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발랄한 상상력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9-30 19:23
조회
3120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60번째 원고입니다(070930).


발랄한 상상력


아이들의 상상력은 발랄하다. 거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교회에서 나들이라도 할 것 같으면 어른들은 사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그런 걱정에 아랑곳없이 자기들만의 특권을 누린다. 별로 여의치 않은 교회당 공간도 그다지 제약이 되는 것 같지 않다. 맘껏 드나들고 휘젓고 다닌다.


어떤 기물이라도 놀이감 삼아 뛰노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수련회 다녀오고 난 다음 교회당에 잠시 놓인 큰 아이스박스를 알집으로 여겨 난생설화를 재연하며 노는 녀석들, 그 순간은 모두 주몽이 되고 박혁거세가 되고 김알지가 된다. 그렇게 천진난만한 녀석들이 가끔은 흉한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교회 화장실에 각목이니 철근 등이 잔뜩 있어 사태를 파악하자니 놀이터에서 외부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한 무기라고! 언젠가 한 번 다른 아이들에게 당하고 난 다음 그렇게 자구책을 찾았단다. 그건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어 아이들의 동의를 구한 후 그 흉기들을 다 치운 적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아이들은 경계를 모른다. 그야말로 성속을 넘나들며 종횡무진이다. 이놈들 자기들만의 예배에서 드리는 헌금봉투를 보자니 가관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다 똑같은 하나의 헌금봉투만을 사용한다. 그저 ‘○○헌금’이라고 씌어진 봉투다. 공란은 그냥 두어도 그만이오, 특별한 명목으로 드리는 헌금이라면 각자 알아서 쓰도록 한 것이다. 어른들은 여기에 ‘십일조’ ‘감사’ ‘주일’ ‘생일’... 등등 명목을 적어 헌금한다. 그런데 아이들 헌금봉투를 보자니 기상천외한 헌금이 있었다. ‘그까이거 대충 헌금’! 으악, 이걸 어쩌나! 아무리 자유분방함을 보장하는 교회라지만 그렇게 불경을 범하도록 내버려둬도 되는 것일까 한참 고심해야만 했다.


그렇게 고심만 하다 가끔씩 아이들 헌금봉투를 들춰보자니 명목이 제법 다양하다. 가끔 십일조 헌금, 감사헌금이나 생일헌금 등도 있다. 이건 아마도 부모님의 권고를 따랐을 것이다. 피식 웃음 지을 수밖에 없는 헌금은 지속되고 있었다. ‘아무거나 헌금’, ‘그냥 헌금’ 등은 단골로 등장하는 명목이다. 그 빈칸을 어찌해서든 채워보려고 고심한 흔적일 것이다. 몇 주 전에는 정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헌금봉투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좋은 헌금’이다. 으하하하! 녀석, 그 이름을 짓기 위해 얼마나 진땀을 뺐을까!


나를 뜨악하게 만든 기상천외한 헌금명목도 사실은 불경을 범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빈 공란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 기발하고 엉뚱한 착상을 아직은 더 지켜볼 참이다. 녀석들이 머리가 크고 신앙을 자각하면 절로 깨우칠 걸 서둘러 다그칠 까닭이 있을까? 또 어떤 녀석이 무슨 기발한 헌금을 드리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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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1
  • 2007-09-30 23:58
    좋은 헌금
    rn참 좋습니다. 되내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rn역시 우리들의 아이돌입니다.
    rn저도 이제부터 좋은 헌금이 되어야겠습니다.
    rn아이들의 천사와 악동의 양면성이 우리 어른들을 정화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rn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