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교회 정치참여,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5-31 23:10
조회
4125
2007년 기독교사회포럼 주제강연 논평

2007년 5월 31일 / 서울 남산 유스호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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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정치참여,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김민웅 교수의 “한국 교회의 정치참여, 그 올바른 진로를 위해 - 2007년 대선국면에서” 논평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



1.  어떤 정치참여인가가 문제이다.


한국 교회에서 한동안 정치참여 여부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처럼 통용되었다. 보수 교회는 정치참여를 배제하는 것처럼 주장해 왔고 진보 교회는 정치참여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보수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정치참여를 표방함으로써 그와 같은 구분은 무의미해지게 되었다. 이제 문제는 어떤 정치참여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과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정치참여 여부도 실상을 제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보수 교회가 정치참여를 배제하는 것처럼 주장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 교회는 과거에도 주로 은밀한 뒷거래 형태로 정치세력과 긴밀히 결합해왔다.

한국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든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수 교회가 과거의 태도를 버리고 솔직하게 정치참여를 표방한 오늘의 상황에서 교회의 정치참여에 관한 논의는 모호하게 왜곡되지 않고 투명하게 공론화될 수 있게 되었다. 그 점에서 어떤 정치참여인가를 문제  삼는 김민웅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2. 교회의 정치참여 동기와 목적


어떤 정치참여인가를 문제 삼을 때, 김민웅 교수가 주장한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예수의 ‘대안의 정치’는 우리의 분명한 지표가 된다. 그것은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으로 지배되는 현실의 세계를 전복하고 민중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목적과 동기를 지니고 있다.

그 목적과 동기에 비추어볼 때, 오늘 새삼스럽게 정치참여를 표방하고 적극적 행동을 취하는 보수 기독교의 태도는 예수께서 추구한 ‘대안의 정치’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대안의 정치’를 추구하는 진보 교회가 자본과 권력으로 지배되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함께 교회 안에서의 그 동조세력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대안의 정치’를 추구하는 성격을 뚜렷이 견지해 왔던 진보 교회가 민주화 이후 정치참여에서도 그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보수 교회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진보 교회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민주화운동 시절의 진보 교회는 민주화 이후 시대에도 여전히 진보 교회로 불릴 수 있을까?

    


3. 민주화 이후 정부들에 대한 교회의 정치적 태도


1987년 이후 민주주의는 꾸준히 제도화 과정에 들어갔고, 그만큼 한국의 민주주의는 진전되었다. 그러나 그 민주화는 처음부터 보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보수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정치 제도적 차원에서는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졌지만, 경제적 차원에서는 과거 개발독재 체제의 성장주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한 한계 안에 있는 민주화의 과정이었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은 한국 민주화에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절차적 민주화에서는 진전이 있었지만 실질적 민주화의 기반은 오히려 붕괴되었다는 평가,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재벌과 보수언론일 뿐 일반 국민은 아니라는 평가 등은 그러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대를 안고 있었던 노무현 정권은 오히려 최악의 정권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의 확장과 자유무역의 확대 요구 앞에, 노무현 정권은 그 지지자들의 이해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정책을 펼쳤을 뿐 아니라 애초 표방했던 스스로의 정책과 관련해서도 심각한 자기모순을 범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보수 교회는, 그나마 민주화로 인한 시민사회의 공공성과 합리성이 자신들에게 불편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데 대해 이익집단과 같이 반발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 보수 교회의 정치참여의 실체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진보 교회 세력이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떤 적극적인 기여를 했는지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교회 내 과거 민주화운동 주도세력은 그다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특히 그간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과의 유대관계가 소원해지는 가운데 이뤄진 기독교 내 정권참여 세력의 역할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정권 내에서 의미 있는 소수로서 역할을 하기보다는 정권 안에 흡수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점에서나, 기독교 사회운동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거의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시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기독교 진보세력은 그 도덕적 정당성으로 보수 세력을 제어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 정당성도 인정받을 수 없고 오히려 보수 기독교 세력의 경쟁심리를 유발하는 측면까지 지니고 있다. 우리는 자성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민주주의의 급진화와 교회의 정치참여


오늘 민주화 이후 변화된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조건은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 시절과는 판이해졌다.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 시절에는 단일한 전선으로 진보적 사회운동이 결집하는 것이 쉬었지만, 이제 그와 같은 양상을 기대하기는 쉬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민주화의 기본적인 한계,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조건 안에서 오늘날 민중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고 그 상황은 기독교 사회운동에 중요한 과제를 시사한다. 그 점에서 김민웅 교수가 제시한 여러 과제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를 ‘대선국면’이라는 특정한 정치적 국면에 한정하는 것은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만들 수도 있다. 1987년 대선 당시 이른바 ‘비판적 지지’와 ‘후보 단일화’로 나뉘어 이후 꾸준히 정권 교체에 영향을 끼쳤던 참여 방식이 공적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기독교 사회운동은 더욱 급진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갖춰야 하고 동시에 보다 장기적인 전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민웅 교수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가 정치적 세력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중재함으로써 교회의 진정한 정치참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상을 버릴 필요가 있다. 오히려 더 급진적이고 강도 높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통해서 교회의 진정한 정치참여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 민주화 이후 기독교의 정치참여에 대한 더 상세한 평가는, 기독교사회포럼 후속 프로그램으로 6월 11일 오후 3시 기독교회관에서 이어지는 기독교사회선교연대ㆍ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공동주최 심포지엄 <민주화 이후의 퇴행하는 민주주의, 퇴행하는 기독교 - 민주화 20년과 한국 기독교의 관계를 성찰한다>에서 발표할 “민주화 20년과 기독교 사회운동”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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