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민주화 20년과 기독교 사회운동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6-11 23:58
조회
4028
민주화 20년, 비판과 전망 심포지엄

민주화 이후의 퇴행하는 민주주의, 퇴행하는 기독교

2007년 6월 11일(화) 오후 3:00-6:00 / 기독교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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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과 기독교 사회운동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



1. 민주화 이후 기독교의 이미지


1970-1980년대 한국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표상처럼 인식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은 것만은 아니었고 실상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 기독교는 비정상적인 개발독재 국가 체제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웠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 훗날 여러 갈래의 운동으로 분화된 진보적 사회운동의 요람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점진적으로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진보적 표상으로서 기독교의 이미지는 점차 탈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는 동안 한국 사회 안에서 기독교는 보수적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결성된 이래 보수주의적 기독교의 정치행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고, 많은 사회적 관심사에서 기독교는 보수적 정치 견해를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사회적 쟁점이 되는 거의 모든 사안에서 기독교는 자기 이익의 수호를 위한 이익집단처럼 행동했고, 그러한 정치 행동으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이전과는 전혀 달라졌다. 그와 같은 정치 행동은 많은 경우 사회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게다가 심심치 않게 돌출된 대형교회들의 비리는 시민사회의 도덕적 규준과 심각하게 충돌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일반 언론에서 기독교의 비리가 중요한 보도 소재가 되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안티 기독교 사이트가 급증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지게 되었다.

민주화운동이 진행되던 20여년 어간 진보적 표상으로 간주되던 기독교가 이후 민주화의 제도화가 진척되는 20년 동안 보수적 표상으로 뒤바뀐 사연이 무엇일까? 물론 서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 기독교의 실체는 동일하지 않다. 1970-1980년대 진보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기독교와 1990-2000년대 보수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기독교는 그 주도 실체가 다르다. 그렇다면 그 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그 규모나 세력 면에서 우위가 뒤바뀐 탓은 아니다. 규모나 세력 면에서 진보 기독교에 비해 보수 기독교가 항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민주화 이후 1990-2000년대 들어서 보수 기독교가 갑작스럽게 규모와 세력을 확장한 것은 아니다. 1970-1980년대 진보 기독교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절에도 사실은 보수 기독교 세력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거시적으로 볼 때 달라지지 않은 그와 같은 세력 판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과 이후 양상이 달라진 사연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진보적 사회세력의 활동 공간이 넓어지고 보수적 사회세력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거나 최소한 합리화를 추구하는 상황인데 반해, 기독교에서는 그와는 달리 역류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민주화 이후 어떤 조건에서 그와 같은 역전이 초래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민주화 이후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의 재구성을 모색하는 전망에서 그 변화양상을 주목해보려 한다.



2.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사회운동의 변화


민주화운동의 시대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달라진 기독교 사회운동의 양상을 살펴보기에 앞서 일반적인 사회운동의 변화양상을 짚어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1987년을 기점으로 분화되는 민주화운동의 시대와 민주주의의 제도화 시대의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국가권력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1987년에 이르기까지 개발독재 체제하의 국가권력은 거의 무소불위의 힘으로 사회의 전 영역을 통제하였다. 국가권력은 헌법상 보장된 시민의 제 권리마저 무시할 만큼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했고, 급기야는 형식적으로나마 보장되었던 국민의 기본권마저 제한하는 유신헌법을 통해 전 사회를 통제하기도 했다. 유신체제에 이어지는 신군부의 정권 역시 기본적으로 개발독재 체제의 유산을 계승했다. 당시 지배체제는 한편으로는 강력한 반공규율로 사회를 통제하고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 성장을 추구함으로써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강력한 정치적 통제와 가속화된 경제개발은 필연적으로 모순을 낳고 그에 대한 저항세력을 배태할 수밖에 없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 내지는 민중운동은 그와 같은 조건에서 대두하였다.

흔히 반독재 민주화운동 내지는 민중운동으로 일컫는 당시 사회운동은 사실 이질적인 매우 다양한 운동세력을 총괄하고 있었다. 반공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보수주의 세력의 지배체제 아래서 그로부터 배제된 제도정치권의 자유주의적 세력(당시 야당세력),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재야 및 종교계의 양심세력, 경제개발의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이념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진보주의 성향을 띤 학생운동 세력 등이 모두 반독재 민주화운동 내지는 민중운동의 범주 안에 묶여 있었다. 개발독재 국가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이들 다양한 세력을 하나의 전선으로 묶일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7년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거센 저항으로 개발독재 체제가 위기에 처하고 마침내 지배세력은 민주화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세로는 혁명적 위기를 방불케 했지만 민주화운동 세력이 권력을 직접 장악하는 혁명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의 구호가 ‘호헌철폐 독재타도’였던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체제전복의 가능성은 애초부터 제한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거센 저항으로 더 이상 개발독재 체제의 유지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지배세력은 민주화운동 세력의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민주화의 성격이 결정되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지배세력이 민주화세력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하되 지배권 자체를 이양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배체제가 유지되는 한에서 추진되는 점진적이고 보수적인 민주화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존 국가권력의 성격과 단절한  형태가 아니라 점진적인 변형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경제적 성장주의를 그대로 계승하는 가운데 추진되었다. 더욱이 민주화의 과정이 자본의 지구화 과정과 동시적으로 진행된 까닭에, 정치적 자유화로서 민주화보다는 경제적 자유화로서 민주화의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 민주화 20년이 지난 오늘 절차적 민주화는 진전되었으나 실질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 또는 민주화의 최고 수혜층은 재벌과 대기업일 뿐 일반 국민이 아니라는 자조적인 평가 등은 이와 같은 민주화 과정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체제의 변형, 정치적 자유 공간의 확대, 민주적 절차의 합리성 강화 덕분에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은 그 활동 폭을 넓혀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더욱 활성화될 수 있었다. 과거 반독재 민주화 전선에 사실상 하나로 묶여 있던 사회운동은 다양한 분화를 하며 이념적 지향을 드러내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 지난 20년간 한국의 사회운동은 1980년대의 폭발적 원동력을 상실하고 혼란과 침체의 늪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단일한 대오로 결집하여 폭발력을 발휘하던 양상과는 달라졌지만 사회의 여러 영역으로 그 파급력은 확장되어나갔고 동시에 여러 부문으로 분화 발전되었다.

보수주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서이기는 했지만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던 제도정치권의 자유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고(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지배체제가 급격히 해체되지 않은 조건에서나마 1987년 민주화운동의 주도세력 가운데 일부가 직접 정권을 구성하기까지 이르렀다(참여정부). 앞서 지적한 바와 한국 민주화의 기본적인 한계 상황 탓에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회운동의 확장 효과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회운동의 양상은 시민운동의 확산일 것이다. 시민운동은 그 자체로 단일한 성격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사안별 이합집산의 형태를 띠고 있고 동시에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체로 시장경제의 조건 안에서 민주주의의 정치적 제도화를 압박하고 시민의 권리를 신장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민주화의 효과로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된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양편에 보수주의적 시민운동과 급진적 진보주의 성향의 민중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주의 세력은 여전히 정치와 경제, 관료사회 안에서 가장 큰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포함한 선출직 정치권력에서 배제 내지는 약화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 위기감에 동조하는 시민사회 내에서의 보수주의 세력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른바 ‘뉴라이트’ 또는 ‘신보수주의’ 세력은 민주화 시대의 보수주의의 합리화를 꾀하며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정권의 재탈환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구심세력으로서 민중운동은 ‘민주와 반민주’ 단일전선에서 우군으로 합류하고 있었던 자유주의 세력의 독자화로 상대적으로 위축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저지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대항전선의 형성으로 그 역할의 중요성이 재삼 부각되고 있다.

보수주의 세력은 말할 것 없거니와 시민운동으로 표출된 상당수 자유주의 세력이 민주주의의 정치적 제도화에 초점을 맞추거나 그에 적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반면, 민중운동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제도화의 한계를 넘어서 실질적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사회운동의 방향을 결정지을 열쇠를 쥐고 있다.

    


3.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기독교 사회운동의 변화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세력으로서 신보수의의 등장, 자유주의적 성향의 시민운동의 활성화, 그리고 진보주의의 성향의 민중운동의 상대적 약화 현상으로 집약되는 사회운동의 변화 양상 가운데서 기독교 사회운동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왔을까?  

서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민주화 이전 기독교 사회운동은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요람과 같은 역할을 했다. 진보적 사회운동의 요람으로서 기독교의 역할은 기독교가 가진 국내외적인 인적ㆍ물적 네트워크 덕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력한 반공규율 사회로서 한국 사회의 특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분단이후 진보적 사회운동의 맥이 끊겼다가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 체제에 대한 사회적 비판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 그 행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반공주의였다. 워낙 강력한 반공규율이 지배하는 사회였던 까닭에 용공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사회적 공감대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기독교는 용공 낙인에 대한 보호막으로서 역할하며 사회운동의 씨앗을 길러낼 수 있었다. 기독교 스스로도 용공 낙인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지만 기독교 자체의 신학과 네트워크 덕분에 일반 사회운동이 지니는 위험 부담에 비해 그 부담은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그런 까닭에 사회운동의 요람 역할을 한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진보적 표상으로 인식되었고, 민주화운동이 지속되는 동안 기독교 사회운동은 실질적으로 중요한 몫을 감당했다.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이 한국 진보적 사회운동의 요람이자 동시에 중추로서 역할하고 있던 시절 한국 기독교는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단순하게 양분되어 있었다. 그것은 정치사회에서 보수 집권세력과 반독재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던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양상이다. 하지만 기독교계에서의 보수와 진보 양분 현상은 정치사회에서의 양분 현상과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정치적 참여 가운데서 양자의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대별되기보다는 정치참여 자체 여부로 보수와 진보가 갈라지는 양상이었다. 보수는 정치참여를 배제했고 진보는 저항적 형태였지만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하였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독재와 반독재의 대립구도로 나타나기보다는 정치참여 반대와 옹호 구도로 나타났고, 양자가 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대립하기보다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둘러싸고 공박을 하는 묘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시절 보수주의 기독교가 과연 비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는 사실 되물어야 할 과제이다. 엄밀히 말해 보수주의 기독교는 표면상으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킴으로써 정권 자체에 대한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정치권력과의 은밀한 뒷거래를 즐겼다는 점에서 확연히 정치적이었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표면상으로 정치적 참여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보수주의 기독교를 제대로 평가한다는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시기의 보수주의 기독교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도 정치참여 여부를 두고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도식은 적절하지 않다. 정치권력의 성격과 그 정치권력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의 형태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나누어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관점은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진보주의 기독교 진영을 구성하고 있던 세력의 상당 부분이 민주화 이후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양상을 이해하는 데도 적합하다.

민주화 이후 정치적 표현의 공간이 확장된 상황에서 기독교 사회운동의 분화 또한 일반 사회운동의 이념적 지형 분화도에 따라 그 양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물론 이 이념적 지형도는 실질적인 세력판도와 엄밀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서로 얽혀 있는 세력관계 안에서도 중첩될 수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편의적으로 펼쳐 살펴보는 것일 뿐이다.

민주화 이후 기독교 사회운동의 변화 양상 가운데 과거 지배체제의 은밀한 협조세력으로 있던 전통적 기독교 보수주의 세력이 정치사회 전면에 등장한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이고, 과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대열에서 한 데 묶여 있던 기독교 사회운동의 분화 현상이 또 한편의 중요한 양상이다. 여전히 기독교계에서는 그 판도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이분법이 통용되고 있지만, 보수 기독교 내에서 분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 진보 기독교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민주화 이후 이미 분화가 일어나고 있거나 그 분화가 예상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별히 민주화 이후 과거 제도정치권에서 배제된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한 데 어울려 재야세력으로 불리던 기독교 내 세력이 민주화 이후 정부에 참여하게 된 것은 민주화 이후 기독교 사회운동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때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진보 기독교 내에서 이와 같은 성향의 세력은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이들과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던 민중운동 지향의 진보주의 기독교 사회운동 세력은 상대적으로 매우 위축된 양상을 띠고 있다.

기독교 사회운동은 전반적인 보수주의의 강화 추세 속에 자유주의의 분화와 진보주의의 상대적 약화로 그 양상을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사회운동의 이와 같은 양상은 진보주의 민중운동의 약화라는 점에서 일반 사회운동과 동일하지만 일반 사회운동의 판도가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대거 확장 양상을 띠면서 보수주의 세력에게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는 데 반해 오히려 보수주의가 전면에 등장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1) 보수주의의 강화

민주화 이후 기독교 보수주의의 판도가 기형적으로 확장되고 어떤 면에서 일반 사회의 보수주의를 향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우선 기본적으로 기독교 보수주의가 정치사회 표면에 등장하지 않던 민주화운동 시절에도 기독교내에서 보수주의가 규모 면에서 우위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상당한 동일성을 유지해 왔던 기독교 보수주의가 민주화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 공간이 확대되었을 때 그 발언권을 높이게 된 점은 일차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어째서 급작스럽게 공격적인 정치참여로 돌변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민주화가 민주화 이전과 달리 기독교 보수주의에 모종의 불편한 상황을 야기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적어도 정치제도적 차원에서 시민사회의 합리성과 공공성을 확장하는 효과를 지닌다. 단적인 예를 들어, 1990년대 조세논쟁이나 최근의 개정 사학법 논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독교 보수주의는 시민사회의 합리성과 공공성이 자신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이념적 혼란의 위기감이 기독교 보수주의의 공격적 정치참여의 가세 요인이 되었다. 민주화는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반공주의를 무력화시켰고 국가보안법 등 반공주의를 떠받치는 국가적 장치의 철폐를 요구하였다. 과거 정권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성격보다 더 강력하게 반공주의를 내면화한 기독교 보수주의는 이를 자신의 신학적ㆍ이념적 지주마저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스스로 재무장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내에서 반공주의의 공식적 철폐선언에 해당하는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후 보수주의 기독교계가 위기감을 느끼고 이듬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결성한 것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한편 기독교 보수주의의 전면적 등장은 진보적 기독교계 인사들의 민주화 이후 정권 참여와도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다. 과거 진보 기독교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도덕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 정당성은 보수 기독교 세력의 특권적 입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정치권력의 강압성만이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정당성 또한 보수 세력을 억제하는 효과를 지녔다. 그러나 진보주의 기독교 사회운동과의 관계가 이완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기독교 진보 인사의 정권 참여는 보수 기독교 세력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고 따라서 경합관계를 야기하였다.


2) 자유주의의 분화

기존의 진보적 민중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상층부 인사들이 민주화 이후 정부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현상은 기독교 사회운동 내에서의 자유주의 세력의 분화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세력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만큼 민주주의의 제도화에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민주화 이후 정부들의 발전주의 및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거나 의미 있는 제어세력으로 역할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력은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른바 ‘비판적 지지’와 ‘후보 단일화’ 세력으로 나뉘어 경합을 벌인 이래 정권 교체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엄밀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마도 민주화 20주년의 성과를 평가하고 기독교 사회운동의 재구성을 모색하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김영삼의 문민정부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그리고 오늘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계 인사의 지속적인 참여는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유대에서 비롯된 것은 두말할 것 없지만, 그 참여가 목적했던 대로 민주화의 강화를 가져왔는지 아니면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나누는 것에 그치고 결국은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에 포박당한 정권의 한계 안에 묶여 그 정권을 정당화하는 들러리 역할만 하게 된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자유화로서 민주화는 상당 부분 진척되었지만 경제적 자유화로 인한 폐해는 날로 심각해지고 따라서 실질적 민주화의 기반이 훼손되어 가는 오늘 현실에서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으로 정권 내에서 별다른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권에 참여한 기독교 세력은 이미 진보적 사회운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정권 내에서는 의미 있는 소수로서 몫을 하지 못하고 동시에 기독교 사회운동의 확장에도 그다지 두드러진 역할을 못하는 현재의 추이로 보면, 정권에 참여하는 기독교 세력은 더욱 보수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독교 내에 한정해서 말할 것 같으면 합리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진짜 ‘신보수주의’는 이 세력 가운데서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기독교계 인사들 가운데 ‘신보수’ 또는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그룹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 경우 그 이름은 스스로 자처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사실상 과거 보수주의와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에 가깝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과 인적 유대 면에서 가까운 정치참여 세력이 합리성을 띤 보수주의의 경향을 띨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 민주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정권의 재창출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방화로 인한 민중의 삶의 피폐화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보수화의 경향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 정치 차원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회의 통합추진 과정이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행보가 시사하듯 기독교 내 보수주의 경향은 과거 기독교 진보 진영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 결국 기독교내 보수주의의 강화 현상은 보수주의 기독교의 확장이라는 측면과 함께 과거 진보주의 기독교의 보수화라는 측면이 동시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셈이다.


3) 진보주의의 약화

전반적으로 보수주의의 추세가 강화된 상황 가운데서 진보적 기독교 민중운동은 매우 축소되어 있는 형국이다. 과거 두터운 우군을 거느리고 있었던 진보주의 기독교 민중운동은 외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기독교 민중운동은 19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자본의 지구화 현실과 맞물린 전반적인 민중운동의 퇴조와 혼란을 공유했다. 기독교 민중운동은 1987년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기독교사회운동연합 등으로 집결하였으나 민주화와 함께 그 영향력은 현저히 퇴보하는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다. 각기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실천과 함께 기독교 사회운동을 전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부단히 시도되었으나 한 동안 과거의 그 실천력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방화 물결과 함께 진행된 민주화의 한계 상황이 노정되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은 민중운동과 함께 진보적 기독교 민중운동은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의 지구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패권의 확장으로 발생하는 폭력의 악순환 상황 속에서 사회 저변층의 기본권 확장과 평화로운 삶의 조건, 그리고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위한 목표에서 여러 계급ㆍ계층의 민중운동은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역할이 새삼 중요해지게 되었다. 기독교 민중운동은 지난 2004년 “변화된 세계와 기독교 사회운동의 재구성”을 주제로 기독교사회포럼을 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대항한 평화운동과 반세계화 및 자유무역협정 저지 전선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연대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가고 있다.

최근 기독교 민중운동의 변화된 양상 가운데 주목할 만 것은 복음주의로 분류되는 보수적 교회의 일부 그룹들이 특정한 사안을 중심으로 연대하고 있는 점이나 기존의 교회 지도력과 교회 정치의 구조를 새롭게 하려는 교회개혁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전반적인 보수화 추세에 대한 대응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방화 물결 속에서 성장주의를 계승한 정권의 지배체제가 지속되어 민중의 삶의 피폐화가 가속화되고, 또 한편으로 그와 같은 현실에 아랑곳없이 장밋빛 환상에 도취한 보수주의 세력이 위세를 떨칠수록 급진적 대안을 추구하는 민중운동과 함께 기독교 민중운동은 중차대한 과제를 떠맡을 수밖에 없다.



4. 민주주의의 급진화와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의 재구성  


전반적으로 보수주의가 득세하고 과거 진보주의 진영의 일부 또한 보수화할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보수주의 강화 현상에 대해 진보주의적 연대의 전선을 확장하고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다. 진보주의적 연대의 확장 및 활성화는 꼭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 시절과 같은 단일한 대오로의 결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와 같은 연대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이미 기독교 사회운동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각자의 영역을 확대해가는 가운데 내용적 연대를 추구하는 형태가 현실적일 것이다.

그 연대는 단순히 의지의 차원에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주어진 현실 자체가 연대의 조건이 되고 있다. 민주화로의 이행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 민주화를 위협하고 무위화시킬 만한 사태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 민주화를 위협하는 사태들은 민중의 삶을 극도로 피폐화하는 조건들이다. 그러한 조건들을 헤아리며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을 재구성하기 위한 몇 가지 방향을 제안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첫째,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시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고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 민주주의 곧 자본의 지배가 보장되는 한계 안에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일 뿐이다. 정치제도상의 민주화가 진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세력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경제적 성장주의가 여전히 지속됨과 동시에 대다수 민중이 민주화의 성과를 공유할 수 없는 현실은 그 한계 안에 있는 민주주의에서는 필연적이다. 따라서 자본의 횡포를 제어함으로써 민중의 삶의 피폐화를 막을 수 있는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을 지속적으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둘째, 자본의 지구화 현실에서 대안적 세계화를 추구하는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자본의 지구화는 국민주권의 위기를 초래한다. 이는 민주화 2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통해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바이다. 한편 자본의 지구화는 단지 국민주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자본의 지구적 지배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국경에 상관없이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을 주변화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박탈한다. 그러나 지구적 수탈의 네트워크는 동시에 저항과 대안의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 및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이 참여해온 바와 같이 대안적 세계화의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셋째, 민중운동은 생명ㆍ평화운동과 더욱 긴밀히 결합해야 한다. 자본의 지구화는 무한정한 자원의 수탈로 생태계 위협을 가속화하고 있고, 한편으로 군사적 세계 지배와 병행하는 까닭에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중의 삶을 피폐화하는 요인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폭력적 세계 질서를 만드는 요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자본의 횡포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계급ㆍ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운동과 생명ㆍ평화운동은 접근방식에서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자본의 횡포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공동의 지향성을 갖고 서로 연대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소수자 운동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대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돌이켜보건대 과거 기독교 운동은 소수자 영역의 문제를 끊임없이 발굴하여 사회적 의제화하고 운동을 촉진하는 적극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이주민 문제, 장애인 문제 등에 대해 기독교 사회운동은 이미 적극적으로 관여해왔고, 양심적 병역 문제 등에 대해서도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성적 소수자의 문제 등도 점차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주류를 향한 배타적 감수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타자들에 대한 감수성을 확장하고 낮은 자리에 함께 하는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다섯째, 기독교 사회운동과 교회 및 신학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과거 기독교 민중운동이 민중신학을 탄생시켰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 사회운동과 새로운 신학운동이 괴리된 현상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고, 기독교 사회운동과 교회와의 괴리는 더욱 심각하다. 절차적 민주화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적 가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교회 내의 권위주의는 쉽사리 극복되지 않고, 또 한편으로 성장주의가 더욱 강화되는 현상마저 있다.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 시절 기독교 사회운동의 실천 효과가 교회의 체질 개선에는 그다지 큰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평가될 만한 사태이다. 그 점에서 최근 교회 내 신앙생활 문화와 제도를 바꾸려는 여러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더욱이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에큐메니칼’ 진영으로 불리는 과거 진보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으로 불리는 과거 보수 진영 사이의 수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그와 같은 교회운동들과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의 결합은 기독교의 전반적인 보수화에 맞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20년간 진척된 민주화의 한계, 오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거세게 몰아치는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들은 거꾸로 진보적 사회운동에 많은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그 과제들을 감당해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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