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겨울바다에서 인생을 배운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12-26 12:00
조회
310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52번째 원고입니다(061226).


겨울바다에서 인생을 배운다


귀인을 한 분 만났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한국에큐메니칼연합교회 수련회에서였다. 대안적인 교회상을 모색하며 그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아래로부터 진정한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동역자들 20여명이 만나 사흘 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가 서로를 일깨워주고 또한 격려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참석자 모두 소중한 동역자들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귀한 분이 있었다. 30여 년간의 목회에서 은퇴하여 지금은 순천에서 초등 대안학교인 평화학교 교장으로 계시는 홍순관 목사님이었다.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칭 ‘최연소자’라고 소개하셨는데, 실은 딱 일흔이었다.  


“거룩한 소리, 잡소리 다 떠들어대면서 이렇게 잘 노는 놈들 처음 봤다”고 그 분위기를 평하셨지만, 거꾸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분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다들 감동하고 놀랐다. 어록을 다 기록해두고 싶을 정도였다. 인생의 깊은 연륜이 배어 있지만,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가르침이 아니라 정말 쉽게 무릎을 칠 수 있는 말씀들을 들려주셨다. 진정한 로맨티스트요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이었다. 아침 명상을 인도할 때도, 토론과 친교를 나눌 때도 틈틈이 금과옥조 같은 말씀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냈고, 때로는 폭소를 자아냈다.


마지막 날 아침 명상시간에는 바다 이야기를 하셨다. 겨울바다를 찾으면 깨우치는 게 있단다. 인적이 없는 그 겨울바다 백사장을 걷다보면 자신이 지나온 발자국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오늘의 자신은 지나온 삶의 결과라는 이야기이다. 그 삶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생기를 돋아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허무감을 느끼게 해준다. 목사가, 그리고 교회가 그 누군가에게 허무감을 줘서야 되겠느냐, 생기를 돋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을 던지셨다. 첫날 말문을 여실 때는 인생을 강물에 빗대어 “너는 흐르는 물이냐?” 하고 화두를 던지시더니, 마지막 날에는 그 이야기를 하셨다.


어쩌면 그다지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자연의 한 풍경 속에서 인생의 이치를 깨우치는 그 이야기가 가슴에 박혔다. 한적한 겨울바다 풍경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지면서 그 말씀이 내내 귓전에 울린다. 정말 새삼 겨울바다를 찾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으면서 지나온 흔적을 다시 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또 새로운 한 해의 시작,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걸음걸이가 내가 내딛는 곧은 걸음걸이요, 뒤 따라 올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바르게 이끌어줄 걸음걸이였으면 좋겠다.
1_S_1171260917.jpg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DSC00296.jpg

2007년 1월 14일 오후 천안살림교회를 방문하신 홍순관 목사님

0000001461195_O.jpg

겨울바다
전체 2
  • 2007-01-01 12:34
    '오늘의 자신은 지나온 삶의 결과'라.....
    rn올 한해 지내기가 두려워지네요, 아니 뭐랄까 숙연하게 만드네요.

  • 2007-01-01 21:14
    이번 겨울에, 지난 여름에 갔던 동해 바다에 다시 가고싶네요.

천안살림교회