스트레스와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절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죽음의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둘째, 비정규 노동의 증가는 전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빈곤화를 초래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신빈곤’으로 불리는 현상은 비정규 노동의 증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신빈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빈곤과 그 특성을 비교할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구빈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데 따른 물질적 박탈의 상황을 말한다면 신빈곤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도 빈곤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빈곤의 상황을 말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신빈곤은 비정규 노동의 증가 현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또한 신빈곤은 구빈곤이 절대적 빈곤을 말하는데 반해 상대적 빈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절대적 결핍의 상태와 달리 상대적 결핍은 그야말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상대적 빈곤의 심화는 전반적인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쉽사리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동시에 신빈곤으로서 상대적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의 물질적 빈곤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문화ㆍ심리적 소외 등을 중요한 성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신빈곤은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고립ㆍ격리시키는 성격을 띤다. 한마디로 신빈곤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그 빈곤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의 빈곤’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발전도상 사회에서 구빈곤은 극복 가능한 ‘희망의 빈곤’이었다면 안정성장 사회에서 신빈곤은 극복하기 어려운 ‘절망의 빈곤’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셋째, 비정규 노동의 증가와 그로 인한 절망의 빈곤 상태의 고착화는 전반적인 사회적 통합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윤리적 규범의 와해를 초래한다. 열심히 일해도 절망적인 빈곤의 상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면 노동의 윤리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한탕’을 노리고 ‘대박’을 꿈꾸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지경이다. 나아가 절망의 빈곤 상황은 일탈과 범죄를 야기하기 쉽고, 가정의 해체를 촉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넷째, 이상의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비정규 노동의 증가는 경제적 성장 그 자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비정규 노동의 증가가 단기적으로 볼 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오히려 잠재적 경제성장 동력마저도 저해할 수 있다. 예컨대 출산율 저하 문제는 단순히 신세대의 개인주의적 취향 탓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빈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항상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헤어나기 어려운 절망의 빈곤 상태에서 그 고통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기에 자녀의 출산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급격한 고령화와 노동인구의 축소로 정부에서는 서둘러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비정규 노동을 양산해내는 노동시장 구조 안에서 그 정책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또한 빈곤화로 인한 구매력 저하도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독려했고 그에 따라 일시적으로 경기부양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수백만의 신용불량자만을 양산하여 빈곤의 악순환에 기여했을 뿐이다. 경제성장의 논리 안에서도 현재의 비정상적인 비정규 노동의 증가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4. 사회적 연대성을 위한 대안


비정규 노동의 증가 문제는 경제환경의 변화와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단순 논리로만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현재와 같이 거의 무제약적으로 비정규 노동의 증가를 불러일으키는 기업의 경영전략과 정부의 정책이 꼭 불가피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재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이 사회경제 전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심지어는 경제성장 논리 그 자체 안에서마저 자가당착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대안 모색의 몇 가지 차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 비정규 노동을 보호하고 억제하는 방안을 계속 강구해야 한다. 일단 비정규직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사실은 비정규 노동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대안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그 법률이 악용될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면 그 악용 소지를 줄이는 대안을 찾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듯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기한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비정규 고용사유 자체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 역시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비정규 고용을 아예 기피하고 외주화하려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을 보면, 외주용역에 대한 문제도 법과 제도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비정규직 법률에는 외주용역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지가 없는 많은 기업들이 법의 저촉을 피하여 외주용역을 선호하는 추세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 현장에서 파견근무와 외주용역은 사실상 차이 없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외주용역이 법의 저촉을 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보호법의 취지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법적ㆍ제도적 보완은 필수적이다.

둘째, 노동 주체의 차원에서 그 대안 또한 강구되어야 한다. 이 차원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대로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조직화가 비정규 노동의 증가를 방치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노동조합의 조직화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이 문제이지만, 조직된 노동조합의 활동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는 부차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노동자들 내부에서도 비정규직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되어 있다. 작년도 구속된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74%에 이르고 있는 사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현재의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관행을 넘어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아울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으면, 노동자들 내부의 차별을 이용한 자본의 논리에 편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번 이랜드 사태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과 강력하게 연대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셋째, 전 사회적인 합의와 연대성의 차원에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해가 엇갈리는 다양한 계급ㆍ계층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갈등 여부 자체가 사회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존재하는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 하는 것이 사회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척도일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우리가 지향하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 하고, 그 깊은 성찰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냉혹한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 일회용 소모품과 같은 취급을 받고, 동시에 그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에서 절망하는 사태가 되풀이되기를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냉혹하고 처참한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갈등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해결의 실마리 또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들과의 연대를 통한 전 사회적 공존을 위한 지혜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대안 모색의 차원에서 기독교적 가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5. 비정규 노동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의의  


흔히 많은 기독교인들의 시각은 갈등의 근본 원인이나 구조적 원인을 따지기보다 직접적으로 갈등을 야기하는 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와 같이 갈등의 근본 원인을 덮어놓고 갈등의 현상만을 문제시하는 시각은 언제나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힘 있는 세력의 시선에 편승한다. 이와 같은 시각은 그간 한국의 기독교가 힘에 대한 선망과 동시에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배타의 시선을 강화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이랜드 사태에서도 그와 같이 편향된 시각은 존재한다. 상암경기장 안에서는 한국교회 부흥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리는 행사가 벌어지고 그 밖에서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처절한 농성이 벌어진 사태는 주류 한국 기독교의 시선과 거기에서 배제된 이들의 대비를 보여주는 징후적인 사건과도 같다.    

우리가 그 편향된 시각을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에 눈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비정규 노동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다. 사실 이 글은 신학적 논거를 일일이 명시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문제점을 진단하는 시선 자체가 충분히 신학적일 수도 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소중히 하며 찾아나서는 시선 자체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뉴스앤조이> 게재 1
* <뉴스앤조이> 게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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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